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에게 중국을 답하다 - 유광종 기자, '회색'이란 색감으로 중국 문명의 속내를 그리다
유광종 지음 / 크레듀(credu)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중국인을 이해하기 위한, 중국 문명을 이해하기 위한 책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이후로는 딱히 이렇다할 만한 책이 없다. 하지만 한비야의 책도 곳곳에 오류가 적지 않게 있다. 아마도 비전공자의 눈으로 겉으로 들어나는 피상적인 중국만을 바라보고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지점에서 많은 갈증을 느끼고 있던 내게 유광종의 <연암 박지원에게 중국을 답하다>는 100퍼센트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해 준 책이었다. 

"3리마다 성(城)이요, 5리마다 곽(郭)이다."
이 책은 약 230년 전 중국에 보내는 사절을 따라 중국에 다녀온 연암 박지원의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지금도 베이징에 다녀온 사람이면 이와 같은 문제 의식에 공감할 수 있다. 베이징 지도를 펼쳐보면 대부분 직선과 곡선으로 구획이 나뉘어져 있다. 곳곳에 높이 성곽이 쌓아져 있고, 작은 마을에도 그것들이 그것들이 남아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만리장성은 그 중에서도 중국인이 쌓은 담의 견고함의 최고봉을 보여준다. 이처럼 연암과 같은 시각인 '담'이라는 문제의식을 시작으로 중국인의 사고와 행위에 나타나는 문명성과 전통성을 찾아간다.  이 책은 단순히 중국 사회를 체험하고 겉 모습을 써내려간 것이 아닌 문명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 중국인, 더 나아가 중국이라는 나라를 읽어내려간다.

현재의 중국인들의 모습에서 그것이 가능한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 분석하는 부분은 흥미롭다. 중국인들은 외국 문물과 명칭, 사람의 이름까지 모두 중국식으로 바꾸어 부른다. 콜라도 '可樂', 김치도 '泡菜' 등으로 바꿔 부른다. 한자만으로는 도저히 어떤 것을 지칭하는지 알 수가 없다. 때문에 외국인이 중국어를 배울 때 힘이든다. 어떤 것은 발음 자체도 전혀 다르기 때문에 사전을 다시 찾은 뒤에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중국인들의 습성을 외부의 사물과 현상을 자기 식으로 인식하는 동일시 심리에서 비롯한 것으로 바라본다. 외래문물과 내부 문화와 동질적인 요소를 찾고 그것을기준으로 외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천하'라는 관념 아래서 가능한 것이다. 

자판기가 없는 중국에서 현세적 가치관을 읽어내는 것, 높은 담장 속에서 폐쇄적 속성을 가진 중국 역사를 읽어내는 것, 연 날리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전통 속에서 슬픈 민중들의 삶을 읽어내는 것 등등 현재의 중국을 역사와 문화적인 관점에서 읽어내는 저자의 눈이 날카롭다. 물론 동의 할 수 없는 부분의 내용도 있다. 1장의 두번째 이야기인 바둑과 마작에서 저자는 도박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습성을 이야기하는데, 마카오에 중국인들이 열광하는 것과 한국의 워커힐 카지노의 손님의 대부분이 중국인인 것이 바로 이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중국인이 전술과 전략이 필요한 도박에 열광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카지노와는 그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중국인들은 돈을 벌기위해 바둑이나 마작, 귀뚜라미 싸움 등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그 상황을 즐기고 좋아해서 하는 것이다. 마카오나 카지노의 목적인 돈을 벌기위함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나 역시 중국에서 생활하고, 많은 중국인을 만났지만 그 중 한국의 카지노를 궁금해하거나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카오의 카지노에까지 이를 연관하는 것은 저자의 확대해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그럼에도 중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식견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중국을 이처럼 읽어냈다는 점에 있어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가깝지만 아직도 잘 모르는 거대한 땅 중국. 그들의 생각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예리한 문제의식과 넓고 탄탄한 식견을 바탕으로 중국을 잘 읽어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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