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우리는 경제 사안을 다루지만,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 존재인지 그리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더 큰 개념이 언제나 우리 작업의 지침이 되게 하려고 노력했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후생을 소득이나 물질적인 소비로만 협소하게 정의하곤 하지만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서는 것들이 필요하다.공동체의 인정과 존중,가족과 친구들 사이의 편안함,압박 없는 가벼운 마음, 존엄과 자존감,즐거움 등이 모두 중요하다.소득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단순히 편리한 지름길이 아니다.그것은 경제학자들을(때로는 매우 영민한 경제학자들마저)잘못된 경로로 이끌고, 정책 결정자들을 잘못된 결정으로 이끌며,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그릇된 강박으로 이끄는 왜곡된 렌즈다.이 렌즈는 많은 사람들이 '온갖 곳의 가난한 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좋은 일자리를 빼앗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믿으며 두려워하게 만든다. 이 렌즈는 서구의 정책 결정자들이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되불러 오는 것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리게 만든다. 이 렌즈는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깊이 불신하고 경멸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도 그런 처지라는 것을 깨닫고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이 렌즈는 경제의 성장과 지구의 생존 사이에 절대로 해결 불가능한 상충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더 나은 대화를 할 수 있으려면,존엄과 유대를 향한 인간의 깊은 려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방해물이나 곁가지가 아니라 건널 수 없을 것만 같은 간극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더 나은 길로 여겨야 한다.인간의 존엄을 다시 중심에 놓는다면 우리는 경제의 우선 순위와 사회가 구성원들을(특히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할 때)돌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다. -1장 MEGA,p.28-29.

 

보편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그러나 본인이 가난하지는 않은 많은 사람들이 보편기본소득을 새로운 경제구조에서 비생산적인 인력이 되어 일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될 사람들의 문제를 직접 돈을 지급함으로써 완화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보편기본소득이 있다면 그들이 굳이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고 무언가 다른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하지만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실증 근거로 볼 때 이것은 매우 있을 법하지 않은 일로 보인다.우리는 설문 조사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연간 1만 3,000달러의 보편기본소득이 조건없이 주어지면 당신은 일을,혹은 구직을 그만두시겠습니까?"이에 대해 응답자의 87퍼센트가 아니라고 답했다.이 책에서 살펴본 모든 실증 증거는, 사람들은 대개 일을 하고 싶어 하며, 그 이유는 돈이 필요해서만이 아니라 일이 목적의식,소속감,존엄성을 느끼게 해 주는 원천이기 때문임을 말해 준다. -9장 돈과 존엄,p509.

 

오늘날 같은 변화와 불안의 시기에, 사회 정책의 목적은 충격이 닥쳤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폄하하게 되지 않으면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불행히도, 현재의 시스템은 그렇지 않다.p.545

 

*** 요즘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현대인이 경험해보지 못한 전염병의 시대가 주는 충격과 공포 그리고 불안과 혼란 속에서 길을 잃게될까 두렵다. 어려운 시절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치,경제,사회 등에서 정책결정자들이 많은 새로운 정책들을 시행해볼 기회의 시대이기도 하다.얼마 전 모든 국민들에게 지급되었던 재난지원금이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새로운 정책들의 승패 여부는 금방은 알아차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실패할 경우 그 데미지를 어떻게 극복하고 회복할  지에 대한 대안까지 마련하기엔 너무 급박한 상황들이 벌어지는 시대일 수도 있다. 이 어려운 시절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젊은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길에 인간의 존엄과존중,더 나은 삶이 키워드이니 희망적이다.물론 이들의 결론에 반대하고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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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형은 소장용으로 더 좋은 듯하다. 읽기는 조금 불편하다. 어렸을 때 이 책을 처음 읽게된 동기는 아마 강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양서 읽기를 강요(?)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린왕자를 읽을 때마다 어떤 조급함이나 부끄러움을 함께 느끼고는 했다.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뭔가 다 근사한 소감을 말하고 인상적인 구절을 인용할 줄 아는 것 같았다.게다가 더 나아가 뭔가 신비로운 삶의 지혜를 얻은 것처럼 살짝 달떠있고 좋아하는데,나는 몇 번을 읽고 곱씹어보아도 잘 모를 것들이었다.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뭐라도 찾아내려 애를 썼지만 늘 허사였다.그래서 뭐든 찾아내려는 조급함과 부끄러움이 어린왕자에 묻어있게 되었다.덕분에 불편한 책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이제 그런 감정조차 희미해진 나이가 되어 판형이 재밌어서 어린왕자를 다시 또 보게 되었다. 왕자가 길을 떠나면서 만나는 다양한 직업군들의 사람들 중에 지리학자가 인상에 남았다. 아 나도 이제 찾은 것일까? 후훗.. (참 가소롭군)

어린왕자와 나누는 대화 중에 지리학자가 ,

"그러나 나는 탐험가가 아니다.나는 탐험가를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도시와 강과 산과 바다와 대양과 사막을 세러 다니는 것은 지리학자가 아니란다.지리학자는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어서 나돌아 다닐 수가 없어.지리학자는  자기 서재를 떠나지 않는단다.그러나 서재에서 탐험가를 맞이하지.그들에게 질문을 하고 그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거야.그러다가 그들 가운데 한 탐험가가 흥미로운 기억을 얘기하면 그 탐험가의 품행을 조사하게 되지."

"그건 왜요?"

"거짓말을 하는 탐험가는 지리책에 큰 난리를 일으키거든.또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탐험가도 마찬가지야."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이론과 실재에 대한 괴리, 저자와 저술의 관계 등에 대한 생각을 품어보게 되었다.

동화책은 꼭 교훈을 전제로 할 필요가 없는데, 어릴 때 늘 맹목적으로 교훈을 주입받아온 탓에 마음 편하게 즐거운 독서를 제대로 하지 못한 억울함도 있다. 무엇이든 탓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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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시간이 날 때면 동네 뒷산이나 공원 산책로를 가게 된다. 그래선지 주위 식물들에 관심이 많이 간다. 주변에 흔한 나무 중에서 늘 헷갈리고 실물을 보고도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데, 소나무와 잣나무 ,전나무 같은 침엽수가 그렇다.이럴때 필요한 건 나무도감이다. 이런 저런 나무 도감을 몇 권 보았는데 , 위 책이 좋은 참조도서 중 하나다.

 

소나무 

잎: 길이 5~15cm의 침형이며 2개씩 모여나고 모양이 살짝 뒤틀린다.

참고:

밑동에서 가지가 많이 분지해 수형이 반원형인 나무를 반송(f.multicaulis Uyeki),아주 곧게 자라는 나무를 금강 소나무(f.erecta Uyeki),가지가 아래쪽으로 처지는 나무를 처진소나무(f.pendula Mayr)라 부르기도 한다.이들은 소나무의 품종 또는 개체변이로서 넓게 보아 모두 동일종인 소나무로 통합 처리한다.

 

잣나무

잎:길이 6~12cm의 침형이며 5개씩 모여난다.표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은 백색 기공선이 있어 멀리서 보면 분녹색으로 보인다.

 

리기다소나무

수형:상록교목이며 높이 30m 정도까지 자란다.흔히 줄기에 부정아(epicomic buds,맹아)에서 자라난 짧은 가지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잎:길이 7~14cm의 침형이고 3개씩 모여나며 약간 뒤틀린다.

참고

잎이 3개씩 모여나며,줄기에서 짧은 가지가 나와 잎이 무성하게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토양이 척박한 곳에서도 생장이 양호하여 예전에는 전국의 산지에 조림했으나,최근에는 전염병인 가지마름병류에 걸려 고사하는 개체가 많이 늘고 있다.

 

스트로브잣나무

참고

잎이 5개이고 비교적 옆질이 부드러우며, 긴 원통형의 구조 구과가 아래로 처지는 것이 특징이다.성장이 빠르며,전국의 공원,고속도로변,아파트단지에 흔히 식재한다.

 

내가 주로 다니는 동네와 인근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나무들이 메타세콰이어, 소나무,스트로브잣나무,리기다소나무이다. 처음엔 잎이 모아나는 개수에 맞춰서 이송오잣이라고 외고 다녔는데, 여기에 불쑥 리기다소나무가 끼어 갑자기 소나무와 리기다소나무의 구분에 당황스러웠다. 이송오잣삼리가 되었다. 요즘은 하루하루 자연에서 만나는 생명들의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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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학생시절에 전공때문에 수없이 접하고, 작업들 때문에 곤경에 처했던 문학작품들이 이제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두 작가 이청준과 최윤이 남았다. 논문 주제였던 이청준의 시간의 문제와 학부시절 내내 끌어안고 살았던 최윤의 소외와 익명성 문제때문일 수 있다. 물론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고 있어서 각인된 듯한 기억들조차 희미해져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한국 현대 문학에서 반평생 동안이라도 유의미한 작가를 만나는 것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움켜쥐는 일과 같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책을 정리하다보니 닳고 닳은 낡고 빛바랜 책이 나왔다.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 책을 보다 상념에 젖어버렸다.  검색해보니 이 단편이 영역이 된 모양이다. 영역본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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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에서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보았다.10명의 아마추어 달리기 동호회원들이 전국 대학 중거리 달리기 대회에 출전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다. 한편으로는 뻔한 감동 스토리와 살짝 신파적 요소도 보여 중간 중간 몰입도가 떨어지기는 했으나, 작중 인물들이 던진 질문 '달리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흥미롭게 보았다. 그들만큼이나 추상적 개념(질문)에 대한 보편적이고 명확한 정의(답)를 찾고싶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다 보아도 답은 한 문장으로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다.그런데 무언가 정체 모를 감동으로 가슴이 계속 울렁 거렸다.

 

지인 한 사람이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는데, 사람들이 사주가 뭐냐는 질문을 자주 한다고 했다. 그 사람은 "사람이 죽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답을 한다고 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에 그 사람은 자기 사주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는 의미라 했다. 난 여전히 그 얘기에 알쏭달쏭해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다보니 쉼없이 묻는 '달리기란 무엇인가'에 극의 종반에 가서 달리기는 바로 그사람 자체라는 답(아마 그것도 완전한 답은 아니었을 것이다)을 찾는 것을 보고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총체로서의 답. 조각이나 부분이 아니라 모든 것이 모여야 내릴 수 있는 답. 두 에피소드는 그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아쉬운 마음에 책을 알아보니 두 권으로 번역출간되어 있었다. 반가웠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질문을 던지는 법을 알아야 답도 찾게될 것이니까.결국 질문 속에 답이 들어있다는 식상한 깨달음만 얻을 뿐이다.

 

그저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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