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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깨비, 홍제 - 인간의 죽음을 동경한
양수련 지음 / 북오션 / 2022년 3월
평점 :
양수련 작가의 장편소설 《나의 도깨비, 홍제》를 읽었다. 인간을 깎아내리던 도깨비 홍제는 술수에 빠져 인간 세계에 내쳐진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찾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데 이것이 쉽지 않아 오랜 기간 머물러 있던 중 ‘오르’를 만나게 된다.
‘홍제’는 3호선 지하철역으로 익숙한 터라 이 단어에는 무슨 뜻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弘濟(홍제)에 사람들을 널리 구제한다는 뜻이 있었다. 도깨비 홍제 역시 이런 뜻으로 지은 걸까 생각했다. 실제로 홍제는 자신을 가진 사람에게 소원이 무엇이든 이루어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문’은 홍제가 시궁창 같은 인생 속에서 구해주었다.
소원을 이루어 주는 대신 감동적인 이야기를 한 편 들려달라는 거래,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온갖 소원을 다 들어줄 수 있는 몸에 감동적인 이야기란 어떤 것일까. 그런 자에게는 어떤 이야기라도 부질없고 덧없이 느껴질 것 같다. 시간을 교차해서 진행되는 소설을 읽으며 홍제의 허무함이 잘 느껴졌다. 그가 지내온 수많은 시간 속에 진심은 없었다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했다.
죽을 수 없는 도깨비 홍제와 불멸의 삶을 바라는 인간 기문이 대비되는 것 역시 인상적이다. 사람은 자신한테 없는 것을 질투하듯 서로의 삶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흥미로웠다. 죽지 못하면 죽고 싶고 죽게 되면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간사한 마음인 걸까.
실제로 도깨비를 감동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숭고한 희생에 관한 이야기라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자신에게 어떠한 이득도 없는데도 기꺼이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그런 이야기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