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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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다를 수 있지만, 상황은 정확히 얘기를 해야죠, 상황은. 욕을 먹더라도."
- 故 김관홍 잠수사의 말

<거짓말이다>는 세월호 사건 당시 투입되었던 민간잠수사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소설이다. 주로 장르물을 써왔던 김탁환 작가가 집필하였다. 김탁환 작가에게 세월호 사건은 굉장한 충격으로 남은 듯 하다. 그는 사건 이후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사회성 짙은 작품만 무려 네 편을 집필했다. 장편소설 <목격자들>(2015), <거짓말이다>(2016)와  단편집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2017), 에세이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2017)가 이에 해당한다. 이 중 <거짓말이다>와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는 지금까지 어느 작가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민간잠수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故 김관홍 잠수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거짓말이다>는 장편소설이지만,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소설보단 인터뷰에 기반한 르포르타주에 가깝다. 가명을 썼지만, 소설 속 모든 등장인물들은 어느 특정 인물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김탁환 작가는 세월호 사건 이후 팟캐스트에서 <416의 목소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2017년 4월에 종영). <416의 목소리>는 세월호 사건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고자 기획되었던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민간잠수사인 故 김관홍씨가 나왔다. 그는 장장 4시간 동안 민간잠수사로서 세월호안에서 작업을 하며 경험한 것(온갖 거짓말들과 부조리)들을 이야기 했는데, 김탁환 작가는 그의 증언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소설은 나경수 잠수사의 탄원서로 시작된다. 그의 탄원서는 업무상과실치사죄로 불구속 기소된 류창대 잠수사를 위한 것이다. 민간잠수사인 류창대 잠수사는 나경수 잠수사를 비롯한 약 20명에 달하는 동료들과 함께 세월호 사건 현장에서 약 3개월간 시신 수습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민간잠수사였던 동료 한 명이 죽었는데, 검찰은 민간잠수사 중 실질적 리더 역할을 했던 류창대 잠수사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나경수 잠수사는 류창대 잠수사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탄원서를 썼다. 그리고 그 내용에는 고통과 좌절, 눈물로 점철된 약 3개월간의 이야기가, 마치 지옥같았던 현장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처럼 <거짓말이다>는 상당히 무거운 공기로 뒤덮혀있다. 결코 쉽게 읽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나는 소설을 제법 빨리 읽는 편이지만, 이 소설을 읽는데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분노, 슬픔, 우울 등 온갖 감정이 뒤엉켜 만들어진 무언가가 가슴 아래쪽에서 붇받쳤기 때문이다. 힘겹게, 힘겹게 읽었다. 나는 나름 세월호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고, 잊지 않고자 노력해왔다. 하지만 민간잠수사의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민간잠수사들은 너무나도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일했다. 제대로된 장비도, 휴게공간도, 식사도 없었고, 인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험한 맹골수도에서 하루에 네 다섯번은 바다에 들어가야 했다. 물론 의료지원 따위는 없었다. 바다 속은 어떠했는가. 시야는 20~40cm에 불과했다. 선내에는 온갖 부유물들이 떠돌아 다녔다. 그것들은 민간잠수사와 연결된 생명줄을 꼬이게 만들거나, 그들을 다치게 만들었다. 이런 환경속에서 민간잠수사들은 시신과 마주했다. 그리고 민간잠수사가 시신을 수면 위로 끌어오는 방법은 단 한가지였다. 바로 포옹이다. 어두컴컴한 바다 속에서 희생자를 안고 뭍으로 올라오는 민간잠수사의 심경은 어땠을까? 민간잠수사들은 이같은 환경 속에서도 약 3개월간 시신을 수습했다. 그러나 국가는 문자 한 통으로 그들을 돌려보냈다. 대부분의 민간잠수사가 잠수병에 걸려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음에도 치료지원은 얼마 되지 않아 끊겼다. 더욱이 검찰은 민간잠수사 사망사고의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겼다. 사건이후 민간잠수사를 영웅시했던 여론은 반전되었다. 민간잠수사들은 한탕하러 간 돈벌레들로 매도되었다. 고 김관홍 잠수사는 이런 부당한 상황속에서 목소리를 내었으나, 그는 곧 좌빨로 손가락질 받았다. 이는 소설 속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실제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인공 나경수 잠수사의 실제 모델은 故 김관홍 잠수사이다. 그는 소설이 출간되기 약 한 달 전인 2016년 6월 17일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얼마나 큰 괴로움을 느꼈을지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망가진 몸보다 그를 괴롭게 한 것은 세상에 떠도는 온갖 악의적 거짓말들과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의 태도였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의 죽음 이후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무너졌고, 사건을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방해했던 악인들은 대부분 처벌받았다. 세월호는 인양되어 전남목포신항만에 거치되어 있다. 허나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세월호 사건이 민간잠수사와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지 말이다. 자식들을 잃은 부모와 그 자식들을 구하러간 민간잠수사들의 구멍난 가슴을 한 번 더 후벼 판 것은, 사람들이 퍼뜨린 온갖 악의적 소문과 거짓말, 막말들이었다. 만약 사람들이 사건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그런 폭언을 할 수 있었을까?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는 막말을 퍼붓던 사람들에게 말한다. 모두 거짓말이라고, 제대로 알라고 말이다. 세월호 4주기를 얼마 안남긴 지금, 우리가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이유이다. 고 김관홍 잠수사의 명복을 빌며 글을 마친다.  

"저는 잠수사이기 전에 국민입니다. 국민이기 때문에 달려간거고, 제 직업이, 제가 가진 기술이, 그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것일 뿐이지, 애국자나 영웅은 아니에요."
- 故 김관홍 잠수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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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로키 2018-05-0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어요.
너무 답답하고 터트리고 싶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느끼는 감정을 글로 적기에는 제 글이 너무 미비하여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맨얼굴님의 글을 읽으니 사이다 마신 듯 합니다. 민간잠수사의 이야기..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네요.

맨얼굴 2018-05-10 20:59   좋아요 0 | URL
변변찮은 글에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거짓말이다>를 감명깊게 읽으셨다니, 이후에 나온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도 추천드립니다. <그래서 ~>에는 고 김관홍 잠수사의 삶과 <거짓말이다>의 집필과정이 담겨있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