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화훼영모화
장지성 지음 / 안그라픽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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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훼영묘화는 동물과 식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아우르는 통칭입니다. 한국의 화훼영모화에는 꽃, 새, 곤충, 풀, 동물에 대한 고대 예술의 흔적부터 시작해 삼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 현대에 이르는 기록들이 담겨있는대요. 우리의 옛 정취를 감상하는 재미를 느끼려고 선택한 책인데 이거이거 읽는 재미도 못지 않게 쏠쏠한 책이었어요.

 

선덕여왕의 모란도 얘기 다들 아시죠? 당 태종이 진평왕 때 모란도와 꽃씨를 보냈는데 공주 덕만이 그림을 보고 이 꽃에는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겠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꽃씨를 심어 꽃을 피우고 보니 아무 향도 없어서 덕만 공주의 총명함을 칭송하게 되더라는 고사인데요. 놀라운 사실은 미술사학자들은 이 일화에서 덕만공주의 명민함에 집중하지 않고 모란도의 존재에 환호한다는 거에요. 중국의 화훼영모화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사실을 최초로 언급한 기록이라나요? 어느 위치에서 연구하느냐에 따라 같은 기록도 다르게 읽힌다는 사실이 시작부터 흥미를 더했습니다.

 

사임당 신씨편을 읽으면서는 새로운 단어들도 습득했어요. 아들잡이: 아들이 없는 집에서 딸이 아들 노릇을 하는 풍습을 이르는대요. 재능도 출중했지만 결혼 후에도 친정의 아들잡이로 강릉에 머물렀던 배경이 사임당의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구요. 또 사임당 작품에는 전칭작과 위작이 많은데요. 위작은 다들 아실테고 전칭작은 그 사람이 그렸으리라 추측은 하지만 실제로는 진위 여부를 가리기 힘든 작품을 이르구요. 전작은 화가 본인이 그린 게 확실한 작품을 말하는가 봐요. 사임당의 그림들은 조선 초기와 중기의 화풍이 섞여 분석이 어렵고 사임당의 작품이라 하면 가치가 높아지다보니 출처가 불명확한 그림도 사임당의 것으로 둔갑시킨 경우가 많아 학자들이 골머리를 썩는다고 합니다. 이 책에도 많은 작품이 실려있었는데 대다수 그림에 가로 열고 전이라고 쓰여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대부분의 작품이 전칭작이고 어느 것도 확실하게 전작이라고 말할 수 없다하니 두 번 세 번 놀라며 읽게 됐어요.

 

아차. 신사임당에 앞서 등장한 화가 이암 얘기를 먼저 했어야 했는데 깜빡했습니다. 이 책의 표지도 그렇고 종종 강아지들이 등장하는 조선의 그림들을 볼 때가 있잖아요. 그 그림들 중에서 강아지들 세 마리가 등장하는 작품이 보이면 무릎을 치며 아는 척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이건 틀림없이 이암 선생의 작품이겠구나! 큰소리로 외쳐도 망신 당할 일은 별로 없지 싶습니다. 이암의 개 그림에는 필수적으로 강아지 세 마리가 놀고 있고요. 그 밖으로 나무나 새, 어미 개 등이 분포해 있다고 해요. 강아지를 그린 작품들이 많지 않고 더하여 꼬박꼬박 세 마리 강아지를 그린 작품은 더 드무니까 이암의 작품은 앞으로 못알아 보기가 힘들 것 같아요. 실제로도 애견인으로 강아지를 키우지 않으셨을까 추측하며 이암 편은 귀엽게 마무으리~

 

작품을 보는 재미는 조선 후기로 넘어갈수로 커지는데요. 그림을 뜻을 전하는 도구처럼 여기던 세태가 변화하며 순수한 감동, 교감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화훼영묘화에도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군자 그림 싫었는데 으음 넘 가르치려 해서 그런거였구나 싶었습니다. 신영복의 화훼영모화는 예상 밖으로 아무 느낌도 없... 죄송합니다. 김홍도의 고양이 그림은 언제나처럼 좋았구요. 첫만남에도 마음에 쏙 든 작품은 변상벽의 죽수쌍작 참새 그림이었습니다. 새가 진짜 나무인 줄 알고 앉으려고 했다는 일화의 그림을 보고는 그 시절 새들은 눈이 좀 삐었나 싶었는데 여기 참새들은 진짜 참새들이 친구야 하고 날아왔겠다 싶을만치 생생하더라구요. 치열한 관찰이 바탕이 된 윤두서의 말 그림도 좋았구요.

 

그릇에 담긴 채소랑 과일 같은 먹을 것에 관한 그림을 소과도라고 하는데 많이 없다 정도가 아니라 실려있는 작품이 단 두 점 뿐입니다. 그것도 조선 후기 윤두서의 소과도 두 점. 조선 초기나 그 이전 시대 그림들은 없냐구요? 예, 없습니다. 조선 초기 강희안 등이 소과도를 그렸다는 기록은 있는데 후대까지 전해진 작품이 전무하답니다. 고려시대까지는 좀체 남아있는 화훼영모화가 없어서 도자기에 새겨진 것을 따로 떼어 채색한 그림을 실어놨을 정도구요. 이 그림들로 그 시절 화훼영묘화는 어떠했을거라고 추측하는게 흥미롭기도 했지만 실제 그림으로 봤으면 더 좋았을 거에요. 비교 대상으로 올라온 중국 화가의 작품이 취향이었던 경우도 있는데 이를테면 강세황 작품 같은 거요. 색감이나 꽃잎 모양이 더 화려하고 섬세해서 저절로 눈이 가더라구요. 그래도 우리 것은 소중하니까 애정을 가지고 감상하려고 노력했어요.

 

너무 서양 그림책들만 봐온 것 같아 한국의 화훼영모화를 선택해 읽었는데 생각보다 재미나서 엄청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혹 책 가격이 비싸서 부담스러우시다면 (38,000원!!) 도서관 희망도서로라도 꼬옥 신청해서 만나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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