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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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라 유의 장편소설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를 읽었다. 작가의 전작 유랑의 달은 온전히 매혹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짙은 쓸쓸함이 묻어있었던 전작처럼 이번 작품도 쌉싸름한 커피를 마신 것처럼 코믹하지만 쓸쓸함이 잔뜩 담겨 있는 지구 멸망을 다루었다. 마치 휘핑 크림이 올라가 있는 라떼와 같은.

 

첫 번째 주인공은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말을 걸기는커녕 일진 무리에게 망신이나 당하는 처지인 에나 유키이다. 그랬던 그가 한 달 후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을 접한 후 달라진다. 더이상 두려울 것도 잃을 것도 없었기 때문일까. ‘멸망이라는 사건이 사람들에게 각자 다른 영향을 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누군가에게는 사람들을 죽이고 몹쓸 짓을 저지르는 기회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동안 감추고 있었던 마음을 꺼내는 용기의 형태로 작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 주인공은 평생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야쿠자 신지다. 야쿠자 조직에 이용당하며 살아왔다. 거기다 손버릇이 안 좋아 남자든 여자든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에게는 다짜고짜 폭력을 휘두른다. 멸망이라는 소식을 접한 뒤 신지는 한참 전에 헤어졌지만 아직 마음 속에 남아있던 한 여자를 찾아 나선다.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는 독창적인 소설이라기보다는 익숙한 소재를 끌어와 마음을 깊이 울리는 작품이었다. 이 소설에는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반전도, 가슴 절절한 감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여운을 남기는 데에는 성공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말처럼 일상,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그 일상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책의 후반부에 편집자의 편지가 끼워져 있다. 나는 윤하의 <별의 조각>을 들으며 마지막 장을 읽었다.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사랑해 버린 모든 건

이 별에 살아 숨을 쉬어

난 떠날 수 없어

태어난 곳이 아니어도

고르지 못했다고 해도

내가 실수였다 해도

이 별이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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