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보는 그리스신화 - 오늘, 우리를 위한 그리스신화의 재해석
박홍순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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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시시포스 ㅡ 쳇바퀴 인생의 희망은 어디서 오나요?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여 장수를 누렸던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 무거운 바위를 꾸역꾸역 밀어올려 산 꼭대기에 놓으면 무정한 바위는 또르르 산 아래로 떨어지고 형벌은 뼈가 삭아 녹아내리도록 계속된다. 노동이라는 신이 내린 형벌에 족쇄를 채인 건 다문 그리스신화의 시시포스 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노동자들은 매일 같은 일에 종사하는데, 그 운명도 역시 부조리다. 그러나 그들이 의식적이 되는 드문 순간에만 비극적이다. 신들의 노동자인 무력하고도 반항적인 시시포스는 비참한 조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p30) 카뮈의 글을 읽으며 이제는 비극이 비극인 줄을 너무도 잘 아는 현대인들을 생각한다. 현대사회의 노동윤리에 갇힌 시시포스들은 노동에 절망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소비를 위해, 생을 다람쥐 쳇바퀴 같은 노동에 허비한다. 노동으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다고들 말하지만 그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일 뿐 대부분은 노동으로 자존감을 잃는 것 같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되려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신적, 육체적 노동에 얽매이지 않고도 생을 일정수준으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ㅠㅠ 저승을 거부한 시시포스의 꾀가 부럽다. 하데스와 제우스를 따돌릴 완벽할 방법을 시시포스가 찾아냈다면. 그리하여 우리에게 비극을 벗어날 지혜를 남겨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시포스의 신화를 달리 읽는 계기가 됐다.



2. 가이아와 크로노스 ㅡ 지배 질서가 아니면 무질서이고 악인가요?

단군신화를 재미난 옛날 얘기인 줄만 알았다가 곰을 숭배한 토착세력이 호랑이를 숭배한 이주민 집단을 이겼다는 사실을 비유한 것이라는 걸 알고 놀란 기억이 난다. 단군신화와 같이 티탄 거인들과 그리스 신들의 10년 싸움에도 숨은 비유가 있었다. 번개와 화염, 삼지창, 헤파이스토스의 발갛게 단 쇳덩이, 철로 만든 창과 칼, 화살촉과 투구 등을 등장시켰던 제우스의 일족은 청동기와 철기를 상징한다.반면에 티탄족들이 사용한 것은 몽둥이와 거대한 바위 등 원시적인 공동체의 일상적인 무기였다. 그들의 저항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보잘 것 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원천적인 이유가 존재했달까. 그리스라는 고대 국가의 새로운 권력에 반대하며 봉기를 일으켰을 부족 중심의 공동체 사회의 역사적인 시도가 신화 곳곳에 묻어난다는 사실을 여태껏 눈치 채지 못한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국가 질서가 만들어지면서 혼란과 악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거나 폭력이 일성적이고 구조화된다는 해석, 국가 질서로 인해 악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작가의 해석도 흥미로웠다.



3. 제우스와 헤라 ㅡ 누가, 어떻게 여성을 지배해 왔나요?


바람둥이 제우스, 질투하는 헤라. 헤라의 눈치를 보면서 끊임없이 여자를 만나는 지상 최고의 신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눈치에 진심으로 헤라를 두려워하는 마음 따윈 1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된다. 남편을 잡지 않고 여자와 그 여자의 아이들만을 두들겨 팼던 헤라를 비천하게 보았던 때도 있다. 깊이 생각해보면 헤라에게는 제우스를 벌할 힘이 없었다는 것을, 헤라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의 영역이 제우스의 발 아래에 있었을 뿐이라는 걸 또한 알게 된다. 제우스의 사랑이란 것은 대게가 첫눈에 반한 아름다운 여성을 강제로 범하거나 납치하는 범죄였는데 여성들의 삶이 불행해지는 것과 달리 제우스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남성의 공격적 성 충동과 행위를 자연스럽고, 나아가서는 긍정적인 작용으로 이해하는 경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사고방식"(p282)이라고 하는데 부끄럽게도 나는 그 가부정적인 사고방식을 아무런 비판없이 "재미있다"는 가벼운 느낌으로 받아들였구나 싶어 참담했다. 헤라에게 가해지는 제우스의 신체적 폭력을 예상케 하는 문장들을 읽으면서도 기분이 울적했다. 이와 같은 문장을 읽은 것이 정말로 처음이었을까? 어쩌면 눈으로 읽으면서도 어마무시한 폭력임을 깨닫지 못하고 통쾌하다고까지 생각하며 넘기지는 않았을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다음 문장들을 보자. 제우스가 헤라에게, 헤파이스토스가 헤라에게, 다시 제우스가 헤라에게 던지는 말이다. "가만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내가 그대를 향해 이 무적의 팔을 휘두르는 날에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다 덤벼들어도 그대를 돕지 못할 것이오" / "아버지께서 우리를 자리에서 내던지려 하신다면 어쩌시렵니까? 어머니가 내 면전에서 얻어맞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는 아무리 마음이 괴로워도 어머니를 도와드리지 못합니다. 아버지에게는 대항하기 어려우니까요" / "이제는 나도 모르겠소. 채찍으로 실컷 얻어맞더라도 말이오. 그대의 발에 큰 돌을 매달고 손에는 아무도 못끊을 황금 사슬을 채워 높은 하늘과 구름 사이에 매달았던 일을 벌써 잊었단 말이오." 신이면서 남편에게 두들겨 맞는 아내라는 위치. 그리스 신화 속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여신의 위상이 이 정도다. 나머지 여신들의 위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고작해야 목동에게서 미모를 테스트 받는 세 여신들이라니. 아름다움을 선택한 왕자에게 주어진 것이 또한 결혼하여 남편이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며 어찌보면 피해자인 그 여성이 시대를 넘어 회자되는 악녀가 되었다는 것이 우습다. 외모와 성적인 상징에 의존하는 수동적 존재로 여신을 소비하는 신화의 덫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리스 신화를 여과 없이 교훈이나 진리의 기준으로 삼으려 하지 말 것, 신화 속 당대의 역사적 사실을 알아채는 눈을 키울 것. 인문학으로 보는 그리스신화를 읽으며 작가에게 받은 두 가지 숙제를 무겁게 마음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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