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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ㅣ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평점 :
박완서 작가의 장편소설 《나목》을 읽었다. 정말 유명한 대가이지만 그녀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닿았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PX에서 일하는 '경아'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PX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 되었다는 것에 한번 놀라고, 이렇게 오래된 소설을 지금 읽어도 재밌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랐다. 경아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능숙하다는 것이었다. 초상화부에서 근무하는 그녀는 미군들을 상대로 영업하면서 영어로 소통하는데 거리낌이 없고 화가들을 관리하는 것도 어려움이 없다. 경아의 근무 일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웠다.
그런데 집에서 그녀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달릴 정도로 무서워하고 그녀의 엄마에게는 무기력이란 단어가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있다. 경아가 어떤 말을 해도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죽은 나무처럼 가만히 있으니 이 집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초상화부에 '옥희도'라는 새로운 화가와 전공 '태수'가 들어오게 되면서 경아의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무언가 크게 결핍되어있던 그녀는 그 빈자리를 어떤 것으로 채울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두 사람과의 교류를 지속한다. 이 관계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무척 궁금했기에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경아의 마음은 쉴 새 없이 오락가락 갈팡질팡한다. 어느날은 지극히 이성적이었다가 또 다른날은 열병에 사로잡힌듯 크게 달뜨는 모습을 작가는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소설을 읽으며 떠오른 것은 전쟁의 아픔이었다. 잘 사는 듯 보였던 그녀의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을 만든 원인은 결국 전쟁이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현재도 전쟁 중인 나라가 있다는 사실이 문득 놀랍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