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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즐거움 - 지적 흥분을 부르는 천진한 어른의 공부 이야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유유 / 2024년 11월
평점 :
우치다 다쓰루...
일본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사실 잘 모르는 인물이다. 현대 철학자라고 해봐야 몇몇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이름만 알고 있고 사실 우리나라의 철학자도 잘 모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무지의 즐거움』을 읽으려고 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유유 출판사와 ‘지적 흥분을 부르는 천진한 어른의 공부 이야기’라는 표지의 문장 때문이다.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공부관련 책은 몇 권가지고 있는데 만족스러운 내용이 많아서 일단 ‘유유 + 공부’의 콜라보는 일단 읽고 보는 셈이다. 갈증이 나면 물을 찾듯이 공부가 부족한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책을 보곤 한다. 꼭 하라고 할 때는 딴청을 피우다 뒷북을 친다.
잠깐 우치다 다쓰루(內田樹)라는 철학자에 대해서 살펴보면,
우치다 다쓰루는 일본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윤리학자, 번역가, 칼럼니스트, 그리고 무도인으로, '거리의 사상가'로 불리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책에서도 언급이 되지만 그는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사상을 평생의 스승으로 삼아 프랑스 문학과 사상을 깊이 있게 연구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무도(합기도)에도 조예가 깊어 고베에 위치한 문화 커뮤니티 센터 '가이후칸(凱風館)'의 관장으로서 무도 수련과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그런 그의 책 『무지의 즐거움』은 본격적으로 한국의 독자를 대상으로 쓴 첫 책이라고 소개한다. 가까운 나라라고 하지만 문화와 관심사가 다르기에 그는 출판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이 책을 썼다. 따라서 각 장마다 다양한 질문이 등장하고 그에 따른 저자의 대답이 이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지막 나오는 말에서도 언급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질문과 답이 ‘배움’과 관련이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으로 본 것은 13장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이다. 여기서 저자는 배움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한다.
‘배움이란 배움의 주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배움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쉽게 말하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일종의 변태를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이어 배움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릇도 바뀐다면 부연설명을 한다.
우리에게는 지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고, 그것을 메우고 싶다. 그것을 메울 목록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의 취지라면 저는 그런 행위를 배움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보충’이지요. 보충은 같은 그릇을 유지하면서 내용물만 늘어나는 양상입니다. (125쪽)
나는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인지 보충을 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 문장이었다.
학교를 떠난 성인이 무언가를 배우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책을 읽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어떻게 책을 읽을지에 대한 질문이 따라온다. 이에 저자가 추천하는 무방비 독서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난독 → 체계적 독서 → 자신을 내려놓는 독서, 즉 무방비 독서, 무방비 독서는 난독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체계적 독서 단계를 거치고 나면 읽을 가치 있는 책과 가치 없는 책을 구별할 만큼의 안목은 생깁니다. 그 덕에 난독이 되지는 않습니다. (55쪽)
저자 자신이 레비나스의 저작을 읽을 때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으나 그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내려놓는 독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은 곧장 포기하고 덮어버리기에 그 글을 쓴 저자가 나에게 무언가를 전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기에 그런 책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독서 습관 때문인지 저자는 다양한 아웃풋을 위해 어떠한 인풋을 하느냐에 대한 질문의 답도 비슷한 것 같았다. 저자는 자신의 인풋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저는 특별히 인풋하지 않습니다. 그냥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말씀밖에는 드릴 수가 없겠네요. 그런데 살면서 우연히 마주치는 ‘왠지 잘 삼켜 넘길 수 없는 것’을 저장하는 노력을 저는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71쪽)
무협지 속에서 등장하는 영약도 주인공이 섭취를 하면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서서히 소화가 되는 장면이 많은 데 저자가 언급하는 ‘잘 삼켜 넘길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자신이 전도자라고 하지만, 전도를 넘어 자신만의 철학 사상이 정립한 철학자로 보이는 낯선 학자. 그의 배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무지의 즐거움』이다. 이번에도 ‘유유 + 공부’의 조합은 성공인 것 같다. 재생 종이로 책을 만드는 컨셉을 유지하는 출판사여서 그런지 책이 너무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이 한 가지 아쉽다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