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보는 남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
김경욱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검색한다. 에드워드 호퍼풍으로 마주 앉은 남녀의 모습이 궁금해서. 남편을 잃은 여자와 그 남편의 얼굴로 안면인식수술을 받은 남자의 대면을 그림처럼 떠올리고 싶어서. 서로에게 건내어야 할 진실이 무엇일지 막연히 짐작하면서. 내가 생각한 건 기껏 같은 얼굴을 사랑하게 된 여자의 혼란과 그 사실을 몰랐던 남자의 분노 정도였는데. 독자를 따돌리고 멀찍이 달아난 여자와 남자는 짐작과 조금 비슷하지만 실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남편의 첫 기일, 여자는 공원 묘지를 다녀왔다. 남편의 무덤 자리에 심어져있던 제라늄 생화. 의미를 알게 된 건 꽤 시간이 지나서였다. "당신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내 생각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말아줘요" 가족은 아니다, 여자 본인도 아니다, 그럼 이 꽃을 남편의 무덤에 심은 이는 누구일까? 상투적이다, 남편은 바람을 폈고, 아내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묘지에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그 남자를 보았다. 남편과 쌍둥이처럼 닮은 얼굴을. 첫 눈에 알아본 내 남편의 얼굴로 수술한 남자. 수술 동의서에 사인한 것은 여자였다. 막연함의 실체를 눈 앞에서 직면한 혼란이 아니었더라도 그 얼굴은 죽음을 극복한 기적처럼 착각되지 않았을까. 스토커처럼 남자가 일하는 미용실까지 쫓아간 여자의 행위를 변명해본다. 미용사인 남자의 손에 긴 머리를 짧게 치고 한 개, 두 개 , 열 개 동그라미 쿠폰을 채워나갈만큼의 만남을 가지는 동안 여자는 점점 남편의 죽음이 궁금해진다. 더하여 남자의 얼굴도 궁금해진다. 왜 하필이면 내 남편이었을까? 왜 하필이면 내 남편의 얼굴이었을까? 여자가 알고자 하는 답은 누구에게 있을까? 남자가 알려줘야 할 진실 앞에서 창문을 넘어다보는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핀 시리즈가 취향이 아니라 그만 읽으려구요.. 라고 댓글 달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오늘 만난 핀 시리즈가 또 취향이라 내가 한 말 번복한다. 취향인 것 같아 남은 시리즈 마저 읽으려구요.. 라고. 사랑이 여지없이 실패하는 이야기다. 실패를 알고도 남녀가 나란히 앉았던 시간, 마주앉는 시간을 말하는 이야기다. 처음엔 정체불명이었지만 나중엔 계속해 정체불명으로 헤매고 싶었던 이야기기도 하고.

덧. 이건 나만의 반전인데 김경욱 작가의 성별을 착각했다. 이름과는 상관없이 글이 주는 느낌이 섬세하고 가느다랗고 조심스러워서. 웃을 때는 입을 가리고 걸을 때는 구둣발 신은 태 하나 내지 않게 얌전하고 자판을 두드려도 톡, 톡톡, 한 글자 한 글자가 조심스럽게 모니터 위에 떠올를 것 같았는데. 해골 머리에 꽃이 핀대도 이보다 덜 놀랠 것 같아. 아이쿠 ㅋㅋ (신인 작가도 아닌데 김경욱을 몰랐다고? 너 책 좀 읽는 거 맞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쓰신 책이 많던데 어쩜 한 권도 읽은 게 없을까ㅠ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