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3년 다네카시마라는 섬에 표착한 포르투갈인이 전한 철포는 빠른 속도로 일본 전역에 퍼져 나갔다.그것 또한 사카이 상인들의 활약때문이었다.일본의 장인들은 재빨리 철포 제작에 들어갔다.그 철포에 가장 관심을 보인 영주가 바로 노부나가였다. 그는 천재적인 감각으로 그 철포가 앞으로의 전투 양상을 완전히 바꾸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는 자유무역항 사카이를 제압함으로써 화약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였다.노부나가는 바로 그 철포를 이용한 전술 개발로 전국시대 최강의 기마군단을 자랑하던 다케다 군단을 궤멸시켜버린다."ㅡ 옮긴이의 말 ㅡ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 선조8년9월(1575년)

부제학 이이《성학집요(聖學輯要)》를 바쳤다. 그 서문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선정(先正)이 《대학(大學)》을 표장(表章)하여 규모(規模)를 세우니, 이것이 요점을 깨닫는 법입니다. 서산 진씨(西山眞氏)  가 뜻을 풀어 《연의(衍義)》 를 만드니, 참으로 제왕이 도(道)에 들어가는 지남(指南)이 됩니다. 다만 책의 수가 너무 많아서 일을 기록한 책과 흡사하여 실학(實學)의 체모가 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임금의 한 몸은 온갖 기무(機務)가 모인 바여서 일을 다스리는 때가 많고 책을 읽는 때는 적습니다. 만일 그 요긴한 것을 모아 그 종지(宗旨)를 정하지 않고 널리 아는 것만을 힘쓰면, 혹시 기송(記誦)하는 데에 구애되어 반드시 참으로 얻는 것이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사서(四書)와 육경(六經)에서 요긴한 것을 뽑고 선유(先儒)의 설과 역대의 사서(史書)에 이르기까지 정밀하고 특수한 것만을 뽑아 유를 나누어 차례를 매기니 모두 다섯 편입니다.

그 첫째 편의 통설(統說)이란 것은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공부를 합하여 말한 것이니, 곧 《대학》에 이른바 명명덕(明明德)·신민(新民)·지어지선(止於至善)입니다.

그 둘째 편의 수기(修己)란 것은 곧 《대학》에 이른바 명명덕이니, 그 조목이 열 셋입니다. 1장(章)은 총론(總論)이고, 2장은 입지(立志), 3장은 수렴(收斂)인데, 이것은 추향(趨向)을 정하고 방심(放心)을 구하는 것으로서 《대학》의 근본을 세우는 것입니다. 4장은 궁리(窮理)라 하였는데, 이것은 곧 《대학》에 이른바 격물(格物)·치지(致知)입니다. 5장은 성실(誠實), 6장은 교기질(矯氣質), 7장은 양기(養氣), 8장은 정심(正心)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곧 《대학》에 이른바 수신입니다. 10장은 회덕량(恢德量), 11장은 보덕(輔德), 12장은 돈독(敦篤)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성의·정심·수신의 남은 뜻을 거듭 논한 것입니다. 13장은 그 공효(功効)를 논한 것으로서 수기의 지어 지선을 말한 것입니다.

그 셋째 편은 정가(正家), 넷째 편은 위정(爲政)이란 것인데, 곧 《대학》에 이른바 신민이니 정가는 제가(齊家)를 말한 것이고 위정은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말한 것입니다. 집을 바르게 하는 조목이 여덟 가지인데, 그 1장은 총론이고, 2장은 효경(孝敬), 3장은 형내(刑內), 4장은 교자(敎子), 5장은 친친(親親)이란 것인데, 어버이께 효도하고 아내와 자식에게 모범이 되고 형제 간에 우애하는 도리를 말한 것입니다. 6장은 근엄(謹嚴), 7장은 절검(節儉)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미진한 뜻을 부연한 것이고, 8장은 곧 이룬 효과를 설명한 것이니 제가의 지어 지선을 말한 것입니다.

위정(爲政)의 조목이 열 가지이니, 그 1장은 총론이고, 2장은 용현(用賢), 3장은 취선(取善)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곧 《대학》에 이른바 ‘어진이라야 제대로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을 이른 것입니다. 4장은 식시무(識時務), 5장은 법선왕(法先王), 6장은 근천계(謹天戒)라 하였는데, 이것은 곧 《대학》에서 인용한 바 ‘은(殷)나라를 볼지어다. 큰 명(命)을 얻기는 쉽지 않다[儀監于殷 峻命不易]’의 뜻입니다. 7장은 입기강(立紀綱)이니 곧 《대학》에 이른바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치우치면 천하의 죽임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8장은 안민(安民), 9장은 명교(明敎)이니 곧 《대학》에 이른바 ‘군자(君子)는 혈구(絜矩)의 도가 있어서 효제(孝悌)를 일으키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10장은 공효(功效)로써 종결하였는데,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지어 지선을 말한 것입니다.

그 다섯째 편은 성현 도통(聖賢道統)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대학》의 실적(實跡)인 것입니다. 이를 합하여 이름을 《성학집요》라 하였습니다."

이어 차자를 올려 학문과 정치하는 방법을 극론하였고, 끝에 또 기질을 변화시키는 공효와 성심으로 어진이를 쓰는 실상을 명백히 변론하였으며, 상의 과실(過失)을 지적하여 진술하였는데, 아주 적절하고 말이 간곡하여 수천 마디나 되었다. 상이 답하기를,

"바친 《성학집요》는 정치하는 방법에 도움이 있으니 매우 가상하다."

하였다. 다음날 상이 경연에 나아가 이이에게 이르기를,

"그 글이 매우 긴요하니 이는 부제학의 말이 아니라 곧 성현의 말씀이다. 다만 나는 불민하여 아마 행하지 못할 듯싶다."

하니, 이이가 아뢰기를,

"상께서 언제나 이런 분부를 하셨기 때문에 신하들이 걱정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자질이 탁월하니 성학(聖學)에 있어서 하지 않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송 신종(宋神宗)이 명도(明道)의 말을 듣고서 ‘이는 요순(堯舜)의 일인데 내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하자, 명도가 슬픈 낯빛으로 말하기를, ‘폐하의 이 말은 종사(宗社)와 신민의 복이 아닙니다.’ 하였습니다. 지금 전하의 말씀이 이에 근사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이이는 임금을 도우려는 뜻이 간절하여 여러 차례 물러갔다가 다시 나왔으나, 자신의 말이 쓰이지 않자 스스로 나라에는 공이 없고 학문에는 해로움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계유년 에 조정에 들어오고서부터 책을 편집하여 규범을 바치려고 하였는데, 경(經)·전(傳)·자(子)·사(史)에서 널리 채집하여 3년 만에 책이 이루어지자, 이때에 이르러 바친 것이다.

 

 

***** 오다 노부나가가 다케다군을 궤멸시킨 것은 1575년 나가시노전투에서였다.다케다 신겐은 그 2년 전에 병사하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최고의 칼잡이 기마군단을 막대한 총포로 궤멸시켜버린 것이다. 당시 조선은 어떤 상황이었나 궁금해져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았다. 선조 집권 8년차였고 부제학 이이가 '제왕학의 요체'라 할 수 있는《성학집요 》를 지어 선조에게 바치고 있었다.또한 명나라는 만력제가 재위3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역사의 우연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에게는 늘 오다 노부나가보다는 다케다 신겐이 더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퍼스는 소크라테스나 성 아우구스티누스나 라이프니츠와 같이 근원적인 사상가라고 볼 수 있다.이들의 중요한 정신은 많은 방향으로 뻗어나갔고 후대의 더욱 체계적인 사상가들을 위하여 주도적 이념들을 제공했다.퍼스의 철학에 등장하는 주도적인 이념들 가운데서 우리는 그의 실용주의,실험주의,현상학,실재론,오류 가능성 이론에 관심을 기울였다.그의 풍성한 사유의 이런저런 경향들은 이미 그 영향력을 발휘했다.그리고 20세기의 후반부 동안 퍼스가 실용주의자,도구주의자,조작주의자,실증주의자 뿐만 아니라 실재론자와 관념론자에게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예측해도 안전하다.",p.794

 

*****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고, 골머리가 아팠던 책 중 하나가 <<퍼스의 기호학>>이었다. <<틸리의 서양철학사>> 중 '실용주의' 챕터에서 퍼스와 윌리엄 제임스를 만났다.다시 도전하기로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결과 베이징에서는 공산당에 의해 국부(國父)로 칭송되던 쑨원의 저서들까지 선반에서 사라졌으며 1954년에는 프랑스인을 위한 베이징 여행 안내서들이 1톤 가까이 파지로 재활용되었다.한편 중고책 시장도 급속히 위축되었는데 상인들에게 지급되는 통상적인 가격은 킬로그램당 4~5위안이었다.때로는 학생들이 스스로의심스러운 책을 수거해 와서 교사에게 파기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관심있는 시민들이 금서를 그 지역 당 사무실에 제출하기도 했다.무협 소설이나 통속적인 소설을 계속 판매하던 거리의 행상인들은 경찰의 급습을 받아 한 번에 십여 명씩 체포되었고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

1952년 9월 이후로 모든 편집자와 발행인은 정부에 등록하고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중국의 위대한 문학적 유산인 고전 가운데 인쇄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십삼경 중에서 그나마 구할 수 있는 것으로는 고대 민요를 포함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시경(詩經)』이 유일했다.기원전 3세기에 살았던 굴원(屈原)같은 몇몇 시인들의 작품도 살아남았는데 그들이 <대중>을 위해서 글을 썼다고 알려진 덕분이었다. 해방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언론사와 출판사를 완전히 장악한 중앙 정부가 그 모든 검열을 감독했다."P.298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인 <<발자크와 바느질 하는 중국 소녀>>은 <<해방의 비극>>에서 다루어진 사상개조 정책 시행 이후 문화대혁명기를 겪은 어린 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 국민의 사상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시도들은 비단 마오쩌뚱 시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무고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많이 희생되는 경우 중 사상통제가 가장 강력할 수 있다. 우리 역시도 엄혹한 시절을 겪으며 낯설지 않게 겪은 일들이 아니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끔 음식을 만들어서 친구들과 나눠먹다보면 꼭 레시피를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런 행동에는 음식을 대접받은 것에 대한 답례 차원의 인삿말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에는 진지함이 크니 레시피를 ㄱ~ㅎ까지 세세히 알려준다. 무척 진지하게 듣고 집에 가서 꼭 해봐야겠다고 말하는 상대를 보면서 약간 들뜨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 친구는 열번 중 아홉번은 레시피를 배워간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내가 레시피를 전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걸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에 빠지곤 했다.어떻게 하면 레시피 전달을 쉽고 정확하고 간단하게 해서 상대가 그 음식을 만들어보게 할 수 있을까? 궁리끝에 택한 방법 중 하나가 "이 음식의 포인트는 새콤달콤에 있어."라든가 "이건 기름지지만 느끼하면 절대 안되는 데 포인트가 있어" 등의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어떤 식으로 알려주든 그 음식을 만들어보는 횟수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결국 인삿말에 불과한 것에 과하게 반응한 것이구나 싶은 자괴감이 들기 마련이다.그러니 습관처럼 레시피를 묻는 친구에게는 화를 내고 만다. "넌 만들지도 않을 거면서 왜 자꾸 물어보냐?".그러면 상대는"아냐, 너무 맛있어서 꼭 만들어볼 거야"라고 대답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 지 모를 일이다.그런데 어쩌다 << 한번 써봅시다>>를 읽게 되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쓰기 관련서를 보면 이유가 어찌 되었든 한번쯤은 읽어보는데, 글을 잘 써봐야겠다든다 뭐라도 써봐야겠다든가 하는 생각까지 이어진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생각이 들었다해도 실천까지 한 경우는 더욱 없었다. 왜 그럴까? 나같은 경우는 글을 잘 쓰는 법에 관한 책을 읽는 목적이 잘 쓴 글을 골라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작용하기 때문일 수 있다. 어쩌면 레시피를 물어보는 친구들도 그 음식을 만들어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장강명은 여러 가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 작가인 것 같은데, 나는 언젠가 텔레비젼 강연 프로그램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는 것을 한번 보았는데 인상이 남아서 기억하던 이름이었다. 글쓰기 관련서인데 표지 일러스트가 개인적 취향에 맞아서 읽어보게 되었다.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일러스트가 정겹고 좋았다. 책을 읽고 난 뒤의 결론은 아마 이렇게 뭐라도 끄적여보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통적인 사계층  출신으로서 구질서를 개혁하려 한 유가,수공업 장인들로서 사계층에 참여하여 새로운 질서 구축을 위한 프로그램을 일군 묵가,그리고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사회적 유토피아를 시도하거나 또는 인적 삶에 침잠하는 것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발전시킨 은둔자들은,철학적 위기보다는 사회적 위기에 대한 반응들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들 사이의 첨예화된 논쟁은 이미 논리의 수수께끼에 매료된 궤변론자들을 탄생시켰으며,그리고 송견은 군주들을 교화하는 문제를 통해 인간의 내부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다.

기원전 4세기말경에는 지적 분위기가 상당히 많이 바뀌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관중은 의례를 이해했는가?"정도의 문제를 토론할 수 있을 법했던 유가는 이제 인성이 도덕적으로 선인가,선악의 혼재인가,도덕적인 중립인가,또는 부분적인 선과 악인가의 문제에 집착한다.도덕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의 이질적인 혼합체를 주먹구구식 공리주의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에 만족해왔던 묵가는 논리적으로 난공불락인 공리주의적 윤리체계를 정립하기 위하여 궤변론자들의 도구를 사용한다.자기 자신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단순한 목적을 가지고 양가 楊家로 출발했던 장자는 인간을 죽음과 화해시킬,우주 내 인간의 위상이라는 관점을 추구한다.이 삼자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하늘은 결국 인간의 도덕성을 지지하는가라는 물음에 관한 심오한 형이상학적 회의이다.유가인 맹자는 하늘이 내린 본성은 진실로 도덕적인 선이라는 점을 확증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후기 묵가들은 도덕성 정당화의 준거를 하늘의 의지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선험적인 논증으로 전환함으로써 이 문제를 회피한다.장자는 이 문제를 환영하지만, 하늘로부터 우리들에게 발산되는 자연성 spontaneity 의 황홀경에 빠져들기 위해 선에 대한 모든 관습적인 관념을 포기한다."-p.203~204.

 

*****얼마전에 드라마<의천도룡기 2019>를 보았다.극중 주인공인 장무기는 김용의 주인공들 중 정말 허술하고 허무맹랑하고 불완전하지만 거칠 것이 없는 캐릭터같다. 현재의 중국 사람들은 고대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일 수 있다.고대 그리스인들과 현재 그리스인들이 매우 다른 것처럼. 의천검과 도룡도를 두고 벌어지는 각 문파의 갈등과 대립, 그로인해 파생되는 살생과 파괴를 보면서 전에 읽었던, 앵거스 찰스 그레이엄의 <도의 논쟁자들>이 생각났다. 서양인이 연구하여 저술한 중국 고대 철학 논쟁서이다. '외국어를 사용하여 문제를 풀어보면 모국어보다 훨씬 이성적이고 명확한 답을 도출해낼'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아마 서양인이 연구하여 내놓는 동양 사상서를 읽을 때 느끼는 어떤 명징성이 그런 이유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신비스럽고 형용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물극필반' 의 입장으로 해석해 드라마로 형상화한 <의천도룡기>를 보면서 잠시 허튼 아이디어를 끄적여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