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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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지원 도서입니다

서른에 뜻을 세웠다는 공자와도 같이 서른이 된 차라투스트라도 고독을 찾아 산으로 은거합니다. 십 년의 수행 후 자신의 지혜에도 실증이 난 그는 뜻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누기 위해 하산하기로 해요. 한 방랑자가 그런 차라투스트라를 붙들어 설득합니다. "인간들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말게.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한 존재이며 인간에 대한 사랑은 우리를 죽이고 말걸세." 결심은 집어치우고 숲속에 머물며 신을 찬양하라는 성자의 말에 차라투스트라는 깜짝 놀라 되려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이 늙은 성자는 숲속에 살아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구나!'(p18) 하고 말이죠.

처음으로 발 디딘 곳은 어느 도시의 시장이었습니다. 줄타기 광대의 공연을 보려는 구름 같은 관중들 속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말합니다.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려 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대들은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p19) 차라투스트라의 긴 연설을 군중들 모두가 비웃습니다. 차라투스트라가 이야기하는 인간의 길, 죽은 신, 행복과 이성, 덕과 정의, 동정심, 무엇보다 초인의 의미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차라리 줄타기 광대가 얼른 나와 재주 부리기만 바랄 뿐이죠. 차라투스트라는 슬퍼하고 광대는 밧줄 위를 잰걸음으로 가로지릅니다. 그런 광대의 뒤를 한 어릿광대가 뒤따릅니다. "빨리 가! 이 절름발이야!" 바싹 다가선 어릿광대에 놀란 광대가 떨어져 죽자 차라투스트라는 차게굳은 길동무를 짊어지고 길을 떠납니다. 어둡고 쓸쓸한 차라투스트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만 같이요.

이후로 거듭되는 방랑.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짐승들 사이에 있는 것보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차라투스트라는 고독한 동굴 또는 소란스러운 인간세계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하지 못해요. 세계를 부유하는 차라투스트라의 뒤를 그의 잠언으로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이 뒤따릅니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산에서, 들에서, 항구에서, 바다 위에서, 작은 선박 한 켠에서까지 차라투스트라에게 배움을 청하는 이들이 나타나지요. 그를 비웃던 자들이 이제는 차라투스트라만한 이가 없다고 감탄하네요. 차라투스트라는 거듭 말합니다. 세계를, 몸을 경멸하는 자들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을, 죽음을, 전쟁과 전사들을, 우상과 순결과 이웃 사랑과 젊고 늙은 여자를. 하다 못해 아이와 결혼에 관해서까지도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 매 편이 끝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정말로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되고 전개되고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와 왕들과, 정신의 양심을 지닌 자와 늙은 마술사와 교황과 자발적으로 거지가 된 자와 그림자, 나귀와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끝이 납니다. 아침 태양처럼 이글이글 불타는 마음으로 동굴을 떠나는 그는 정말이지 후련해 보이는데 독자인 저는 그가 남긴 동굴 앞에서 어쩌면 좋은가 하고 망설이고 있어요. 그를 따라 하산할 때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의 동굴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꿀을 핥으며 그가 남긴 말들을 되새기고 일깨우고 비판하고 따져 물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모든 말들이 수수께기인 것만 같아요. 제가 잘 이해한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차라투스트라가 너무나 많은 말을 했는데 그 중 하나도 다 알지 못하는 것만 같아 읽는 내내 속도 많이 상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내 집에 머물러 있는 한 그 누구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p491)고 말하거든요. 그러니 완독이지만 실은 완독이 아니라며 계속해 그의 동굴에 머물러 있으면 어떨가 싶어요. 또 말하기를 "용기를 내라,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얼마나 많은 일이 아직도 가능한가! 그대들이 실패했고 절반만 성공했다 하더라도 무엇이 이상한가!"(p514) 라고 하니 쪽수를 해치웠다는 외에는 의미를 갖지 못한 이번 독서에도 지나치게 실망은 하지 않을래요. 게으름뱅이 독자는 밉다는 차라투스트라. 무엇이든 곧이 듣지 말라구요. 쉬이 설득 당하지도 말라구요. 차라투스트라가 전하는 탁월한 이야기들, 그 한 마디 한 문장 모두 의구심을 가지며 용감하게 또 해석에 개의치 않고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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