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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 손턴 와일더의
손턴 와일더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가끔은 세상이 참 불공평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병든 부모를 모시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성실한 청년이 불의의 사고로 한 순간에 목숨을 잃기도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못하며 자신이 모든 손해를 감수하며 살아가던 아가씨는 강도를 만나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를 당하기도 한다. 반면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일삼고 교묘한 방법으로 남의 돈을 갈취하던 사람은 여전히 위풍당당 잘 살고 있으며,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며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자들도 오히려 행복한 모습으로 즐겁게 살아간다.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
내게 닥친 불행은 또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감당할 수 없는 힘겨움이 닥쳤을 때, 계속해서 실패의 쓴 맛 만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왜, 하필 나야?"라며 세상을 먼저 탓하게 되지 않는가?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한적 없고, 누군가에게 해 한번 끼친적 없는데 왜 내가 이토록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왜 하필 그 순간 내가 그곳에 있었던 것일까, 왜 하필 그때 그 사람을 만났던 것일까, 라며 언제나 '왜 하필'을 외치고 있지는 않은가? 여기 나와 같은 이들을 위해 그 이유를 밝히고자 한 한 수도사가 있었다.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다만 자기가 개종시킨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 속에 깃든 고통들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믿지 못하는 가난하고 완고한 개종자들에게,
그 답을 역사적으로, 수학적으로 증명해주고 싶었다.
_ 34쪽 중에서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져 여행객 다섯 명이 다리 아래 깊은 골짜기로 추락했다." 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왜 인간의 비극이 특정인이게 닥치는 것이며, 그 비극이 왜 그에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지를 밝히고자 한 주니퍼 수사의 기록이다. 신의 모든 행위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것만으로 인간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주니퍼 수사는 페루에서 일어난 다리 붕괴 사고에 주목한다. 그날 그 다리 위를 건너다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은 다섯 사람, 이 다섯 사람의 종적을 찾아 그들의 죽음의 이유를 객관적으로 밝혀내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거라 판단한 주니퍼 수사는 6년간 리마(페루의 지방 이름)의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수없이 질문을 하고, 수십 권의 공책을 채우며 목숨을 잃은 다섯 사람 하나하나가 완벽한 신의 피조물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기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사실 그 다섯 명의 종적을 읽고 있으면 왜 하필 그들이 그 다리를 건너고 있어야 했고,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 더욱 오리무중으로 빠져든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 그녀는 외로운 과부로, 딸 클라라에게 숨막히는 사랑을 보내 딸을 저 멀리 스페인으로 시집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은 딸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 일이었는데 그녀는 자기 연민에 빠진 자아도취적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딸에 대한 강박적인 사랑을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하녀 페피타의 편지를 훔쳐 보다 그동안 자신의 삶의 실수를 깨닫고 모든 강박과 히스테리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딸에게 (마지막이 된)편지를 쓴다. 그리고 이틀 뒤 하녀 페피타와 함께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다 사고를 당하게 된다.
피오 아저씨의 죽음은 더욱 절망적이기만 하다. 그는 당대 유명한 배우 카밀라의 가정부였다. 아니, 그는 그녀의 노래 선생님이자, 이발사이자, 안마사이자,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자, 연기 지도자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피오 아저씨가 카밀라를 만난 건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열두살 소녀 카밀라였을 때였다. 피오 아저씨는 카밀라의 노래를 듣고 그것에 매료되어 그녀를 최고의 배우로 키우고 싶은 마음에 소녀를 돈을 주고 샀다. 카밀라에 대한 피오 아저씨의 사랑은 남녀 관계의 사랑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있었다. 최고의 연기를 해내 피오 아저씨의 인정을 받기 위해 카밀라는 노력했고, 피오 아저씨는 그런 카밀라를 위해 냉정을 유지하며 최선을 다해 그녀를 도왔다. 하지만 카밀라는 최고의 배우에 오르며 피오 아저씨를 점차 귀찮게 여기기 시작했고 그녀는 다른 백작과 결혼을 해 아들을 낳게 된다. 피오 아저씨는 변해 가는 카밀라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녀의 아들에 대한 배우적인 기질을 키우고 싶어 그녀에게 아들을 자기에게 보내 교육 시킬 것을 권유한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하던 그녀였지만 결국 그 둘을 떠나도록 허락하고 그날 카밀라의 아들과 피오아저씨는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게 된다.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과 페피타, 피오아저씨와 카밀라의 아들, 그리고 쌍둥이 동생을 잃은 에스테반까지 이 다섯 명은 산 루이스 레이 다리가 무너지는 현장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들의 이야기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가 지금까지의 삶의 고통을 딛고 새출발을 결심한 다음날 불행한 사고를 당하게 된다. 정말로 신이 존재해 이 모든 것을 결정하였다면 이것이야말로 불합리하고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인간의 삶은 더 잔인하고 고통스럽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이 소설의 마지막 장, 다리에서 죽은 사람들의 장례식 날 비로소 풀리게 된다. 장례식인 열린 대성당의 수녀원장을 찾아온 사람들. 그리고 그녀에게 건네는 죽은 다섯명과 얽힌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그들의 죽음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소녀 때부터 이어져온 외로움과 오랜 절망 때문에 고통받던 카밀라는 피오 아저씨의 죽음에서, 클라라는 어머니가 보내온 마지막 편지 속에서 사랑의 힘을, 삶의 기쁨을 깨달으며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평안을 비로소 찾게 된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고 죽은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으며, 그 둘을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유일한 생존자이자 유일한 의미인 사랑!" 이라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주니퍼 수사가 그토록 밝히고자 찾아 헤맸던 신의 의도이자 우리 삶의 목적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