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 젊은 괴짜 곤충학자의 유쾌한 자력갱생 인생 구출 대작전
마에노 울드 고타로 지음, 김소연 옮김 / 해나무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1. 일본에서, 메뚜기도 한철이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 곤충학자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읽은 과학잡지 속 기사의 영향으로 메뚜기에게 뜯어먹히고 싶다는 꿈도 꾼다. 마에노 울드 고타로, 32살의 돈도 없고 직장도 없는 비정규직 메뚜기 박사의 이야기다. 일본에도 한국에도 파브르 곤충기를 읽는 어린이가 많다. 그야 위인전기 시리즈에 꼭 빠지지 않는 한 명이니까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또다른 파브르를 꿈꾸는 친구들도 적지 않을텐데 정작 대학에 진학해 학부 4년, 석사 2년, 박사 3년을 거쳐 진짜 곤충박사가 된 고타로 같은 친구는 몇이나 될까? 그것도 도시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도 않는 메뚜기를 연구 대상으로 선택한 학생이 말이다. 농경국가도 아닌 일본이니 사회적 인식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텐데 "엄마, 나 대학가서 메뚜기 박사 될래!" 했을 때의 부모님 표정이 궁금해진다. 이 책이 소설이었다면 "고타로는 꿈꾸던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되어 막장을 덮었을테지만 알다시피 메뚜기는 한철이라 오래오래 행복하기가 현실에서는 영 쉽지 않다. 거기다 장르도 소설과는 거리가 먼 과학도서니까! 오히려 박사를 따고 난 후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말로만 듣던 고학력 무직자가 된 것이다. 고타로는 앞날이 캄캄하다.


2. 모리타니에서,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젊은 연구자를 지원하는 일본 학술진흥회 해외특별연구원에 선발된 고타로는 아프리카 드림을 꿈꾸며 가방을 싼다. 메뚜기 피해국 중 한 곳인 모리타니의 연구소에 들어가 신선한 논문을 마구마구 써서 꼭 정규직 박사가 되리라!! 야망에 부푼 고타로는 잠도 오지 않았다. 그러나 고타로가 모리타니에 도착한 그 날부터 씨알이 마르기 시작한 메뚜기들. 신의 형별이라는 메뚜기떼의 비행 또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메뚜기 한 마리를 찾으려고 차를 타고 하루종일 움직여도 없다. 살인적 가뭄에 메뚜기 유충마저 말라버린 하루하루 속 고타로의 메뚜기 연구를 향한 전력투구가 시작된다. 순진한 박사 호구 잡는 운전기사와 통역 대학생, 메뚜기 현상금에 좀비화된 마을 아이들의 폭력, 바닷바람에 두달여만에 녹아내린 메뚜기 실험 상자, 온갖 벌레들의 투신자살 내역을 입으로 확인하게 되는 사막의 스파게티, 또다른 벌레 거저리와의 외도. 2년여에 걸쳐 성공적인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나마의 수확을 꼽으라면 고슴도치 두 마리를 길들인 것 정도?? 타인의 불행을 보며 이렇게 웃어도 되는건지 독자는 괜스레 죄책감에 빠지지만 후기에 보면 독자의 웃음을 위해 더욱 불행해져도 좋았다는 박사의 다짐이 든든하다. 우리 마음껏 웃도록 하자.


덧, 모리타니 편에서 배운 메뚜기에 대한 것을 하나 소개하자면 우리가 영화 속에서 보곤 하는 떼로 뭉쳐다니는 비행 메뚜기들이 어떤 특별한 종이 아니라는 거다.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가 시골 논에서 보곤 하는 평범한 메뚜기들이랑 똑같은 애들이란다. 근데 이런 평범했던 애들이 주변에 동료 메뚜기들이 많아지는 고밀도 환경으로 들어가면 급격히 무리를 형성하며 하루에도 100키로씩 날고 근방 식물들을 다 털어먹는 깡패 해충으로 변신한단다. 사람이고 메뚜기고 하튼 너무 가깝지 않게 띄엄띄엄 살아야 맞는거구나를 다시 한번 배웠다. 뭉치면 피곤해;; 그리고 여성을 죽이는 또 하나의 야만적 문화도 접했다. 전족, 코르셋, 할레는 알았지만 가바지는 또 뭐니? 체격이 아주 좋은 여성을 선호하는 모리타니에서는 어린 여자 아이들을 살 찌우기 위해 여섯 살 아이에게 우유 8리터, 2킬로그램의 쿠스쿠스(일종의 스파게티)를 1일 평균 식사로 제공한다. 그 와중에 폭력은 뭐 당연한거고 위장파열로 사망하는 아이까지 생기는데 그럼에도 아이를 살찌우기 위해 학원까지 보내는 극성 부모들이 존재하는가보다. 가바지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고타로의 운전기사 티자니의 의붓딸 또한 가바지로 고통받는 걸 보면 가바지 문화의 완전박멸은 아직도 요원한 듯 . 모리타니의 여성에 대한 이런 폭력적인 문화가 얼른 사라지면 좋겠다.


3. 프랑스에서,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메뚜기 연구를 위한 잠깐의 후퇴. 이번 전장은 아프리카가 아닌 프랑스다. 메뚜기 씨가 마른 모리타니를 잠시 떠나 프랑스에 간 고타로는 파브르의 집을 방문한다. 여기서 아주 재미난 소식 하나를 접했는데 프랑스에서는 파브르가 별로 유명하지 않다는 거!!! 프랑스 사람 열 명 중에 한 명이 파브르를 알까말까라고 한다. 왓?!! 그럼 프랑스 교과서에는 파브르가 안나오나요? 진짜?? 이게 사실이냐고 프랑스 사람한테 물어보고 직접 확인까지 받고 싶지만 나는 뭐 그렇다. 봉쥬르 밖에 모르는 걸. 봉슈른가? 어쨌든 프랑스에서 메뚜기 원고도 완성하고 파브르 생가의 동상에 첫 원고도 바친 원대했던 나날들은 박사의 가슴에 다시금 정열의 불을 피워준다. 생계에 도움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무직 박사에게도 구르는 재주는 있었던 것이다.


4. 다시 일본 다시 모리타니 다시 중국 다시 또 모리타니 다시 또 일본으로 방황하는 박사,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


이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곤충 속담 몇 개 더 아는걸로 써먹으려고 했는데 리뷰가 벌써 너무 길다 ㅎㅎ 어쨌든 좌충우돌, 일본-모리타리-프랑스-모리타니-일본- 모리타니-중국- 모리타니- 일본을 오고가며 특별 연구원 기간이 끝난 후 더욱 바빠진 박사님이다. 얼마 안되는 통장 잔고를 털어가며 아프리카에 머무르는 일은 그 자체로 크나큰 압박이니까. 연구비 마련을 위해, 안정적인 직업과 미래를 위해, 메뚜기 연구로 인류를 돕겠다는 거대한 꿈을 위해 또다른 연구원 자리, 또다른 논문, 결이 완전히 다른 방송과 출판과 대중강의에까지 도전을 한다. 실패가 두렵지만 꿈을 고백하면 할 수록 더 많은 도움을 받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인생 속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메뚜기를 연구하고 있을 고타로 박사. 메뚜기를 하도 만져 메뚜기 알레르기가 생긴 그의 완치를 빌며 아프리카의 메뚜기 문제도 꼭 해결이 나면 좋겠다. 메뚜기 박사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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