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다의 환상 - 상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온다 리쿠의 장편소설 ‘흑과 다의 환상’을 읽었다.

다른 서평에서도 말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몇 번을 읽어도 그녀의 작품을 읽는 것이 참 즐겁다.

‘흑과 다의 환상’ 또한 세 번째로 읽는 것인데 역시나 너무 재미있었다.

 

 대학 동창 리에코, 아키히코, 마키오, 세쓰코 네 명이서 졸업한 후

19년 뒤에 Y섬으로 여행을 하면서 서로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책은 총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리에코 - 아키히코 - 마키오 - 세쓰코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우선 독자로 하여금

네 명과 같이 여행을 떠난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숲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네 명의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현실적인 대화들이 이어진다.

비록 한 번도 소설을 써본 적은 없지만, 재미있는 소설이 되려면 흥미로운 소재와 사건과 더불어

그러한 소재와 사건들을 매끄럽게 전해주는 문장들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온다 리쿠는 그러한 점에서 매우 뛰어난 작가이다.

책을 읽는 동안 따분한 느낌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소설에 몰입하게 만드는 능력이 무척 훌륭한 것 같다.

또한 이 책의 서술자 네 명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불어넣어서

단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종잇장처럼 얄팍한 등장인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면서 매력이 넘치는 인물들을 창조해 내었다.

사실 숲을 걸으면서 서로 다투거나 누군가 사고를 당하는 것 같이 큰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때로는 사색에 잠길 뿐인데,

독자로서는 매우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네 사람 사이에는 유리라는 인물의 강력한 그림자가 있다.

온다 리쿠의 전작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서도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유리인데,

그 유리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리에코는 유리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마키오는 유리와 연인 관계였으며,

아키히코는 유리의 먼 친척이다.

세쓰코는 유리와 마키오가 싸우고 있을 때를 목격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던 유리에 대한 진실은

그 자체로는 대단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의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로워 전혀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도 저런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걷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기척이 잘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숲 속에서 걸으면서 이야기를 한다면

일상에서는 하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들을 정말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이 작품은 연극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물도 많이 필요하지 않고, 대사만으로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그녀의 작품 중 ‘불안한 동화’를 읽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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