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공손추편()>에 나오는 수오지심 羞惡之心.

오늘 한 신간 소식을 보면서 딱 떠오른 말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가깝거나 멀거나 이 수오지심을 찾을 수 없는 철면피들이 너무나 많다. 개탄스러운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창조한 소설 세계의 가장 중요한 한 요소는 역사이다.내가 중세의 연대기를 읽고 또 읽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중세의 연대기를 읽으면서 나는 모름지기 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애초에는 작가의 머릿속에 없던 것, 가령 청빈을 둘러싼 논쟁,소형제회 수도사들에 대한 심문관의 적의(敵意)같은 것들도 소설 안으로 껴안아 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p.45

 

어쨌든 이야기가 주는 재미를 누리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많은 것을 배운다.독자는 세계에 관해서건 언어에 관해서건 책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세계와 언어의 차이는 갖가지 이야기의 형태에 따라 다르지만 그 바탕은 마찬가지이다.『피네간의 경야 (經夜)』의 이상적인 독자는 결국,얼 스탠리 가드너의 독자만큼이나 , 누리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양적으로는 같은 정도의 재미를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재미라는 개념은 역사적이다. 소설사(小說史)의 각 계절에는 각기 다른,재미를 누리는 방법과 누리게 하는 방법이 있다.그런데 현대 소설은,플롯이 주는 재미를 줄이고 다른 종류의 재미를 늘리려 했기때문에,결과적으로 재미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의 열렬한 숭배자로서 나는 늘, 어떻게 되었건 간에,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모름지기 그 풀롯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재미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p.90

 

*****

재밌는 소설을 만나면 몇날 몇일이 즐겁고 뿌듯해진다.요즘은 그런 소설을 거의 못 본 것 같다.나이탓이려니 ( 거의 대부분의 일에 이유없이 책임을 떠안게 되는 나이. 나이는 얼마나 억울하까만은 ) 해본다. 요즘 같은 날에 재미있는 소설책 하나 읽고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20-03-10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의 이름>은 요즘 같은 우울한 때에 몰입해서 읽기 딱 좋은 소설 같습니다.^^
최근에 이 작품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 덕분에 움베르토 에코의 창작 의도를 좀 더 깊이 살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hmJXKIqrqsE

독서중 2020-03-10 22:5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1070년 중반에 쓴 그의 유명한 '초월의 뜰에 관한 기록(楚然台記)'이 바로 이것의 예이다.그러한 뜰을 통하여 사람들은 모든 것 위에 설 수 있다는 그의 동생의 견해를 반박하면서,소식은 '사물들 안에서(物之內)' 노닐면서 그래서 사물들을 감상하고 동시에 '사물들 밖에서(物之外) 노닐면서 그 외물에 대한 욕망에 빠지는 것을 피하라고 제안하고 있다.자아와 사물들 사이에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그 자신의 가치를 파악하는데 사물들을 얼마나 소유했는가라는 측면에서 측정한다면 사람들은 만족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물들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동기를 갖기도 힘들다.만족할 수 없을 정도로 기준이 높은 사람과 사물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모두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그들은 단지 세상을 불안의 원천으로 보고서 그들의 삶은 외물에 대한 욕망에 빠지는 것을 피하려고 끊임없는 격정장으로 변하게 된다.그러나 외적인 사물들은 자아와 반드시 대립되는 것만은 아니다.p.633

 

자아와 사물을 동시에 의식할 정도로 넓은 시각에서 볼 때, 소유란 첫번째로 중요한 진짜는 아니라고 스스로 확인할 있다.그래서 사물들을 가지지 못할까 사물들을 잃지 않을까 하는 근심과 기대는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그리고 사물들을 감상하는 것이 더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p.635

 

*****

알라딘에서 순구매내역을 자꾸만 알려준다. 슬쩍슬쩍 외면하고 무시하는 척하고 살다가 얼마전에 대강 계산을 해보았다. 내가 책을 구매하는 곳이 알라딘만은 아닐지니 대강 계산을 더하고보니 .....흠... 문득 ... 이사할 때마다 이삿짐센터에서 오시는 분들이 질색팔색하며 추가요금 어쩌구 하여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그 가진 것의 3분의 1만 남기고 다 정리해버렸다. 처음엔 뜬다리 위를 출렁출렁 걷는 기분이 들어서 의기소침했는데, 조금 지나고보니 홀가분해졌다. 그때 내가 놓지 못하던 집착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순전히 교양을 쌓고자 책을 읽는 일반 독자인 내가 굳이 이러는 것은 ....주변에 의외로 나같은 서치 들이 많다. 본말전도된 상황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위 인용한 것은 소동파의 사상에 무게를 두고 중국 지식인들의 사상사를 살핀 책이다. 적지않은 분량의 책에서 내가 굳이 꽂혀서 기억해보는 문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급진사상이란? 18세기는 결국 무신론자들의 적인 이신론자,보수주의자,부르주아,왕정주의자에 불과한가?혹은 조금 싸움꾼이랄 철학자들도 소수 포함되어 있을까? 사실 주류 사료편찬의 그림엽서의 이면에서 우리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고약한 사상가들을 발견한다. 이들은 중구난방으로 죄의식에서 해방된 관능을 찬양하는가 하면 신의 죽음을 예고하고,토지의 공유화를 주장하며,귀족들의 목을 사제들의 창자로 졸마매자고 부르짖고,철학적 방탕과 육체적 향연을 찬양하고,가난한 자들과 민중을 위한 철학을 하자고 고취하며,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지는가 하면 쾌락주의까지는 아닐지라도 행복주의 도덕을 가르치고 인간의 정의에 희망을 건다.

 

 

나는 이들을 계몽 시대 급진주의자들이라고 부르는데,왜냐하면 그들은 급진적 사상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면 급진적 사상이란 무엇인가? 쉽게 마르크스가 그의 『헤겔 철학 비판 서설 』에서 내놓은 정의를 차용하도록 하자.요컨대 급진적이다(être radical)라 함은 사물을 뿌리에서부터 보는 것이다.어디에 뿌리들은 있는가?이른바 볼테르의 세기에 뿌리들은 여럿이 있지만 그래도 기독교와 왕정이 그 핵심으로 보인다. p.39

 

*******

일단 그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는 일은  표지를 보고 이런저런 오해로 시작되었다. 표지 구성에 저자명을 도서명보다 위에 커다랗게 원문으로 적어놔서 언뜻 책 제목이 '미셸 옹프레'인 줄 알았다.(모든 것이 내가 과문한 때문이다)그 부제가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인 줄 알았다. 표지 디자인이 또한 강렬하다. 글루밍 블루에 가까운 하늘 아래 고딕한 교회로 추정되는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 마치 '스카이 댄서'를 닮은 팔이 묶인 듯한 남성인형풍선이 줄에 매여 위로 떠있다. 도대체 이 책 뭐지? 저자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전혀 모른 채 덥썩 집어든 책인데, 나같은 일반 독자에게 친절한 구성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책을 읽는데, 난관은 표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읽어도 더 오리무중으로 빠지게 되는 역자서문부터 아포리즘 형태의 서술인가 싶게 어리둥절하게 하는 본문 내용 앞에 그냥 한숨만 나올 뿐... 이 모든 것이 다 이 사상가와 철학이라는 분야에 너무나 과문한 나의 탓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다. 그래도 기왕 읽은 것이니 이해를 높이기 위해 재독을 하고 삼독을 하고 ...그제서야 대강 무슨 얘기인 줄을 알게 되었다.

그런 뒤에서야 저자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감각기계인 육체와의 합일을 강조하며 미학에 바탕을 둔 새로운 윤리학을 제안하는 그는 반역의 철학자이고, 열렬한 니체주의자이며, 정신분석 없는 철학은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자다"라는 설명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삽질을 하며 사는 건 지 새삼 깨닫게 해준 책이다. 얼마나 더 살아야 이런 허영과 허세와 어리석음에서 자유로워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뜬금없지만, 요즘은 사오정이 여러 의미로 떠오른다. 이미 케케묵은 의미가 되었지만, 사오정은 금융위기 이후 우리 나라 장년층 직장인들을 자조적으로 일컫던 말이기도 했다. 우리에겐 <날아라 슈퍼보드>라는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 사오정이 워낙 유명하고 친숙하니 거기서 따온 표현이었다. 그런데 중국소설 서유기 속 사오정은 아주 다르다. 오승은의 서유기를 공동번역한 홍상훈이 전집 부록으로 쓴 <그래서 그들은 서천으로 갔다>라는 책 속에 사오정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 중에서 조금 옮겨본다.

 

"사오정은 원래 옥황상제의 가마 시중을 드는 권렴대장이었다.그러나 반도대회 때 실수로 유리잔을 깨뜨리는 바람에 옥황상제가 팔백 대를 때려 아래 세상으로 쫓아내고 추악한 몰골로 만들었고, 또 이레마다 한 번씩 검이 날아와 옆구리를 백번도 넘게 찌르고 돌아가는 벌을 받고 있었다."

 

"사오정의 이름에서 '사 沙'는 '생각하다'라는 뜻을 가진 '사 思'와 발음이 통하였고, '정 淨'은 그 자체로 '깨끗하다'는 뜻이니, 그의 이름은 반도대회를 어지럽힌 죄업을 씻기 위해 청소와 정리 정돈을 깨달으라는 풍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정'은 또 '극락정토 極樂淨土'를 뜻하기도 하니,결국 그가 청소하고 정리정돈할 대상은 바로 '마음'이다.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는 삼장법사 일행 가운데 서천으로 가서 도를 구하겠다는 의지를 가장 독실하게 지키는 존재로 묘사된다. 다만 "검은 듯 푸른 듯 칙칙한" 그의 알굴에서 분명히 묘사되어 있듯이 그는 삼장법사로 대표되는 수행자의 마음 가운데 '토덕 土德'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온화하고 묵묵이 헌신하는 모습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다.그는 말없이 삼장법사의 변덕을 보완해주고,이따금 비꼬며 쏘아붙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저팔계의 투정을 들어주고, 손오공의 진심과 능력을 가장 잘 이해해주고 믿어주는 존재이다. 이렇듯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오행-도를 향해 수련하는 마음-의 내적인 조화를 도와주는 튼튼한 끈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 각기 강한 개성으로 뭉친 삼장법사와 사제들이 끝까지 분열되지 않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 우리에게 사오정같은 존재가 매우 절실하다. '어른이 필요한 세상'이라고 회자되는 걸 본 적이 있다. 얼마 전 보았던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 속 캐릭터 '아저씨'가 절묘하게도 사오정 세대였다. 나 역시 그 사오정 세대다. 하지만 난 서유기 속 사오정과는 거리가 너무 멀게 살고 있다. 그래서 반성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