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 책 - 추억의 책장을 펼쳐 어린 나와 다시 만나다
곽아람 지음 / 앨리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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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속 그림이 참 예쁘지요? 책을 찢는 강아지의 말썽에도 읽고 있는 책 속에 폭 파묻혀 고개를 들 줄 모르는 소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한 눈에 반했던 책입니다. 표지에 반하고 제목에 반하고 내용에 반해 지금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장에 꽂아두고 틈틈히 꺼내어 펼쳐보는 앨범 같은 문고 "어릴 적 그 책"을 소개하려 합니다.

학원출판사, 계몽사, 금성, 웅진, 지경사, 은광사, 파름문고, 계림문고, 새벗까지. 어린 시절 저와 친구들의 책장을 가득히 채워주었던 이들 출판사의 명칭이 70년대 80년대생들에겐 그다지 낯설지가 않을겁니다. 서점이 아니라 방판 아줌마의 팜플랫으로 책을 구매하던 시기, 단행본은 가뭄에 콩 나듯이 문방구에서 구입할 수 있었고 책들은 오로지 전집으로만 읽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문방구가 아니라 서점에서 처음 책을 구매했던 것도 국민학교 2학년 아니면 4학년 때였으니 읍내 시골에 살던 어린이도 아니고 나름 시 출신(?)인데도 종종 그 시절의 낙후된 환경을 떠올릴 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답니다. 대신에 전집으로 한정된 책들만 볼 수 있었기에 친구, 친척들과 책을 많이 돌려볼 수 있었던 것도 같은데요. 책욕심이 많은 이종사촌 오빠가 절대로 본인 책은 집 밖으로 내돌리지 않았던 탓에 외할머니 댁에 놀러라도 가면 보리똥을 서리하다 근방의 이모집으로 쳐들어가는 것도 일상이었습니다. 계림문고 호옴즈나 뤼팽, 독일 작가 보텐부르크의 꼬마 흡혈귀 시리즈를 접한 것도 모두 오빠의 작은 방에서였죠. 웅진의 위인전기나 계몽사의 그림동화책들에 비하면 그 누룩한 노란 표지의 얇은 책들은 얼마나 어른스럽게 느껴지던지요. 

그렇게나 다정한 추억들인데 지금도 오빠방의 그 콤콤한 냄새와 행거 밑에 깔려있던 무수한 책더미와 엄마의 그릇장에 함께 놓여있던 전집들과 파란통 니베아 크림의 기억이 선명한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그 책들을 잊어버리고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 그 책의 곽아람 작가도 저와 마찬가지로 서른을 넘은 어느 밤이 될 때까진 유년의 책장을 재구성할 생각을 못하셨다 하지요. 서러운 일들에 무뎌지는 나이,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텔레비젼을 틀어놓고 있다가 궁금해진 나의 밑바닥, 내 유년의 씨앗을 문득 고고학자처럼 발굴하고 싶어졌다구요. 텔레비젼을 틀어놓고 있던 어느 밤은 비슷한데 제 경우엔 심심해서 책장을 뒤적이다가 라는 것이 솔직한 심경입니다만 인터넷 카페 중고나라와 헌책방을 찾고 예전 집의 다락방을 뒤집어엎고 웃돈을 얹어 헌책을 매입하는 과정들이 비슷해 많이 웃엇습니다. 작가가 소개하는 뉘른베르크의 난로나 다락방의 꽃들, 슬픈 나막신 같은 책은 보지 못했지만 계몽사 어린이 세계의 명작이나 학원출판사의 책들, 삐삐의 작가가 쓴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그 시절 소녀들의 인기 폭발 도서 폴리애나 시리즈, 발레리나 시리즈 등은 너무나 낯익어 옛친구를 만난 듯이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해적판으로 나와 이제는 절대 복간 될 수 없는 옛전집들의 재발행을 찾아 목록을 작성하기도 했을 정도로 잠깐은 열과 성을 다했는데 웃돈을 너무 세게 부르는 업자와 연락을 주고 받다 잠수타는 판매자에게 질려 제 유년의 고고학(p19)은 씁쓸히 지고 말았습니다. 추억을 돈 주고 살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추억으로만 끝냈어야 했는데 후회했던 책도 없진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 시절 읽었으나 흐릿해진 책들과 여전히 갖고 싶은 책들의 표지, 인상적인 구절과 줄거리를 요약해 함께 실어놓은 이 책이 많은 위안이 됩니다.  프리미엄을 주고라도 중고책을 사들이고픈 욕망이 드글드글 끓을 때 대리만족이 되어주는 책이기도 하니까요. 욕망 덕후에의 길로 나아가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책으로 두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내게는 이 책이 단연 최고였다며 한권쯤 추천을 덧붙이고 싶었는데 문제는 작가님만큼이나 그 시절 제가 좋아했던 책들이 많아 고민만 하다 시간을 다 잡아먹을 지경입니다. 작가님이 추천한 책들 중 여전히 가까이 두고 읽는 책만 빼보았습니다.

 

 

 
"클로디아는 모험을 바라지 않아. 모험을 하기에는 목욕과 편안한 느낌을 너무 좋아하거든. 클로디아에게 필요한 모험은 바로 비밀이야. 비밀은 안전하면서도 한 사람을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비밀이 존재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말이야." // 저와 똑닮은 성격의 클로디아. 모험을 싫어하고 안전함을 추구하지만 특별한 비밀을 가지고 싶어하는 소녀이지요. 곽아람 작가가 소개한 집 나간 아이가 비룡소에서 클로디아의 비밀로 재간행 되었습니다.  


 

 

이윽고 밤이 되자 모든 산과 강과 들판이 캄캄한 어둠에 휩싸였습니다. 나는 요나탄 형을 등에 업고 팔을 내 목에다 두르게 한 채 낭떠러지 끄트머리로 갔습니다. 내 귓가에 들리는 형의 숨결은 아주 고르고 조용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질 못했습니다. 어째서 나는 늘 요나탄 형처럼 용감하질 못한 걸까요?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내 발 아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 발짝만 내딛으면 곧장 어둠 속으로 떨어질 테고 그러면 모든 일이 끝나는 것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지나가 버리겠지요.
"사자왕 스코르판, 무섭지 않니?"
"아니....... , 사실은 무서워. 하지만 해낼 수 있어. 지금, 바로 지금 할 테야. 그러고 나면 다시는 겁나지 않겠지. 다시는 겁나지......"
"아아, 낭길리마! , 보여! 낭길리마의 햇살이 보여!"
//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결말로 학부모님들의 무수한 원성을 샀다는 그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알라딘 특별판으로 나왔을 때 구매하였습니다. 저는 이 결만만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납니다.       

                                                                          

아니 이 책은?!!! 어린 시절 한번도 이 책을 읽는 것에 성공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릴 적 그 책을 보고 구매하였으나 역시나 여전히 읽지 못한 상태인데 매번 읽어야지 하면서 가까이 두고는 있습니다.

 

꼬마 물 요정은 작가님의 추천작에 들어있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책이라 넣었습니다. 학원출판사 전집 중 한 권이었고 비룡소에서 재발간 되었습니다. 달을 따다가 부엌 식탁에 올려놓으면 엄마가 놀라지 않을까 걱정하는 요정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닙니다.  


 

 

역시나 학원출판사 책 중 한 권인 초콜릿공장의 비밀입니다. 100 페이지쯤 등장하는 초콜릿 강과 한 그릇 가득 담긴 초콜릿이 찰리의 허기진 위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면 어른인 지금도 가슴이 꽉 죄이며 울컥합니다.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기쁨으로 떨리기 시작하고, 행복감이 가슴 가득 번져 가는" 이 문구가 왜 이리 좋은지 누가 보면 못먹고 큰 줄 알 지경입니다.

 


 

어릴 적 그 책의 제일 처음을 장식하는 어린이 세계의 명작 일본편입니다. 작가님이 말하는 결말의 군더더기 없는 비장미는 어른인 지금에서야 느끼는 매력이고 어린 시절엔 백설공주의 유리관이나 백조왕자들의 찔레옷 보더 더한 비극을 찾지 못했습니다. 믿을 수 없을만큼 공주, 왕자 얘기에 환장하던 시절이 제게도 있었다는 것이 놀라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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