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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과 광기의 일기
백민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12월
평점 :
요즘들어 백민석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작년말 <공포의 세기>부터 시작해서, <수림>, <목화밭 엽기전>, 그리고 최근작 <교양과 광기의 일기> 까지. 특별히 내 입맛에 맞는 것도 아닌데 묘하게 손이 간다. 그의 소설은 우울하고, 기괴하고, 뒤틀려있다. 등장인물들 중 '정상'은 단 한사람도 없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 '중심'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거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거나, 비정상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교양과 광기의 일기>에서도 그러한 경향은 이어진다.
<교양과 광기의 일기>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다소 특이한 형식의 소설이다. 작가 본인으로 추청되는 한 남성이 남미의 쿠바를 여행하며 일기를 쓴다. 그는 교양인이다. 여행지에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사색하며, 강의 원고(쿠바 한인을 대상으로 할 강의)를 준비한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그의 또다른 자아가 깨어난다. 마치 지킬앤하이드처럼 말이다. 그의 닉네임은 '광기'이다. 그는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전쟁놀이와 광란의 섹스를 좋아하는 10대 소년”이다. '광기'는 교양인의 일기 바로 뒷면에 일기를 쓴다. 그는 냉소적이고, 잔혹하며, 행동에 거리낌이 없다. 머리보단 몸이 먼저 움직이는 그에 의해 소설의 주된 사건들이 전개된다. '광기'의 행동반경은 점점 넓어지고, 소설은 뒤로 갈 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긴장으로 가득찬다.
약 3개월간 이어지는 '교양과 광기의 일기' 속에서 독자가 발견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는 '중심'이다. 교양(작가로 추정되는)은 쿠바에서 '중심'에 대해 주로 사색한다. 현대사회에는 '중심'이 존재한다. 그 중심은 '자본(주의), 미국, 백인, 남성' 이다. '비자본, 사회주의(공산주의), 제3세계, 유색인종(이 단어 자체가 백인이 중심임을 보여준다), 여성, 장애인' 등은 중심을 벗어난 존재들이다. 교양과 광기의 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중심에서 벗어나있다. 일단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 자체가 중심을 벗어난 곳이다. 그리고 '광기'가 지속적으로 만나는 여성 '다나이나' 역시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으며,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그를 버린 것은 '중심'에 속한 백인 남성이다. 작가는 '쿠바'라는 공간, '다나이나'와 '광기'라는 캐릭터를 통해 '중심' 그 자체 혹은 '중심을 상정하는 것'의 폭력성을 말한다. '중심'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비중심'이 생겨난다. '비중심'은 곧 '비정상'이다. 현대사회에서 '비정상'은 억압되고, 무시되며, 온갖 폭력과 가난, 고통에 노출된다(그래야 중심이 중심으로 기능하므로). 다시말해 '미국, 백인, 남성'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일 수록 삶은 버거워진다. 작가가 여행한 쿠바와 그곳에서 만난 창녀는 억압받는 비중심의 표상이다.
세상은 '중심'이 지휘하고, 그들만 주목을 받지만, 중심을 벗어난 곳에도 삶은 존재한다. 백민석은 늘 '중심'이 아닌 존재의 삶에 대해서 조명한다. <교양과 광기의 일기>는 중심을 벗어난 자들의 아우성이다.
사실 이 소설의 리뷰를 쓰지 않으려 했다. 백민석의 소설은 여전히 어려웠고, 서평을 쓰기가 참 난감하다. 그럼에도 서평을 쓴 것은 아직 아무도 이 책의 리뷰를 쓰지 않았기 때문...(네이버 책 기준) 못난 서평으로라도 내가 1등을 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튼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매우 진지한 책이지만, 이야기의 호흡이 짧아 페이지가 휙휙 넘어간다. 또한 마치 쿠바를 여행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 교양인이 쿠바의 골목과 역사와 쿠바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세세하게 묘사를 해주기 때문이다. 쿠바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걱정마시라.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당히 소프트하니 말이다......참고로 소설가 백민석은 한 때 절필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다시 펜을 잡은 것은 결국 하고픈 이야기가, 곧 죽어도 해야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돌아온 사람에겐 어떤 비장함과 결의가 있을 게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그의 책을 계속 읽게 될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