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A 살인사건
이누즈카 리히토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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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즈카 리히토의 장편소설 소년A 살인사건을 읽었다. 등장인물이 많은 편으로 요약을 해보자면 감찰부에서 일하고 있는 경찰 시라이시와 연체자들에게 독촉 전화를 돌리는 일을 하는 에리코가 20년 전 일어난 소년A 살인사건에 얽히는 이야기다.

 

소년A 살인사건은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그 과정을 비디오테이프로 남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다. 그런데 그 비디오가 20년 후에 다크웹에서 판매된 정황이 드러난다. 경찰 내부에서 유출되었을 가능성을 보고 시라이시가 팀과 함께 조사를 시작한다.

 

에리코는 온종일 전화로 손님을 상대한다. 그중에서는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마구 내뱉은 손님도 있다. 돈도 갚지 않아놓고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에리코의 속을 마구 헤집는다. 그러다 우연히 자경단 사이트를 알게 되고 거기에 저격 영상을 올린다. 손님 중에 기초생활수급 자격으로 부정하게 약을 타 판매하고 성매매를 일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사적 제재의 짜릿함을 느낀 에리코는 소년A 사건에도 관심을 가진다.

 

소년A 살인사건은 훌륭한 사회파 추리 소설이면서 동시에 본격 추리 소설의 면모도 보이는 게 놀랍다. 도대체 누가 영상을 유출했는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하나하나 의심 인물을 파헤치는 과정을 읽다 보면 소설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인물도 개성 없이 도구적으로 이용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사정이 있어 생생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허투루 쓰는 사람이 없다.

 

이야기의 힘이 느껴지는 이 소설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끔찍한 살인을 단지 어렸을 때 저질렀단 이유로 처벌도 제대로 받지 않고 보호받는 삶을 살아도 되는지에 관해 물음을 끝없이 던진다. 피해자의 가족은 그 조치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면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을 자경단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복수를 가하는 것은 정말로 옳은 일일까? 그 사람들이 정말 정의감만으로 제재를 가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기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극적인 소재를 노골적으로 전시하듯 표현하지 않은 점도 이 소설의 장점 중 하나이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목적으로 오히려 작품 자체가 폭력적으로 물드는 것을 싫어하는데, 이 소설은 그 점을 잘 피해갔다. 끔찍한 사건 자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이 문제를 둘러싼 여러 인물의 관점을 표현한 점이 아주 좋았다. 최근에 읽은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비슷한 상황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 순진무구한 소녀를 죽이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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