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개막식은 성대하게 열렸다. 아영은 포스터가 잔뜩 놓인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것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 연구자들과 소셜미디어 아이디를 교환했고 오후에는 ‘고립 지역의 자연적 돔 형성과 종의 변이: 섬과 폐기장의 생태 분석‘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들었다. - P94
이틀째에는 아영도 한반도 자생식물 식생 변화에 대해 발표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는데, 그날 화제의 중심은 북유럽에서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덧생태계가 되어서였다. - P94
학회 행사가 열리지 않는 일요일 아침, 부서 사람들은 차를 타고 엔토토산으로 탐사를 떠났다. (중략). 제보자 루단과의 약속 장소는 아디스아바바 시내의 카페 나탈리였다. - P95
약속도 잡지 않았으면서 나오미를 찾아가야 한다고 우겨대는 루단을 도저히 설득할 수가 없어서, 아영은 결국 그를 따라 나섰다. (중략). "나오미, 나루단이에요 그 생태학자를 데려왔어요." - P98
"메일 읽었죠? 문 좀 열어봐요. 드디어 당신의 이야기를 증명할 기회라고요!" 아영과 루단은 또 한참을 기다렸다. 안에 있는 사람은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오미, 나오미! 당신 그 고집불통 좀 버려야 해요." (중략). "루단, 이렇게 마음대로 찾아오면 어떡하나? 난 당장 약초를다듬어야 해. 지금 안 하면 전부 썩어버린다고, 약초값은 자네가대출 거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돌아가게." - P99
아영은 심호흡을 하고말했다. "나오미, 저는 한국에서 온 생태학자 아영이라고 해요. 모스바나에 대한 이야기를 꼭 듣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다른 방도가 없어서 루단을 통해서 연락드리게 된 것, 정말 죄송해요. 잠깐만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요? 오래 끌지 않을게요. 당신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꼭 당신에게 들어야 하는 이야기예요...." 이번에도 무시하거나, 뭐라고 불평하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뜻밖에도 다시 문이 열렸다. - P100
허름한 외관과 달리 집안은 아늑했다. 약초 치료사로 유명한 자매의 집이니 짙은 약초 냄새가 나지 않을까 상상했지만 약초냄새는 커녕 약초 치료사가 다룰 법한 물건 하나 보이지 않았다. - P101
"마음 같아서는 다 치워버리고 싶은데, 아마라의 얼굴을 봐서 참고 있답니다. 우리 이야기는 제대로 들어주지 않으면서 저런 공헌패만 주고 입막음이라니." 아영은 당황했다. 나오미는 아영의 앞에 커피잔을 놓았다. "액자까지는 그러려니 하지요. 수납장에 공헌패들을 세워놓자고 한 건 아마라였어요. 아마라도 십 년 전까지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제 아마라는 우리가 정말로 누구였는지, 무엇을 했는지 다 잊어가고 있어요. 대신 그 기억의 위치에 저 허구의 이름들을 채워넣었죠. 치료사이니, 마녀이니, 재건의 영웅이니 하는말들이요. 뭐, 우리가 처할 수 있었던 훨씬 더 나쁜 위치에 비하면 지금은 그럭저럭 괜찮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 P102
나오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아영 씨, 식물생태학자라고 했지요? 제가 아영 씨에게 줄 수있는 정보는 거의 없을 겁니다. 저는 식물은 잘 몰라요. 약초학자라고 부르기에는 형편없지요. 저보다는 차라리 아마라가 더 잘 안답니다. 안타깝게도 시기가 안 좋았네요. 아마라가 있을 때왔다면 당신도 유용한 정보를 좀 얻어 갔을 텐데 말이에요." 아영은 나오미가 자신을 한국식으로 ‘아영 씨‘ 하고 부르는 것이 신기했다. - P103
"제가 알고 싶은 건, 굉장히 기이해 보이는 이 식물의 역사에요 저는 이 식물의 숨은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은 이 식물의 역사와 함께한 사람이죠. 재건 초기의 구술사에서당신의 이름을 많이 보았어요. 그때까지 아직 이 식물은 ‘모스바나‘라는 이름으로는 잘 불리지 않았지만, 대신 각 지역의 ‘영광‘ 을 의미하는 이름이 붙었더군요. 당신과 아마라는 약용식물을 이용한 치료, 특히 모스바나를 이용한 민간 치료로 유명해졌죠. 구술사의 증언자들에 따르면 당신이 모스바나를 에티오피아 곳곳에 도입한 장본인이라고도 했고요. 정말 많은 사람들을 구하셨다고 들었어요." - P104
나오미가 미소 지었다. "그러니 아영 씨는 모스바나에 치료 효과가 전혀 없다는 것도 이미 찾아봤겠네요. 그것도 식물학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니 말이죠." 나오미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말에 아영은 말문이 막혔다. - P104
"그렇다면, 모스바나에는 정말로 약효가 있다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그걸 약으로 쓰는 건 독을 들이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모스바나는 인간에게 매우 해로운 식물이랍니다." (중략).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스바나를 약초로 써온 건가요?" 나오미가 웃었다. - P105
"맞아요 나오미, 그래도 저는 모스바나가 그런 지독한 식물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요. 그게 당신을 만나려고 한 진짜 이유예요." 아영의 말에 나오미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모스바나가 이상 증식중인 해월에서 기이한 푸른빛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그리고 저는 그 푸른빛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죠. 왜냐하면 저도 어린 시절, 우연히 한 노인의 정원에서 그런 것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 마법 같은 현상의 원인을 찾아야 했어요. 그러다 루단을 알게 됐죠 루단은 나오미 당신이 그 덩굴식물의 푸른빛에 대한 진실을 안다고 했고요" - P107
"당신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라면・・・・・・ 그건 정말로 기이한 일이군요. 푸른빛의 모스바나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아요. 수십년 동안 모스바나는 세계로 퍼져 나갔고, 모스바나의 특성은 처음 그 식물이 가졌던 것과 너무 달라져버렸어요." 자리에서 일어선 나오미가 액자들이 잔뜩 걸린 벽면 앞으로다가갔다. 나오미는 벽면 앞의 서랍장을 열더니, 한참이나 무언가를 찾았다. 아영은 나오미를 조용히 기다렸다. - P108
나오미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사진은 언뜻 보았을 때는 그저까맣게만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사진 한구석에 희미한 구형의 빛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좋아요. 딱 한 번만 더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쩌면 당신이 말한 정원의 주인은 제가 아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당신은 답을 아직 알지는 못하지만, 답을 찾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지요. 그곳으로 가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지금 아영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모스바나에는 아주 긴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아영은 테이블 위에 노트와 펜, 녹음기를 올렸다. - P109
2장 프림 빌리지
조호르바루의 돔 시티는 이미 몇 달 전에 파국을 맞이한 것처럼 보였다. 돔 벽은 무너졌고, 철교는 끊겼고, 야자나무들은 모두까맣게 말라붙었다. 아부 바카르 사원의 외벽에 빛 바랜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한때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을 관광지의 흔적은 이제 사라졌다. - P113
지난 며칠 동안 아마라와 시내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았다. 시체들을 밟지 않게 애쓰며 시장 좌판과 가게를 뒤졌다. - P114
안쪽 골목에서 발견한 이 집을 차지한 지 일주일째였다. 이층으로 된 집은 허름했지만 몸을 숨기기엔 적당했다. 찬장에서 오래된 과자와 초콜릿, 차를 발견했는데 하나같이 맛이 끔찍해서그냥 가지고 있던 영양 캡슐을 먹기로 했다. 가공식품은 화폐로도 쓸 수 있을 만큼 귀하지만, 함부로 먹었다가 탈이 나면 그게 더 큰 일이니까. - P114
무작정 여기 머물 수는 없다. 어떤 곳이든 열흘 이상 머무르지않는 것이 믈라카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 P114
아마라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우리가 11월 8일에 집을 떠난건 또 어떻게 기억하냐고 물었다. 언니는 요즘 기억에 민감하다. 자신의 기억이 예전보다 불완전하다는 걸 약간 눈치챈 것 같다. 정확히 어떤 기억을 잃었다고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라는자꾸 무언가를 잊는다. - P115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상자에 남아 있던 캡슐 두 개를 이번에는 내 입에 넣었다. 이상한 맛이 났다. 썩은 고무 맛 같기도 하고 오래된 종이 맛 같기도 했다. 랑카위에서 도망친 이후로 우리의 주식은 늘 영양 캡슐이었는데, 한 번도 먹을 만하다고느낀 적이 없었다. "전에도 영양 캡슐 먹어본 적 있어? 더스트 폴 이전에." "먹어보려고 한 적은 있는데, 엄마가 말렸어. 애들은 못 먹는거라고." - P116
(전략). "가버렸나봐. 집들도 허름하고, 건질 게 없으니까." 그 순간 탕, 탕, 하며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라의 표정이 굳었다. 아래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괜찮아, 금방 갈 거야.‘ 나는 그렇게 속삭였지만,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 P118
제발 떠나달라는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 다락문이 쾅 진동했다. (중략). 제일 앞에 선 건 삐쩍 마르고 곱슬머리가 심한 여자였다. 그 뒤로 다른 여자들도 보였다. 모두 넷이었다. 곱슬머리가 히죽거리며 물었다. "어라, 꼬맹이들. 우리가 좋은 시간을 방해한거냐?" (중략). "골목 뒤에 호버카가 한 대 있던데 꼬맹이들이 갖기에는 너무 좋은 물건 아닌가? 넘겨주면 우리가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텐데." - P119
이번에 찾아온 내성종들은 조호르바루 돔 입구의 속임수를 쉽게 알아차렸다. 말하자면, 우리가 일주일이나 사냥꾼들의 눈을 피해가며 이곳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고장난 경보기 덕분이었다. (중략). 경보기를 몇번 테스트해보고 우리는 저 경보기가 아주 이로운 방향으로 고장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 P120
"그래도 그 눈에 띄는 호버키는 어떻게든 좀 숨기는 게 좋을거다. 사냥꾼들에게 들켜 죽는 게 아니면 우리가 훔쳐갈 거니까." 여자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장난 경보기를 마음에 들어했다. 다른 폐허에 머물 때는 사냥꾼들이 툭하면 들이닥쳐 생체 감지기를 들이대서 그 초음파 소리에 노이로제가 생겼는데, 여기는 사냥꾼들이 얼씬도 하지 않겠다며 히죽거렸다. - P121
모닥불 앞에 앉자 캠핑을 하러 온 기분이 들어서, 나는 그렇게 느끼는 스스로에게 조금 놀랐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캠핑이라니. 나와 아마라는 소리를 낮춰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우리보다 좀더 컸다. (중략). 다음날, 나는 배탈이 나서 죽을 뻔했다. 그들이 우리를 속이고 사냥꾼들에게 팔아넘기거나 돌핀을 뺏으려고 일부러 상한 비스킷을 준 줄 알았다. 그런데 골목에 있는 낡은 공용 화장실로 가보니 타티야나가 죽을상을 짓고 문 앞에 널브러져 있었다. "스테이시...... 스테이시를 죽여야 해. 분명 우릴 살해하려고한 거야. 입을 하나라도 줄이려고." - P122
우리는 그들과 며칠 더 같이 머무르기로 했다. 집은 따로 썼지만, 저녁마다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다. 그들은 모닥불 앞에서, 때로는 휴대용 램프 앞에서 자신들이 거쳐온 폐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와 아마라는 주로 가만히 듣는 쪽이었다. - P123
"그런데 저 호버카는 어디서 구한 거야?" "아, 그건......‘" (중략). "그런 걸 물어보면 우리가 강탈이라도 할 것처럼 들리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저런 건 구하기 힘드니까. 꽤 솜씨가 좋나보나 해서." - P123
"어차피 지금은 없어진 연구소니까....." 나는 우리가 몇 달 전까지 갇혀 있었던 연구소에 대해 이야기했다. 믈라카의 대피소에서 연구원들이 건강 상태를 확인하겠다며 피를 뽑아 간 다음, 어느 날 갑자기 랑카위의 연구소로 옮겨졌던 것, 처음에는 잘 대해주겠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던 것, 그리고 우리에게 가해진 가혹한 실험들까지. - P124
"돔 시티가 아니라 마을이요? 아직 남아 있는 마을들이 있나요?" "그렇지. 돔 시티를 흉내 낸 마을, 허술한 돔을 씌운 아주 작은곳들이지. 집 서너 채에 불과한 동네도 있고, 백 명 정도는 살 만큼 제법 그럴싸하게 꾸려놓은 마을도 있어.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보호복을 완전히 벗고 살 수는 없지. 돔 틈새로 더스트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조악한 포집기를 하루 종일 가동해야 하니까. 헬멧에 금이라도 갔다간 폐가 굳어버리기 십상이고, 그러니 돔시티에 비해서는 형편없는 생활을 할 수밖에." - P125
마오와 스테이시는 마주보더니,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 소문은 들었어. 그곳에 사는 녀석들끼리는 프림이라고 부르는 곳인데, 거대한 온실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그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아마라의 질문에, 이번에는 곱슬머리가 끼어들었다. "그걸 찾을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 P127
그날 밤 아마라는 침대에 누워 내게 속삭였다. "저 사람들, 믿지 마.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 나는 아마라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았다. 우리가 여태까지 당한 일들을 떠올렸다. 이유 없는 친절은 없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도 없다. 그러니 호의를 최대한 이용하고, 그들이무언가를 바라기 시작할 때 도망쳐야 했다. 조호르바루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어떤 청년은 나흘이나 자기집 창고에 우리를 머물게 해주었다. - P127
이틀 뒤에 우리는 조호르바루의 외곽 지역을 탐색했다. 여자들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여자들은 겹치지 않게 구역을 나누자며, 안쪽 지역의 남은 물자를 꼼꼼히 살펴보겠으니 우리에게는 외곽을 탐사하고 돌아오라고 했다. - P129
조호르바루 외곽은 예상대로 처참한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는손상되지 않은 영양 캡슐을 몇 상자 찾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식료품 창고를 발견한 일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창고 안쪽에 더스트 과포화 지대가 생겨서 누구도 접근할 엄두를 못 낸 것 같았다. - P129
물자들을 돌핀에 싣고 나서, 나는 아까부터 자꾸 신경쓰였던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작은 책방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쉬다 가자." 사람들은 도망치면서 책에는 거의 손대지 않았다. 바닥에 몇권의 책이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책을 주워 넘겨보았지만 내가ㅜ읽을 수 없는 말레이어였다. - P130
잠시 잠들었다가 깨어났을 때 나는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아마라가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있었다. 창밖이 붉어서 노을이 지나 했는데 일어나서 다시 보니 안개 같았다. 더스트 급증의 신호였다. "돌아가자, 언니, 여긴 위험해." - P130
"언니, 내가 가서 보고 올게. 여기 있어." "안돼. 같이 가." 아마라는 기침하느라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보였는데 나 혼자 보낼 수는 없다고 우겼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걸었다. 발걸음 소리조차 너무 크게 들릴 정도로 수상한 정적이 도사리고 있었다. 모닥불 흔적이 남은 공터를 지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 우리가 살던 집에 가까워졌을 때였다. - P131
"그 내성들, 거짓말은 안 했나보군." 보호복으로 얼굴을 감춘 남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희 얘기를 해주던데. 스무 살은 더 어리니 비싸게 팔릴 거라고." 아마라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했지만 나는 가까스로 주머니를 더듬었다. 우리는 동시에 품에서 더스트 탄을 꺼내 던졌다. 연구소에서 훔쳐온 것이었다. 사냥꾼들이 욕을 하며 우리를 쫓아왔다. - P132
골목을 벗어나는 순간 사냥꾼 한 명이 나를 따라잡았다. 다른 사냥꾼들보다 더 두껍게 보호복을 껴입어 움직임이 둔했지만 나를 잡기에는 충분한 덩치였다. 그에게 거의 붙잡힐 뻔한 순간 나는 스테이시의 겉옷을 펼쳐 그의 시야를 가렸다. - P133
하지만 돌핀이 폐허를 빠져나왔을 때, 아마라가 조종 장치를 붙잡은 채 울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했다. 그들이 내게 해준 말도 기억하려고 했다. 아무것에도 마음 붙이지 말고 그냥 어디로든 도망치라고, 그러다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땐 정말로죽는 거라고. 마지막으로 그 이름들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타티야나, 마오, 스테이시, 그리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는다 잊어버릴 이름들이었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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