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은 내 이름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하워드 제이컵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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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엄청나게 혐오하면서도 나를 찾아왔어. 호의를 우아하게 요청하는 겸손함도 없이 호의를 구걸했다. 그러니 이건 말이야. 그가 아니라 내가 애원하는 사람이고 또 그걸 감사하게 여겨야 하는 판이었어. 그런 상황이었으니 나도 그자의 방식대로 대꾸해 주자, 라는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더군. 그자의 모든 공포를 체화하고, 모든 과장된 소문을 정당화시켜 주고, 모든 불합리한 미신들을 확인해 주는 그런 방식으로 말이야. 그가 비유와 소문으로 말한다면 나 또한 비유와 소원으로 말해 주겠다 이거야."(p226)

그 남자 샤일록과 또다른 남자 스트룰로비치는 무덤에서 만난다. 서로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두 유대인은 서로에게 친근과 반감을 동시에 품은 채 함께 스트롤로비치의 집으로 간다. 샤일록에게는 아내와 딸이 있다. 아니, 있었다. 아내는 일찍이 신의 품으로 돌아갔다. 딸 제시카는 비유대인 남자와 눈이 맞아 달아났다. 엄마의 유품까지 훔쳐서. 그 유품을 원숭이와 바꾸기까지 하면서. 딸은 사랑에 빠져 아버지와의 의리를, 어머니의 증거를 버렸다. 사랑 이외에 물론 무언가가 더 있었을 수도 있다. 고리대금업자, 아내 사망 후 우울증에 빠진 남편, 무관심하면서도 강압적인 아버지, 샤일록에겐 여러 얼굴이 있었다. 무엇보다 모욕을 당할까봐 미리 모욕을 가하거나 모욕을 참지 않고 배로 돌려주는 유서 깊은 민족성이 제시카의 심경을 건드렸으리라. 그녀는 유대계 남자를 원치 않았다.

스트룰로비치에게도 아내와 딸이 있다. 아내는 중풍으로 쓰러졌다. 딸 비어트리스는 사랑에 빠졌다. 이 어린 여자아이는 이른 육체적 성숙으로 13세부터 일상적으로 남자를 만나거나 사랑에 빠져왔다. 이번의 남자는 그녀 나이 두 배에, 이혼한 전적이 있고, 경기장에서 나치 경례를 한 탓에 출장 정지를 먹은 축구 선수다. 당연히 유대인이 아니며 당연히 스트룰로비치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스트룰로비치는 비어트리스와의 관계를 인정받고 싶다면 할례를 하라고 그래턴을 종용한다. 할례할 생각이 없는 그래턴은 비어트리스와 함께 베네치아로 달아난다. 스트룰로비치는 그래턴이 15세의 비어트리스와 동침한 증거를 찾아내어 이들을 도피시킨 당통과 플루러벨을 찾아간다. 당통은 유대인 취향의 축구 선수에게로 자신의 학생 비어트리스를 데려간 인물이다. 플루러벨은 비어트리스의 나이를 뻔히 알면서도 그녀의 집에서 그들이 동침하는 일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전과가 있다. 스트룰로비치가 그래턴을 고발한다면 지역 사회의 유력인사인 당통과 플루러벨의 위치까지 흔들릴 것이다. 그들은 스트룰로비치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한가지 제안을 한다. 2주! 비어트리스와 그래턴이 그 안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당통이 책임지고 할례를 받겠다는 약속장이 등장한다. 2주 후 스트룰로비치는 샤일록을 대동하고 플루러벨의 집으로 향한다. 비어트리스와 그래턴은 친구와의 우정을 위해 영국행 비행기에 올라탔을까? 당통과 플루러벨은 어떤 음모를 계획하며 이 말도 안되는 할례 의식에 참여할 것을 맹세한걸까? 아버지와 딸은 화해라곤 없이 파탄난 각자의 이정표로 등을 돌릴까? 이들의 삶에 이정표가 있기는 할까? 초조한 마음에 결말로 성큼 나아가고 싶은 소설 "샤일록은 내 이름"이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기반으로 하워드 제이컵슨이 새롭게 창작한 소설이다. 유대계 영국인이라서 그런지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유대인과 관련한 얘기를 정말 많이 한다. 좋은 내용은 거의 없고 귀 따갑게 읊어대는 내용들이 대부분 신랄한데 그 신랄함이 이 책의 줄거리 이상가는 재미로 살아있다. 그리고 베니스의 상인으로 읽을 때와는 샤일록에 대한 느낌이 많이 다르다. 초등 고학년 용으로 각색된 베니스의 상인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샤일록이 대단히 나쁜 놈으로만 느껴졌는데 이 책의 샤일록은 좀 많이 슬프다. 별로 밉지도 않고.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를 끝낸 후에는 꼭 원작들도 찾아보리라. 책을 덮으며 새삼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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