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책읽기를 좋아해온 사람이지만, 신체적 변화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그 대답이 곤궁한 것을 여러 번 느꼈다.그러다 최근에 들어와서 그런 질문에 어느 정도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그것은 책을 읽으면 눈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는 것이다. 특히 미백색 종이의 양장본은 문장에 밑줄을 치면서 읽어나가면 그 페이지의 약간 굴곡진 평면이 사람의 하얀 속살처럼 느껴지고, 그 위에 적힌 글자들이 나의 두 눈 속으로 죄다 빨려 들어와서 뇌로 올라가 혈관을 확장시키는 동안에 페이지는 텅 빈 백지가 되어버리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서양에서는 독서의 네 단계를 읽고, 밑줄 치고,알고,내적으로 소화하는 것으로 분류하는데,진정으로 어떤 책의 내용을 내면에 소화할 때에는 이처럼 눈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다.ㅡp.285, 옮긴이의 글

 

육군과 해군에 필요한 것은 휴대하기 간편한 크기의 가벼운 책이었다.

페이퍼백이 명백한 해결책이었지만 아직 모든 출판사들이 그런 책을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전쟁(그중에서도 배급제도)은 양장본 대신 작은 판형의 페이퍼백을 선호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그때까지 작은 판형은 주로 소형 책 전문 출판사에서만 나왔다. 하지만 이제 뚜렷한 방향 전환이 이루어졌다.1939년 미국에서는 20만 권 이하의 페이퍼백이 판매되었다.그러나 1943년에 이르면 4000만 권을 넘어섰다.1940년대 이전만 해도 출판사와 서점들은 페이퍼백을 경시햇다.서점에서는 불품없고 열등한 페이퍼백을 전시하기를 거부하고,멋지고 단단한 양장본들만 매대 위에 올려놓았다.페이퍼백보다 평균 10배 정도 비싼 양장본은 출판사에 높은 수익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양장본 이외의 다른 책의 형태를 생각하기가 어려웠다.그러나 배급제도로 인해 출판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종이 물량이 줄어들고, 양장본 제본에 들어가는 목면 천(정부는 위장망을 만드는 데 이 천이 필요했다)의 소비가 제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출판사들은 평소 상요하던 종이와 천보다 훨씬 줄어든 물량으로 책을 체작해야 하는 난제에 봉착했고,기존의 품질과 수량으로 양장본을 만들 수 없는 상황에 대응해야 했다.p100-101

 

진중문고에 선정된 작가들은 수백만 명의 충실한 독자들을 거느리게 되었다.인기 있는 책들은 입소문이 나면서 해외에서 본국으로 역수입되기도 햇다.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는 1925년에 출판되었지만 그의 생전엔 실패작으로 여겨졌다.(피츠제럴드는 1940년에 사망했다-옮긴이).하지만 이 책은 1945년 10월 진중문고에 편입된 이후 군인들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다.그들이《위대한 개츠비 》에 보내는 찬사는 본국으로 전해졌고,이렇게 해서 세상에 다시 알려진 《위대한 개츠비 》는 미국의 문학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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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는 일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역자가 적어놓은 것을 보면서 정말 재밌다싶었다.마치 내밀한 고백을 하듯 밝힌 내용은 나또한 체득하였으나 정리하여 표현할 줄 몰랐던 것이었다.어떤 브랜드의 야상점퍼를 입으면 문고판 페이퍼북 한 두 권이 주머니에 쏙 들어간다.그때 든든함이랄까 안도감이랄까 뭐라 딱 부러지게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느껴지곤 한다. 그런 문고판 페이퍼북이 유행하여 보편화된 계기가 전쟁이었다니 참 흥미로운 일이다. 책에 대한 책을  N.A.바스베인스의 《젠틀 매드니스 》이후로 잘 안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순전히 이종인이라는 역자때문에 읽게 되었다. 책에 실린 역사적 사실들이 흥미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짠하기도 했다. 책이 지닌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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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노 오사무 등 일부 지식인 사이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시민'이라는 말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그러나 시민을 프티 부르주아와 동의어로 보는 공산당 주변의 인식은 뿌리가 깊었고,이말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았다.그러나 안보 투쟁 속에서 공산당의 권위가 실추되고 노동자나 농민에 의존했던 기존 조직으로부터 독립된 운동이 퍼지기 시작했을 때, 여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로서 시민이 사용되어 갔다.

이런 시민은 안보 투쟁 속에서 나타난, 자립과 연대가 동시에 실현되는 상태를 표현한 말이었다.정치학자 후쿠다 간이치는 당시의 좌담회에서 개인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만들고 연대를 낳는 감각이 안보 투쟁에서 생겨났다고 말하고,"궁극적으로는 일인 일당이 된 것이며, 그것이 시민정신이다"라고 말했다.에토 준도 자립과 연대를 겸비한 새로운 시민적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햇다.

이런 시민이 기존 조직에서 독립된 상태를 표현한 말이 무당파 無黨派였다.쓰루미 슌스케는 "총평도 공산당도 사회당도 국민회의도, 거대 조직의 간부는 지도력을 잃고,회원들의 감정과 사상은 조직의 자리를 넘어서 국민적 규모를 지닌 무당무파의 흐름을 향해 흫러가고 있다."라고 말하며, 목소리 없는 목소리의 모임에 모인 사람들에 대해"자유롭게 모인 시민들이 자기들 스스로 새롭게 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인민 정부의 한 모형을 거기서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라고 평한다.

쓰루미가 여기서 쓴 "무당파"라는 말도,당시에는 그리 사용되지 않았다."무당파층"이라는 말이 신문의 표제 등에 정착한 것은 1977년이라고 여겨진다.그때 이 말은 "지지정당 없음"이라고 회답하는 사람들에, 정치적 무관심층을 포함해서 표현하게 되었다.그러나 1960년에 쓰루미가 "무당무파의 시민"이라는 말을 썼을 때는 다른 의미를 나타냈다.

그리고 이런 시민은 내셔널리즘과 모순되는 존재가 아니었다.p.631 

 

요시모토는 자기 자신의 죄책감에서 해방되고자, 전후 사상이 쌓은 공적인 것의 논리를 해체했다. 고도 경제 성장 속에서 혁신 내셔널리즘이 퇴조하고 전후사상의 윤리적 기반이었던 전사자의 기억이 희박해지는 와중에, 사적인 것의 우선이야말로 전후 민주주의라는 인식이 이윽고 광범위하게 유포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루야마 등이 중창한 민주와 애국의 결합이 다시 절단되었다.p.785

 

즉 이 책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새로운 시대를 향한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은,전후사상이 '민주'와 '애국'이라는 내셔널리즘의 말로써 표현하고자 시도해 온 이름 없는 것을, 말의 표면적인 상이점을 구별해서 받아들이고, 그것에 현대와 어울리는 형태를 부여하는 바꾸어 읽기를 하는 것이다.그것이 달성될 때, 전후의 구속을 진정으로 넘어설 수 있다.그리고 이책을 통독한 독자는 이미 그것을 위한 준비 작업을 마쳤다고 할 수 있다.p.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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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중국사는 명청시대사, 한국사는 조선사,일본사는 전국시대사에 집중하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그것을 역사공부라 여기고 살았다. 1955년을 전후로 한 일본과 청이후 현재 중국과 1945년 이후 한국은 등 현대사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지나치게 무지하고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외면하는 일이 많았다. 그것을 크게 반성하고 깨닫게 해준 책이 이것이었다. 현대에 살아가는 사람이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외면하며 사는 격이었다. 이런 일이 비단  나만의 개인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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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위로 묶은 양차 세계대전의 시기는 유럽 현대사가 출발하는 세로운 전환점을 제공했던 상징성으로 충만한 시기다."1차 세계대전은 낡은 유럽을 파괴했고,2차 세계대전은 새로운 유럽의 필요조건들을 만들어냈다."라는 역사가 토니 주트의 일갈이 그 상징의 성격을 명확히 규명해준다.이 시기는 동시에 '통합 유럽'의 배태기로서 20세기 후반 전쟁의 폐허 위에서 유럽통합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비옥한 토양이 마련되었던 격동의 시대이기도 했다.파괴와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희망들이 어설프고 미약하지만 서로 경쟁하며 자라나던 시기였던 것이다.1차 세계대전은 구유럽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존의 규범과 가치들을 파괴했다. 전쟁의 파국은 유럽사에 내재했던 통합과 협력이란 기존의 모든 관념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뒤로젤에 따르면 베르사유 체제는 "유럽의 협조"도 "유럽의 공법"도 "유럽의 균형"도 사라진 "무정형의 유럽"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화해와 협력의 동기보다는 반목과 갈등의 동력들이 유럽에서 우세했던 베르사유조약 이후부터 1945년까지의 시기는 '통합(Integration)과 '분열(Disintegration)'이라는 두 개의 모순적인 힘들이 상호 교차하며 역사의 바퀴를 작동시켰던 시기였다.이 시기는 한편으로 통합된 유럽을 그리면서 새로운 평화질서를 모색하는 시기였으며 1945년 이후 유럽통합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준비함으로써 유럽통합의 촉매제 역할을 한 시기였다.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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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간기 유럽의 통합에 대해 국내 학자들의 연구논문들을 실어놓은 책이다. 학술연구서다.

가끔 이런 전문학술서를 읽으면서 건조하고 정돈된 문장을 만나는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논문 연구자들 이력을 보니 다양하다. 에릭 홉스봄, 토니 주트 등의 역사가들의 책을 통해 접했던 유럽의 전간기 분열과 통합에 대한 역사를 국내 학자들의 연구로 만나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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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어떠한 형태의 물질적 번영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한 세기 앞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흠모했던 그리스 북부 지역의 사상가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 '영혼의 행복'에 대해 설파하며, 이는 가축이나 금의 소유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다이모니아라는 용어를 '영혼의 행복'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이는 지각 능력이 있는 인간의 의식에서 경험된다.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삶은 그 자체로 '활동적인 마음'을 갖는 것으로 이뤄진다.아리스토텔레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움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많은 즐거움을 얻는다고 확신했다.실제로 그는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단지 학문적 지식이 아니라 경험의 모든 측면에 대한 이해)삶의 실질적인 목표라고 생각했다.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잠재적인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다.인간의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면 이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은,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깊이 고민하고 가능한 최고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기에 다른 동물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여기서 '잘well'이라는 부사는 실천적인 차원에서는 '만족스럽게', 타인과의 관계의 차원에서는 '도덕적으로',그리고 행복과 즐거운 상황을 즐긴다는 차원에서는 '운 좋게'나 '적절하게'라는 의미다.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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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는 "과학/학문들"이란 말로 이를 다루고 있습니다.수학 같은 게 문제되지는 않겠죠.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식할 수 있고 또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 과학입니다.과학은 소외의 원환으로터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요? 실상 인간 과학은 소외의 원환에 갇혀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를테면 그 소외의 상위의 형식이자 간지입니다.그러니까 원환에서 빠져나온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인간 종의 모든 진보가 인간을 끊임없이 그 시초 상태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축적할수록 그 모든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식을 획득하는 수단을 스스로에게서 앗아가는 꼴이 된다는 점이다.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을 너무 연구했기 때문에 인간을 인식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말이다." 왜 인식 불능의 상태가 된 것입니까?루소의 말에 따르면, 과학적 저술들은 우리가 기원적 인간을 인식하도록 만들기는커녕 "있는 그대로의"인간들만을,즉 결과만을 보는 법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이러한 이유 자체는 하나의 효과에 불과합니다.탈자연화되는 것은 과학의 현재적 관심 대상, 즉 있는 그대로의 인간들만이 아닙니다. 과학을 탈자연화시키는 것은 단지 과학의 현재적 관심 대상만이 아니라 과학의 본성 자체,즉 이성의 행사에 따른 산물이라는 과학의 본성인 것입니다.그러니까 과학이 탈자연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과학 안에서 작동 중인 이성 때문이라는 얘기입니다.철학자들과는 다르게 루소는 이성을 자연 상태에 투사하지 않습니다.이성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죠.루소는 자연적 개인에게서 이성을 전제하지 않습니다.반대로 그는 이성이 인간 역사의 선물임을,인간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나타난 것임을, 또 이성의 발전이란 이성을 좌우하는 사회적 정념들의 발전에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 이성은 결코 순수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인간 이성의 성숙은 인간의 탈자연화와 동시대적입니다. 따라서 이제 인간에 대한 과학은 은폐 속에, 망각 속에, 탈자연화속에 갇힌 것이 되고, 탈자연화의 발생에 귀속됩니다.인간에 대한 과학 일체는 정의상 기원을 망각합니다.왜냐하면 과학은 루소가 모든 반성에 앞서는"순수 운동"이라 부른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뿐만 아니라 과학은 이성의 작품이기에, 그 자체로 그 순수 운동의 상실에서 탄생하기에 그 순수 운동을 잃어버린 상태일 수밖에 없습니다.결국 어떤 의미에서 과학은 완전한 망각인데요.왜냐하면 과학은 그 탄생부터 자신을 구성한 망각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과학은 망각의 구성 과정,탈자연화의 구성 과정 중에 있는 어떤 계기에서만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은 그 대상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탈자연화에 기입된다는 그 본질에 의해서도 소외의 원환에, 달리 말해서 잃어버린 기원에 귀속하는 것입니다.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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