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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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다. 세상 천지에 이러구 괴랄한 소설은 또 처음 본다. 한 편도 아니고 단편 여덟 편을 모두 약 빨고 썼나 했다. 보도방 뛰는 십대 소년소녀들의 아재 랩  소환 소설 "버니". 본드 빨면 나타나는 햄릿과 동거중인 삼류배우의 진술서 "햄릿 포에버". 망치 보다 더 큰 호치키스로 사람 머리도 내리찍는 피씨방 알바생의 자기 소개서 대필문 "옆에서 본 저 고백은". 살아 움직이는 머리칼로 스님 거시기도 일으켜 세우는 팜므파탈인데 분위기는 전설의 고향인 여자의 "머리칼". 박정희의 눈을 뒷통수에 달고 심수봉 닮은 여자에게 반한 남자의 일대기 "백미러 사나이". 음주 미스터리(가장 평범했다) "간첩이 다녀가셨다", 성경책 형식이라 복음 막장인 줄 알았더니 이것도 사랑과 전쟁이었네? "최순덕 성령충만기". 차라리 숫처녀 생식으로 할 것이지 한국판 미노타우루스도 아니고 검은소와 교배한 순녀와 그녀의 아들 황우석의 씨감자 이야기 "발 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약이 아니면 본드, 본드 아니면 술, 술이 아니면 담배 한 보루를 30분 안에 빨고 (담배를 안펴봐서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제정신 아닌 상태로 의식의 흐름을 쫓으며 글을 쓰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절대 그럴리는 없겠지만 잠깐 의심을 했다. 재미는 있는데 너무 이상해서.

단편들은 하나같이 난해, 심란, 민망, 당혹, 혐오, 불편, 서글픔의 어드매에 있다. 뭘 비판하려는 건지는 알겠는데 싫어하는 분위기로 풀어가는 이야기여서 별로였다. 상상 좀 하고 살라는데 이런 상상은 별로 하고 싶지가 않달까. 근데도 잘 읽힌다. 근데도 재미있고. 괴랄한 내용과는 별개로 문체가 발랄한데다 힘이 세다.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 사차원 같고 중2병스럽다. 이런 걸 평론가들은 문학적 미학이라고 표현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그냥 좀 이상한 단편집이었다. 출판사도 이런 어려움을 알아서인지 수능기출문제풀이집처럼 이기호 소설 "해설"을 단편분량으로 엮어 놓았는데 제일 싫어하는 짓이다. 간단하게 추천사 정도면 몰라도 이 분량이면 그냥 문학평론가 본인이 책 한 권을 따로 써라. 삐딱한 욕망의 카니발이고 나발이고 어려우면 어려운데로 난해하면 난해한대로 독자가 저 알아서 느끼고 해석하게 놔둘 것이지 뭔 고려가요 얄리얄리 얄랴셩 얄랴리 얄라도 아닌데 이 따위 해설을 붙여놓은건지 정말 꼴불견이다. 거기다 해설이 소설보다 더 어렵다!! 90년대 출간작이야 뭐야 하고 심난한 맘으로 찾아봤더니 흠, 오래 됐긴 했구나. 2004년도 작품이었다. 그 때에는 그래, 각종 한국작품들에 (하다 못해 여행기에까지) 문학평론가들의 해설이 붙어있던 시절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수능 독파를 외치는 국어선생님 마냥 중요 문장에 밑줄 쫙쫙 그어가며 a 단편의 d 줄은 이런 뜻이고 d줄은 x 단편의 이 문장과 연결되고 그런 걸 읽다 보면 졸음은 쏟아지고 안그래도 심란하게 읽은 책에 정도 팍 떨어지고 그렇고 그런... 으로 끝날 뻔 했는데 어쩔씨구. 작가는 이러고 괴상망측한 글을 써놓고 이제야 겨우 칼을 씻은 기분이란다. 누가 보면 뭐 대단하게 썰었는 줄, 웃음이 픽 났다. 그냥 그렇다고. 책은 딱 잘라 추천은 못하겠는데 재미는 있고 뭐 그렇다. 아참, 저 문구 하나에 떨어질려던 정은 도로 붙었다. 칼 씻는 게 뭐라고. 이런 게 병맛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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