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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 손미나의 로드 무비 fiction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속았다. 손미나의 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를 다 읽고 났을 때 제일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이 낭만의 도시 파리를 배경으로 한 연애소설이라고? 틀렸다. 이 소설은 가슴 아리는 사랑을 꿈꾸는, 아직 사랑에는 서툰, 어쩌면 심장이 타들어갈 만큼의 감정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녀가 쓴 연애를 꿈꾸는 소설이다.
연예인인의 책이라면 색안경부터 쓰고 보는 편인지라 사실 이번 책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특히나 전작들이 내 취향에 맞지 않았고, 그녀의 경험들이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지 않았기에 더더욱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책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는 달랐다. 어쩌면 손미나라는 색안경을 벗고 읽었더라면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마저 남았다.
이야기는 소설가를 꿈꾸는 장미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소설을 쓰고 싶지만 남의 책만 써주는 대필작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장미, 어느날 그녀는 K그룹 회장의 딸 최정희(레아)의 자서전을 대필해줄 것을 의뢰 받는다. 최정희는 프랑스에서 레아라는 이름으로 상당한 수준의 그림을 그리던 중 홀연히 그 모습을 갖춘 후였다. 어느 순간 대중의 눈에서 사라진 최정희에 대한 이야기로 세간의 이목을 잡아보겠다는 출판사의 의지였다. 인물에 대한 부담감과 언제까지 대필작가를 해야하나라는 자괴감이 있었지만, 이번 대필만 끝나면 장미의 소설을 내주겠다는 제안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수락한다. 단 조건이 있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최정희의 남자 테오에 대한 정보를 찾아 책에 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테오의 정보를 찾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 장미, 그러나 그 과정은 험난했다. 장미는 공항에서 가방이 바뀌는 실수로 최정희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담긴 가방을 잃어버리고, 자신과 가방이 바뀐 로베르를 만나게 된다. 가방을 찾기 위해 찾아간 로베르의 집에서 장미는 노란 꽃으로 뒤덮인 두 개의 그림을 발견한다. 똑같은 그림, 하지만 두 그림에 적힌 완전히 다른 화가의 이니셜. 장미는 로베르와의 대화 중에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어쩌면 최정희일수도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로베르와 함께 그림의 배경인 봄레미모자 마을을 향해 출발한다.

"이 마을엔 겨울이 끝나갈 즈음 짧고 가는 솜털 뭉치 모양의 샛노란 꽃들이 피죠.
사실 꽃이 핀다기보다 나무를 가득 엎어 버린다 싶을 정도로 탐스러워요.
미모자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2월 말이면 마을 전체가 노란 숲 속에 폭 싸여버리죠. "
_ 145쪽 중에서
이 책의 제목이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인 이유는 바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을 찾는 것이 이 책에 등장하는 장미와 로베르, 최정희(레아)와 그녀의 남자 테오의 관계를 푸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노란색으로 눈부시게 피어나 누구나 한 번 보면 반할 수 밖에 없다는 꽃 미모자, 그리고 미모자를 밟지 않고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다는 프랑스의 봄레미모자 마을, 그리고 그 봄레미모자 마을에서 밝혀지는 주인공들의 비밀이 이 소설의 핵심이었다.
소설은 장미, 테오 두 입장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데 그 시점과 서술방식을 묘하게 다르게 배치함으로서 책을 다 읽은 후에야 그 두 입장이 연결되어 거대한 서사가 완성될 수 있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제는 손미나를 소설가로 불러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이었는데, 배경 묘사나 인물 묘사도 뛰어났지만 소설의 가장 큰 핵심인 이야기를 배치하는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퍼즐을 모으는 재미, 그리고 그 퍼즐이 완성되었을 때의 짜릿함, 그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앞서 이 소설이 연애 소설이 아니라 연애를 꿈꾸는 소설이라고 한 이유는 그 이야기 배치의 힘이 사랑의 감정선 묘사보다 더 강했기 때문이다. 인물간의 절절한 감정선, 자신의 신분까지 바꿔가며 사랑하는 이를 지켜야 했던 그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그들의 모습이 도드라지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손미나가 최정희나 테오가 아닌 장미에게 자신을 더 많이 투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자신도 그런 사랑을 꿈꾸고 싶은... 뭐, 어찌 되었듯 벌써부터 손미나의 두번째 소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