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의 레시피 키친앤소울 시리즈 Kitchen & Soul series 1
이부키 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 예담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 엄마는 (본인은 인정하시지 않지만) 요리를 참 못한다. 다른 집네 엄마는 탕수육도 만들어주고, 떡볶이도 만들어주고, 별별 신기한 요리를 다 해주는데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가 해주는 최고의 요리는 감자 조림과 된장찌개였고, 특별한 날에는 큰 손질이 가지 않는 고기를 구워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해주는 요리가 제일 맛있었다. 며칠 집을 떠났다 돌아오거나, 힘이 나지 않을 때면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제일 먹고 싶었다. 아무리 달콤한 친구네 엄마의 요리도, 줄을 서서 먹는다는 유명한 음식점의 음식도 엄마가 해주는 밥 맛을 따라올 수가 없었다.

 

'밥'이라는 것, '음식'이라는 것은 그렇게 참 묘하다. 내가 맛있어 하는 것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못 먹을 음식이 되어버리고, 다른 누군가가 실수로 조미료를 빼먹은 싱거운 음식이 내게는 간이 딱 맞는 맛있는 음식이 되어버린다. 특정한 기준의 잣대를 들이밀어 평가할 수도 없고, 모두에게 똑같이 느껴지는 맛이라는 것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입에서 진심으로 '맛있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며, 먹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서로가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 때만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좋아한다느니, 사랑이라느니, 아이 러브 유라는 말은 없어도 돼요. 제가 차린 걸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 그걸로 충분히 행복해요."_ 172쪽 중에서

오토미는 33년간 남편 아쓰다와  딸 유리코를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 아쓰다에게는 사별한 전처가 있었고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유리코가 있었음에도 오토미는 그들의 가족이 되고 싶었다. 의붓 엄마에 대한 거부감을 지닌 딸과 무뚝뚝한 남편이었지만 오토미는 그들과 함께 가족을 이루고 살아야겠다 결심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돼지 호빵'을 "맛있다"고 해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 앞에 딸 유리코와 남편은 똑같이 그녀의 도시락을 떠올렸다. 유리코는 제일 처음 계모를 만나게 되던 날 손으로 내리쳐 엎어버렸던 그녀가 싸온 미니햄버그와 별 모양의 달걀부침이 담긴 찬합을, 그리고 남편 아쓰다는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던 날 아침 이런 것을 어떻게 가지고 나가냐며 호통을 쳤던 국물이 흐르던 도시락을 말이다. 그들은 오토미가 떠난 뒤에서야 오토미가 해주던 그 '밥 맛'을 떠올렸다. 

 

<49일의 레시피>는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많은 일본인을 울린 소설이다. 새엄마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죽음을 기리는 49일이라는 시간동안 그들의 상처가 어떻게 치유되고 아무는지 그 과정을 음식과 함께 그리고 있다. 새엄마 오토미의 죽음으로 집에 내려온 딸 유키코와 아버지 아쓰다는 몇년 만에 함께 집에서 지내게 되고, 그 사이에 그들은 함께 있었지만 소중함을 잊고 지내던 오토미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오토미의 상을 치루고 며칠이 지나 이모토라는 학생이 아쓰다의 집을 찾고, 아쓰다와 유리코를 위해 음식을 하기 시작한다. 이모토는 '리본 하우스'라는 재활 치료 기관에서 오토미로부터 가르침을 받던 학생이었고, 언젠가 오토미가 자신이 죽게 되면 자신이 그려 놓은 그림 레시피로 자신의 남편과 딸을 위해 음식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승에서의 마지막인 49재에는 법회 대신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찬 대연회를 열어 모두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부탁이 이상하게 들렸지만 그들은 처음으로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심하고 49재 대연회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카레우동, 고로케 샌드위치, 자주쓴풀차 등등 처음에는 몰랐지만 아쓰다와 유리코는 오토미 레시피의 그 맛으로 그동안의 아픔과 상처를 치료받고 있었고 그녀의 사랑을, 그녀의 소중함을 더욱 뜨겁게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49일 째 되는 날, 아쓰다는 죽어서까지 자신을 생각하는 그녀의 음식의 맛에 참았던 울음을 터뜨려버리고 만다.

 

오토미는 30여 년이란 시간동안 그림과 함께 간단한 레시피를 적고 떠났다. 자신이 없어도 밥은 꼭 챙겨먹으라며, 자신이 만든 음식의 그 '맛'만은 기억해 달라면서 말이다. 잔잔하지만, 그리고 음식으로 사람을 추억하고 사랑을 전한다는 방식이 조금은 낯설지만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그런 소설이었다. 내가 잊지 못하는 그 '맛'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맛'을 선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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