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말이죠… - 이 도시를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
심상덕 지음, 윤근영 엮음, 이예리 그림 / 이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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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재미난 책을 만났습니다. <서울은 말이죠...> 서울에 살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지방민인데 전생 추억이 되살아나듯 즐거워져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입술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실없이 푸흐흐 푸흐흐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배꼽잡는 웃음은 아니니 오해하진 마시구요. 빙그레 미소짓게 되는, 그런 거 아시죠? 제게는 있지도 않은 서울의 기억에 가슴이 간질간질, 돌아가신 심상덕 작가님의 이야기가 마치 라디오를 타고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어요. 어라? 신간 아니야? 작가님이 돌아가셨다고? 좀 이상한 이야기 같은 가요? "서울 야곡", "부산 야곡" 등 그 시절 유명했던 작품의 방송 작가였던 작가님은 2010년 8월, 건강 악화로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책이 나오게 된 건 작가님의 며느리인 윤근영씨 덕분이었죠. 음악책을 제작하는 편집자가 남편과 결혼 후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라디오 원고를 보게 된 거에요. 단 한 번 뵌 적도 없지만 작가님의 녹음된 방송 테이프를 듣고 원고를 읽고 그러는 사이에 완전히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출판사 편집자이니만큼 원고를 정리해 책으로 출판해야겠단 아이디어가 떠오른 건 말할 것도 없구요. 덕분에 그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젊은 독자인 저도 60년대 서울의 정취에 흠뻑 빠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1장. 그리운 서울, 2장. 맛있는 서울, 3장 서울의 그곳에서는", 책 가득히 도시를 채웠던 추억과 사람들이 회자됩니다. 그 시절 서울엔 문간방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도 식모를 써서 보따리 하나 짊어지고 상경한 시골처녀들이 취직을 많이 했대요. 운이 좋으면 학교도 다니고 결혼 후에도 친정처럼 의지가 되었다네요. 공지영 작가의 봉순이 언니 같은 분들이 많았구나 했습니다. 30년도 넘게 지속된 야간 통행금지는 82년에 가서야 풀렸는데요. 이후로는 통행금지 때문에 외박했다는 남편들의 변명은 씨알도 안먹혔겠죠? 약주 좀 하신 것 같은 작가님은 무슨 변명으로 아내의 분노를 통과하셨을지 궁금했습니다. 월부 양복이라는 게 있었다는데 입어보신 분 있으실까요? 계절이 바뀔 때면 미리 양복을 맞추고 매달 월급을 받으면 조금씩 갚았대요. 전집 살 때 이렇게 월부로 구매했는데 양복도 그랬다니 신기합니다. 병원에서 출산하는 사람보다 산파 손에 아이받는 임산부들이 많아서 수제비도 많이 먹었다는군요. 목에서 쑤욱 넘어가듯 순산하라구요. 시험볼 때 미역국 먹지 말라는 것과 똑같은 미신이지만 그렇게라도 불안한 마음 덜 수 있다면 저는 이런 미신도 좋아요. 우표 한 장 살 돈이 없어서 우표 안붙이고 빨간 우체동에 편지를 넣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지금 생각에는 편지가 반송되거나 버려지거나 했을 것 같은데 웬걸. 안전하게 배송까지 완료! 집배원이 배달한 뒤 그 집에서 우표값을 받았답니다. 무척 신선하지 않나요?요즘도 이런지 시험해 보고 싶으신 분 저한테 편지 주세요. 우표값은 제가 지불할게요 ㅎㅎ 1962년 타이완에서 곡마단이 공연 온 적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장마철이라 공연도 쫄딱 망하고 돌아갈 여비가 없어 창경원 동물원에 호랑이 한 마리 팔고 그 돈으로 집에 간 적도 있답니다. 이렇게 어이쿠한 사연도 하나둘이 아니에요^^

골목골목 울리는 아이들 고무줄 뛰기 노래, 11월 여학교에만 있었다는 김장방학, 천여그루 복숭아 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워 토독토독 꽃 피는 소리가 들렸다는 도화동, 서울 구경왔던 사람들이 멀미약 사먹고 올라갔다는 삼일빌딩, 아이들 있는 집엔 으레 있었다는 창경원 호랑이 우리 앞 사진 한 장, 가지가지 이야기에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예전엔 그 서울도 눈 뜨면 코 베어 갔을 세상이었겠지만 야단법석한 풍경들만 접하다 어딘지 여유만만한 서울의 이야기를 접하니 너무 좋아요. 일러스트 이예리님의 삽화까지 더해져 더욱 아기자기한 서울의 기억들, 혹시 남은 이야기가 더 없는지 기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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