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전투
스트루베-불가코프-투간바라놉스키와 보론초프-니콜라이온의 논쟁
제18장 새로운 논쟁 판에서의 문제
자본주의적 축적의 문제에 대한 세 번째 논쟁은 앞의 두 논쟁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테두리에서 진행된다. 이 논쟁은1880년대 초반부터 1890년대 중반까지 진행되었으며, 무대는 러시아였다. 서유럽의 자본주의적 발전은 이미 성숙기에 도달했다. - P427
. 사회민주주의를 탄압하기 위해제정된 예외 법규가 실행된 12년의 시험 기간 동안 비참한 환멸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즉, 모든 조화의 베일은 최종적으로 갈가리 찢어지고, 적나라한 자본주의적 적대성의 현실이 냉혹하게 드러났다. - P427
서유럽의 상황은 이러했다. 물론 동일한 시기에 러시아의 상황은 다르게 보였다. 러시아에서 1870년대와 1880년대는 모든 면에서 엄청난 고통을 동반한 내부 위기를 보이는 과도기였다. 대규모 공업이 높은 보호관세 기간의 영향을 받아 비로소 실제적으로 시작되었다. - P428
특히 러시아 섬유 산업의 가장 중요한 본거지이며 거대한 산업 중심 지역인 모스크바 블라디미르 지역은 아직도 대체로 농업과 결합되어 있었으며, 반(半) 시골풍이었다. 이러한 현실에 부합하는 원시적 착취 형태가 착취에 대한 방어에서도 원시적 표현을 등장하게 했다. - P429
이렇게 러시아에서 대중의 경제적 삶이 어디를 가든 과도기의 요란한 불협화음을 보여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에조응해서 정신적 삶에서의 위기도 찾아왔다. 이론적으로러시아 농업 제도의 특징에 기초한 ‘민족적‘이고 토착적인러시아 사회주의는 명백한 혁명적 어구인 "인민의 의지(Narodnaya Volya)" 테러 당의 실패 후에 정치적으로 파산했다. - P429
러시아 지식인들은 매우 일찍부터 러시아가 서부 유럽의 예에 따라 자본주의적 발전을 완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문제를 다루었다. 이들은 또한 서부 유럽에서 우선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 자본주의가 전통적인 가부장적 생산 형태와 함께 인민대중의 생존 안정과 복지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만을 보았다. - P430
. 국가의 원조 아래 러시아에 자본주의적 생산을 강제로 이식함으로써 농촌의 소유 형태와 생산 형태를 파괴해 무산계급으로만들고, 노동하는 대중의 생존을 비참하고 불확실하게 함으로써, 이러한 다행스러운 예외 상황, 유일한 역사적 기회를 헛되이 할 것인가? 이 근본 문제가 농업 개혁 이래로 러시아 지식인들의 정신적 삶을 지배했다. - P431
이러한 매우 포괄적이고 여러 분야로 갈라진 ‘인민주의적‘ 문건들 중에서 우리는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전망을 둘러싼 논쟁에만 관심이 있다. 그리고 이 논쟁이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사회적 조건들에 대한 일반적 성찰에 근거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성찰이 1880, 1890년대 러시아의 문헌 논쟁에서 커다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 P432
앞으로 이어지는 토론의 이론적 내용에서는 하나의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즉, <자본론> 1권에 수록된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뿐만 아니라, 이미 총자본의 재생산에 대한 분석이 수록되어 1885년 간행된 2권 역시 러시아 교양인의 공유 재산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논쟁에 본질적으로 다른 특징을 부여했다. - P433
‘인민주의적‘ 노선을 대변하는 두 명의 이론가 가운데 한명은 주로 글을 쓸 때 사용하는 가명인 V. V.‘(이름의 머리글자)로 알려진 보론초프였다. 그의 경제학 이론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며, 이론가로서는 유별나게 경건한 사람이어서 결코 진지하게 인정받지 못했다. - P434
이에 반해 니콜라이온²³⁹은 광범위한 교육을 받았고 마르크스주의에 정통했으며, <자본론> 1권 러시아 번역본의 편집자였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친구였다.
239) (옮긴이 주) 니콜라이온(Nikolai-on, 1844~1918): 니콜라이 프란체비치다니엘손(Nikolai Frantsevich Danielson), 러시아의 경제학자, 자신을마르크스주의자로 간주했지만, 소위 정이라고 자처하던 레닌과 스트루베에 의해 강하게 비난받았다.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인민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으로 유명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최초로 러시아어로 번역했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죽을 때까지 연락을 취했다. - P434
. 왜냐하면 그들 각자는 여기서우리가 접근하는 영역의 이론에 대해 완결된 비판을 가하고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1890년대 러시아의 사회주의 지식인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고, 마르크스학파의 확실한 승리로 종결된 부분적으로 빛나는 일련의 논쟁은 러시아의 학문에서 역사 경제적 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도입을 공식적으로 개시했다. - P436
제20장
니콜라이온
‘인민주의적‘ 비판의 두 번째 이론가인 니콜라이온은 보론초프와는 다른 경제적 기초 지식과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작업에 착수한다. 러시아 경제 관계를 근본적으로 잘 아는 이론가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이미 1880년 농업 소득의 자본화에 대한 논문 [<<평론(Slowo)≫에 발표]을 통해 주목을 받았었다. - P452
자본주의 경제 양식에서는 판매 시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자본주의 국가는 가능한 한 거대한 판매 시장을 확보하려고 한다. - P452
전혀 새로운 사회적 노동의 연간 생산물은 노동자들이임금의 형태로 취하는 부분과 자본가들이 취득하는 다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P453
첫째 부분은 순환으로부터 일정한 양의 생필품만을 뽑아낼 수 있다. (중략). 자본주의 생산이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들의 부업이었던 업종을 점차장악하는 방식으로 농민층에서 생계 밑천을 찬탈해 농촌에 거주하는 인구의 산업 생산물에 대한 구매력이 점점 더 줄어들게 된다. - P453
(전략), 둘째로 자본주의 생산이 성장함에 따라 광업, 기계 산업 등처럼 생산수단의 생산을 행하는 분야도 성장하는데, 이 분야의 생산물은 사용 형태 때문에 처음부터개인적 소비가 불가능하며, 생산 수단은 자본으로서 기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셋째, 저렴한 상품의 대량 생산에 도달할 수 있는 더 큰 노동 생산성과 자본 절약으로 인해 사회적 생산은 점점 더 한 줌의 자본가들에 의해 소비될수 없는 바로 이러한 대량 생산물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 P454
어떤 자본가의 잉여가치가 다른 자본가의 잉여 생산물에서 실현될 수 있고 그 반대도 역시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단지 특정한 분야, 즉 생필품 분야에만 해당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의 핵심 동기는 개인적인 소비 욕구의충족이 아니며, 이러한 사실은 생필품의 생산이 일반적으로 생산 수단의 생산과 비교하면 점점 더 줄어드는 데서 나타난다. - P454
인민대중의 실제적인 욕구는 생산자들이 생산 수단과 하나로 결합되는 ‘인민주의적‘ 생산 양식이 우위를 점하는 정도에 따라 더 잘 충족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이러한 생산 영역을 장악하려고만 하며, 이렇게 함으로써자신의 번영의 핵심 요인을 파괴하려고 한다. - P456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자본주의의 한계가자본주의 자체의 발전이 야기한 빈곤의 증가와 구매력을전혀 소유하지 못한 남아도는 노동자 수의 증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지불 가능한 모든 사회의 수요를 특별히 급속하게 충족하는 노동생산성의 증가는 수가 증가하는 인민대중이 자신들의 가장 긴급한 욕구를 충족할 무능력이 증가한다는 것과 일치한다. - P456
이러한 사실이 니콜라이온의 일반적 견해다.²⁵⁰ 우리는그가 마르크스를 알았으며, <자본론> 1, 2권을 매우 잘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50) ≪개혁 후의 우리 국민경제에 대한 논문들≫, 특히 202~205쪽, 그리고338~341쪽과 비교하라. - P457
재앙이 이미 폭넓게 번창했지만, 되돌리기에 너무 늦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임박한 무산계급화와 몰락에직면해 크림 전쟁 후 필요했던 알렉산더 개혁과 같은 경제정책의 완벽한 개혁이 러시아에서는 긴박하게 필요하다. 니콜라이온이 추천하는 사회 개혁은 철저하게 공상적이며, 러시아 ‘인민주의자‘가 70년 후에 쓴 것을 고려한다면, 시스몽디보다 소시민적이고 반동적인 면에서 더욱 극단적이라는 것이 드러나 보인다. - P459
즉, 자본주의적 발전으로부터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느냐, 자본주의적 발전으로 나아가 몰락과 죽음을 맞이하느냐가 그것이다.²⁵²
252) 앞의 책, 322쪽부터,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러시아의 상태를 다르게 판단한다. 그는 러시아에서 거대 산업의 발전은 피할 수 없으며, 러시아의 고통은 단지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모순이라는 사실을 니콜라이온에게 반복적으로 명확하게 하고자 했다. 그는 1892년 9월 22일 다음과 같이 썼다. "이제 나는 오늘날의 산업 생산은 증기, 전기, 자동방적기와 방직기그리고 기계 자체를 기계로 생산하는 것과 같은 거대 산업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에 철도가 도입된 그날부터 이러한 근대 생산 수단의도입은 이미 피할 수 없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기관차, 화물차량, 철도를 보수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당신들이 보수하려고 하는 생산수단을제조할 수 있다면 저렴하게 할 수 있다. 전쟁 물자(장갑함, 나선형 화포, 속사 연발대포와 속사 연발, 강철로 만든 총알 그리고 무연화약 등)가거대 산업의 한 분야가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 모든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거대 산업은 정치적으로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 모든것은 고도로 발달한 철강산업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철강 산업은 이에 부합하는 다른 산업 분야, 특히 섬유 산업의 발달 없이는 역시 불가능하다." 그리고 같은 편지에서 아래와 같이 전한다. "러시아 산업이국내시장에 제한되어야 하는 한, 러시아 생산물들은 단시 국내 수요만을충족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국내 수요는 단지 천천히 성장할 수 있으며, 현재의 러시아 조건에서는 내 생각처럼,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거대 산업이 국내시장을 창출한 것과 동일한 과정을 통해 국내시장을 파괴하는 것은 거대 산업의 필연적인 후속 현상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거대 산업은 농민의 가내공업의 토대를 파괴함으로써 국내시장을 창출하지만, 가내공업 없이 농업이 생존할 수 없다. 농민으로서 농민은 몰락한다. 이들의 구매력은 최소한으로 축소될 것이다. 그리고 농부들이 프롤레타리아로서 새로운 생존 조건에 적응하기까지, 이들은 새롭게 생성되는 공장에 매우 작은 시장의 역할을 한다. 일시적인 경제 단계로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내적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내적 모순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발전될 수 있는 정도까지 발전하고 명백해진다. 시장을 창출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이러한 경향은 이러한 모순들 가운데 하나다. 다른 모순은 자유로운 세계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가진 국가들보다 해외시장 없는 국가인 러시아 같은 나라에 나타나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자유로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국가들은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을 새로운 시장의 폭력적인 개방을 통한 무역의 확장을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무역 확장은 진퇴유곡에빠진다. 영국의 경우를 보자! 일시적인 번영을 가져다줄 수도 있는 영국무역에 개방된 마지막 시장은 중국이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은 중국에 철도를 건설하는 것에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중국에 철도를 건설하는 것은 중국 소규모 농업과 가내 공업의 모든 토대를 파괴하는 것을의미했다. 그리고 이러한 파괴를 상쇄할 중국의 거대 산업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가는 것을 불가능하게했다. 그 결과는 세계적으로 이전에 발생하지 않았던 아시아, 유럽 그리고아메리카로 증오의 대상이던 중국인의 대량 이민이었다. 이러한 중국인의 범람은 아메리카, 유럽 그리고 호주의 노동자들을 세계에서 가장낮은 중국의 생활수준을 기준으로 중국 이민자와 경쟁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아직 유럽의 생산 양식이 근본적으로 변형되지 않았다면, 이제 그 변화가 필연적이 되었다≪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니콜라이온에게 보낸 편지> (1908, 페테르부르크, 로파틴(Lopatin)이 러시아어로 번역), 79쪽, < 엥겔스가 니콜라이 다니엘손에게 보낸 1892년 9월 22일자 편지> MEW, 38권, 467,469~470]. 이러한 편지에도 불구하고 엥겔스는 러시아에서 사건의 전개를 추적했으며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직접 러시아 논쟁에 의도적으로 간섭하는 것은 거부했다. 이에 대해서 엥겔스는 사망하기 바로 전인 1894년 11월 24일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내 리시아 친구들은 계속 러시아 잡지나 서적들에 대답하라고 나에게저돌적으로 요청했다. 이 잡지나 서적에서 우리 저자들(마르크스와 교환한 편지에서 이렇게 표현되었다)의 주장이 들리게 해석되었을 뿐만아니라, 틀리게 인용되었다. 그들은 내가 개입하면 모든 문제를 충분히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요청을 나는 계속 거절했다. 왜냐하면, 논쟁에 개입하려면 긴급하고 중요한 내 작업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논쟁은 멀리 떨어진 국가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알려진 서부유럽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나는 기껏해야 논쟁을 담은 인쇄물 가운데 단지 때때로 완전하지 않은 문서만을 접할 수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논쟁을 철저하게 따라가면서 논쟁의 모든국면과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도처에서 우리는물러서지 않고 불공정한 술책을 통해 자신이 한 번 취한 입장을 부끄러움 없이 방어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종류의 저술이 우리의 작가들에 의해 쓰였다면, 나는 논쟁 참여자들이 나에게 공정하지않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도 두렵고, 결국 내가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방어하기 위해 논쟁에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두렵다"(앞의 책, 90쪽, <엥겔스가 니콜라이 다니엘손에게 보낸 1894년 11월 24일자 편지> MEW, 39권, 328쪽). - P460
당시 엥겔스는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부르주아지 노선을 따르는 러시아의 계속적인 발전은러시아 정부가 총검과 채찍으로 개입하는 것과 무관하게 공동체-소유를 러시아에서도 점차로 파괴할 것이다(혁명적인 인민주의자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 세금과 고리의 압력으로 토지에 대한 공동체 소유는 더 이상 바람직한 것이 아니며, 족쇄가 된다. 농부들은 방랑하는노동자로서 생계를 잇기 위해 가족을 버리거나 데리고토지에서 자주 탈출하며, 그들의 토지를 고향에 남겨 둔다. 우리는 러시아에서 공동체-소유가 이미 오래전에 전성기를 지났으며, 모든 외관에 의하면 해체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²⁵³
253) 엥겔스, <난민에 대한 문헌, 러시아로부터의 무리(FlüchtlingsliteraturSoziales aus Rußland)> MEW, 18권, 564쪽. - P462
다시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사건의 변화는, 자본주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전혀 다른 역사적 여건에서 숙명적인 논리에 의해 반동적인 공상주의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 1819년의 프랑스와 1842년의 독일, 그리고 1893년의 러시아가 그러하다.²⁵⁴
254) 덧붙이면, 인민주의적 비관론 옹호자들 가운데 생존자들, 특히 보론초프는 그들의 지능보다는 성격에 더 많은 명예를 준 최근 러시아에서 발생한사실도 상관없이 자신들의 견해에 끝까지 충실했다. 1902년 보론초프는 1900~1902년에 발생한 공황을 지적하면서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네오마르크스주의의 교조적인 교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급속하게 힘을 잃고 있다. 그리고 개인주의가 이룩한 최근의 성공이 근거가 없다는 사실은 개인주의의 옹호자들에게조차도 분명해졌다. 따라서 20세기 처음 10년 동안 우리는 1870년대 세대가 러시아의 경제 발전에 대해・서 자신들의 후계자들에게 물려준 것과 동일한 견해로 되돌아갔다"[평론국민경제> 1902년 10월호를 참조하라. ≪현재의 러시아 경제, 1890~1910≫ (페테르부르크, 1911), 2쪽). 현재도 역시 인민주의의 마지막이론가인 보론초프는 이러한 사실이 자기 이론의 ‘근거 없음‘이 아니라, 경제적 현실의 ‘근거 없음‘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결론짓는다. - P464
제22장
불가코프와 마르크스 분석에 대한 그의 보완
‘인민주의‘ 회의론의 두 번째 비판가, 불가코프는 곧바로 자본주의 축적을 구제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으로서 스트루베의 ‘제3자들‘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 P476
마르크스가 <자본론> 2권에서 제기한 것처럼, 불가코프는 모든 문제를 처음부터 사회적 총생산물과 그것의 재생산을 분석함으로써 제기했다. 그는 탁월하게도 축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단순 재생산에서 시작해야 하며, 단순 재생산의 메커니즘을 완전히 명백하게 설명해야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 P477
우리는 불가코프가 마르크스 이론의 단호하고 열광적인지지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해외시장 없이는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는 학설에 대한 이론적 검증을자기 연구의 과제로 표현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저자는 매우 유용하지만 학문에서-이유는 모르지만 거의 활용되지 않은, 마르크스가 <자본론> 2권 2부에서 제공한 사회적 재생산에 대한분석을 이용했다. 비록 마르크스의 분석을 완결된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 분석에 존재하는 그대로의 견해가 니콜라이온, 보론초프 그리고 다른사람들이 스스로가 만들고 마르크스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는것보다, 판매 시장 문제에 대한 하나의 다른 해결을 위한 충분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²⁶⁵
265) 불가코프, ≪자본주의 생산의 판매 시장에 대해서, 이론적 연구(Überdie Absatzmärkte der kapitalitischen Produktion. Eine theoretischeStudie)≫(모스크바, 1897), 2~3쪽. - P478
불가코프는 자긴이 마르크그 자체에서 이끙어 낸 해결책을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특정한 조건에서, 자본주의는 단지 내부시장 덕분에 생존할 수도 있다. 즉, 단지 외부시장만이 자본주의 생산에서 발생하는 잉여를 먹어 치울 수 있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내재한 고유한 필수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언급된 사회적 재생산의 분석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저자가 도달한 결론이다."
이제 불가코프가 위의 테제를 증명하는지 기대해 보자. - P479
그런 다음 그는 역시 우리에게 잘알려진 마르크스의 확대 재생산 공식을 인용한다. 그리고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찾고자 했던 증거가 제출되었다.
"이미 언급된 사실에 근거해서 어디서 축적이 이루어지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I부문(생산수단 생산)은 자신과 II부문(소비 수단 생산)의 생산 확대에 요구되는 추가적인 생산 수단을 제조해야 하는 반면에, II부문은 다른 한편으로는, I부문과 II부문의 가변자본의확대에 요구되는 추가적인 소비 수단을 공급해야 한다. 화폐순환을 무시한다면, 생산의 확대는 부문의 추가 생산물이 II부문과, 그리고 II부문의 추가 생산물이 부문과 교환되는 것으로 축소할 수 있다."
불가코프는 여기서도 역시 충실하게 마르크스의 설명을따라하며, 마르크스 테제가 지금까지도 단지 서류상으로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 P480
우리는 불가코프가 마르크스의 공식에서 베낀 비율이확실하다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생산이 확대되어야 한다면, 생산의 확대가 이 공식에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확실하다. 하지만 불가코프는 핵심 문제를 간과했다. 즉, 도대체 그가 연구하고 있는 메커니즘을 가진 확대는누구를 위해 발생하는가? 축적이 수학적 비율로 종이 위에서 설명되기 때문에, 핵심 문제는 이미 해결된다. - P480
불가코프는 국내에서 일정한 양의 상품을 유통하기 위해 이 상품의 일정 부분이 잉여가치를 나타내는지는, 어느정도의 화폐가 필요한지에 대한 문제에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는 관점을 계속 발전시킨다.
"하지만 도대체 국내의 어디서 화폐가 오는가라는 일반적인 문제는 화폐가 금 생산자에 의해 제공된다는 의미에서해결된다." 국내에서 생산의 확대로 더 많은 화폐가 필요하게 되면, 이에 따라 금 생산도 확대된다.²⁶⁶ 따라서 여기서우리는 최종적으로 운 좋게 이미 마르크스에게 뜻밖의 해결사 역할을 한 금 생산자에 도달한다. 우리는 불가코프가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새로운 해결책을 긴장하며 기대하고 있는 우리를 속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문제에대한 불가코프의 해결책은 마르크스가 제공한 분석을 조금도 넘어서지 않는다. 그의 해결책은 매우 간단한 아래의 세문장으로 축약된다.
266) 앞의 책, 50~55쪽. - P482
(전략).
불가코프! 참훌륭하다! 아주 잘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불가코프는 제기된 문제, 즉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 의해자본화된 잉여가치가 실현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유일한 설명을 스스로 ‘부정했다. 더욱이 불가코프는자신의 주장을 부정하는 데서 마르크스가 이미 모든 사회적잉여가치를 삼키는 금 생산자에 대한 가설을 한 단어로 ‘불합리‘라고 표현한 것을 상세하게 설명한 데에 불과하다. - P485
자본화된 잉여가치의 실현 문제를 상세하게 다룬 대부분의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불가코프에게 본질적인 해결책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 P485
바로 이러한 전제가 이제 마르크스주의자는 설명했다- 모든 오해의 근원이었으며, 여기서 회의론자들을 노심초사하게 한 잉여가치 실현의 상상에만 존재하는 어려움이 나타난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이 학파는 존재하지도 않는어려움들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 정상적인 자본주의 생산 조건에서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소비 기금으로 잉여가치의 일부분을 사용하는데, 생산의 확대에 사용하는부분보다 더 적은 부분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학파(인민주의자)가 상상하는 그러한 어려움들이 현실에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백하다."²⁶⁸
268) 앞의 책, 20쪽.. - P486
이 모든 "상상에만 존재하는 어려움들"은 마르크스의 러시아 제자들이 논쟁 상대자에게 지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는 데에서 인용한 마르크스의 두 가지 발견으로 사라진다. 첫째로, 사회적 생산물의 가치구이 v+m이 아니라 c+v+m이라는 사실이고, 둘째로, 자본주의 생산이 발전함에 따라이러한 가치 구성에서 부분의 비율이 v에 비해 점차로 커지는 것과 동시에 자본화되는 잉여가치 부분의 비율이 소비되는 부분에 비해 계속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 P487
(전략).²⁷¹
여기서 불가코프와 투간바라놉스키의 이론은 마르크스에게 직접 그 책임을 전가한다. 따라서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의 교훈을 여과 없이 그대로 추종해, 유기적으로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부분에서 불가코프는 자신의 이론이 마르크스의 확대 재생산 공식을 직접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더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 P490
그리고 다른 부분에서 불가코프는 자신의 이론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무례하게 주장한다.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된 생산물의 유일한 시장은 생산그 자체다."²⁷³
273) 앞의 책, 238쪽. - P491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와 생산 간 관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불가코프는 더 나아가 해외무역에 대한 완벽하게왜곡된 이론을 만들었다. 위에서 밝힌 방식으로 재생산을파악하려는 견해에서 해외무역이 설 자리는 실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모든 국가에서 자본주의가 발전의 시작부터 고양이가 꼬리를 물고 회전하는 것처럼 ‘자급자족하며, 스스로 끝없는 판매를 창출하고 스스로가 확대를 위한 자극제가 되는 알려진 ‘폐쇄된 순환‘을 형성한다면, 모든자본주의 국가는 경제적으로도 닫혀 있는 하나의 ‘자급자족하는 총체(통일체)일 것이다. - P492
스트루베가 바그너와 셰플러로부터 자신의세 개의 세계 제국 공식을 차용한 것처럼, 불가코프는 고인이 된 리스트(List)에게서 ‘농업상태(Agrikulturstand)‘와 ‘농업과 제조업 혼합 상태(Agrikulturmanufakturstand)‘의 두범주에 따른 국가들의 구획을 수용한다. 이러한 범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조업 상태‘와 ‘농업과 제조업 혼합 상태로 수정된다. 첫째 범주는 태생적으로 원료와 식량의 부족으로 골치를 앓고 있으며, 따라서 해외무역에 의존한다. 둘째 범주는 선천적으로 모든 것을 지니고 있으며, 해외무역을 무시할 수 있다. - P493
오늘날까지 독일 국민경제학이 남긴 귀한 가보인이이론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관계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것이 명확하며, 현재 세계적 차원의 교류(Weltverkehr)를 대략 페니키아 시대의 원리로 되돌렸다. - P494
(생략).²⁷⁶
276) 뷔허, ≪국민경제의 기원(Entstehung der Volkswirtschaft)≫, 5판, 147쪽. 이 분야에서 가장 최근의 업적은 좀바르트(Sombart) 교수의 이론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세계경제에 적응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좀바르트는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 문화민족들은 오늘날 (그들 전체 경제와갖는 관계에서) 상호 무역에 의해 더욱 강하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약하게 연결되고 있다. 오늘날 개별 국민경제는 100년 또는 50년 전보다 세계시장에 오히려 더 약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최소한, ・국제 무역의 중요성이 근대 국민경제에서 점점 더 증가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오류다. 그 반대가 옳다." 여기서 좀바르트는 국내시장의 확장이가능하지 않은 이유로 발생하는 해외시장의 필요성 증가와 국제분업의확대에 대한 가정을 부정했다. 그는 "개별 국민경제 각각이 점점 더 완성된 소우주가 될 것이며, 모든 산업에서 국내시장이 해외시장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신했다(≪19세기의 독일 국민경제≫, 2판, 1909, - P495
하지만 이러한 명백하고 특이한 결론을 제외하면, 해외무역에 관한 불가코프의 주장은 다시 한 번 본질적으로 잘못된 견해를 숨기고 있다. 자본주의적 잉여가치의 실현을위해 해외 판매 시장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고 믿었던 시스몽디에서 니콜라이온에 이르는 회의론자에 대한 불가코프의 핵심 반론은 아래와 같다.
"이 이론가들은 분명하게도 국내에서 판매될 수 없는자본주의적 생산이 야기하는 과잉을 영원히 해소할 수 있는 해외무역을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간주한다." - P497
다른 부분에서 불가코프는 러시아 인민주의자들이 잉여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발견했던 탈출구인 해외시장들이 "맬서스, 폰 키르히만 그리고 ≪군국주의와 자본주의≫의저자인 보론초프"에 의해 발견된 탈출구보다 훨씬 덜 유망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²⁷⁸
비록 불가코프가 마르크스의 재생산 공식을 열광적으로재현했지만, (중략). 즉, 그는 이른바 어려움의 탈출구로서 해외무역을 부정한다.
278) 불가코프, 앞의 책, 236쪽. 레닌은 동일한 관점을 더욱 단호하게 주장했다. "낭만주의자들은(레닌은 회의론자들을 이렇게 불렀다) 아래와 같이주장한다. 자본가들이 잉여가치를 소비할 수 없으며, 따라서 외국에 판매해야 한다. 그는 자문한다. 가령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생산물을 무상으로 외국인들에게 줄 것인가 또는 예를 들어 바다로 던져 버릴 것인가?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판매하며, 그들은 이에 상응하는 등가를 취한다. 그들이 생산물을 수출하면, 다른 생산물을 수입한다"(≪경제 연구와논문>, 26쪽, 레닌, <경제적 낭만주의의 특징을 위해≫, 레닌 전집, 2권, 156쪽). 덧붙이자면 레닌은 자본주의 생산에서 해외시장의 역할에대해서 스트루베나 불가코프보다 훨씬 올바른 설명을 했다. - P498
이와 같이 불가코프는 결국은, 비록 다른 길을 통했지만, 스트루베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즉, 그는 크로노스(Kronos)²⁷⁹가 자신의 자식들을 집어삼킨 것처럼 스스로자신의 상품을 집어삼키는 자본주의 축적의 자족과 자본의축적이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점점 강력하게 번식한다는 것을 공포했다.
279) (옮긴이 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첫 번째 티탄 세대의 지도자. 아버지를 멸하고 지배자가 되었으며, 그 역시 그의 아들들인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에 의해 정복당해 지옥에 유배된다. - P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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