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니스트 - 모험하는 식물학자들
마르 장송.샤를로트 포브 지음, 박태신 옮김, 정수영 감수 / 도서출판 가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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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니스트, "모험하는 식물학자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프랑스의 식물학자 마르 장송의 책이에요. 나비 같은 곤충을 폭격기나 되는 듯이 두려워하던 소년이 식물에 매료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기고요. 선대 식물학자들의 여정을 쫓으면서 식물학자로 커가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에세이 겸 교양과학서에요. 이런 장르의 책은 뭐라고 불러야하는지 찾아봤는데 영 모르겠어요, 머쓱(︶^︶)

먹고 움직이고 구슬프게 우는 것들에 도취됐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수의과에 진학해 동물의 병증을 보살피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더라구요. 말의 고환을 제거하는 경험담을 이야기하는데 식물계에 비하면 동물계는 확실히 폭력적이라 진로를 고민하는 마르 장송의 마음이 이해가 갔습니다. 느지막히 식물계에 입문한 마르 장송은 온화한 미치광이들의 세계에 천천히 매료되어 가는데요. 그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진진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핵심이 마르 장송의 성장기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프랑스 파리의 식.물.표.본.관. 책 속의 모든 식물학자들의 여정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이곳의 역사가 이 책의 주인공 같았달까요? 350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린 표본들과 표본에 축적되어 있는 풍부한 식물학자들의 경험과 지식, 표본관에서 만난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때때로 괴팍한 식물학자들의 생활이 이 책의 골자더라구요ヽ(✿゚▽゚)ノ

마르 장송은 도서관을 뒤져 대항해시대부터 시작된 식물학자들의 모험담을 퍼올립니다. 옛 서간문, 과학 논문, 항해일지 등등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여느 모험소설 속 주인공들 이상으로 드라마틱해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식물과 관련해 자신이 알아낸 모든 것을 죽을 듯이 메모한 아당송. 아당송이 만든 표본 밑의 주석이 어찌나 상세했는지 세상에서 구근 하나가 사라진다면 신이나 과학은 아당송의 메모를 보고 그 구근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까지 말할 정도에요. 투른포르는 꽃양배추 모양의 종유석을 가져다 발아시키려고 애썼는데요. 나무 같은 모습 때문에 산호를 식물계로 분류하는 실수도 저질렀습니다. 린네는 꽃이 식물의 생식기라는 걸 밝혀냈어요. 당시에는 순결한 부인의 스캔들만큼 파격적인 정보였는데 꽃에게도 동물의 짝짓기 같은 과정이 있다는 게 정숙하지 않게 느껴졌던가 봐요. 앵카르빌 신부는 첫 알현을 요청한지 10년 만에 건륭제를 만나 미모사를 바쳤는데요. 손을 대면 오므라드는 미모사의 모습에 홀딱 반한 황제의 총애 때문에 앵카르빌 신부는 중국의 산천에서 마음껏 식물을 채집할 수 있었어요. 파리에서 꽃을 피우는 등나무의 보랏빛 향기 속에는 앵카르빌 신부의 이런 감탄할만한 끈기가 숨어 있답니다(^∀^●)ノシ

메뚜기 박사, 기생충 박사, 새 박사, 공룡 박사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느낀 놀라움을 식물학자의 에세이에서도 똑같이 느끼고 있어요. 자연학자이자 과학자인 이들의 근거있는 상상력은 여느 SF 작가, 환상소설가의 뺨을 칠 정도인데 센강이 불어나 식물표본관이 물에 잠기고 표본들 속 씨앗이 축축히 젖어 발아를 시작하고 서랍 속에서 뿅뿅 잎을 틔우고 햇빛을 쫓아 줄기와 가지를 뻗고 식물표본관의 지붕을 날려버리는 공상에 젖노라면 어째서 마르 장송이 판타지 소설을 안쓰고 에세이를 쓰고 있나 의구심까지 생기더라구요. 저널리스트인 샤를로트 포브와 함께 공동저작을 한 탓인지 상황과 감정과 상상이 아주 알맞은 문장을 입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는 점도 좋았습니다. 박사의 가방끈만큼이나 긴 재미, 가방 무게만큼 묵직한 여운을 보장하는 책이구요. 열대와 냉대를 오가는 식물학자들의 여담(=개고생)을 읽다 보면 이불 아래가 더 따뜻하고 쾌적하게 느껴져요. 고생은 식물학자가 낭만은 독자가 가져가는 선순환! (❤´艸`❤)

『보따니스트』 초판본에는 정화백 작가의 《Utopia 》 미니 포스터가 들어있어요.

정글북의 바키라를 떠올리게 하는 흑표범과 앵무새, 큰 이파리의 식물이 가득 차있는 표지가 넘 취향이에요😘

 

 

 

식물학자 레옹 메르퀴랭의 표본입니다.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운 표본을 만든 걸로 유명한 학자인데요.

네이버 검색에는 자료가 뜨지 않아 섭섭하던 차에 삽화를 확인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방금 따온 것 같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과장이 아니었더라구요😍

 

 

프랑스 국립 자연사 박물관 건물이래요.

식물학자들은 식물을 닮아 조용하고 평화롭고 해탈했을 것만 같은데

생각보다 경쟁, 질투, 권력다툼, 음해, 음모, 알력이 심했더라구요.

예쁜데서 근무하는 사람도 사는 거 다 똑같아요 그죠?😂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들라베이 신부가 프랑스로 보내온 식물 표본이에요.

표본이 만들어진 해가... 놀라지 마세요, 1887년!! 입니다.

프랑스의 식물표본관은 이런 표본을 자그마치 800만개 넘게 보유 중이에요.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곳의 식물학자들이 쌓아온 데이터라는데 그저 감탄만😮

 

부들레야. (출처: 위키백과)

다비드 신부가 중국 서쪽에서 체집해 프랑스로 보낸 식물.

엷은 보라색 꽃대에 반한 정원사들이 이곳저곳에 심기 시작했는데 한참 후 후유증이 발견됩니다.

땅이 훼손된 곳에서 부들레야는 "자연이 기진맥진 뒤죽박죽돼 있다고 알리는 보라색 통지서"(p271) 같다고 해요.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 속 식물 모스바나가 떠올랐습니다.

참고로 모스바나는 푸른색 ㅎㅎ

🍀가지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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