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르바루를 떠난 이후 아마라의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었다. 새로운 폐허에 도착할 때마다 가장 보잘것 없는 집을 찾아내서 덕트 테이프로 틈새라는 틈새는 모두 밀폐하고 잠들었지만, 며칠이 지나면 또다시 떠나야 했다. 오래 머물면 사람이있다는 티가 날 테니까. - P135
랑카위에서 도망쳤을 때 나와 아마라는 원래 믈라카 근처에서 엄마를 찾으려고 했었다. (중략). 그러나 지금까지는 도저히 행적이나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 P136
가끔 라디오 전파를 잡아 돔 시티에서 발신하는 방송을 들었다. 그 목소리에 실려오는 것은 죽음의 소식뿐이었다. - P136
나는 아마라가 나를 떠나버릴까봐 두려웠다. 이 끔찍한 세계에서 아마라마저 없다면 나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아마라는 자신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P137
돌핀의 상태도 점점 형편없어져서, 두 시간쯤 운전하고 나면 충전을 남은 하루 내내 해야 했다. 우리는 운신의 폭을 좁혀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 P137
"거길 찾아가자. 내성들이 살아 있다는 곳......" 아마라의 마음을 알 것 같으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다. 아마라는 이제 그런 소문에 매달릴 만큼 내몰려 있었다. (중략). 안전한 곳, 희망이 있는 곳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응, 언니, 거길 찾아가보자." - P138
도피처의 정보를 얻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애초에 쉬울 거라고예상하지도 않았다. 그런 도피처가 있다면, 함부로 외부인들에게 정보를 유출하지는 않을 테니까. - P138
수소문 끝에 진짜 좌표를 알고 있다는 내성들을 만났고 그대가로 결국 돌핀을 넘겨야 했다. 만약 아마라가 잠시라도 망설였다면, 나도 거기서 물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라는 너무 단호했다. 나는 그게 아마라가 희망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P139
좌표를 향해 차를 몰면서도 나는 정말로 도피처가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다. (중략). 그들이 알려준 곳은 한때 국립공원이었던, 이따금 등산객들이 드나들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인적이 끊긴 숲이었다. - P140
우리가 희망을 발견한 거야.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졌다. 괴한들이 우리를 둘러쌌고, 무기를 들이밀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아마라를 불렀다. 죽음이 코앞에 있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느껴졌다. - P140
나는 눈을 깜빧였고, 무언가가 내 눈을 단단히 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둠이 아니라 검은 천, 혹은 그와 비슷한 무엇이었다. "이름이 뭐지?" 여자로 추정되는 낮은 목소리였다. "대답해." "나오미 나오미 재닛." "이곳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나?" - P141
"소문을 들었어요. 믈라카에서…………… 랑카위 연구소에서도 그랬어요. 도피처가 있다고, 내성들이 모여 산다고 했어요. 좌표를 준 건 최근에 만난 내성종들이에요. 정확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국립공원이라는 것 정도…………… 우리는 한참 헤매야 했어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로 횡설수설했다. (중략). "랑카위 연구소라고?" - P142
"절 어떻게 하시든 괜찮아요. 그냥, 아마라 언니의 상태를 딱 한 번만 봐주세요. 연구소에서 혹독한 실험을 당해서 ・・・・・・ 그 이후로 건강이 나빠졌어요.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무슨 약을구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괜찮은지만 알고 싶어요." "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하지?" "저는 쓸모가 있을 거예요. 내성이 강하니까요. 실험을 하셔도괜찮아요. 너무 끔찍한 것만 아니면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랑카위 연구원들도 이런 완전 내성은 드물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아마라를 살펴봐주세요. 제발......" - P143
나는 있어서는 안 될 마을을 목격하고 있었다. 더스트 시대에는 존재할 수 없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이 있는 거예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돔 바깥에서는 모두 다 죽었다고요." - P146
여자는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여자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래. 모두 죽었는데, 이 숲만이 살아 있어. 정말 이상한 일이지." - P147
. 자신의 이름을 야닌이라고 알려준 그 여자는 나에게 주먹만한 빵 한 조각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료를 건넸다. "빵은 남겨도 되지만, 음료는 다 마시는 게 좋을 거야." 야닌은 무미건조한 태도로 그렇게 말하고 집을 떠났다. - P147
야닌은 나와 아마라가 이곳에 머물러도 되는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쓸모없는 여자아이들이니까, 쫓겨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만약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게 뭐든지 시켜만 준다면……………텅 빈 바구니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어차피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음식을 조금만 더 달라고 부탁할 걸 그랬다고 - P148
"이곳 사람들은 논의 끝에 우리를 받아들여주기로 했어." "논의가 아니라 고문이겠지. 눈을 가려놓고 무섭게 말했어."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마라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그건 그랬지. 여기 사람들 말로는, 새로운 입주자를 받지 않은지 거의 반년이 넘었다. 게다가 이곳의 정보를 밖으로 유출하는 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데, 우리가 밖에서 소문을 듣고 좌표까지 알아내서 찾아왔다는 게 그들에게는 일종의 위협으로 느껴졌다는 거야."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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