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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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소설을 집어 들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아쿠타가와상을 받은 2001년생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제목이 주는 묘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문장은 너무 단정적이어서 오히려 의심을 부른다. 정말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을까?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일본 최고의 괴테 연구자인 국립대 교수 히로바 도이치가 어느 날 레스토랑의 홍차 티백에서 발견한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된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Goethe”


사랑은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고 섞는다는 이 문장은 그럴듯하지만, 도이치의 방대한 괴테 전집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명언의 출처를 찾는 과정이라는 단순한 구조를 띠지만, 곧 훨씬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출처가 없는 말은 누구의 말인가괴테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괴테가 말했을 법한 말이라면 괴테의 말이 될 수 있는가?


이 소설에는 살인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다대신 도이치의 내면 독백, 가족과의 대화, 학자들 사이의 메일과 토론이 중심이 된다.


TV 프로그램 녹화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명언을 괴테의 말로 언급해버린 뒤 괴로워하는 장면이 가장 큰 사건일 정도다그러나 이 잔잔한 서사가 오히려 묘한 긴장감을 만든다.


괴테, 니체, 보르헤스, 말라르메 등 수많은 인문학적 인용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은 지식을 과시하기보다는 도이치를 옭아매는 텍스트의 감옥처럼 느껴진다.


특히 아내 아키코의 신앙적 시선, 딸 노리카의 젊은 감각은 도이치의 괴테 중심 세계관과 대비되며 이 소설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개념은 도이치가 말하는 두 가지 세계관이다.

잼적 세계관은 모든 것이 완전히 섞여 개별성이 사라진 상태를 뜻한다질서와 경계가 무너지고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 세계다

반면 샐러드적 세계관은 각 재료가 자기 모습을 유지한 채 조화를 이루는 상태다개별성과 전체가 동시에 살아 있는 세계다.


도이치가 집착하게 된 티백의 문장 속 ‘confuse(혼란스럽게 하다)’‘mix(섞다)’라는 단어는 이 두 세계관을 정확히 요약한다이 문장이야말로 자신의 이론을 상징한다고 느꼈기에 그는 미친 듯이 출처를 추적한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학문의 확실함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인식의 불안정함이다.


도이치의 동료인 시카리 노리후미 교수는 후반부에 인상적인 말을 남긴다.

학문이란 실패와 오류의 연속입니다. 실패와 오류야말로 다양성의 근간이지요.”

그는 일부러 실패를 선택하며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괴테 명언의 출처 찾기보다 더 강하게 남았다.


정확함만을 추구하는 학문 세계에서 실패를 긍정하는 태도는 오히려 이 소설의 핵심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

이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문장은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다.우리가 말할 수 있는 언어의 범위가 곧 우리가 이해하는 세계의 범위라는 생각이라는 말처럼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제목 역시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기보다, 인간은 어떤 언어로도 다 말할 수 없는 세계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우리가 믿는 지식, 인용, 명언, 체계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그리고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 세계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 형식을 빌려 언어와 인용, 학문과 신념, 그리고 인간 인식의 한계를 조용히 묻는다.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말은 결국 우리는 언제나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로 바뀌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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