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생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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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는 박생강 작가가 3년만에 펴낸 신작이다. 박생강이 누군가 싶을텐데, 그는 박진규라는 본명으로 2005년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2014년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라는 작품을 펴내면서 '박생강'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왜 박생강인가?" 라는 질문에, "생강이 몸에 좋다는 어떤  건강 서적의 메시지에 충동적으로 선택했다"는 싱거운 대답을 했다. 한편으로는 성자(Saint)와 악당(Gang)(합치면 생강...)의 합성어 같은 심오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를 은근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생강 작가는 본인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본 소설을 집필했다. 제목에서 본 소설의 배경이 사우나임을 유추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우나는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일반적인 사우나는 아니다. 상위 1%의 재력 혹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용하는 회원제 프리미엄 사우나를 말한다. 작가는 실제로 회원제 프리미엄 사우나에서 근무를 했었다. 여기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작가는 2005년에 등단하여 2015년까지 약 10년간 글을 써왔다. 그는 10년간 글을 썼으니 잠시 쉬자는 생각을 했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던 차에 회원제 프리미엄 사우나의 구인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점집에서 들었던 '당신한텐 화(火)가 많으니 물이 많이 필요하다'는 말도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약 1년간 사우나에서 일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본 책을 펴냈다.   

 제목만 보면 마치 정치풍자극처럼 느껴지겠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다. 정치풍자극보단 그냥 시트콤에 가깝다. 작가 본인이라고 봐도 무방한 주인공 손태권이 회원제 프리미엄 사우나에서 알바로 일하면서 겪는 여러 일들이 한 편의 시트콤처럼 펼쳐진다. 사우나의 이름은 '헬라홀'이다. 헬라홀의 주 고객층은 현역에서 은퇴한 상위 1%의 노인들이다. 한 편의 시트콤안에 여러 등장인물이 있듯이 본 소설 안에도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온다. 피부병을 앓고 있어 모두가 피하는 90대 노인 '보르헤스', 운전기사임에도 마치 회장님처럼 주인공에게 갑질을 하는 '오너',  상위 0.1%에게 겪는 스트레스를 주인공에게 푸는 상위 1% 경매소운영자 '일꼬' 등 여러 등장인물이 나온다. 사우나 알바생 손태권에 의해 벌거벗은 그들의 속사정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앞에서 적어놓았듯 본 소설은 정치풍자극은 아니다(세태풍자극은 될 지도?). JTBC에 대한 언급은 딱 한 차례 등장한다. 작가는 본 소설을 회원제 프리미엄 사우나에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일을 고백하는 풍자형식으로 썼다고 한다. 본래 '노동자의 고통을 진지하게 다룬 묵직한 리얼리즘 소설' 혹은 '상류층의 실생활과 속내를 다룬 미드스타일 스릴러' 둘 중 하나로 가려했으나 둘 다 역부족이라 풍자극으로 방향을 선회했다고 한다. 읽고나니, 역부족이더라도 앞의 두 방향 중 하나로 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뭐랄까, 소설이 참 애매하다. 제목만 보면 엄청 웃길 것 같은데 딱히 웃기지도 않고, '벌거벗은 상위 1퍼센트의  속사정'이라는 게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다. "상위 1퍼센트만 모인 공간 안에서도 위계와 위선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병(丙)의 삶은 고되다...그러나 상위 1%들도 사람이며 그들의 삶도 공허하긴 마찬가지"라는 것 정도가 이 책에서 발견한 메시지이다. 1%만을 위한 사우나의 속사정을 우리가 알 턱이 없기에 신선할 듯 했으나, 막상 알아보니 별 것 없었다. 이 소설에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할 정도의 깊이가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다...

 오늘 올리브영을 다녀오며 이 책을 떠올렸다. 나같은 별볼일 없는 사람들에게도 과잉친절을 베푸는 올리브영의 직원들의 모습이 헬라홀의 손태권과 닮아있었다. 법적으로 계급은 사라졌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갑을병정이 있다. 갑끼리 모인 곳에도 혹은 정끼리 모은 곳에도 갑을병정은 다시금 생겨난다. 갑은 갑을 유지하기 위해 갑을병정을 다시 생산한다. 갑을 지키기 위한 혹은 갑이 되기 위한 만인의 투쟁 속에서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속 세상도 결국 현실이다. 어쩌다 보니 악평을 썼지만, 그렇게 나쁜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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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의 개들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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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을 싫어할 분들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할 분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것을 막아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위 구절은 소설 <신촌의 개들>에 대해 신형철 평론가가 쓴 추천사의 첫 문장이다. 지금 서평을 쓰는 내 심정이 딱 저렇다. 2월의 두번째 날, 신촌의 어느 북카페에서 <신촌의 개들>을 읽었다. 카페 구석에 홀로 앉아, 미동도 없이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소설은 내 마음에 쏙들었다. 간만에 책을 읽으며 웃었고, 슬퍼했다. 통쾌했다가도 씁쓸했다. 한마디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 카타르시스를 다른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혹시라도 이 책을 놓칠 독자들을 위해, 이 소설의 어떤 점이 나를 이토록 매료시켰는지 변변찮은 글솜씨로라도 적어본다. 

 작가 본인이라 여겨지는 소설 속 화자는 <신촌의 개들>이란 책을 펴낸 중년의 소설가이다. 그는 막출간된 자신의 책 <신촌의 개들>을 들고, 신촌으로 간다. 신촌에는 그의 청춘을 불태운 공간 카페 '개들'이 있다. 화자는 '개들'로 가며 회상에 잠긴다. 대학생(연대생으로 추정) 시절 그는 권위적인 기성세대와 만연한 사회 부조리에 염증을 느낀 열혈 청춘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 그가 본 '대학교수'는 학생 개인의 개성을 죽이는 '청춘의 킬러'였다. 기득권에 취한 그들은 벽창호였으며, 무용한 지식을 떠드는 수다쟁이였다. '대학'은 정해진 공정에 따라 학생들을 가공하는, 자신들을 구기고 자르고 밟아 똑같은 틀에 끼워맞춰 똑같은 모양의 소시민으로 만들어버리는 공장이었다. 화자는 염증을 느꼈고, 그럴 때마다 신촌 구석탱이에 있는 카페 '개들'에 갔다. 
 카페 '개들'은 어떤 곳인가? '개들'은 억눌린 청춘의 해방구, 아니 청춘 그 자체였다. 그곳엔 어떤 규칙도, 권위도, 제약도 없었다. 화자를 비롯한 청춘들은 그곳에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고, 싸우고 뛰놀았다. 밤을 지새우며 동지들과 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성토하고, 토론했다. 청춘을 착취하며 삶을 연명하면서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기성세대를 욕하고 비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되지 말자며 다짐했다. 소설은 화자의 이러한 과거와 그와 대비되는 현재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화자가 중년이 된 현 시점, 추억에 젖어 찾아간 카페 '개들'은 누구도 찾지 않는 폐공간이 되었다. 그곳엔 더이상 청춘이 없다. 우리는 저런 어른이 되지 말자고 함께 다짐했던 작자들은, 그보다 더한 놈들이 되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화자는 황폐해진 카페 '개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청춘에도 사망선고를 내린다. 

 <신촌의 개들>은 독특한 형식의 장편소설이다. 일종의 모노드라마랄까? 화자의 독백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이어진다(단락 구분도 없다). 거대한 사건도 없다. 카페 '개들'을 중심으로 맺어진 사람들에 대한 화자의 회상, 그들의 변한 모습을 보며 느끼는 연민이 전부다. 그럼에도, 재미있다. 먼저 '열혈 청춘'이 어떻게 '기득권꼰대'로 변해가는지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다. "세상의 온갖 종류의 갑질을, 미성숙한 자들의 권력놀이"를 씹던 인물들이 "자신들이 이룩한 성과와 거룩한 희생에 경의를 표하기는 커녕 조금도 몰라보는 무례한 청춘"을 씹는 꼰대개저씨로 변해가는 모습. 변해가는 그들의 말. 그것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설의 또다른 재미는 화자의 날카로운 시선이다. 화자, 아니 작가는 열혈 청춘을 꼰대로 개조하는 사회 시스템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숨겨놓고, 자신들이 내리는 온갖 모욕과 치욕을 웃는 얼굴로 감내하는 자에게만 그것을 내주는 기득권의 모습. 살기 위해 기득권에 빌붙다 어느샌가 그들처럼 변해버리는 청춘의 모습. 그 씁쓸한 메커니즘을 작가는 정확하게 포착한다.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문장으로 보며 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는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러나 그것이 왜 문제인지 제대로된 언어로 구현하지 못했던 것을 제대로 표현해주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소설 말미 '박정희 시대'에 대해 사람들이 토론하는 장면이다. 누군가 말한다. "독재라고 다 나쁜 게 아니야! 좋은 독재도 있어!" 이에 대한 반박이 재미있다. "말도 안 돼! 독재는 어떤 경우에도 나쁜 거야! 그것은 착한 강간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아!" 착한 강간이 있을 수 없듯이 착한 독재도 있을 수 없다는 말. 나를 이 소설의 팬으로 만들어버렸다.  

  독특한 문체도 소설의 재미에 한 몫했다. 작가는 언어를 가지고 논다. 어느 한 문장도 평범하지 않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그는 신촌을 신촌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그에게 신촌은 '거대한 똥의 거리'이며, '날마다 모든 것들이 몰개성의 균질한 똥이 되어가고 있는 망각의 거리'이다. 이런 재기발랄한 표현들이 소설을 한층 풍부하게 한다. 

 


 두서없는 글이 너무 길었다. 

 

졸문을 마무리하기전 잠시 쉬려 집어든 스마트폰 화면에 독특한 기사가 걸려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348970)

조선일보 김홍수 경제부장의 칼럼이다. 제목은 '걱정되는 워라벨 신드롬'이다. 대충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김홍수 경제부장은 7년만에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스페인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자신처럼 여행온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을 보았다. 그는 그 모습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한창 일해야할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흥청망청 놀고있는 모습이 너무도 아니꼬운 것이다. 그는 "우리가 이렇게 흥청망청해도 되는 걸까?"라며 걱정하고, "우리 선배 세대는 물려받은 자산 하나 없이 맨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다. 이런 선배 세대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면 '여가'와 '일' 간의 밸런스 문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며 훈계한다. 정부에서 워라밸이니 뭐니 떠들어대서 그런거라며 문재인을 까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참으로 신기하다. 소설 속 인물에서 현실에서 마주하다니. 이사람이야 말로 작가가 그토록 깍까고 있는 기득권꼰대의 전형이 아닌가?!  이 놈한테 어떻게 따져야할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어느 네티즌이 댓글로 내 말을 대신해주었다. 그 댓글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기자님 자식들 일 안하고 여행갔다가 걸리면 저한테 뒤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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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곰사람 프로젝트 - 더 이상 글쓰기가 두렵지 않다!
최진우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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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은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 이 일화의 교훈은 "쑥과 마늘을 많이 먹어라, 그래야 사람된다"가 아니다. 무언가를 이루려면 '100일' 정도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무엇이든 100일동안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정진한다면, 어느 정도의 경지에는 도달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100일, 딱 100일만 하루도 빼먹지 않고 글을 쓴다면, 글쓰기가 조금은 편해질 수 있다"라고 이 책은 말한다.  본 책은 독서공동체 숭례문학당에서 진행했던 '100일 글쓰기 곰사람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0일 글쓰기 곰사람 프로젝트'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모여 100일동안 쉬지않고 글을 쓴다. 글은 종이에 쓸 수도 있고 나처럼 블로그에 쓸 수도 있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구성원끼리 간간히 모여 서로에게 피드백과 용기를 준다. 그렇게 100일간 쉬지 않고 글을 쓴다. 100일동안 포기하지 않고 매일 글을 쓴 사람은 결국 '곰사람'이 된다. '곰사람'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글쓰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 첫 문장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기에 '곰사람'이 되면 어느정도 능숙하게 한 편의 글을 자아낼 수 있다.

<100일 글쓰기 곰사람 프로젝트>는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그보단 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사람들이 100일 간의 장기 레이스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담고 있다. 독자들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일종의 동기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포기하고싶을 때가 왔을 때 그 역경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그 비법을 얻을 수 있다. 나 역시 이 책에서 글쓰기에 대한 동기를 얻었다. 그래서 나도 참여중이다. 이렇게. 오늘이 그 첫번째 날이다. 오늘부터 100일간 글을 써보려 한다. 나 자신에게 화이팅을 보낸다! 화이팅!

ps.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진 않는다. 그보단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는 방법을 말해준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은 이 책 말고 작문법을 다룬 책을 사보길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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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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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연말 연시면 많은 사람들이 건배사로 고민한다. 상사와 함께하는 회식자리에서 센스있는 건배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어떤 건배사를 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작년말 경향신문에 재미있는 기사 한 편이 올라왔다. "술맛 확 떨어지는 '이런 건배사'"라는 제목의 이 글은, 연말 회식 때 사용하지 말아야 할 건배사를 알려주고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 성기발기 : (성)공 (기)원, (발)전 (기)원
- 거시기 : (거)절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기)쁘기 먹자
- 오바마 : (오)빠만 (바)라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봐

 이렇게 저속한 건배사를 하는 데가 실제로 있을까? 싶겠지만, 모두 실화다. 예시로 든 건배사의 공통점은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천박한 성적표현에 있다. 거기에 '거시기'는 주는 술 마다하지 말라는 꼰데식 사고방식까지 더해졌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런 건배사를 하는 직장의 평소 모습은 어떨지 안봐도 비디오다. 그들은 왜 저런 건배사를 할 수 밖에 없었을까? 단언컨대 만약 그들이  지금 소개할 이 두 권의 책을 읽었다면 그들의 건배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1. 제목에서 소개한 '말'에 관한 두 권의 책은, 그 유명한 <말의 품격>과 <언어의 온도>이다. 2017년을 강타한 두 권의 책을 이제야 읽어보았다. 2017년을 강타했다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난 2016년 8월에 출간된 <언어의 온도>는 2017년 1월 25일부터 현재까지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베스트셀러 10위권을 벗어나지 않았다. <말의 품격>은 지난 5월 출판되자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라 현재까지 약 35주간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이 두 책에 열광한 것일까?

2. <말의 품격>과 <언어의 온도>는 다른 책이지만, 서로 제목을 바꿔도 티가 안날정도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언어의 온도>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고, <말의 품격>에는 선대의 격언, 명언이 많이 인용된다는 점 정도이다. 어쨌건 두 책 모두 '말'을 주제로 하고 있다.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내가 생각한 두 책의 핵심은 이것이다. 첫째, 말하기 보단 듣자. 둘째, 침묵할 줄도 알자. 셋째, 필요없는 말은 하지 말 것이며, 말을 굳이 해야될 때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담아서 하자. 넷째, 같은 내용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표현에 주의하자.  뭐, 이정도가 되겠다.   
 사실 이 책에 대단한 진리나 비법이 담겨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이렇게나 많이 필린 데에는 작가 '이기주'의 진심이 담긴 글쓰기 덕이리라. 그의 글에는(특히 언어의 온도에는) 진심이 있다. 세상과 사람과 삶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이 있다. 글 곳곳에 담겨있는 그만의 따스한 사유는 별다른 내용이 아님에도 독자를 감동시킨다.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고 지나갈 법한 아주 자그마한 요소에서 그는 감동을 창조해낸다. 더욱이 필력도 좋아 글이 술술 읽힌다(참고로 이기주는 경제부 기자 출신이다). 글이 어찌나 좋은지 한 2년만에 처음으로  책을 읽다가 사진을 찍었을 정도이다. 


 3.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을 읽으며 많은 반성을 했다. 나의 언어생활은 어떠했는가,,, 가까운 사람, 가족들에게 모질었다. 가족들과 말을 거의 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대화가 '아! ~ 잖아!"로 끝난다. 예컨대 이런거다. "아! 그거 건들지 말랬잖아!", "아! 아래 버튼 누르면 되는 거잖아!", "아! 누나가 하면 되잖아!" 등등.... 생각해보니 나는 가족들에게 사랑의 언어는 커녕, 짜증의 언어를 주로 썼다. 그러면서 직장에서는 한없이 자상하고 인품이 넘치는 사람인 척 살았다. 아니다. 직장에서도 남들과 함께 타인의 험담을 하거나 내 힘듦을 하소연하는 데 많은 말을 썼다. 난 안될 놈이다. 그래서인지 이 두 책이 내게 퍽 와닿았다. 

4.  '책이란 모름지기'라는 시가 있다. 이현주 시인의 이 시는 책을 눈으로만 읽지 말고 손발로 읽으라고 말한다. 다시말해 단지 책을 읽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무엇을 했는가가 더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완성은 독자의 실천이 아닐까 싶다.  
 다시 "건배사"로 돌아가보자.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을 읽었으니 이제 우린 멋들어진 건배사를 할 수 있다.  어떤 건배사가 좋을까? 얼마전 '아는 형님'이란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건배사가 떠오른다. 바로 '당나귀'이다. 당나귀는 '당신은 나의 귀한 사람'이란 의미다. 얼마나 품위있는 건배사인가! 건배사처럼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자. 하나씩 하나씩 우리의 오염된 언어를 바꿔나가보자. 그러다보면 언젠가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변할지도 모를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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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과 광기의 일기
백민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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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들어 백민석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작년말 <공포의 세기>부터 시작해서, <수림>, <목화밭 엽기전>, 그리고 최근작 <교양과 광기의 일기> 까지. 특별히 내 입맛에 맞는 것도 아닌데 묘하게 손이 간다. 그의 소설은 우울하고, 기괴하고, 뒤틀려있다. 등장인물들 중 '정상'은 단 한사람도 없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 '중심'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거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거나, 비정상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교양과 광기의 일기>에서도 그러한 경향은 이어진다.

 <교양과 광기의 일기>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다소 특이한 형식의 소설이다. 작가 본인으로 추청되는 한 남성이 남미의 쿠바를 여행하며 일기를 쓴다. 그는 교양인이다. 여행지에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사색하며, 강의 원고(쿠바 한인을 대상으로 할 강의)를 준비한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그의 또다른 자아가 깨어난다. 마치 지킬앤하이드처럼 말이다. 그의 닉네임은 '광기'이다. 그는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전쟁놀이와 광란의 섹스를 좋아하는 10대 소년”이다. '광기'는 교양인의 일기 바로 뒷면에 일기를 쓴다.  그는 냉소적이고, 잔혹하며, 행동에 거리낌이 없다. 머리보단 몸이 먼저 움직이는 그에 의해 소설의 주된 사건들이 전개된다. '광기'의 행동반경은 점점 넓어지고, 소설은 뒤로 갈 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긴장으로 가득찬다.

 약 3개월간 이어지는 '교양과 광기의 일기' 속에서 독자가 발견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는 '중심'이다. 교양(작가로 추정되는)은 쿠바에서 '중심'에 대해 주로 사색한다. 현대사회에는 '중심'이 존재한다. 그 중심은 '자본(주의), 미국, 백인, 남성' 이다. '비자본, 사회주의(공산주의), 제3세계, 유색인종(이 단어 자체가 백인이 중심임을 보여준다), 여성, 장애인' 등은 중심을 벗어난 존재들이다. 교양과 광기의 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중심에서 벗어나있다. 일단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 자체가 중심을 벗어난 곳이다. 그리고 '광기'가 지속적으로 만나는 여성 '다나이나' 역시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으며,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그를 버린 것은 '중심'에 속한 백인 남성이다. 작가는 '쿠바'라는 공간, '다나이나'와 '광기'라는 캐릭터를 통해 '중심' 그 자체 혹은 '중심을 상정하는 것'의 폭력성을 말한다. '중심'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비중심'이 생겨난다. '비중심'은 곧 '비정상'이다. 현대사회에서 '비정상'은 억압되고, 무시되며, 온갖 폭력과 가난, 고통에 노출된다(그래야 중심이 중심으로 기능하므로). 다시말해 '미국, 백인, 남성'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일 수록 삶은 버거워진다. 작가가 여행한 쿠바와 그곳에서 만난 창녀는 억압받는 비중심의 표상이다. 

 세상은 '중심'이 지휘하고, 그들만 주목을 받지만, 중심을 벗어난 곳에도 삶은 존재한다. 백민석은 늘 '중심'이 아닌 존재의 삶에 대해서 조명한다. <교양과 광기의 일기>는 중심을 벗어난 자들의 아우성이다.

 사실 이 소설의 리뷰를 쓰지 않으려 했다. 백민석의 소설은 여전히 어려웠고, 서평을 쓰기가 참 난감하다. 그럼에도 서평을 쓴 것은 아직 아무도 이 책의 리뷰를 쓰지 않았기 때문...(네이버 책 기준) 못난 서평으로라도 내가 1등을 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튼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매우 진지한 책이지만, 이야기의 호흡이 짧아 페이지가 휙휙 넘어간다. 또한 마치 쿠바를 여행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 교양인이 쿠바의 골목과 역사와 쿠바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세세하게 묘사를 해주기 때문이다. 쿠바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걱정마시라.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당히 소프트하니 말이다......참고로 소설가 백민석은 한 때 절필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다시 펜을 잡은 것은 결국 하고픈 이야기가, 곧 죽어도 해야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돌아온 사람에겐 어떤 비장함과 결의가 있을 게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그의 책을 계속 읽게 될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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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1-20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의 끝! 이 명랑해서 ~^^ 웃었어요. 잘 읽고 갑니다. ^^

맨얼굴 2018-01-21 21:5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그장소] 2018-01-21 22:28   좋아요 0 | URL
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