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크리크
앤지 김 지음, 이동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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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첫 책은 앤지 김의 장편소설 《미라클 크리크》였다.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운영하는 고압산소 치료 시설에 불이 난다. 아이 한 명과 엄마 한 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다친 이 사건에 대한 재판 과정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죽은 아이의 엄마 엘리자베스가 고의로 불을 질렀다는 혐의로 고소를 당한다.


소설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너무나도 무거워 빠르게 읽기가 힘들었다. 치료 시설을 이용하는 아이들은 모두 자폐증을 앓고 있다. 장애인을 키우는 부모는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녀야 할까. 사실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더 장애인이 살기 좋은 환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아직도 너무나 부족한 우리나라보다는. 그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숨이 턱 막혔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죄인이 된 것 같은 그 마음이 너무 아팠다.


《미라클 크리크》는 장애 아동의 부모의 이야기 외에도 한국인 이민자 가족을 끌어와 소설의 무게감을 높인다. 작가 자신이 이민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냈을 것 같다. 자식을 위해 삶의 터전을 통째로 바꿔버린 박과 영, 그들의 딸 매희(메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포기했다. 소통의 부재는 오해를 쌓고 불화를 낳는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서로를 마주하는 그들의 사연 또한 안타까웠다.


무거운 주제들로 놀라운 속도감을 주는 것은 재판 과정이다.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겠다는 검사와 무죄를 받아내겠다는 변호사의 팽팽한 싸움은 커다란 몰입감을 제공한다. 재판이 진행되며 몰랐던 진실이 사방에서 튀어내오고 상대방을 찍어내리는 그 과정들은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씁쓸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듯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과거의 말과 행동이 180도 뒤집힐 수도 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책의 뒤편에는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린 것 같은 순간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이 타오른다고 써있다. 글쎄. 더 나은 삶이라기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생각이 방울방울 일어나는 소설, 《미라클 크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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