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세트 - 전8권 - 죄와 벌 + 백치 + 악령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홍대화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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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정말 어마무시하게 멋집니다. 책 사진 찍으면서 넘 예뻐 엉엉 울었어요. 다만 박스판에서 책 빼고 꽂기가 넘 힘들어요. 추위에 박스가 더 단단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책 빼기 전에 박스 조곤조곤 만져주며 살짝 달래주세요. 이제 읽는 일만 남았어요. 완독까지 열심히 달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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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러운 병기 도감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세계 병기사 연구회 지음, 오광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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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있는 곳에 진기한 병기가 있다?!

어째서 아무도 말리지 않았으며, 어쩌다 그런 형태가 되어버린 것일까.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출판사에서 올해 4월에 출간한 책이에요. 사회과학책 특유의 딱딱함으로 무장하고 있을까봐 걱정을 무지했는데요. 책을 받고 보니 한시름 놓다못해 호기심이 일어 곧장 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컬러풀한 도판의 잡지 같은 책이라 부족한 상상력에 허덕일 필요가 없구요. 설명하고 있는 무기들의 허점이 한 눈에 파악이 되서 넘 좋았어요.



책을 펼치자마자 웃음이 터졌는데 작가님이 부디 따뜻하고 너그러운 시선으로 봐달라고 사정사정 하시더라구요. 유감스러운 진기명기가 아닌 "(진.기.)병.기". 도대체 어느 정도의 무기이길래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의아했어요. 어쨌거나 세계 유수의 석학들이 머리를 맞대고 두뇌를 짜내어 만드는 게 병기잖아요. 국가에서 투자도 엄청하구요. 그렇게까지 엉터리일까 싶었는데 네엡! 엉망진창인 무기들이 아주 한가득입니다. 이 책에만도 69가지나 실려있어요.



사격 병기, 이동 병기, 지상 병기, 해상 병기, 항공 병기, 생물 병기까지 총 여섯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실패해서 참 다행인 황당한 무기들을 몇 가지 소개해 볼게요.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헬멧 총이었어요. 말 그대로 헬멧에 총을 설치한건데 발사자의 시야와 총구가 한 표적을 향하기 때문에 조준력이 높아진다는 장점은 있지만 발사자의 목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극복불가의 단점도 함께 가진 무기입니다. 저처럼 사슴 같은 목을 가진 병사라면 (워, 워, 저 저격하심 안되요 ㅋㅋㅋ) 총 한 방 쏘고 목이 부러져 억!! 하고 넘어갈지도 몰라요. 입으로 튜브를 불어 자동 발사하는 구조인데 전쟁 때 아주 숨가쁠 것 같지 않나요?



브루스터 바디 실드는 중세 기사들이 입었던 갑옷 같은 거에요. 소재는 크롬니켈강, 무게는 18kg 정도 됐다는데 실용성도 그닥인데다 중세 플레이트 아머에 비해 미적인 맛도 떨어져요. 전쟁을 폼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바디 실드 쳐다보면 전쟁터에 나가기도 전에 전의가 바닥날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전의 상실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병기도 있긴 해요. 방귀폭탄이라고 이거 미국에서 연구한 건데요. 포기를 모르는 연구자들이 자그마치 1990년대까지 연구를 지속했다고 합니다. 대다나다!



비행기랑 전차는 삽화만 보면 솔직히 엄청 멋져요. 승무원을 포함해 4천명 이상의 운용 인원이 필요했던 열차포도 있었구요. 너무 무거워서 도로까지 박살내는 전차, 기도하는 사마귀처럼 생긴 전차, 오리처럼 생긴 전차, 날개 달린 전차가 있어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너무 거대해 효용성은 떨어질지언정 구시대적 혹은 근미래적 낭만을 자극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 왜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붉은 돼지 내지는 매드맥스 이쪽 계통으로요. 대애충 분위기 파악 되시죠?



러시아 우주선에 탑승한 라이카처럼 병기에 이용됐던 동물들도 꽤 많았는데요. 비둘기를 훈련시켜 미사일 유도장치로 이용하려 한 적도 있었는데 다행히 실험 중지로 40여 바위비둘기가 백수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 드려요. 칠면조 낙하산, 박쥐 폭탄도 있었고 폴란드에는 참전영웅 곰도 있었다고 합니다. 직위가 하사였던 보이텍은 종전 후 동물원에서 편안한 여생을 꾸렸대요. 잠수부 구조활동을 벌였던 군용돌고래와 차세대 드론 잠자리 등 재미난 이야기가 엄청 많은데 모조리 알려드리면 재미가 덜하니까 여기까지 소개할게요.



...아차차!!! 일본 얘기를 제가 빼먹을 뻔 했네요. 한국군 개발 무기는 없는데 일본이 개발한 무기는 여럿 실려있어요. 일본전통지와 곤약풀로 만든 풍선(기구)에 폭탄을 실어 날려보내는 무기가 있었는데요. 9,000발을 띄우면 1,000발 정도가 미국에 도착해서 산불을 일으킨 탓에 살상력은 떨어져도 요주의 무기였다고 해요. 전자레인지 원리로 햇반 데우듯이 적을 익혀버리는 괴력광선 Z, 공격기를 탑재한 채 지구 반대편까지 운행할 수 있었던 이(伊) 400형 잠수함, 어뢰공격에 특화되어 있지만 기관총 한방만 맞아도 쾅쾅 터져버릴 위험을 지녔던 중뢰장함, 망상으로 끝나 천만다행인 50만t 전함까지. 다른 나라 무기들은 남일같이 느껴져 흥미진진한데 일본 제작 무기는 무섭기도 무섭고 자꾸 흰눈으로 보게 되더라구요.


원자로를 탑재한 전차도 있었는데요. 이거 저보고 타라고 하면 적이 누구든 전 그냥 조국을 배신하고 항복할 거에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부디 전쟁 없이 평화로워주세요. 전세계 모두 다요. 우리 병기는 책으로만 만납시다!.




전자레인지 원리랑 같다는 괴력광선Z.


보이시죠? 제목 옆에 일본국기.


쟤네가 패망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다빈치가 그린 설계도대로 만든 무기도 있었습니다.


근데 만들고 보니 함정이 하나;;


전차가 앞으로는 못가고 뒤로만 가더래요 ㅋㅋㅋ



이게 위에서 말한 풍선 폭탄이에요.


우리나라처럼 국토의 70프로가 산인 곳에 이런 무기를 터트렸으면


산천이 불바다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ㅠㅠ



#유감스러운병기도감 #세계병기사연구회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사회과학 #군사전력 #무기 #전쟁사 #황당무기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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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러운 병기 도감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세계 병기사 연구회 지음, 오광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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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황당한 병기 이야기. 완성되지 못할만큼 엉터리 무기여서 다행이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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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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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나를 기억해 주게, 내가 겪은 모든 것을 잊지 말게! (p114)

야생 인간 엔키두, 여신 아루루가 던진 진흙 한움큼에서 태어난 그는 들판의 동물들 품에서 성장했습니다. 한오라기의 실도 걸치지 않은 채 짐승처럼 털이 난 몸으로 그는 자유롭고 또 태평하게 자연을 뛰놀았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 덫 엔키두와 마주친 덫 사냥꾼이 매춘부인 샴하트로 하여금 엔키두를 유혹하게 합니다. 샴하트와 찍짓기를 한 엔키두는 그녀의 조언에 따라 면도를 하고 옷을 입고 우루크의 도시로 입성하게 되요. 야수들과 야생을 누비던 삶을 버리고 남자답게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 노동도 시작합니다. 목동들의 야영지, 양 우리에서 빵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엔키두는 그렇게 문명인이 되어버려요.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만나게 된 것은 어느 백성의 결혼식 때였는데 엔키두는 왕의 초야권에 반기를 듭니다. 어쩌저찌 화해한 두 사람은 우정을 약속하며 형제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었구요.

엔키두는 훔바바를 죽이고 싶은 길가메시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길잡이이자 동료로써 그와 함께 길을 떠납니다. 고대의 숲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는 것은 어려워도 그가 길가메시에게 공포를 주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길가메시였지만 삼나무가 빼곡이 들어찬 훔바바의 숲에서는 공포로 몸이 움츠러들거든요.


암새, 숲비둘기, 멧비둘기, 어미 원숭이와 새끼 원숭이의 꽥꽥 대는 소리가 숲 전체에 메아리치며 길가메시에게로 쏟아집니다. 길가메시는 겁쟁이처럼 팔이 뻣뻣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엔키두의 격려에 용기를 끌어올립니다. 죽음을 잊고 숲으로 진입하는 길가메시의 모습이 궁금한데 텍스트가 너무 많이 훼손됐어요. 끝도 없이 늘어지는 말줄임표에 눈물이..😂😂 중간과정은 생략됐지만 영웅들은 삼나무 숲을 지키는 훔바바를 죽이고 거침없이 숲을 파괴합니다. 훔바바의 일곱 아들 귀뚜라미, 새된 소리, 태풍, 비명, 간교... 폭풍우도 도끼에 잘려나갑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얼마나 거대한 공포였는지 또한 자연을 정복하는 게 얼마나 커다란 업적이었는지를 두 영웅이 보여주고 있어요. 삼나무를 모조리 잘라내며 숲을 황무지로 만든 영웅들은 제일 크고 웅장한 삼나무로 엔릴 신전의 장식문을 만들거든요.

삼나무 숲의 정복이 끝난 후 의관을 정비하는 길가메시. 긴머리를 등 뒤로 늘어뜨리고 왕관을 쓴 그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이쉬타르 여신마저 한눈에 반하고 맙니다. "오라, 길가메시, 내 신랑이 되어라! 내게 그대의 결실을 다오, 오 내게 다오!" 여신의 절절한 청혼에도 길가메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외려 이쉬타르를 모욕하는데요. 이쉬타르의 열 손가락이 넘어가는 연인과 남편들의 말로가 가히 좋지 않았던 탓입니다. 누구는 날개가 부러졌고 누구는 난쟁이가 되었으니 내가 지겨워지면 나는 또 어떻게 되겠냐는 거지요. 이쉬타르는 중상모략 말라며 분개하는데 어찌나 화가났는지 아버지 아누 신 앞에서 땡깡을 피워요. 울고 불고 소리치고, 도무지 신이 벌일 일은 아닌 것 같지만, 귀찮았던 아누 신이 하늘의 황소를 데려가게 합니다. 황소 녀석 보통 잘 싸우는 게 아닌지라 엔키두 얼굴에 침을 뱉고 꼬리 타래로 똥도 뿌리고 그러는데요. 저는 무슨 초딩도 아닌데 이 장면이 넘 웃겨서 읽으면서 조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영웅의 귀환, 이들 앞에는 영광스런 삶이 기다릴 것 같았지만 신들은 두 인간의 과용을 벌하듯 엔키두를 죽이기로 합니다. 엔키두는 야생을 버리고 문명세계로 오게 만든 덫 사냥꾼과 매춘부를 원망하고 저주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죠. 병상에 누운 엔키두는 전투에서 스러져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 운명을 한스러워 하며 영면에 듭니다. 이후 길가메시는 사자 가죽을 걸치고 우타나피쉬티가 발견한 영생의 길을 찾기 위해 방랑을 시작합니다. 전갈인간을 만나고 마슈 산을 오르고 태양 보다 앞서 달린 끝에 죽음의 물을 건너 우타나피쉬티를 만나는데요. 우타나피쉬티는 저 유명한 대홍수의 이야기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배에 실어 목숨을 구했던 일화를 말해줍니다.

순서대로 비둘기, 제비, 까마귀를 꺼내 날려보냈는데 앞서 두 마리는 앉을 곳이 없어 되돌아왔지만 마지막 까마귀에 이르러서는 활개치고 날아다니며 돌아오지 않았다더라 하는 장면에선 성경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엔릴은 대홍수에 모든 인간이 휩쓸려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격분하지만 우타나피쉬티에게 천기를 누설한 에아는 엔릴을 비난하기 바쁩니다. "죄 지은 자에게 그 죄를 물으시오! 과오가 있는 자에게 그 과오를 물으시오!"(p161) 사자와 늑대, 기근과 역병이 사람 수를 줄일 수도 나라를 응징할 수도 있는데 대홍수를 일으킨 건 너무 과했다는겁니다. 반성을 했는지 어쨌는지 엔릴은 우타나피쉬티와 그의 아내를 축복해 영생을 내리는데 길가메시는 그 방법을 쓸 수 없어요.

대신에 여섯 날 이레 밤 동안 자지 않는 숙제를 받았는데 그간의 여정이 너무 힘들었던 탓일까요? 길가메시는 자리에 쭈그려 앉자마자 잠이 들어버리고 영생의 길에서도 영영 멀어지게 됩니다. 고생 끝에 좌절감만 갖게 된 길가메시를 동정해 우타나피쉬티는 그가 불로초를 가져갈 수 있게 해줍니다. 신과 같이 영영 살아 숨쉴 수는 없어도 젊음을 되찾을 순 있겠구나 기뻐하는 길가메시. 과연 그는 우루크 성벽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오래도록 도시를 바라보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 오라, 엔키두, 아비도 몰라보는 물고기 새끼야 어미 젖도 빨지 못한 거북과 자라의 새끼 놈! (p84) : 애비애미 없는 놈이라거나 부모도 못알아보는 놈이라는 욕은 어쩌면 태초부터 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 어느 병사도 너를 위해 허리띠를 푸는 데 더디지 않고 그는 흑요석, 청금석, 금을 네게 주리! 금 귀고리를 그가 네게 주리니! 신들 중 가장 재주 있는 이쉬타르는 네가 안정된 가정과 잔뜩 쌓인 재물을 가진 사내에게 다가가게 하리! 그의 아내는 일곱 자식의 어미이건만 너 때문에 버려지리! (p111) : 아니 이건 아니지!! 죽을 날 받아놓고 샴하트를 저주하던 엔키두가 샤마쉬 덕분에 마음을 고쳐먹고 샴하트를 축복하는데요. 인기 끌고 돈 많이 벌어라 하는 것까진 그러려니 하겠지만 남의 집 멀쩡한 부인네는 왜 건드려요 왜?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 내 친구, 분주한 야생 망아지, 고지대의 당나귀, 야생의 퓨마, 내 친구 엔키두, 분주한 야생 망아지, 고지대의 당나귀, 야생의 퓨마 : 길가메쉬가 엔키두를 부르는 애칭이 넘 귀여워요. 둘이 연애하냐고요. 꽁냥꽁냥. 이런 상상하는 내가 정말 싫지만 길가메시 귀욤😍

🟢 수두룩한 새 떼를, 그득한 물고기 떼를, 풍성한 수확을 그가 주시리 그가 아침에 떡을 비처럼 저녁에 밀을 회오리처럼 내리시리.(p154) : 황금이 아니라 떡과 밀을 내리는 에아 신, 이 한 문장에 벌써 배가 불러요.

🔵 내가 낳았고 이들은 내 사람들이건만! 그런데 이제, 그들이 물고기 떼처럼 바다에 꽉 찼구나!(p157) : 대홍수의 풍경

⚫ 그다지도 생을 갈망했던 자를 보오! 잠이 안개처럼 벌써 그 위로 숨쉬는구려.(p162)

여기까지의 내용이 1부. 심연을 본 사람 : 바빌로니아 길가메시 서사시 표준 판본 이구요. 2부에는 수메르어 길가메시 시들이 나오는데 1부의 바빌로니아 표준판, 아카드어 판과 다른 점이 많아요. 길가메시는 아카의 사절단과 전투를 벌이는데 엔키두는 여기서 길가메시의 부하로 등장합니다. 인기가 많은 버전 A는 "산 자의 산으로 가는 왕"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엔키두가 길가메시의 부하로 나오구요. 후와와(=훔바바)를 죽이는 방법도 달라요. 두 명의 누이와 결혼 동맹을 맺자고 하고 고운 밀가루, 가죽 물병, 큰 샌달, 작은 샌달(발이 네 개? 아님 짝짝이?), 수정 같은 보석을 줄 테니 공포와 광휘를 달라고 요청하는데요. 일곱번이나 광휘를 내어준 후와와는 모든 힘을 잃고 엔키두에게 목이 잘려 죽는답니다. B 버전은 제목이 "만만세"인데 내용도 짧고 인기도 적고 인지도가 덜한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3부에는 바빌로니아 길가메시 서사시의 구버전 파편들이 실려있어요. 길가메시 약간 찐따 같이 우는 때도 있는데 공이랑 방망이를 잃어버렸을 때 "오 내 공! 오 내 방망이! 오 공, 내가 맘껏 갖고 놀지 못했건만! 오 경기, 시합을 다 하지도 못했건만!" 하고 흐느낄 때 동네 바보 보는 느낌이었어요. 영웅에게도 장난감은 참 중요한 거였더라구요. 엔키두가 길가메시 장난감 찾으러 저승을 간다는 게 무척 충격적이고 길가메시가 하지 말라고 한 온갖 짓을 다 저지르는 모습도 웃겼습니다. 엔키두가 저승에서 못돌아오자 길가메시가 엉엉 울며 아버지 신들(한둘이 아님;)을 찾아가 사정하는데 그들이 입 꾹 다물고 대꾸도 안하는 게 무척 현실적(?)이에요. 2부의 길가메시와 엔키두 사이에는 아무 낭만이 안느껴져서 1부 보단 별로였어요. 호칭도 내 야생 망아지, 내 당나귀, 내 퓨마에서 "제가 총애하는 하인, 제 변함없는 동반자, 제게 조언한 이!"로 바뀐단 말입니다. 그 시절에도 사산아들에 대한 동정심이 컸는지 저승의 아기들이 금은으로 된 식탁에서 시럽과 버터기름 속에서 놀더라고 말해서 짠했어요. 3부는 앞서 1, 2부보다 시기상 더 앞선 것인데 내용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대요. 이런 점이 서사시의 특징이라는가봐요.

제가 고전 읽기에 많이 익숙해진건지 길가메시 서사시가 독자 안가리고 유독 재미난 책인건지 구분이 안갑니다. 인류 최초의 신화인만큼 어렵거나 난해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흥미진진 합니다. 운율을 살린 서사시의 번역이 취향의 호불호가 심한 편인데 이번 공경희 역자님의 번역은 편안하게 읽히더라구요. 길가메시 태블릿이 계속해 발굴되고 있는 상황이라 언젠가는 말줄임표 없는 완역본을 읽게 될 수도 있지만 지금은 흰개미가 파먹은 나무마냥 구간구간 공백이 많은 편이라 그 점은 감안하셔야 해요. 기원전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고대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사실에 마냥 황홀하고 황송해서 전 뭐 불완전한 책이고 어쩌고는 아예 생각도 못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삼분의 이는 신이요 삼분의 일은 인간인 아름답고 당당한 천하장사 왕 길가메시. 살아생전의 바람대로 오래오래 살아남아 고대 서사시의 찬란함을 느끼게 하는 그는 정녕코 왕중의 왕, 가장 전능한 왕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 길가메시, 쿨랍의 왕, 칭송이 자자하도다! (p259)

🟣 사람이, 어떤 삶을 살더라도, 상심하지 말지니

탯줄이 끊길 때 정해진 것이 그렇게 온다

죽어야 하는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날이 너를 덮쳤도다

죽어야 하는 인간이 가는 유일한 곳이 너를 덮쳤도다

맞설 수 없는 파고가 너를 덮쳤도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너를 덮쳤도다

맞설 수 없는 전쟁이 너를 덮쳤도다

동정 없는 싸움이 너를 덮쳤도다!

누구일지라도, 인간은..... 저승의 한가운데서 올라오지 못하니

그는 먼길을 오며, 지쳤지만, 평안을 찾았네

+ 메소포타미아 신화 무지 특이해요. 한 때 남부 메소포타미아에는 신들만 살았는데요. 하급신들이 노예처럼 일해서 상급신들을 먹여 살리는 구조였대요. 게중에서 제일 힘들게 일한 신들이 농토에 물을 대기 위해 강과 수로를 파는 신들이었는데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까지 파서 상급 신들을 먹여살렸지만 더는 못해먹겠다고 파업하는 바람에 인간이 만들어지게 됐다는 썰에 벙쪘습니다. 신들의 흙 바구니를 짊어 나르는 인간의 운명이 넘 슬펐어요. 왜 대홍수를 일으켜서 그 많은 인간에게 해코지 했냐던 에아의 비난은 실은 왜 노예들을 죽여서 신들을 쫄쫄 굶게 만들었냐는 뜻이 숨어있는 거였어요. 해제가 엄청 길지만 재밌으니까 빼먹지 말고 꼭 보세요!

+ "2천 년이란 망각의 세월이 지나고 처음으로 이 대목을 읽은 사람이 나네요." 고대의 점토판을 찾아 이를 해석해 처음으로 읽은 연구자이자 독자였을 조지 스미스의 감격과 흥분이 넘나 부러웠습니다. 이런 건 천재들만 가능한 거잖아요. 엄청난 필사물을 남긴 아슈르바니팔 왕의 도서관은 만세만세만만세에요.





동물병원에 다녀온 애견인에 비유되곤 했던 동상이 길가메시였다니 저 무척 놀랐잖아요.

품에 안긴 저건 사자입니다.

헤라클레스 이전에 길가메시가 사자 가죽 패션을 먼저 선보였어요.



글자인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이걸 해독한 조지 스미스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천재인가요?




미모가 무척이나 중요했던 고대의 영웅들.

신의 피가 섞였는데 키가 작거나 몸이 왜소하거나 못생기거나

머리카락이 없으면 이상한거였겠다 싶긴 합니다.


크, 읽기를 잘했어.

고유명사해설 빼면 391 페이지인데 서사시 형태에 말줄임표가 많아서 글밥 양은 페이지에 못미칩니다.

쪽수에 겁먹지 말고 도전해 보시길, 길가메시 서사시 독자님들 화이팅!!

#길가메시서사시 #현대지성클래식 #현대지성 #수메르어필경사

#길가메시 #마블 #이터널스 #신화 #고전 #새로나온책


현대지성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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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니스트 - 모험하는 식물학자들
마르 장송.샤를로트 포브 지음, 박태신 옮김, 정수영 감수 / 가지출판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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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니스트, "모험하는 식물학자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프랑스의 식물학자 마르 장송의 책이에요. 나비 같은 곤충을 폭격기나 되는 듯이 두려워하던 소년이 식물에 매료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기고요. 선대 식물학자들의 여정을 쫓으면서 식물학자로 커가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에세이 겸 교양과학서에요. 이런 장르의 책은 뭐라고 불러야하는지 찾아봤는데 영 모르겠어요, 머쓱(︶^︶)

먹고 움직이고 구슬프게 우는 것들에 도취됐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수의과에 진학해 동물의 병증을 보살피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더라구요. 말의 고환을 제거하는 경험담을 이야기하는데 식물계에 비하면 동물계는 확실히 폭력적이라 진로를 고민하는 마르 장송의 마음이 이해가 갔습니다. 느지막히 식물계에 입문한 마르 장송은 온화한 미치광이들의 세계에 천천히 매료되어 가는데요. 그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진진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핵심이 마르 장송의 성장기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프랑스 파리의 식.물.표.본.관. 책 속의 모든 식물학자들의 여정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이곳의 역사가 이 책의 주인공 같았달까요? 350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린 표본들과 표본에 축적되어 있는 풍부한 식물학자들의 경험과 지식, 표본관에서 만난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때때로 괴팍한 식물학자들의 생활이 이 책의 골자더라구요ヽ(✿゚▽゚)ノ

마르 장송은 도서관을 뒤져 대항해시대부터 시작된 식물학자들의 모험담을 퍼올립니다. 옛 서간문, 과학 논문, 항해일지 등등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여느 모험소설 속 주인공들 이상으로 드라마틱해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식물과 관련해 자신이 알아낸 모든 것을 죽을 듯이 메모한 아당송. 아당송이 만든 표본 밑의 주석이 어찌나 상세했는지 세상에서 구근 하나가 사라진다면 신이나 과학은 아당송의 메모를 보고 그 구근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까지 말할 정도에요. 투른포르는 꽃양배추 모양의 종유석을 가져다 발아시키려고 애썼는데요. 나무 같은 모습 때문에 산호를 식물계로 분류하는 실수도 저질렀습니다. 린네는 꽃이 식물의 생식기라는 걸 밝혀냈어요. 당시에는 순결한 부인의 스캔들만큼 파격적인 정보였는데 꽃에게도 동물의 짝짓기 같은 과정이 있다는 게 정숙하지 않게 느껴졌던가 봐요. 앵카르빌 신부는 첫 알현을 요청한지 10년 만에 건륭제를 만나 미모사를 바쳤는데요. 손을 대면 오므라드는 미모사의 모습에 홀딱 반한 황제의 총애 때문에 앵카르빌 신부는 중국의 산천에서 마음껏 식물을 채집할 수 있었어요. 파리에서 꽃을 피우는 등나무의 보랏빛 향기 속에는 앵카르빌 신부의 이런 감탄할만한 끈기가 숨어 있답니다(^∀^●)ノシ

메뚜기 박사, 기생충 박사, 새 박사, 공룡 박사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느낀 놀라움을 식물학자의 에세이에서도 똑같이 느끼고 있어요. 자연학자이자 과학자인 이들의 근거있는 상상력은 여느 SF 작가, 환상소설가의 뺨을 칠 정도인데 센강이 불어나 식물표본관이 물에 잠기고 표본들 속 씨앗이 축축히 젖어 발아를 시작하고 서랍 속에서 뿅뿅 잎을 틔우고 햇빛을 쫓아 줄기와 가지를 뻗고 식물표본관의 지붕을 날려버리는 공상에 젖노라면 어째서 마르 장송이 판타지 소설을 안쓰고 에세이를 쓰고 있나 의구심까지 생기더라구요. 저널리스트인 샤를로트 포브와 함께 공동저작을 한 탓인지 상황과 감정과 상상이 아주 알맞은 문장을 입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는 점도 좋았습니다. 박사의 가방끈만큼이나 긴 재미, 가방 무게만큼 묵직한 여운을 보장하는 책이구요. 열대와 냉대를 오가는 식물학자들의 여담(=개고생)을 읽다 보면 이불 아래가 더 따뜻하고 쾌적하게 느껴져요. 고생은 식물학자가 낭만은 독자가 가져가는 선순환! (❤´艸`❤)

『보따니스트』 초판본에는 정화백 작가의 《Utopia 》 미니 포스터가 들어있어요.

정글북의 바키라를 떠올리게 하는 흑표범과 앵무새, 큰 이파리의 식물이 가득 차있는 표지가 넘 취향이에요😘

 

 

 

식물학자 레옹 메르퀴랭의 표본입니다.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운 표본을 만든 걸로 유명한 학자인데요.

네이버 검색에는 자료가 뜨지 않아 섭섭하던 차에 삽화를 확인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방금 따온 것 같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과장이 아니었더라구요😍

 

 

프랑스 국립 자연사 박물관 건물이래요.

식물학자들은 식물을 닮아 조용하고 평화롭고 해탈했을 것만 같은데

생각보다 경쟁, 질투, 권력다툼, 음해, 음모, 알력이 심했더라구요.

예쁜데서 근무하는 사람도 사는 거 다 똑같아요 그죠?😂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들라베이 신부가 프랑스로 보내온 식물 표본이에요.

표본이 만들어진 해가... 놀라지 마세요, 1887년!! 입니다.

프랑스의 식물표본관은 이런 표본을 자그마치 800만개 넘게 보유 중이에요.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곳의 식물학자들이 쌓아온 데이터라는데 그저 감탄만😮

 

부들레야. (출처: 위키백과)

다비드 신부가 중국 서쪽에서 체집해 프랑스로 보낸 식물.

엷은 보라색 꽃대에 반한 정원사들이 이곳저곳에 심기 시작했는데 한참 후 후유증이 발견됩니다.

땅이 훼손된 곳에서 부들레야는 "자연이 기진맥진 뒤죽박죽돼 있다고 알리는 보라색 통지서"(p271) 같다고 해요.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 속 식물 모스바나가 떠올랐습니다.

참고로 모스바나는 푸른색 ㅎㅎ

🍀가지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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