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우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3
김인숙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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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의 엄마는 구멍가게를 했다. 근방의 낚시터를 오며가는 낚시꾼들 말고는 손님이 없는 작고 구질구질한 가게였다. 점방에 붙어있는 방에서 미라는 엄마와 함께 살았다. 그런 엄마에게 생긴 애인, 숫기없고 수줍은 아저씨를 미라는 천문대라 불렀다. 결혼식을 한달도 채 남겨 놓지 않은 때에 천문대가 그가 일하는 천문대로 모녀를 초대했다. 미라의 마음이 벚꽃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야말로 만개한 봄 같은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 미라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교통사고였다. 천문대의 운전은 미숙했고 천문대로 올라가는 길을 낭떠러지처럼 가팔랐다. 미라는 하나뿐인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됐다.

성인이 된 미라. 한 때의 엄마와 천문대처럼 사랑에 빠졌다. 엄마의 사랑처럼 미라의 사랑도 소박했다. 잘난 남자, 잘생긴 남자, 부자에, 능력이 많은... 그런 남자를 미라는 한번도 꿈꾼 적이 없었다. 소박하고 사치를 모르고 특별한 순간 특별한 행동을 하는 것조차 멋쩍어 하는 그런 남자가 미라는 딱이라고 생각했다. 폭풍처럼 쏟아붓는 사랑도 고백도 없었지만 미라는 민혁을 사랑했다. 29살, 결혼의 꿈이 만개한 밤에 그러나 민혁이 던진 것은 프로포즈가 아닌 고해였다. "나쁜 일이 있었어.", "그걸 털어놓지 않고는 너한테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 하나가 죽었어..."

나쁜 새끼. 정말 나쁜 새끼. 아무 죄 없는 여자를, 제 자식 가진 여자를, 머나먼 과거의 공범으로 만든 정말정말 나쁜 새끼. 그리고 그 나쁜 새끼의 과거를 찢고 나와 미라의 주변을 맴도는 또다른 나쁜 새끼들. 미라 과거의 또다른 나쁜 새끼들. 때려 죽여 마땅한 새끼들. 그러다 진짜 맞아 죽는 새끼들.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소름이 끼쳐야 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슬프기만 한지 모르겠다.

난분분, 벚꽃 지는 계절에 시작해 다시 난분분, 벚꽂이 다 지도록 계속되는 미라의 이야기 <벚꽃의 우주>. 꽂히는대로 순서 없이 모으고 순서 없이 읽는 중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에서 손에 꼽게 마음에 드는 소설이었다. 살의를 꽃 피우고 살의를 열매 맺고 살의로 져버린 늙은 벚나무 같은 미라와 연인의 죽음 이후 비어버린 집에 피고 지는 꽃을 쉼없이 심고 가꾼 천문대를 생각한다. 살의를 꽃피운 연인의 딸조차 지키고 보호하려 한 어리석은 사내와 남편보다 더한 믿음으로 그 사내를 믿고 뒤를 맡긴 미라의 마음을 생각한다. 미라의 엄마가 이 두 번째 사내로 하여금 행복을 찾았던 것처럼 미라에게도 두 번째 삶이, 두 번째 사랑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모든 것을 끝내버린 미라를 생각하면 한없이 아깝고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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