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7년
에트가르 케레트 지음, 이나경 옮김 / 이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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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세상에 내어놓은 때가 2015년. <좋았던 7년>이라는 열차를 3년이나 지난 뒤 탑승하는 승객이 되었습니다. 다비드 그로스만에 이어 제가 만나는 두 번째 이스라엘 작가이고 제가 만나는 첫 번째 이스라엘발 에세이인데요. 두 번째고 첫 번째고 상관없이 제가 읽어온 에세이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게 좋아하는 작품으로 등극해 버렸습니다. 작가님의 소설은 또 별개의 문제겠지만요. 이 에세이만큼은 독특하고 남다른 시각 속에서 국경과 문화를 초월하여 유머러스합니다. 감동적이고요. 눈물나요.

이야기의 시작은 아빠가 된 첫날로부터 시작합니다. 현자이고 약쟁이이며 사이코패스라고 생후 2주만에 아빠에게 진단받은 갓난쟁이 레브가 태어날 조짐이 보이던 그 날, 테러가 발생합니다. 테러라니?!! 하고 깜짝 놀랐지만 병원과 부상자와 택시기사와 작가의 반응을 보니 일상인양 편안(?)합니다. 더욱이 부상자들은 울거나 끙끙 앓거나 의사를 소리 높여 외치지도 않고 매우 조용해요. 병원에서 비명을 지르는 이는 산통이 온 작가의 아내뿐인 것 같습니다. 자연분만은 테러를 뛰어넘는 극한 공포에 고통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와중에 작가님은 우울하고요. 저는 어쩐지 피식, 웃음이 납니다. 작가님의 표현대로라면 미친 사람처럼 비명을 질러대는 아내와 들 것에 밀려들어온 부상자들의 침묵 사이에서 그지깽깽이 같은 기자에게 테러에 대한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당하며 어딘지 멘탈이 나간 듯한 작가의 모습이 희극적이거든요. 남다른 감수성까진 몰라도 확실히 평범치는 않아요. 6시간만에 레브가 태어났고 아빠의 말을 알아들은 듯 조용해졌던 아이가 딸꾹질 한번에 다시 울음을 터트렸을 때 저는 작가님 육아의 고난이 예견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만 아니 이거 뭐죠? <갈팡질팡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이기호 작가님의 책 제목이 <좋았던 7년>의 길라잡이였어요. 무슨 이야기들이 이렇게 난데없고 갈팡질팡 하면서 재미날 수가 있냐구요.

<좋았던 7년> 속에는요. 위성방송예스의 통신판매사원 데보라의 전화를 피하기 위해 절단수술을 받고 죽어버린 작가님, 사인 한방에 해병대 출신 독자에게 뺨을 맞는 작가님, 레스토랑에서 1.5m 도마뱀의 교훈을 배우게 되는 작가님, 나치 문양을 감지하는 초능력을 가진 작가님이 나옵니다. 아차, 생애 첫 원고로 개똥을 싸서 버리는 형님을 보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작가님도 나오구요. 육아랑 연관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하고 생각하셨다면 정답입니다. 이 얘기들은 육아와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만 육아와 무관하게 매우 참신하게 웃겨요. 물론 고양이도 됐다가 샌드위치로도 변신하는 레브도 잠깐씩 등장해 아빠와 함께 독자를 웃깁니다. 녀석의 재롱이 아기 고양이 저리가라에요. 야옹~ 이 고물고물한 녀석 때문에 엉엉 울 때도 있습니다. 자기 때문에 아빠가 다쳤다며 걱정하는 모습이 정말, 이 맛에 자식 키우는구나 싶더군요. "왜 아버지는 아들을 지켜야 해?", "아빠는? 이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빠는 누가 지켜줘?" 작가도 울고 독자도 울고 아마 하늘에서 레브의 할아버지도 울음이 터졌을 거에요. 아들은 지켰지만 암으로부터 아버지를 지킬 수 없었던 작가님, 뉴욕의 흠뻑 젖어버린 호텔방에서 끝까지 아들을 지켜준 아버지의 구두, 그 구두의 이야기를 어머니께 바치며 그러나 작가님은 어째서인지 히브리어판으로는 이 책을 출간하지 않습니다. 처음엔 그게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작가님의 마음에 부쩍 공감이 가요. 내 일기를 내 옆집 아저씨랑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안그래요?

부자 삼대의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모든 일상 뒤에서 무심히 들려오는 미사일과 폭약의 소리는 살떨리고요.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들의 군대 문제로 벌써부터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성과 부성의 대립은 아파요. 전세계가 학살의 피해자로 기억하는 민족으로 살아가는 아픔, 중동 전쟁의 중심이 되어 느끼는 죄책감, 그럼에도 내 민족의 생명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끓어오르는 증오에 대하여 처음으로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눈물콧물을 닦고 저는 이만 완독 승차장에서 하차합니다. 열차의 우수성이 아직 소문나지 않은 듯 한데 다음 독자분 얼른 승차해 주세요. 작가님 오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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