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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제작자들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평점 :
기억에 남는 우연 중 하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기도 모임에 들어간 것이다. 개신교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교회에 대해 별생각은 없었지만 굳이 긍정과 부정 중에 고르자면 부정적인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어느 날 칠판에 조그맣게 쓰인 기도 모임 모집 글에 문득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함께 가보자고 했고 그 기도 모임은 생각지도 못하게 큰 힘을 주었다. 수능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시기를 기도 모임 덕에 이겨낼 수 있었고 여전히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여전히 교회는 다니고 있지 않지만)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우연들이 사실 누군가 계획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요아브 블룸의 장편소설에서는 이런 신선한 발상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우연 제작자라는 직업이 등장하여 우연을 만들어 내 사람들의 운명을 만들어 낸다.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한 직원은 손님이 떠난 테이블을 치우다 컵을 깨뜨려 해고를 당한다. 또한 택시를 잡다가 실수로 한 남자의 차를 타게 되며 그 차에 핸드폰을 두고 내린다. 그리고 그들은 커플이 된다. 우연으로 보이는 이 일들은 ‘우연 제작자들’의 주인공 가이가 이뤄낸 일이다. 이야기를 읽어 나가며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아직 2급 우연 제작자인 가이는 더 높은 등급인, 훨씬 복잡하고 거대한 우연을 만드는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이 책이 우연을 만들어 내는 아기자기한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한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아무래도 나에게는 우연 제작자가 될 자질이 현저히 부족한 것 같다. ‘우연 제작자들’은 훨씬 더 철학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다. 이 책을 고르고 읽은 것도 나에게 일어난 우연일 것이다. 누군가 이 책을 읽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