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
시가 아키라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속는 사람과 속이는 사람이라는 독특하게 구분 된 목차를 가진 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는 문제가 많은 남편을 피해 아이와 함께 고향 이바라키에서 도쿄로 온 싱글맘 누마지리 다카요에게 월세의 독촉장이 날아온다. 건강의 악화되어 일을 쉬고 있기에 등록 대부업체에서도 그녀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사채를 쓰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녀에게 돈을 빌려준 사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채와는 조금 다른 소프트 사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시중 은행보다 고리로 돈을 빌려준다는 점에서는 사채와는 같지만 SNS로 홍보를 하는 등 통상적인 사채와는 조금 달랐다. 그녀에게 돈을 빌려주는 미나미라는 인물은 그녀의 상황에 대해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면서 필요한 돈을 아낌없이 융통을 해주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다카요에게 돈을 융통해준 미나미가 후에 다카요를 스텝으로 받아들여 소프트 사채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옛날 사채업자는 지독하게 추심을 했지만, 요즘 소프트 사채업은 돈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을 친구처럼 가족처럼 대해 주는 게 요령이야. 돈을 갚겠다는 의지만 보이면 웬만한 연체는 눈감아 주고 개인사도 잘 들어 주면서 고객과 말랑말랑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거지. (194쪽)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와 함께 돈을 회수하는 사채업의 이야기가 속는 사람에서는 돈을 비리는 다카요가 속이는 사람에서는 미나미에게 돈을 빌려 자신의 사채업을 하는 다카요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이야기에 속고 속이는 것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보다보면 이야기의 끝에 작가가 숨겨놓은 트릭으로 인해 제목이 왜 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가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소설의 시작부터 작가의 트릭은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검은 바탕에 흰 글자로 일종의 안내 문구처럼 반기는 글이다.

 

이 장을 넘기면 주인공인 누마지리의 현재 상황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되기에 이런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으로 생각이 되었으나 소설을 다 읽고 다시 보니 그것만을 품고 있는 문장이 아닌 것 같았다.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SNS 불법 사채업을 현실감 있게 재구성 한 소설이고 주인공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젊은 싱글맘이기에 사채 뿐 아니라 성매매 등 불편한 현실이 등장하고 있긴 하지만 주된 이야기가 사채에 집중되어 있어 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충분해 보였다.

 

돈에 대한 어두운 면인 사채보다 작가의 숨겨놓은 반전이 오래동안 기억에 남을 듯한 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먼 곳에서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래스카의 얼음판이 떠도는 좁은 해역으로 배를 몰아 그곳에서 갇혀버린 임패커블호의 승무원들은 어느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호칸 쇠데르스트룀으로 스웨덴에서 이주해 온 인물이었다. 지금이야 미국에서 스웨덴인을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호칸이 활약하는 때는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간의 다툼이 치열하고 불법 금광 채굴이 활발한 때였다. 에르난 디아즈의 소설 먼 곳에서의 주인공 호칸과 그를 둘러싼 상황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고립된 그들이 만난 호칸은 인간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가능한 최대의 몸집을 가지고 독특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 옷차림만으로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생가죽 레깅스에 닮아빠진 블라우스,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모직 천 몇 겹을 걸치고, 그 위에 스라소니와 코요테, 비버, , 카리부, 뱀 여우, 프레리도그, 긴코너구리, 퓨마, 그 외에 알 수 없는 짐승 가죽으로 만든 코트를 입고 있었다. (15쪽)

 

이윽고 호칸 자신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호칸은 스웨덴의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 형 리누스와 함께 아메리카로 가는 배에 오른다. 뉴욕을 목적지로 하지만 두 사람은 포츠머스에 잠시 내리고 그곳에서 호칸은 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때부터 호칸은 뉴욕으로 가서 형을 만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다. 하지만 호칸이 탄 배는 샌프란시스코에 당도한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한 채로 동부 뉴욕으로 향하는 여정이 이어진다.

 

걸어서 미 대륙 평원을 횡단할 계획을 세우는 호칸은 여정도중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사건에 휘말린다. 금광을 찾아 건너온 아일랜드인 가족들과 함께 움직이며 짐꾼노릇을 하고, 이름 모를 여인이 이끄는 단체에 납치를 당하기도 한다. 그곳을 탈출한 뒤에 로리머라는 박물학자를 만나 의술을 배운다. 뿐만 아니라 짧은 머리를 가진 인디언도 만나고 이주를 하는 행렬을 만나 동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호칸은 자신의 일행을 지키기 위해 원치 않은 살인을 하고 영웅과 현상수배범이라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소설 먼 곳에서 속에 진하게 녹아있는 두 가지는 생존과 외로움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며 인생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땅에 홀로 남겨진 호칸에게는 뉴욕으로 가 형을 만나려는 목표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살아남아야 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그에게는 호의를 가진 이들도 접근했지만 많은 이들이 그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심지어 어느 보안관은 법집행이라는 명목으로 호칸을 잡아 돈벌이에 이용하기도 한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줄기 희망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에 호칸도 그에게 닥친 수많은 적의 속에 몇몇의 호의를 가진 인물이 있어 살아갈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박물학자 로리머가 있었다. 인생이라는 여정을 단순하게 말하면 생존이다. 일단 살아있어야 뭐든 할 것이니 말이다. 그 여정 속에서는 호칸의 경우처럼 많은 이들이 등장하고 퇴장한다. 호의를 가진 이들이 생각보다 적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호칸과 같이 삶의 목표가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가며 전진할 수 있는 것도 인생인 것 같다.

 

이러한 호칸의 여정 곳곳에는 외로움과 고독이 짙게 깔려있다. 사막과 평원과 협곡은 끝없이 광활하고 평평하며 언제나 똑같은 모습을 지만 평원과 사막이라는 배경은 이를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호칸의 외로움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이미 황폐한 땅에 새로운 황량함이 한 겹 더 내려앉았다. 점점 늘어만 가는 칸으로 이루어진 생기 없는 평원은 여전히 똑같았다. 태양은 언제나처럼 날카롭게, 또 뭉툭하게 찔러오며 만연했다. 그 물러서지 않는 단조로움에서 달라진 것, 납작하고 점점 더 납작해져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깊이를 갖춘 것은 단 하나, 호칸의 외로움뿐이었다. (106쪽)

 

단조롭다는 것은 외로움을 수반하는데 그중에서 유일하게 깊이를 갖춘 것이 외로움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자에서도 각각 외로움과 생존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흰 하늘과 섞여들어가는 흰 평원을 어지럽히는 건 그 구멍, 얼음 위의 깨진 별뿐이었다. 바람도, 생명도, 소리도 없었다. (9쪽)

 

호칸은 자기 발을 그 다음에는 다시 위를 보더니 백색 안으로, 가라앉는 태양을 향해 길을 나섰다. (352쪽)

 

황량한 배경에서 호칸의 삶을 담담히 그리는 소실이기에 어쩌면 소설을 읽으며 침잠하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삶을 외롭게 생존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런 기분을 소설 속에서 발견하는 것도 좋은 경험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몰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기 주장이 강한 이에게 주로 하는 조언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을 뜯어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국어사전상으로 객관적이라는 말은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본다는 것은 상황을 파악하는 것으로 이 파악하는 것 자체가 주관적이고 자기 중심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객관적으로 본다는 말은 자기 중심적을 탈피해서 상환을 파악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설을 읽을 때에는 이러한 경향이 누그러지는 것 같다. 소설읽기는 작가와 독자가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독자는 소설 속 주인공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과 인물의 일부만 보여줌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가들이 있다 미나토 가나에도 그런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이 작가는 각 장 마다 화자를 달리 함으로써 한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일몰에서도 사건을 그렇게 풀어간다. ‘에피소드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각각 말하는 이가 다르게 등장한다.

 

에피소드에서는 하세베 가오리라는 신진 영화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반면 으로 이루어진 곳에서는 미히로라는 필명으로 각본을 쓰는 가히 치히로가 등장한다. 그 둘을 연결하는 하나의 사건은 15년 전 일어난 사건을 영화화하기 위해 하세베 가오리가 가히 치히로에게 각본을 의뢰하면서 부각되는 사사츠카초 일가족 살해 사건이다. 이는 한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 고등학생인 여동생을 칼로 찔러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러 부모까지 죽게 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 청년은 사형선고를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이 사건을 영화화해보고 싶다는 하세베 가오리의 제안을 가히 치히로가 받아들이며 사건이 재조명된다.

 

가오리는 치히로와의 만남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죽은 후에 주위 사람들이 제멋대로 떠드는 말만으로 다테이시 사라라는 사람이 규정되는 건 불합리하잖아요. (75쪽)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주위 사람들이 말이 아닌 자신의 시각으로 죽은 사라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모습, 한 꺼풀 벗긴 얼굴을 찍어 유명해진 가오리의 말이기에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치히로는 고향이 사사츠카초 일대여서 학창시절 그 사건을 보고 겪으며 자란 케이스이다.

 

위에 언급한 대로 각 에피소드와 장에서는 가오리와 치히로가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가오리는 어릴 적부터 엄한 엄마에게 자라면서 굴곡진 가정사가 있었다. 어린 가오리가 조금의 실수라도 하면 날씨에 상관없이 베란다로 쫓아냈는데 그곳에서 옆집에 자기 또래의 누군가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말은 나눠보지 않았지만 그 또래를 사라라고 짐작한 가오리는 훗날 그 사건을 듣고는 사라라는 인물을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고향을 떠나 도쿄에서 살아가고 있는 무명의 각본가인 치히로에게는 언니가 한 명 있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언니는 유럽으로 유학을 간 것으로 나오면 치히로가 휴대폰으로 연락도 자주 한다. 그런 그녀도 이야기가 이어지자 어두운 과거거가 사사츠카초 사건과 같이 드러난다.

 

가오리와 치히로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가오리가 겪어 나온 과거와 치히로가 겪은 어두운 삶의 밑바닥이 서로 연관이 이어진다.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서로 이어지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미나토 가나에 소설을 읽는 재미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몰이라는 말이 제게는 재생의 상징입니다.”

 

재생이라는 말은 적든 많든 허물어진 다음에 쓰는 말이기에 주인공인 가오리와 치히로가 겪은 어두운 절망의 밑바닥이 더 어둡고 쓸쓸하게 그려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의 품을 떠나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가오리의 다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러니, 살아야 한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336쪽)

 

이야기가 진행 될수록 사건의 중심이 된 사라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도 소설을 읽는 재미였다. 책 뒤표지의 사실과 진실의 메울 수 없는 간극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 다테이시 사라이기 때문이다. 각 에피소드와 장을 시작하기 전의 어두운 그림도 이야기의 전개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오랜만에 잘 짜여진 미스터리 소설을 읽은 기분이 든 일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작가들이 첫 문장에 많은 공을 들인다고 한다. 아무래도 소설을 중간이나 끝부터 읽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니 그 소설의 첫인상을 만드는 것이 그 첫 문장이니까. 그리고 그런 흡인력이 있는 첫 문장을 가진 소설은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런 소설 중에 한 편을 더 해야 할 것 같은 소설을 만났다. 백희성 작가의 빛이 이끄는 곳으로이다. 1장을 시작하는 첫 문장은 따로 있지만 소설의 시작은 여러 개의 조각난 글로 시작한다. 그것이 무척 신비롭게 다가온다.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했지만 재미있게도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빛이 이끄는 곳으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이 난다.

 

모든 이들의 기억의 장소는 바로 집이었다. (351쪽)

 

소설의 줄거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파리에 사는 건축가 뤼미에르 클레제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그는 자신만의 건축을 짓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에 부딪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가 파리 시내 부동산 시세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집을 구하려고 남긴 문의에 응답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오래된 고택을 싸게 매입하여 자신의 손으로 고쳐가면서 자신만의 집을 만들려는 계획은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스위스의 요양병원에 입원중인 집주인 피터 왈처의 초대를 받으면서...

 

그의 초대를 수락한 뤼미에르는 피터의 아버지인 프랑스와 왈처가 수도원으로 쓰이던 건물을 요양병원으로 개조한 왈처요양병원에서 프랑스와 왈처가 자신의 아들에게 남긴 메시지와 빛이 이끄는 신비한 경험을 하고 아울러 피터에게 남긴 집에서도 그가 남긴 흔적을 찾아내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에게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제는 노인이 되어 버린 아들이 아버지가 남긴 메시지를 찾는 것, 어쩌면 집이라는 가족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도 했다. 그렇기에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 모든 이들의 기억의 장소는 바로 집이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건물을 설계하고 만드는 건축가에게 보이는 집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뤼미에르는 집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수많은 사연이 있듯이 집도 저마다 사연이 있는 법이다. 그 사연을 듣고 보고 느끼고 싶다면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사이에 집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주고 느끼게 해줄 것이다. 오래된 집은 그만큼 오랜 시간 누군가를 기다려 왔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껴줄 사람을……. (90쪽)

 

그리고 그 사연은 그것을 보려고 하는 이에게만 보여주는 모양이었다. 결국 뤼미에르는 아들도 못한 아버지 프랑스와가 남긴 사연을 읽고 부자간의 갈등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시장의 특성으로 많은 부지가 아파트나 주상복합단지가 되어 가고 있기에 어릴 적 뛰어 놀던 골목길이나 동네는 사라지거나 흔적도 없어진 곳이 많다. 이렇게 보면 뤼미에르가 말하는 사연을 들려줄 집은 우리 곁에서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마냥 사는 곳이 아닌 누군가의 기억을 하나둘씩 쌓아 올린 공간으로써의 집을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준 빛이 이끄는 곳으로 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수업이든 첫 수업의 시작은 대게 선생님의 소개로 시작을 한다. 고등학교에서 맞는 한국사 첫 수업시간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을 그 첫 시작이 다른 수업과는 다르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칠판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쓴 선생님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아래 자신의 가족의 이름(결혼을 하여 딸이 있는 가정이었기에 이름은 3개가 되었다)을 적고는 말했다. 이렇게 자신은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고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도 이와 비슷하게 사셨다고... 한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라고... 아마 암기과목으로 분류되어 있는 한국사에 대한 인식을 조금 바꿔보려는 시도였던 것 같다. 바로 다음 시간부터 선사시대의 토기와 유물의 이름 외워야 했으니 그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고등학교에서 배운 한국사는 거의 잊어버렸지만 부모님, 조부모님의 이야기가 역사라는 그 이야기는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이제는 여기에 하나 더 붙이고 싶다. 역사는 단순히 부모임, 조부모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기억해야하는 우리들의 몫까지라고...


소설 속 인선의 이야기를 듣는 경하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이 누구 있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녀들의 주위에는 침묵하는 나무들과 눈뿐이다. 역사를 잇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침묵하는 주위와 그것을 덮고 밀봉하려는 시간의 흐름이다. 물론 침묵을 선택한 이들을 비난 할 수는 없다. 누구나 자신의 생채기가 가장 쓰라린 법이고 그들도 자신의 역사를 부지런히 쓰고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밀봉하려는 눈과 같은 시간의 흐름을 안타까웠다. 전하지 못 한 이야기가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아래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발자국을 금세 덮어버리는 눈과 같이 말이다. 눈을 보고 섬뜩해지는 것은 군대에서 눈을 치울 때 이래로 처음이었다.


하지만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일수록 똑바로 봐야 한다. 아니 아픈 것일수록 더 똑바로 봐야한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경하가 인선을 찾아간 병원에서 절단된 손가락과 발가락 사진을 보았듯이 말이다. 실제보다 무섭게 기억할 수도 있으니 제대로 봐야 한다. 먼저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전기톱에 손가락이 잘린 인선은 봉합 수술을 하고 삼주동안 삼분마다 바늘로 찔러 봉합 부위에 계속 피를 흘려야 하는 재활을 받는다. 잘린 손가락을 포기한다면 절단된 부위를 봉합하는 수술로 끝이 날것이지만 신경을 잇기 위해서는 삼분마다 고통스러운 재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사고가 없었던 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러한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고통이 없는 때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늘로 찌르는 고통이라니...


아픈 역사를 잇는 것도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잇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바늘로 찔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작별하기 위해서는 그 고통은 꼭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제대로 기억하기 전에는 작별하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 알고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한 마디를 인선이 경하에게 한다. 그 말을 나도 꼭 하고 싶다.


너한테 지금. …… 내가 있잖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