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라는 세계
리니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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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와 술자리를 가졌다. 저녁을 겸하는 자리여서 삼겹살과 소주로 메뉴를 정했는데 그날따라 삼겹살보다 쌈채소에 손이 더 많이 갔다. 친구는 그게 네 몸이 원하는 것이니 많이 먹어라는 말을 건냈다. 그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금세 잊어버렸지만, 그 말은 계속 기억에서 맴돈다. 갈증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물에 손이 가듯이 내가 원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는 경험을 한 셈이니 말이다.


최근 들어 글쓰기나 기록에 관한 책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구해다 읽는 것도 그러한 작용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경험한 무언가를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에 깊이 박혀 있어 글쓰기나 기록에 관한 책에 자연스럽게 손을 뻗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까. 그렇게 손에 잡힌 책이 리니 작가의 기록이라는 세계이다.


기록이 뭐 별건가요? 남기면 기록이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찍는 것도, 단어 하나로 하루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카페에서 받아온 스티커를 붙여두는 것도 기록입니다. 어떤 형태든, 어떤 내용이든 괜찮아요. 글씨가 안 예뻐도 전혀 상관없고요. 매일 쓰지 못해도 좋고 어설프게 쓴 문장이라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한 줄이라도 좋으니 일단 써보는 거예요. (223쪽)


기록이라는 세계의 에필로그의 한 문단이다. 어떤 것이라도 쓰면 기록이 된다고 하지만 기록이 별거인 것은 써본 사람은 안다. 문제풀이 연습장을 제외하고는 노트를 한 권 채워본 적이 없는 나는 더 그렇다. 이에 저자는 길이’, ‘넓이’, ‘깊이의 이렇게 3장으로 구분한 기록법 25가지를 소개한다. 짧은 메모부터 포토로그, 사람 관찰 일지, 영어 필사 등 처음 보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한 번 정도는 들어본 노트이다. 각각의 기록법의 소개와 함께 그런 기록의 실례가 이렇게 써보세요의 장에서 소개되어 있는 것이 좋았다. 어쨌든 따라 해보고 싶은 누군가의 노트를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한편 이렇게 기록을 하면 뭐가 좋을까란 생각이 들 수 있다. 저자는 소개하는 기록법의 많은 부분에서 기록을 하면서 나를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는 말을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특정일을 하면 느꼈던 특별한 감정 등이 기록을 통해 점차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할 때 조각상은 이미 그 안에 있어 대리석 덩어리에서 필요 없는 것을 제거할 뿐이라는 말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 없는 대리석을 제거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조각상이 보이는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처음부터 선명하게 보이질 않기에 부지런히 대리석을 제거하듯이 기록을 남겨 나 자신을 알아가야 할 것 같다.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기록이라고 하면 완벽하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높은 벽이 느껴진다. 이런 점을 먼저 경험했다는 듯이 저자는 처음 짧은 메모편에 이런 조언을 한다.


기록을 대하는 태도는 삶의 태도와 많이 닮았어요. 완벽주의 때문에 시작의 허들을 넘지 못할 때, 사실 방법은 딱 하나에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시작해보는 거죠. (23쪽)


하루 삶을 돌아볼 때 즉흥적으로 선택을 하는 일이 그렇게나 많으면서 왜 기록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시작하려고 하는지 반성이 되는 말이다. 체계적이기도 하고 즉흥적이기도 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기록에 녹아져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프랑스의 브리야 사바랭은 1825년에 쓴 미식 관련 고전 미각의 생리학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먹은 것을 말해다오. 그러면 나는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하지만 난 먹은 것을 듣지 않아도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을 안다. 그 사람의 기록을 보면 된다. 기록이 쌓이면 그 사람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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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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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어떤 영감을 받을 때가 있다. , 이건 이 작가가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로구나. 내겐 이 책이 그런 것 같다.”


오랜만에 출판된 김영하 작가의 산문이라는 점과 띠지의 저 문구를 보고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단 한 번의 삶을 읽었다.작가가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란 말은 미스터리 소설의 신간에서 종종 등장하는 광고성 문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더 멋진 글을 가지고 돌아온다는 것을... 아무튼 지금은 단 한 번만 쓸 수 있다는 글이라는 점이 강한 호기심이 드는 것을 사실이다.


에세이로 출판된 책은 종종 읽었으나 산문은 김훈 작가의 허송세월이후 처음 읽는 것이라 문득 산문과 에세이의 차이가 궁금해졌다. 이제는 검색의 필수가 되어버린 AI에게 물어보니 이런 답을 준다.


산문과 에세이는 둘 다 운율이나 정형화된 형식을 따르지 않는 자유로운 형식의 글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산문(散文, Prose)은 운율이나 음절의 수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모든 글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고 에세이(Essay)는 산문 형식의 글 중에서도 특정 주제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 경험 등을 자유롭게 표현한 글을 의미한다. 즉 산문의 한 종류가 에세이라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산문 단 한 번의 삶의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많은 이들이 이 단 한 번의 삶을 무시무시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런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적기로 했다. 일단 적어놓으면 그 안에서 눈이 밝은 이들은 무엇이든 찾아내리라. 그런 마음으로 써나갔다. (197쪽)


있는 그대로 삶에 대해 적을 때 가장 접근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글은 나만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가장 진하게 베여있는 글이 될 테니까 말이다. 실제로 단 한 번의 삶의 시작에는 이 세상으로 나를 초대하고 먼저 다른 세계로 떠난 두 분에게라는 일종의 헌정사에 가까운 글이 있다. 바로 작가의 부모님이다. 그리고 이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작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작가가 된 뒤 겪은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김훈 작가의 허송세월에서도 느낀 점인데 단 한 번의 삶을 읽다보면 작가가 쓴 일기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경험담과 그에 따른 생각에 대한 글이기에 어쩌면 일기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OO을 했다. 재미있었다.’가 대부분인 나의 일기와 비교하면 깊은 곳에서부터 찌릿하고 공명하게 만드는 글이 많이 있다는 점이 있어 타인의 일기 같은 글이지만 읽게 되는 것 같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글은 테세우스의 배에 있었다.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새해에 세운 그 거창한 계획들을 완수하기에 열두 달은 너무 짧다. 그러나 십 년은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서 띄엄띄엄 해나가면 어느 정도는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72쪽)


김영하 작가는 작가 소개에도 언급이 되지만 여행, 요리, 그림그리기, 정원 일을 좋아하는데 전문가 수준의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런 십 년이 여럿 쌓였다고 했으니 전문가 수준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러다 나는 매년 12월 말에 계획을 세우지만 3, 5, 그리고 10년의 계획을 세운적은 있었나는 생각을 해보았다. 당연히 없다. 매년 한 해 계획도 다 실천하지 못하는데 장기계획은 무슨... 그렇기에 이것은 내가 잘못한 것보다 그 계획을 완수하기에 시간이 짧았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글이었다.


인상 깊었던 글과 다르게 가장 좋았던 글은 작가가 중학생 때 친구를 부러워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다. ‘이탈이라는 제목의 글 중 일부이다.


중학교 때 친구는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LP를 들고 있었다. 형이 생일 선물로 사주었다는 것이다. 그런게 가능하려면 일단 형이 있어야 하고, 형이 사이먼 앤드 가펑클을 알아야 하고, 동생에게 그 음반을 사주면 동생이 기뻐하리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야 하고, 평소 가족끼리 저런 것을 선물하는 문화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집에 그 음반을 재생할 수 있는 기기가 있어야 했다. 나는 그중 단 한 가지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 친구가 참 부러웠다, (126쪽)


그 친구가 부러운 이유가 논리정연하게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 수많은 이유 중 단 한 가지도 가지지 못해서 친구가 부러웠다고 말하는 작가의 글이 재미있게도 나는 부러웠다. 게다가 작가는 종교가 필요한 이유도 명쾌하게 설명한다.


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 그처럼 귀중한 것이 단 하나만 주어진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쾌는 쉽게 처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했을 것이다. (9쪽)


김영하 작가의 책은 소설만 읽었고 단 한 번의 삶이전의 산문이라는 여행의 이유를 읽지 않아 나에게는 작가의 첫 산문이었는데 삶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 많이 좋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오른쪽 정렬이 되지 않은 문장들이 책을 읽을 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시작된 삶이 어떻게 끝날지는 미지수라는 점에서 이 또한 삶을 닮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제목에 어울려 보였다. 생각보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책에 길지 않은 글이 담겨 있지만 그 내용은 아담하지만은 않은 단 한 번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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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즐거움 - 지적 흥분을 부르는 천진한 어른의 공부 이야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유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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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다쓰루...

일본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사실 잘 모르는 인물이다. 현대 철학자라고 해봐야 몇몇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이름만 알고 있고 사실 우리나라의 철학자도 잘 모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무지의 즐거움을 읽으려고 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유유 출판사와 지적 흥분을 부르는 천진한 어른의 공부 이야기라는 표지의 문장 때문이다.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공부관련 책은 몇 권가지고 있는데 만족스러운 내용이 많아서 일단 유유 + 공부의 콜라보는 일단 읽고 보는 셈이다. 갈증이 나면 물을 찾듯이 공부가 부족한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책을 보곤 한다. 꼭 하라고 할 때는 딴청을 피우다 뒷북을 친다.


잠깐 우치다 다쓰루(內田樹)라는 철학자에 대해서 살펴보면,

우치다 다쓰루는 일본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윤리학자, 번역가, 칼럼니스트, 그리고 무도인으로, '거리의 사상가'로 불리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책에서도 언급이 되지만 그는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사상을 평생의 스승으로 삼아 프랑스 문학과 사상을 깊이 있게 연구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무도(합기도)에도 조예가 깊어 고베에 위치한 문화 커뮤니티 센터 '가이후칸(凱風館)'의 관장으로서 무도 수련과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그런 그의 책 무지의 즐거움은 본격적으로 한국의 독자를 대상으로 쓴 첫 책이라고 소개한다. 가까운 나라라고 하지만 문화와 관심사가 다르기에 그는 출판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이 책을 썼다. 따라서 각 장마다 다양한 질문이 등장하고 그에 따른 저자의 대답이 이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지막 나오는 말에서도 언급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질문과 답이 배움과 관련이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으로 본 것은 13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이다. 여기서 저자는 배움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한다.


배움이란 배움의 주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배움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쉽게 말하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일종의 변태를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이어 배움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릇도 바뀐다면 부연설명을 한다.


우리에게는 지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고, 그것을 메우고 싶다. 그것을 메울 목록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의 취지라면 저는 그런 행위를 배움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보충이지요. 보충은 같은 그릇을 유지하면서 내용물만 늘어나는 양상입니다. (125쪽)


나는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인지 보충을 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 문장이었다.


학교를 떠난 성인이 무언가를 배우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책을 읽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어떻게 책을 읽을지에 대한 질문이 따라온다. 이에 저자가 추천하는 무방비 독서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난독 체계적 독서 자신을 내려놓는 독서, 즉 무방비 독서, 무방비 독서는 난독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체계적 독서 단계를 거치고 나면 읽을 가치 있는 책과 가치 없는 책을 구별할 만큼의 안목은 생깁니다. 그 덕에 난독이 되지는 않습니다. (55쪽)


저자 자신이 레비나스의 저작을 읽을 때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으나 그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내려놓는 독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은 곧장 포기하고 덮어버리기에 그 글을 쓴 저자가 나에게 무언가를 전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기에 그런 책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독서 습관 때문인지 저자는 다양한 아웃풋을 위해 어떠한 인풋을 하느냐에 대한 질문의 답도 비슷한 것 같았다. 저자는 자신의 인풋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저는 특별히 인풋하지 않습니다. 그냥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말씀밖에는 드릴 수가 없겠네요. 그런데 살면서 우연히 마주치는 왠지 잘 삼켜 넘길 수 없는 것을 저장하는 노력을 저는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71쪽)


무협지 속에서 등장하는 영약도 주인공이 섭취를 하면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서서히 소화가 되는 장면이 많은 데 저자가 언급하는 잘 삼켜 넘길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자신이 전도자라고 하지만, 전도를 넘어 자신만의 철학 사상이 정립한 철학자로 보이는 낯선 학자. 그의 배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무지의 즐거움이다. 이번에도 유유 + 공부의 조합은 성공인 것 같다. 재생 종이로 책을 만드는 컨셉을 유지하는 출판사여서 그런지 책이 너무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이 한 가지 아쉽다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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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재앙을 마주한다 - 탐험가의 눈으로 본 기후위기의 7가지 장면
제임스 후퍼.강민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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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느 한 곳에서는 몇 달째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갈리지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수해가 나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태풍, 허리케인 등 발생하는 곳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지만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가 몇 차례 일어난다. 사실 가뭄이나 홍수, 태풍 등은 지금에서야 걱정을 하는 새로운 재해가 아니다. 예전부터 발생한 재해이지만 최근 들어 발생하는 빈도나 강도가 잦아지고 강력해져 문제가 되고 있다. 원인으로 다양한 사항이 거론되고 있지만 지구가 매년 따뜻해지는 지구온난화도 적지 않은 몫을 하고 있다.


지구가 따뜻해지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2007년 동료와 함께 자북극에서 자남극까지 42,000킬로미터를 무동력 폴투폴(180 Degrees Pole to Pole Manpowered)탐험을 한 제임스 후퍼가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나는 매일 재앙을 마주한다에서 그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무동력 탐험은 개 썰매, 스키, 자전거 등을 이용하며 탄소를 생성하는 동력을 이용하지 않고 이동하데 그 시작점인 그린란드에서부터 저자는 상상과 다른 모습의 북극을 마주한다.


바닷물이 얼어 만들어진 북극의 해빙이 빠른 속도로 녹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온도가 높아지면 얼음이 녹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북극의 얼음은 지구의 온도상승을 억제하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것이 녹음으로써 지구의 온도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게다가 얼음이 녹음으로써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이것이다.


다년빙에서 빠져나온 염분은 해빙의 아래에서 밀도 높은 바닷물을 형성하는데, 이 밀도 높은 바닷물은 심해로 내려가면서 바다가 머금고 있는 탄소를 함께 가지고 가라앉는다. 이때 표층수와 심해수가 섞이며 해류를 형서하고 바닷물의 순환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지구 전체의 에너지 균형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년빙이 녹아 없어지면 이 과정도 사라지면서 균형이 깨진다. (57쪽)


균형이 깨진다는 것은 어떠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말과 같다. 그 변화가 인간에게 이롭지 않을 것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지구는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가 아니기에 대부분의 에너지는 태양으로부터 받는다. 태양에너지는 지구에 동일하게 도달하지만 구의 형상인 지구는 불균형하게 에너지를 받는다. 적도부근에서는 에너지 과잉이 극지방에서는 에너지 부족이 일어나는 셈이다. 그런 에너지 불균형을 지구는 다양한 방법으로 해소를 하는데 그런 에너지 순환 중 하나가 깨지는 것이다.


대륙으로 이루어진 남극에서도 사정도 같다. 거기다 남극의 두꺼운 얼음 아래에 잠자고 있는 영구 동토가 깨어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 더해진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우려할만한 상황이긴 분명하나 현실 생활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요즘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미국을 지날 때 겪은 폭염은 다른 어떤 것보다 눈이 갔다. 매년 기상관측사상 최고의 기온이라는 보도는 우리도 매년 겪는 현상이니까. 특히 북극의 온도가 높아짐으로 제트기류가 약해져 생긴다는 열돔 현상은 심각해 보였다.




그밖에 엘니뇨와 라니냐, 벌목 등으로 그 모습을 잃어가는 열대 우림, 건조해지면 자주 생기는 산불까지 기후변화로 마주하게 되는 재앙의 현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오늘날의 기후 위기는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선진국들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며 지구는 하나이니 기후 위기를 대비하자는 선진국들의 연합은 자기 모순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에서 많이 언급이 된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지나면 늦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 기후 문제이기에 전 지구적인 해법이 필요해 보인다. 기후위기를 촉발한 것도 인간이니 그것을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매일 재앙을 마주한다의 프롤로그의 마지막이 그래서 묵직하게 다가온다.


기후위기는 그야말로 도미노처럼 복합적이고 연쇄적인 재난으로 찾아온다. 이 비극은 전 지구에 걸쳐서 발생하고 있다. 비극의 도미노, 그 시작과 끝에 바로 우리 인간이 있다.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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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 이곳이 싫어 떠난 여행에서 어디든 괜찮다고 깨달은 순간의 기록
봉현 지음 / 김영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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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꼬마 니콜라라는 어릴 적 보던 동화책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프랑스판 짱구는 못말려와 같은 책이다. 거기서 보던 그림과 비슷한 그림이 그려진 책을 만났다. 바로 봉현 작가의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이다. 그림체가 비슷하다고 해서 내용까지 비슷한 것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는 여행지에서 나 자신을 찾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여행기이며 자아 성찰기이며 그림일기이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서울 소재의 대학에 입학을 한 저자는 학생이면서 학생이 아닌 20대 초반을 보낸다. 그러다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괜찮지만, 행복하지 않아서...


서울을 떠나 베를린으로 간 저자는 낯선 사람, 낯선 거리를 만나고 그림을 그리며 지내다 다시 농장, 유렵, 파리 거쳐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다. 그리고는 중동으로 건너갔다 다시 순례길에 오르고 인도를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곳에서의 그림과 함께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오랜 여행경험으로 여행가방 속 챙겨야 할 물건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내 여행 가방 속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스케치북과 10년 넘게 써온 낡은 필통, 그리고 책 한 권이다. 여행가이드에는 여권, 비상약, 장비 같은 필수품들을 챙기라고 이야기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한 권 가지고 떠나시오라는 조언은 없다. 위급 용품이나 안내서도 물론 필요하지만, 몸을 챙기는 것 이상으로 마음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여행 가방에 무엇을 넣을지 고민한다면, 몇 번을 읽어도 좋은 자신만의 책을 꼭 한 권 챙길 것. (71쪽)


여행에 필요한 것들만 챙겨도 가방이 꽉 찰 텐데 책까지 챙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나 4,285킬로미터에 달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걸으며 엄마의 죽음이라는 상실을 회복 와일드의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도 6개월 동안 걸으며 배낭 속에 책을 챙겼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여행을 하면서 책 한권으로 마음을 챙기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갓 성인이 된 20대 초는 성인이라는 이름하에 많은 책임이 부과되는 시기이긴 하나 몸만 커진 청소년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불안한 미래와 불안전한 자아 등으로 인해 많이 방황도 하는 시기이다. 그런 방황이 여행기 곳곳에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방황만이 그려진 것은 아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저자는 자신이 건강하고 밝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이 글과 그림이 좋다.




하지만 두 번째로 간 순례길에는 처음만큼 설레거나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윽고 저자는 길이 아니라 같이 걷던 사람들과의 웃음, 눈물, 감동, 추억들이 그리웠던 것이라고 깨닫고 마차가지로 서울이 그리운 것이아니라 그곳에서 같이 살았던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이 그리운 것이라고 깨닫는다.


그리고 괜찮았지만 행복하지 않아서 떠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 충분하지 않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여행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책과 같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단 한 페이지만 읽은 것과 같다."

답을 찾아 헤매며 방황을 한 수많은 여행지에서 저자는 세상이라는 책의 수많은 페이지를 읽으며 답을 구한 셈이다. 흔히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어디든 다 똑같다고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을 겪었기에 아주 예쁘게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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