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의 개들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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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을 싫어할 분들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할 분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것을 막아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위 구절은 소설 <신촌의 개들>에 대해 신형철 평론가가 쓴 추천사의 첫 문장이다. 지금 서평을 쓰는 내 심정이 딱 저렇다. 2월의 두번째 날, 신촌의 어느 북카페에서 <신촌의 개들>을 읽었다. 카페 구석에 홀로 앉아, 미동도 없이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소설은 내 마음에 쏙들었다. 간만에 책을 읽으며 웃었고, 슬퍼했다. 통쾌했다가도 씁쓸했다. 한마디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 카타르시스를 다른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혹시라도 이 책을 놓칠 독자들을 위해, 이 소설의 어떤 점이 나를 이토록 매료시켰는지 변변찮은 글솜씨로라도 적어본다. 

 작가 본인이라 여겨지는 소설 속 화자는 <신촌의 개들>이란 책을 펴낸 중년의 소설가이다. 그는 막출간된 자신의 책 <신촌의 개들>을 들고, 신촌으로 간다. 신촌에는 그의 청춘을 불태운 공간 카페 '개들'이 있다. 화자는 '개들'로 가며 회상에 잠긴다. 대학생(연대생으로 추정) 시절 그는 권위적인 기성세대와 만연한 사회 부조리에 염증을 느낀 열혈 청춘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 그가 본 '대학교수'는 학생 개인의 개성을 죽이는 '청춘의 킬러'였다. 기득권에 취한 그들은 벽창호였으며, 무용한 지식을 떠드는 수다쟁이였다. '대학'은 정해진 공정에 따라 학생들을 가공하는, 자신들을 구기고 자르고 밟아 똑같은 틀에 끼워맞춰 똑같은 모양의 소시민으로 만들어버리는 공장이었다. 화자는 염증을 느꼈고, 그럴 때마다 신촌 구석탱이에 있는 카페 '개들'에 갔다. 
 카페 '개들'은 어떤 곳인가? '개들'은 억눌린 청춘의 해방구, 아니 청춘 그 자체였다. 그곳엔 어떤 규칙도, 권위도, 제약도 없었다. 화자를 비롯한 청춘들은 그곳에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고, 싸우고 뛰놀았다. 밤을 지새우며 동지들과 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성토하고, 토론했다. 청춘을 착취하며 삶을 연명하면서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기성세대를 욕하고 비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되지 말자며 다짐했다. 소설은 화자의 이러한 과거와 그와 대비되는 현재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화자가 중년이 된 현 시점, 추억에 젖어 찾아간 카페 '개들'은 누구도 찾지 않는 폐공간이 되었다. 그곳엔 더이상 청춘이 없다. 우리는 저런 어른이 되지 말자고 함께 다짐했던 작자들은, 그보다 더한 놈들이 되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화자는 황폐해진 카페 '개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청춘에도 사망선고를 내린다. 

 <신촌의 개들>은 독특한 형식의 장편소설이다. 일종의 모노드라마랄까? 화자의 독백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이어진다(단락 구분도 없다). 거대한 사건도 없다. 카페 '개들'을 중심으로 맺어진 사람들에 대한 화자의 회상, 그들의 변한 모습을 보며 느끼는 연민이 전부다. 그럼에도, 재미있다. 먼저 '열혈 청춘'이 어떻게 '기득권꼰대'로 변해가는지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다. "세상의 온갖 종류의 갑질을, 미성숙한 자들의 권력놀이"를 씹던 인물들이 "자신들이 이룩한 성과와 거룩한 희생에 경의를 표하기는 커녕 조금도 몰라보는 무례한 청춘"을 씹는 꼰대개저씨로 변해가는 모습. 변해가는 그들의 말. 그것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설의 또다른 재미는 화자의 날카로운 시선이다. 화자, 아니 작가는 열혈 청춘을 꼰대로 개조하는 사회 시스템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숨겨놓고, 자신들이 내리는 온갖 모욕과 치욕을 웃는 얼굴로 감내하는 자에게만 그것을 내주는 기득권의 모습. 살기 위해 기득권에 빌붙다 어느샌가 그들처럼 변해버리는 청춘의 모습. 그 씁쓸한 메커니즘을 작가는 정확하게 포착한다.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문장으로 보며 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는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러나 그것이 왜 문제인지 제대로된 언어로 구현하지 못했던 것을 제대로 표현해주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소설 말미 '박정희 시대'에 대해 사람들이 토론하는 장면이다. 누군가 말한다. "독재라고 다 나쁜 게 아니야! 좋은 독재도 있어!" 이에 대한 반박이 재미있다. "말도 안 돼! 독재는 어떤 경우에도 나쁜 거야! 그것은 착한 강간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아!" 착한 강간이 있을 수 없듯이 착한 독재도 있을 수 없다는 말. 나를 이 소설의 팬으로 만들어버렸다.  

  독특한 문체도 소설의 재미에 한 몫했다. 작가는 언어를 가지고 논다. 어느 한 문장도 평범하지 않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그는 신촌을 신촌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그에게 신촌은 '거대한 똥의 거리'이며, '날마다 모든 것들이 몰개성의 균질한 똥이 되어가고 있는 망각의 거리'이다. 이런 재기발랄한 표현들이 소설을 한층 풍부하게 한다. 

 


 두서없는 글이 너무 길었다. 

 

졸문을 마무리하기전 잠시 쉬려 집어든 스마트폰 화면에 독특한 기사가 걸려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3348970)

조선일보 김홍수 경제부장의 칼럼이다. 제목은 '걱정되는 워라벨 신드롬'이다. 대충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김홍수 경제부장은 7년만에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스페인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자신처럼 여행온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을 보았다. 그는 그 모습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한창 일해야할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흥청망청 놀고있는 모습이 너무도 아니꼬운 것이다. 그는 "우리가 이렇게 흥청망청해도 되는 걸까?"라며 걱정하고, "우리 선배 세대는 물려받은 자산 하나 없이 맨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다. 이런 선배 세대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면 '여가'와 '일' 간의 밸런스 문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며 훈계한다. 정부에서 워라밸이니 뭐니 떠들어대서 그런거라며 문재인을 까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참으로 신기하다. 소설 속 인물에서 현실에서 마주하다니. 이사람이야 말로 작가가 그토록 깍까고 있는 기득권꼰대의 전형이 아닌가?!  이 놈한테 어떻게 따져야할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어느 네티즌이 댓글로 내 말을 대신해주었다. 그 댓글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기자님 자식들 일 안하고 여행갔다가 걸리면 저한테 뒤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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