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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서른에는 노자를 만나라 - 시인 장석주가 전하는 1만 년을 써도 좋은 지혜
장석주 지음 / 예담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수능을 마치고 뭔가 고상한 책을 보고 싶은 마음에 며칠을 고민하다 『도덕경』을 택한 적이 있다. 부끄럽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을 읽고 고민하는 것이 고상해 보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그때도 『도덕경』의 오의도 내용도 모른다고 하는 쪽이 맞지만 그래도 『도덕경』을 선택한 것이 가끔은 기특해질 때도 있다. 장석주 시인도 사십대가 되어서야 『노자』와 『장자』를 곁에 두고 읽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멀리 유학을 가있는 아들에게 나날의 일들과 감회,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과 보람, 자연의 변화,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마음의 무늬 그라고 사람 사는 도리에 대해 속내 드러낸 얘기를 나누고자 『노자』의 구절을 빌려 이 글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p. 12)
책의 표지에는 ‘시인의 눈으로 들여다보고 아비의 마음으로 풀어낸 『노자』’라는 문구가 있다. 다방면의 독서가이자 당대의 해석자임이 틀림없는 장석주 시인이기에 시인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그보다는 글의 구석구석 아들을 향한 마음이 더 느껴져 아비의 마음으로 풀어냈다는 쪽이 더 책과 가까워 보였다.
먼저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았고, 도서관에서 긴 사유의 시간을 보내고, 책을 읽고, 책을 엮고, 책을 만든 그가 십여 년 전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살아가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오롯이 아들에게 일려주고 있다. 노자의 지혜를 풀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아들이 읽었으면 좋을 책들을 권하고, 묵상, 단식 심지어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빈둥거리기도 권하면서 참된 행복을 찾으라고 말한다.
근 일 년 동안 아들에게 쓴 메일을 정리한 것이기에 글 속에서 묻어나는 세월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예전에 읽은『도덕경』도 그러했듯이 어렵고 말이 안 되는 듯 되는 그런 글들을 먼저 고민을 해보고 인생을 살아본 선생님과 아버지처럼 일러주는 가르침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장석주 시인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그렇듯 자식에게 좋은 것을 하나 더 알려주려고 하는 그런 따스함도 함께 말이다.
이『아들아, 서른에는 노자를 만나라』를 읽었다고 해서 노자를 온전히 만났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책의 말미에 『노자』의 전문이 실려 있기는 하지만, ‘물 흐르듯 살라’, ‘잘 굴러가면 바퀴 자국이 남지 않는다’라는 제목에서 말해주 듯 『노자』의 주요구절과 그에 맞는 개인적인 체험 및 지혜를 일러주는 형식이다. 노자를 만나기 위한 워밍업은 충분히 될 것이다. 게다가 세상의 다른 지혜도 덤(?)으로 알려주고 있느니 다른 독서를 불러일으키는 소위 키북(key book)이 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언젠가 다산 정약용선생이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은 적이 있다. 아들에게 당부하는 글로 빼곡히 적힌 그 서찰에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마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는데, 당대의 대학자도 유배지에서 자식의 공부를 걱정할 만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비의 심정은 동일해보였다. 그런 상황과는 조금 다르지만 멀리 떨어진 아들을 그리며 쓴 글이기에 아직은 아들로만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는 더 따뜻하게 다가오는 글이었다.
힘들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아들, 딸들이 아비의 심정으로 일러두는 저자의 글에서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인생은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하나의 해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개의 길이 있을 것이다. 그 길이 어떤 길이든 타고난 너 자신, 즉 너의 본성과 직관이 가리키는 길을 따르도록 해라. 아울러 항상 존재의 기쁨과 살아 있다는 기쁨을 오롯이 받아들이도록 해야. 몸과 마음을 소박하고 고요한 데 두되, 작은 기쁨들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마라. (p.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