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기 시작한 이후로 가끔은 '내가 이 책을 왜 샀더라?'를 고민하게 되는 일들이 생겼다. 하루라는 배송기간은 10%할인과 10%의 적립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책을 고를 때의 느낌과 그 책을 골랐을 때의 당장이라도 읽지 않으면 못 배길것 같은 마음을 기억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택배 상자에서 나와 곧바로 책꽂이로 직행해 한동안 내 눈길을 받지 못한채 시간을 흘러보내는 책들이 생겨버렸다.

 

<심홍>이라는 책을 책꽂이에서 다시금 발견하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내가 그때 이 책을 왜 읽고 싶어했었지?'라는 물음으로 한참을 골똘히 생각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저자소개를 보고는 그 당시의 이 책을 읽고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노자와 히사시. 시나리오 작가 겸 소설가로 활동한 일본 작가.  1997년 소설 <파선의 맬리스>로 제43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고, SBS 드라마 연애시대의 원작 소설이었던 <연애시대>로  제4회 시마세 연애문학상을 수상, 2001년 이 책 <심홍>으로 제 22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받고 2002년에는 <반란의>라는 책으로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상을 수상한 작가.  그리고 2004년 44세의 나이로 자살.

 

아마도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저자 약력의 마지막 문장, 그의 자살 때문이었을 거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꼭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그 힘든 내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내려갔던 것도, 당장 읽지도 않을 책이면서 단지 저자의 소개만으로 사 놓고 여전히 책장 한켠을 차지하게 하고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도 다 작가의 자살 때문이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나야만 했는지, 내게는 삶의 즐거움을 안겨다 주는 소설이 왜 그들에게는 자살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는지 그들의 작품 속에서 찾고 싶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각각 남기고 간 아이들이 비슷한 막다른 골목에서 신음하고 있다.
죽임을 당한 측과 죽인 측이 실은 같은 고통으로 이어져 있다고 한다면…….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_182쪽 중에서


 

<심홍>에는 한 처참한 살인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딸이 등장한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떠났던 가나코는 한밤중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올라오게 된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집에 들어닥친 괴한에 의해 부모님과 동생 둘이 처참하게 살해를 당했던 것. 그녀는 그 이후로 자신만 살아남은 것을 미안해하며 고모집에서 언론의 시선을 피해 살아간다.

 

그 사이 범인을 저지른 가해자는 재판이 진행되고 범인의 상신서를 통해 왜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밝혀진다. 사랑하는 아내의 보험금을 가나코의 아버지에게 강탈당한 그는 그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 그에게도 가나코와 동갑인 딸 미호가 있었는데 그녀의 행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렇게 피해자의 딸로, 가해자의 딸로 각각 10여 년이라는 시간을 지내 온 두 딸들이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 가나코는 미호에게 자신의 신분을 숨긴채 접근한다. 시작은 가나코에 의해서였지만 어쩌면 미호는 말은 안 했지만 그녀가 가나코였던 것을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어쨌뜬 이 둘의 아슬아슬한 감정의 경계와 미묘한 신경전이 이 책의 핵심이다. 살인자의 딸, 그리고 아버지의 악행으로 인해 죄 없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잃어야 했던 피해자의 딸, 사건 이후의 이들의 일상과 세상에 대한 시선, 그들의 미래가 이 소설의 주요 메시지다. 

 

보통 이런 류의 책들과 달리 극적인 긴장감이나 이야기 굴곡의 변화가 큰 소설은 아니지만, 피해자와 가해자의 딸을 전면적으로 대립시켜 가해자든 피해자든, 살아남았든 죽어버렸든, 모두가 승자없는 세상의 패자이고 결국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건 서로라는 아이러니를 낳는 묘한 관계를 보여주는 감정선이 살아 있는 소설이었다.  더이상 노자와 히사시의 책을 읽을 수 없음이 안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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