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철학자 펭귄클래식 12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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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마다 읽고 싶은 이유는 다르다. 어떤 책은 작가가 좋아서, 어떤 책은 제목이 좋아서, 어떤 책은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을 것만 같아서. 이 책이 읽고 싶었던 이유를 대라면 정말 '그냥'이다. 책을 보는 순간, 작가가 누구고, 제목이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꼭 내가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정말 정확했다. 내게 어울리는, 아니 내가 꿈꿔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었다.

이 책은 <위대한 개츠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집이다. <바다로 간 해적>, <얼음 궁전> 등 총 8개의 단편에 8명의 아가씨가 등장한다. 그녀들은 모두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각자 자신만의 사랑을 꿈꾸고 있으며, 각자의 이상을 그리고 있으며, 서로 다른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한편 한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1920년대 미국의 자유분방하며 반항과 도전을 일삼는 일명 나쁜 아가씨들의 기성가치로부터의 해방을, 진취적인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자와 결혼하고 싶은 건지 말 좀 해봐라."
아디타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건 아마도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확신에서 나오는 용기와 상상력을 가진 내가 아는 유일한 남자이기 때문일거예요.
어쩌면 사방으로 날 쫓아다니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쓰는 바보 같은 젊은 남자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고요."

_ <바다로 간 해적>, 25쪽 

<바다로 간 해적>의 아디타는 수많은 남자들의 구혼을 받는 매력적인 여성이지만 그런 남자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녀가 찾는 사람은 집안이 좋은 사람도, 단지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도 아니다. 그녀는 상상력을 가진 사람, 생각할 줄 아는 남자를 꿈꾼다. 그리고 그런 아디타에게 한 남자는 멋진 청혼을 하게 된다. 해적을 만들어 고립된 상황에서 대화를 끌어내고, 마지막에 멋지게 청혼하는, 말 그대로 용기에서 나오는 상상력을 가진 사람임을 몸소 보여주어 그녀의 마음을 사는 것이다. <바다로 간 해적>은 그 내용을 별이 쏟아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바닷가의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함께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머리와 어깨>도 인상적인 단편 중 하나다. 17세에 석사를 마친 미국 철학계에서 주목받는 천재 호레이스와 일개 코러스걸에 불과한 댄서 마르샤의 결혼은 센셔이션을 일으켰다. 예일과 프린스턴 양쪽 학게에서는 세계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던져버렸다고 호레이스의 결혼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이 둘은 사랑했기에 더 열심히 살고자 노력했다. 서로를 머리와 어깨로 부르며, 호레이스는 머리의 역할을 마르샤는 어깨의 역할을 하며 서로의 부족함을 매꾸며,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호레이스는 댄스를, 마르샤는 독서를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한 신문 기사가 인용되어 나온다. "이 젊은 부부는 자신들을 머리와 어깨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물론 타박스 부인이 저술과 정신적 분야를 담당하고, 남편은 유연성과 민첩함으로 어깨를 담당하여 가정의 부를 형성함에 있어 각각의 몫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서로를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다 결국 이들은 서로가 바뀐 모습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 두 단편 외에도 풍부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남부 사람인 샐리 캐롤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북부에 가 결국 이질적인 문화를 견디지 못한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은 <얼음 궁전>, 모든 사람들의 시선과 모든 남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사촌 마조리 곁에 사는 평범한 버니스가 그녀의 조언으로 매력적인 여성으로 변하고 결국 마조리의 시기와 질투에 머리를 잘라버리는 <버니스 단발머리를 하다> 등등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 하나 하나가 너무나 매력적이다.  

1920년대 사교계의 모습과 그 시대를 풍미하던 매력적인 여성들의 모습, 그리고 그녀들의 도발적이면서도 당찬 생각들. 그것들을 읽다보면 지금보다 그때 그녀들의 사유세계가 더 풍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 표지에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아마 외모에서 풍기는 것도 물론이긴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그녀들의 내면세계가 함께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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