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브루스는 어쩔 수 없이 앞에나서서 상황을 통제해야 했다. 그가 의욕적으로 처음 한일은 고함을 지르며 환자들과의 상담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냥 약 먹여서 조용히 시키라는 거였다. - P64

"근데 네시의 부재로 여기 직원들은 자기 몫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하거든. 자네 방식으로 제 몫을 다해내지 못한다면 그땐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거야."
(중략). 거기에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 두 명의 이름과 함께
‘조셉 E.M‘이라는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 P65

"이런 미친, 파커!"
브루스의 걸걸한 목소리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렸다. (중략).
"내 방으로 와, 이 멍청한 새끼! 지금 당장!"
나는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서 있다가 그의 뒤를 따라갔다. 손에서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 P66

"대체 이게 뭐냐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업무량을 늘리라고 하셨잖아요. 힘 좀 보태려고요."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브루스의 호흡이 격렬해졌다.
"어떻게 이 이름을 알았지? 병원에 이런 환자가 있다고누가 말했어? 이게 누군지 알기나 해?"
"그럼요, 잘 알죠. 네시에게 들었어요." - P67

나는 화들짝 놀랐다. 등 뒤에서 들린 차분하고 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병원장 로즈였다. (중략).
"로즈, 여긴 웬일로・・・ 병동에 오면 저야 늘 반갑지만 무슨 일로..."
"누굴 좀 만나야 해서요."
로즈가 냉정한 태도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며 침착하게 답했다.
"그럼, 이 친구에게 인사 불만을 제기할 구실은 다 준 건가요?" - P68

"널 보호해 주려고 그런 거야. 네가 여기서 잘해왔으니까. 인정하긴 싫지만 잘했어. 그러니까 이 일에서 떨어지라고, 그러다...."
"나가요, 브루스. 당장"
그는 괴로운 표정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 P69

잠시 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 말해 봐요. 불치병 환자를 치료해보고 싶은 이유가 뭐죠?"
"글쎄요, 그 환자가 불치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환자와 얘기해 봤나요?"
"아뇨."
"그럼 한번 만나 보지 그래요?" - P70

"실은, 만나겠다고 하면 병원에서 해고될 줄 알았습니다.
다들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고했거든요."
"누가요?"
"그게・・・ 보시다시피, 브루스와・・・ 네시가요." - P70

"그러면 단념하고 싶지 않아요? 똑같은 일을 당할까 봐두렵지 않나요?"
"아뇨. 오히려 네시가 그렇게 되는 바람에 이 일이 제게도 중요한 문제가 돼버렸습니다."
"그렇군요. 자, 다음 질문. 아직 조와 얘기 안 해봤다고했죠. 그럼 진료 기록은 읽었나요?"
"아뇨." - P71

"최초 진단이 정확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굉장히 복잡한 소시오패스 환자를 다루고 있는 걸지 모릅니다. 70년대에 밝혀진 것보다 더 복잡한 환자를요. 가학적인 성격 장애도 분명히 있고, 일종의 정신적 조로증도 있어 더욱 성인처럼 보인 건 아닐까요? 무엇보다 특이한 건 주변 사람에게 망상을 일으키게 하는 능력인데, 흔치 않지만 가능한 일이죠. 그게 아니면 조가 사람의 감정을 거울처럼 비추는 장애가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기도..."
그녀가 손을 들어 내 말을 가로막았다.
"틀렸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만, 그래도 틀렸어요. 실은 정답을 알 수 없었을 거예요. 당신은 조의 서류를 못 봤으니까." - P73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 전에, 이제 와서 조를 격리시킨 진짜 이유가 뭐냐고묻는 건 무의미하겠죠?"
"좋은 질문이군요."
놀랍게도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재로서는 무의미하다고 해둡시다. 그래도 서둘러 대답하지 않고 질문으로 대신한 건 칭찬할 만하네요. 하지만 우선 방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한번 맞춰 봤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대답을 들어보고 괜찮았다고 생각하면 얘기해줄게요." - P75

"누구든 원하면 조와 얘기할 수 있다고 하셨지만, 정작아무도 그러지 않는다는 데서 시작해 보죠. 게다가 브루스는 내가 조를 치료하고 싶다고 하자 벌컥 화를 냈습니다. 이론적으로 정신과 치료는 대화로 시작해서 대화로 끝나기 마련인데, 누구나 조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지만
‘치료‘는 금지되어 있다는 건 조의 경우에는 구술 심리 치료 외에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뭔지는 몰라도 의사의 상담 이상의 무언가가요."
"잘못 짚었군요." - P76

그녀가 한 손을 들어 말을 가로막으려 했지만 나는 꿋꿋하게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병원장님은 이미 조가 불치병이라 판단하고 계세요.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러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걸 전부시도해봤을 텐데도 조가 계속 이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걸보면, 환자 가족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일 거예요." - P77

순간 나는 멈칫했다. 오싹한 기운이 서서히 엄습해 왔다.
"혹시, 그동안 조를 치료한 의사들이 있었다면... 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로즈가 손을 올려 천천히 박수를 쳤다.
"이제 내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이군요. 그러려면 먼저 같이 가야 할 곳이 있어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따라오는지 확인도 하지않고 브루스의 사무실을 나섰다. 나는 서둘러 뛰쳐나와그녀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는 말없이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병원장 사무실로 향했다. - P79

로즈가 오른편을 흘낏 보기에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의학위들이 눈에 띄었다. 명문 의대 졸업장과 의학박사 학위,
‘진리(Veritas, 하버드 대학교 라틴어 표어)‘라고 새겨진 문구, 미국 최고 병원에서 받은 레지던트 · 펠로우 과정 수료증, 두 개의 별도 전문의 자격증까지, 그야말로 진정한 ‘전문의‘였다. - P80

(전략).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고 의미심장하게 나를 바라본 뒤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조의 다음 의사는 6개월밖에 버티지 못하고 긴장병을일으켜 이 병원에 수용되었어요. 당신이 오기 한 달 전쯤 그녀가 어디서 날카로운 물건을 구해 목을 베지만 않았더라면, 조의 담당의였다는 것도 모르고 당신이 그녀를 치료할수도 있었겠네요. 아무튼, 그녀 다음에 우리는 조의 병세를 개선해 보고자 조금 거친 사람에게 치료를 맡겼죠. 군경력이 있고 다른 병원에서 정신 질환 범죄자를 중점적으로 치료하다 온 인물이었어요. 그는 18개월간 조를 치료하다 한 줄짜리 사직서를 남기고 자기 머리에 총을 쐈죠." - P8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잠깐이지만 차갑고 예리한눈빛 너머로 무언가를 보았다. 그것은 한때 나처럼 자신감넘쳤던, 그러다 환자 한 명이 본인의 인생과 주변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트리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없었던 분노에 찬 젊은 의사의 모습이었다.
"저를 시험하고 계셨군요."
내가 조용히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 P82

"그러면 곤란해요. 조를 치료할 거라면 그 질문의 답부터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게 당신의 첫 번째 방어선이죠.
사실 당신이 조를 치료하는 건 내 일이기도 해요. 내가 질문의 답을 알지 못하면 당신이 조를 처음 진료한 뒤 어떤악재가 우리 병원에 불어닥칠지 전혀 모를 테니까요. 다시생각해봐요. 천천히." - P83

"그렇다면 조가 그걸 바로 알아낼 거란 말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요."
그 말은 곧 ‘그렇다‘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 P84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거예요. 누군가를 구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제일 겁나요."
로즈가 정말로 깜짝 놀랐는지 눈썹을 치켜 올렸다. - P84

로즈는 그밖에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책상에서 빈 종이를 하나 꺼내 뭔가를 갈겨쓴 뒤 서명했다. 그러더니 그 종이를 내게 건넸다.
"브루스에게 갖고 가요. 지금부터 당신이 조의 담당의입니다. 언제라도 치료를 중단하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해줄게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내게 와서 정확하게 조가무슨 짓을 했기에 당신이 담당의로서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는지 낱낱이 알려줘야 합니다." - P85

"병원장이랑 마음 터놓고 얘기는 잘 나누셨나? 왜, 책상이라도 빼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브루스의 어깨위로 병원장이 준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고 그가 얼마나 놀랐을지 다들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 P86

"로즈가 널 똑똑하다고 본 모양이야. 안타깝네. 네가 하려는 짓 때문에 이 병원에서 제일 멍청하고 미친 새끼가 될게 뻔하거든. 앞으로 겪어보면 이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거린지 알게 될 거야. 반짝거리는 새 괴물 친구를 돌본다는핑계로 다른 일을 소홀히 하지 않기나 해. 계획서에서 하겠다고 적었던 건 전부 지키고."
(중략).
브루스가 피식 웃었다.
"아니, 전혀, 이제 내 시간 그만 뺏고 새 환자들한테 뭐라도 하러 가지 그래? 조에게 가보시던가." - P87

Part 4


조의 병실로 가는 길은 유난히 멀게느껴졌다. 복도 제일 마지막 방이었기 때문이다. - P91

로즈와 브루스, 무엇보다 네시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병실까지 걸어가면서 나는 문에 열쇠를 꽂고 손잡이를 당기면 충격적인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P91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의 방은 꽤나 넓고 밝았다. 다른병실보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병원 운동장이 한눈에 보여 답답한 느낌도 덜했다.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처음으로 든 생각은, 방이 주인에 비해 너무 크게 느껴진다는것이었다. 조는 병원 내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환자라고하기엔 너무 무방비하고 왜소했다. - P92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네, 좀 젊은 편이죠. 신경 쓰이세요?"
조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의사들은 선생처럼 젊지 않았어. 감동해야 하는건가?"
"감동이요?"
"선생 나이에 여기 들어오려고 누군가를 정말 열 받게했을 테니까." - P93

조가 한 번 더 어깨를 으쓱했다.
"난 여기 직원들, 특히 윗선을 짜증나게 하는 사람에게감동하지. 내게 선생이 동지로 보이거든. 게다가 나를 환자로 맡으려고 무슨 짓을 했건 개같이 힘들었을 테니까."
표현이 거칠어졌다.
"아니면 나이 먹더니 이제 될 대로 되란 건지."
"누구 얘기죠?"
"알잖아." - P94

"이봐요, 로즈는 돌팔이야. 멀쩡한 사람 정신병 환자로몰아서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곳에 30년 동안 가둬놓은 거라고. 그래놓고 이번엔 선생 같은 초짜를 다 보내네. 내가맞춰보지. 당신이 이 병원에 새로 온 가장 똑똑한 의사 양반이지? 아마 선생이, 아니 선생만이 나를 치료할 수 있다생각할 거야. 그치?" - P95

충격이었다. 이 사람이 우리 병원 최고의 골칫거리 환자라고? 조는 원망과 불만에 차 있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의식이 또렷해 보였다.  - P96

"그럼 당신이 멀쩡하다는 얘기인가요?"
"젠장,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조가 쏘아붙였다. - P96

조가 빈정대듯 웃으며 말했다.
"당신도 나하고 몇 분 같이 있어 보니 막 미쳐버릴 것 같겠지, 안 그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완전 할렐루야고. 근데 이거 어쩌나, 당신 그 똑똑한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자, 말해봐. 뭐 때문에 그렇게 얼굴을 찡그린 거야?" - P97

"네이선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당신 입장에서 얘기해주는 게 어때요?"
(중략).
"말하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볼게 있어."
"뭐죠?"
"껌 있어?"
조가 비뚜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P98

조가 생각에 잠겨 껌을 씹었다.
"음, 다들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 근데 실은... 그 녀석이날 꼬신 거야."
"믿기 어렵군요. 네이선은 고작 여섯 살이었어요. 당신은열 살이었고." - P99

조가 짜증스러운 듯 눈동자를 굴렸다.
"아무리 상황을 설명해도 그 사람들은 생각하고 싶은대로 믿었어.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더군. 뭐, 불평할마음은 없어. 적어도 숫총각으로 죽지는 않을 테니까. 총각 딱지를 그렇게 떼려던 건 아니었는데, 원하는 대로 다할 수는 없잖아?"
내키지는 않지만 조의 얘기는 그럴듯하게 들렸다. - P100

조는 분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그 사람들을 위협할 것처럼 보이나, 선생?"
"아뇨, 하지만 당신이 가스라이팅(Gas-lighting, 정신적 학대의한 유형으로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을 하는 거라면...."
"내가 뭘 한다고?" - P101

조는 잠시 그르렁대더니 바닥에 침을 뱉고 말을 이었다.
"당신네 그 대단한 병원장이 오기 전까지 내가 어떻게될 운명이었는지 아나, 선생? 본보기용 환자가 될 처지였다네. 토머스 새끼가 가장 무능한 의사들을 고르고 골라 나를 맡게 했어. 공식적으로 말이야. (후략)." - P102

여전히 미심쩍기는 했지만 웬일인지 조가 얘기를 할수록 안쓰럽게 느껴졌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동정하도록 했는지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건 조의 태도였을 것이다. 그는체념하고 있었다. - P103

인정한다. 아주 능숙한 사이코패스라면 이 모든 걸 속일수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 사이코패스가 상대의 감정을 조작하는 수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와의 만남 자체가 완벽하게 예상 밖이었던 데다 나 자신도 미숙했던지라 감정적으로 훨씬 휘둘렸던 것 같다. - P104

 모두 30년이상 한곳에 갇혀 지내며 주변인들의 정신 상태가 서서히 악화돼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환자에게서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었다. - P105

서류에 적혀 있던 온갖 무시무시한 얘기들과 반대로, 이 남자가부모에게 버려진 채 자금난과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병원에서 평생을 갇혀 지내야 했던 지독히 외로운 희생양일 뿐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설명을 찾을 수가 없었다. - P106

사무실에 도착해서야 나는 겨우 정신을 추슬렀다. 하긴이제 겨우 한 번 만났을 뿐이고, 조에게 제기된 혐의는 수두룩했다. - P106

규정에 어긋나지만, 그날 나는 조의 서류를 집에 가져갔다. 평소 사무실 문을 잠그고 다니는 로즈도 서랍 속에꽁꽁 숨기고 열쇠까지 채워 보관한 서류다. - P107

그날 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어린 시절 악몽을 다시 꾸었다. 끔찍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꿈이다 보니 평소 같으면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뒤에 일어난 일과 연관이 있어서 아무래도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후략). - P107

다행히 그날 밤 악몽은 되풀이되지 않았고, 다음날 병원에 출근했을 때는 간밤에 꾼 꿈을 어느 정도 잊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전날 가지고 갔다가 그대로 다시 가져온 조의 서류를 꺼내 살펴보기 시작했다. - P118

조의 첫 치료를 녹음한 테이프는 낡고 상당히 뒤틀려있어서 혹시 재생이 안 될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다행히약간의 마찰음이 나더니, 카세트 릴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 P118

병원에 수용되지만 않았다면 이 꼬마는 커서 대단한 공포 소설가가 됐을 것이다. 조와의 상담은 예상 외로 아주순조로웠다. 토머스는 조에게 ‘그 괴물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침착하게 설명하며, 원한다면 조종할 수 있을 거라고 알려줬다. - P121

두 번째 테이프를 처음 보고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알았다. 아주 오래된 마스킹 테이프 조각이 가늘게 붙어 있었는데 그 위에 ‘새벽 3시~4시‘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왜 한 시간만 녹음한 거지? 그때 문득 떠올랐다. - P122

그런데 20분이 지나자 테이프가 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무슨 소리가 들렸다.
서류에서 읽었던 조무사의 숨소리였다. 토머스가 과장한게 아니었다. 그건 의심할 여지없이 공황 발작을 일으키는 소리였다. - P122

나는 짜증을 내며 테이프를 되감았다. 내가 들은 소리는 뻔했다. 조무사가 밤새 조의 병실에 있기에 너무 겁이나서 도망친 게 틀림없었다. 물론 서류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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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고는 전문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웹 포럼이었다가 2012년 오프라인 형태로 전환되면서 폐쇄된 MDconfessions.com에 ‘나는 어쩌다 의학을 포기할 뻔했는가‘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원작자가 필명으로 쓴 데다 신원이 드러날 수 있는 내용은 세세한 부분까지 바꿔놓은 바람에 작가의 정체라든가 여타 등장인물이 누구인지는 알아내려 해도 알 수가 없었다. - P7

내가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나 자신이 미쳐버린 건지 현재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아 이 글을 쓴다. (중략).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기 등장하는 이름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면 좋겠지만 나도 의사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형편이라 아무리 특이한 경우라 해도 환자의 비밀을 누설하고 다니는 인물로 블랙리스트에 오를 순 없다. (후략). - P13

물론 선배와 교수님들은 내 진로에 관해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잘 알려지지 않고 재정도 열악한 병원 자리는 나처럼 명망 있는 의대를 졸업해 혹독한 레지던트 수련까지 마친 유망한 의사가 아닌, 변변치 않은 지방 출신이나 가는곳이었다.
하지만 의사로서 내게 병원의 규모나 재정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 P17

하지만 아무리 형편없는 병원이라도 일자리를 얻으려면추천서를 써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건 교수들의 편견이 내의사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고심 끝에 나는 소위 잘나가는 교수님들 대신 꽤나 괴팍한성격으로 학생들과는 거리가 먼 교수님께 추천서를 부탁했다.  - P18

 단순히 추천서가 필요하기도 했거니와 교수가 소개해 준 병원이 코네티컷 주 의료계에서 가장 재정이 부족하고 비참한 상황이라 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소송을 피하고자 이 음산하고 조그만 병원을 코네티컷 주립 정신병원이라고 부르겠다). - P18

만약 내가 철저한 이성주의자가 아니었다면, 면접을 보러 병원까지 가는 길의 분위기를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 P19

 나는 표지판을 따라 도로를 벗어나 박무가 뒤덮인 복잡하고 음산한 샛길 중 첫 번째 길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나마 미리 지도를 출력해 오지 않았더라면, 구불구불한 산길을 헤매며 병원이 위치한 구릉 지대를 찾는 데 몇 시간은 허비했을 것이다. - P19

그러나 여기까지는 병원 단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낀불안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병원 단지는 자금난에 허덕이는 곳 치고 의외로 규모가 굉장히 컸다. 한때 위풍당당했을 시설들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흉물스럽게 변해가는 중이었다. - P20

단지 중앙에는 여전히 운영을 하고 있는 유일한 건물이주변에 버림받은 형제들을 왜소해 보이게 만든 채 서 있었다. 바로 병원 본관이었다. - P20

역설적으로 건물 내부는 간소해 보여도 놀랄 만큼 깨끗한 데다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면접을 보러 왔다고 하니따분한 표정의 접수창구 직원이 내게 꼭대기 층에 있는 병원장 사무실로 가라고 일러 주었다. - P21

나이 든 간호사의 말투에서 아일랜드 억양이 어렴풋이 배어났다.
"이번 달만 세 번째에요. 우리가 그 방에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요?"
나는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순진하게도 이 병원이야말로 내 지식과 보살핌이 진정으로 절실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 P22

Part 2


다들 알다시피 인력난에 시달리는 정신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따분한 일이다.
주립 시설로서 우리는 병원에 오는 사람들을 모두 도와야했는데, 대부분은 가벼운 증상을 호소하는 단기 치료 환자나 외래 환자였다.  - P27

장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보험회사 측에서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개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므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립 병원을 찾기 마련이다. - P27

당시 나이가 지긋한 신사 세 분도 계셨는데 각자 자신이예수라고 믿는 분들이라 한 방에 모이기만 하면 서로에게고함을 질러댔다. 그중 한 분은 신학에 조예가 깊은 신학대학 교수였다. 그는 나머지 두 사람에게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을 닥치는 대로 인용하며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그러면 본인의 주장이 더욱 그럴싸하게 들린다고 믿는 것 같았다. - P28

이렇듯 정신 병동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모든 병원에는 꼭 반드시 그 환자가 있기 마련이다. 정신병원임을 감안하더라도 유독 이상한 환자. 아무리 경험이 풍부한 의사라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꺼리게 되는 인물말이다. 그런 환자는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지만, 어쩌다그렇게 됐는지 아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 P29

우리 병원에 있던 그 환자는 유독 특이했다. 먼저 어린아이일 때 병원에 보내진 데다 아무도 그의 병을 진단하지 못했는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30년 넘게 병원에 수용돼 있었다. 그에게 이름이 있었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 P29

나는 새로 부임한 정신과 의사로서조의 진료 기록부와 처방전을 열람해 보았지만 환자 정보가 거의 없었다. 서류철은 눈에 띄게 얇았고 지난해 자료만 포함되어 있었다. 심각한 환자라더니, 처방 역시 약효가 순한 항우울제와 진정제가 전부였다. - P31

네시에 관한 몇 가지 사실과 함께 어째서 내 계획을 유독 그녀에게 털어놓았는지 밝혀야겠다. 네시는 아일랜드출신으로 70년대부터 이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 P31

나를 비롯한 의사와 간호사는 네시 덕분에 굉장히 편안했다. 그건 그녀가 간호사뿐 아니라 조무사와 관리인 지완벽하게 컨트롤했기 때문이었다. (중략). 만약 병원 전체가 불에 탄다면 건축가에게 원래대로 짓는 방법을알려줄 사람도 틀림없이 네시였을 것이다. - P32

"어서 와요, 파커, 그래, 우리 천재 의사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지내나요?"
그녀의 목소리는 어렴풋이 아일랜드 억양이 배어 있어 훨씬 편안하게 들렸다. 나는 미소로 답했다.
"죽고 싶죠, 뭐."
"오 저런."
그녀가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그럼, 항우울제라도 좀 처방해 드릴까요?"
"아, 그런 거 아니에요."
나는 웃었다. - P33

그녀가 침착하라는 몸짓으로 말했다.
"그래, 무슨 사고를 치려고 하나요?"
나는 음모라도 꾸미듯 몸을 앞으로 기울인 다음, 잠시뜸을 들였다 말했다.
"조를 치료해보고 싶어요."
내 말을 들으려고 같이 몸을 기울인 네시가 뭔가에 쏘이기라도 한 듯 몸을 뒤로 확 젖혔다. 커피가 든 종이컵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철벅하는 소리가 났다. - P34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네시, 전 정말로..."
"아니, 그건 미친 농담이었어야 해요.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그딴 말을 진심이라고 뱉을 수는 없어요."
네시의 초록빛 눈이 노여움에 불타고 있었지만 나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P35

"왜죠? 조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요?"
그녀가 대답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말을 이었다.
"네시, 제가 과하게 똑똑하다는 거 아시잖아요. 제게 풀지 못할 수수께끼는 없어요."
그녀의 눈빛이 다시 굳어졌다. - P36

여기까지 듣고 보면 내가 놰 환자 문제를 병원장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진료 기록을 찾으려 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 병원은 일개 신입 의사가 병원장을 직접 만나기 어려운 구조였다. 면접 때 엄청난 질문 공세를 퍼붓던 병원장 로즈는 그날 이후로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 P37

 브루스는 첫 만남부터 자신이 상급자임을 강조하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상사이니 존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그가 심하게 게으른 데다 환자가 무감각해질 때까지약을 주는 것이 유일한 치료 방법이라는 걸 알고 무시하는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 P37

그럼, 다시 조의 진료 기록을 찾아다닌 얘기로 돌아가보자. 2000년 이전에 입원한 환자의 기록을 열람하려면 환자의 정확한 이름과 입원일을 알아야 했다. 그때만 해도환자의 이름과 입원일 외에는 전산 처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38

결국 나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해결책을 찾았다. 어쩌다한 번 네시가 투약 근무자 명단을 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슬쩍 자료를 훔쳐본 것이다. 운 좋게도 그 명단은 조의전체 이름인 ‘조셉 E. M‘이 유일하게 기재된 자료인 듯했다. - P38

 조셉 E. M은 1973년 여섯 살일때 이 병원에 처음 입원해 지금까지 수용 중인 것으로 표기돼 있었다. 서류철은 꽤 오랫동안 아무도 열어보지 않았던것처럼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너무 두툼해서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막상 서류를 열어 보자 겉보기와 다르게 보존 상태가 양호했다. - P39

지금까지 조의 병은 진단조차 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는데, 문서를 읽다 보니 소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단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 P39

서류에는 당시 의사가 기록한 메모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중략).


하마터면 나는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그런 가벼운 증상으로 입원한 어린 환자가 이 병원의 골칫거리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병원 수준이 대체 어느 정도인거지? - P41

한 장 더 넘기자 조의 재입원 기록이 눈에 띄었다. 퇴원한 지 하루 만에 조가 다시 병원을 찾았고 이번에는 훨씬 더 심각한 증상을 보인 듯했다. - P41

조의 치료에 관한 내용은 그걸로 끝이었다. 보아하니 조를 면담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넌더리를 내며 그만 뒀던 모양이다. 확실히 조의 증상이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인원이 부족한 병원이라할지라도 조금 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 P45

조에 관한 기록은 1977년에 다시 시작된다. 이번에는 항목마다 삭제된 부분이 있었는데, 원문을 확인하려면 로즈를 찾아가라는 글이 앞에 적혀 있었다. - P46

(전략).
토머스의 편지 뒤에는 앞으로 조에 대한 모든 치료가 중단될 거라는 공문만 남아 있었다. 문서에 따르면 조는병실을 혼자 쓰게 됐지만 그 대가로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을 방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선별된 소수 조무사만침대보를 갈거나 식사를 갖다 주러 병실 출입이 허용됐고,
가장 노련한 간호사가 조의 투약 업무를 맡게 됐다.  - P55

이 기록을 보기 전까지 조에 대한 관심이 호기심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완전히 집착하게 되어버렸다. 정신의학 역사상 진단된 적 없는, DSM에도 기재된적 없는 완벽히 새로운 질병을 내가 발견하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 P56

나는 즉시 기록물 관리인에게 돌아가 파일에서 베낀 관리 번호를 제시하며 관련 기록 열람을 요청했다. (중략).
"이 번호로 된 자료는 없수다, 선생, 제대로 받아 적은거 맞소?" - P56

"누가 저한테 장난을 쳤나보네요. 시간 낭비하게 해서죄송합니다."
나는 기록실에서 나와 조용히 병원을 빠져나왔다. 이 주제에 대해서 누군가와 논의하기 전에 조금 전에 읽은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 P57

기록을 정리하며 차근차근 되짚어보니, 초반에 조의 병은 일종의 공감 문제에 근거한 정신병에서 비롯된 게 분명해 보였다. 조가 단순히 마구잡이식으로 상대를 열 받게하는 못된 꼬마였다면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전형적인 환자로 진단하기 쉬웠을 것이다. - P57

. 조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유도했거나 강간의의미도 모르면서 소년을 강간하려 했다면, 확실히 정서적공감 능력타인의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의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인 인지적 공감 능력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났다. - P58

더욱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첫 번째 룸메이트와의 참사직후 일어난 전술적 변화였다. 수많은 진료 기록에 따르면그전까지 조가 선호하던 방식은 상대에게 분노나 자기혐오를 유발하는 것이었다.  - P58

조의 서류를 본 이후 이 수수께끼 같은 환자를 직접 만나보는 것 외에는 결코 답을 찾을 길이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브루스는 내 얘기를 듣지 않을 테니 어떻게 상사를 건너뛰고 일을 처리할지부터 곰곰이 생각해야 했다. - P59

"누구든 지가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보지?"
그런 그에게 협조를 구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브루스를 건너뛰고 병원장을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
아니, 그 전에 병원장은 어떤 사람일까? - P59

Part 3


다음 날 병원에 도착하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본관 입구주변에 모여 있었는데, 그중에는 경찰과 기자도 섞여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자 곧바로 사람들을 헤집고 앞으로 나아갔지만, 사체주머니를 들것에 실어 호송차에 옮기는 모습밖에 볼 수 없었다. - P63

"어젯밤 병실 순회를 마치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대요. 이유야 아무도 모르지만, 어떤 환자 말로는 네시가....그러니까, 그 환자의 병실에서 나온 직후에 그랬대요."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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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에는 내내 비가 내렸다. 나와 하루는 숲 아래쪽으로 내려가 지표 나무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샤이엔이 지금 내려갔다간 비와 진흙 때문에 옷이 엉망이 되고 말 거라며 만류했다.  - P193

랑카위 연구소에 있을 때 엿들은 말이 기억났다. 그때 연구원들은 국제 협의체가 더스트 농도를 줄이는 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으니 곧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P194

오후가 되어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을 보고 나와 하루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땅이 축축해서 발을 뗄 때마다 진흙이 신발에 달라붙었다. 오늘 확인해야 할 지표 나무에 가까워질 무렵, 갑자기 하루가 손으로 나를 막아섰다.
"저길 봐, 발자국이야." - P194

하루가 쉿, 하고는 몸을 숙였다. 무언가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하루를 따라 몸을 낮추고 소리를 죽였다. 하루가 발자국이 이어지는 방향을 가리켰다. (중략).
그곳에 미어캣처럼 생긴 동물이 있었다. - P195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니야.
하루는 미어캣을 따라 뛰고 있었다. 나는 팔에서 피를 철철흘리면서 하루를 따라갔다. - P196

안개가 점점 짙어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무에 부딪혀 그대로 진흙 위를 굴렀다. 온몸에 낙엽과 진흙이 달라붙었고 얼굴에도 묻어 시야를 가렸다. 드르륵 구르는 소리와 격발음이 들렸다.
소음이 사방에서 귀를 때려서 방향조차 알 수 없었다. 뒤이어 정찰 드론들의 사격 소리가 들려왔다. - P19

어떤 장면들이 눈앞에 겹쳐졌다. 연구실 유리를 부수고 도망치던 날, 돔에 잠입해서 마구 총을 쏘아대던 사람들..………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이 안개 때문인지 아니면 정신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 P197

아마라는 소리지르며 양손으로 내 얼굴을 감쌌다. 나는 가짜 미어캣을 팔로 꽉 끌어안은 그대로 지수 씨를 불렀다.
"지수 씨!"
놀란 표정을 한 지수 씨가 나에게 가까이 왔다.
"이거, 그 사람들과 같이 왔어요."
내 팔은 미어캣의 칼날에 베여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 P198

미어캣은 예상대로 스파이 로봇이었다. 지수 씨는 로봇의 칩을 분리해낸 다음 전원을 완전히 제거했다. 마을 사람들은 내가그 미어캣의 정체를 간파해냈다는 사실에 놀랐는데, 지수 씨의로봇 강아지를 자주 보았기 때문에 진짜 동물이 아닐 거라고 짐작한 거였다. - P199

어른들은 침입자들에 대해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마을 회의에서 대니는 침입자들이 우연히 이 숲에 도착했을뿐이고, 처음부터 숲의 존재를 알고 찾아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게 거짓말이라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많았다. 아이들도 그 말을 다 믿지는 않았다.
"대니는 거짓말은 안 해. 우리에게 왜 사실을 숨기겠어?" - P200

마을의 분위기는 더이상 예전 같지 않았다. 누군가가 폐허 탐사를 하러 간 사람들을 비난했다. 그들이 부주의하게 마을의 존재를 드러냈을 거라고, 그러지 않고서는 마을이 외부에 노출될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폐허 탐사조는 매번 인원 구성이 바뀌었는데, 회관에서 그중 누가 잘못했는지를 가려야 한다며 말다툼이 크게 벌어졌고 대니가 와서야 겨우 상황이 수습되었다. - P201

침입자들의 등장 이후로 나는 프림 빌리지가 안전한 장소가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를 더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작은 균열이 이 마을에 만들어낸 불안감의 안개였다. - P202

(전략). 하루는 방송에 잡음이너무 많이 끼어 있어 나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지수 씨는한참을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말했다.
"나오미, 지금 마을로 내려가야겠다. 지금 당장."
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굳은 얼굴로 지수 씨의 설명을 들었다. - P203

 폭풍은 여러 돔 시티를멸망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나는 한 번도 그 폭풍을 직접 겪은적은 없었지만,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통해 짐작했다. 그것은 막을 수 없는 죽음을 실어나르는 폭풍이었다.
마을에 공포와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마을은 더스트를 잘 버텨냈다. 마을에는 더스트 저항성 식물들과 분해제 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마을이 더 강력한 더스트에도 버틸 수 있는지, 이 마법 같은 식물들이 어떤 원리로 더스트를 견디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 P204

나는 지수 씨의 부탁으로 정찰 드론들을 회수해서 오두막으로 가다가 위쪽 언덕에서 들려오는 말다툼 소리를 들었다. 온실쪽이었다. 지수 씨가 온실의 유리문 앞에서 레이첼을 향해 화를 내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 상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해져서 오두막에 드론을 놓고 얼른 도망쳐 내려왔다. - P205

하루가 장갑 낀 손으로 덩굴식물을 들어올리며 미심쩍은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그 식물은 닿으면 위험해서 반드시 장갑을 끼고 만져야 한다고 지수 씨는 설명했다.
처음에는 마을 위주로, 나중에는 숲 전체에 이 덩굴식물을 심는 대규모 작업을 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동원되었다.
아이들도 작은 수레를 밀며 숲 곳곳을 따라다녀야 했다. - P206

지수 씨와 대니의 지휘에 따라 숲 곳곳에 덩굴식물을 심고 촉진제를 주입하는 데에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텃밭에 작물을 심는 일과는 달리, 이 작업은 마치 덩굴식물로 숲을 덮어버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덩굴은 무서운 속도로 자랐다. 첫날 심은 것들이며칠 지나지 않아 숲의 나무들을 타고 위로 기어올랐다.
"이상한 기류가 느껴져요. 곧 폭풍이 올 거예요."
정상에서 숲 바깥을 내다보고 온 아마라가 말했다.  - P207

 폭풍의 접근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지자, 지수 씨가 아이들을 먼저 지하 창고로 대피시켰다. 어른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봉쇄한 집에 머무르거나 지하 창고로 이동했다.
그런데 온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누군가가 온실을 밀폐하는일을 도왔을까? 지하 창고로 내려가기 전 온실 쪽을 쳐다보는나에게 지수 씨가 말했다.
"레이첼은 괜찮을 거야. 온실은 원래 바깥과 공기가 통하지 않게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그 안은 폭풍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 - P208

지상으로 향하는 철문 앞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던 밀리어가말했다.
"이제 거의 근접했어요."
잠시 뒤 라디오도 완전히 끊겼다. 바람에 문이 덜컹이기 시작했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 P209

"나오미, 울지 마. 난 그냥 잠들어 있었던 거야. 괜찮으니까......"
훌쩍이는 나를 토닥이며 아마라는 지금 상황이 어떤지를 주위에 물었다. 대니와 샤이엔을 비롯해 몇 명의 어른들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보호복을 껴입고 더스트 농도를 확인하러 나갔다고 했다. 지하는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별일 없을 것이라고말을 하는 것도, 걱정된다고 입을 여는 것도, 모두 불안을 증폭하는 행위 같았다. - P210

살아남은 마을과, 살아남은 식물, 그것 사이의 연관성을.
밀리어가 덩굴 잎을 들어올렸다. 잎에서 푸른 먼지가 떨어져흩날렸다.
"우럴 구했어요. 이 식물이......" - P211

사람들은 레이첼이 마을을 구했다고 말했다. 정확히는 레이첼이 만든 덩굴식물이 더스트 폭풍으로부터 마을을 지켰다고. 아무도 그것들이 어떻게 기능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복잡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 P211

더스트 폭풍 이후에, 덩굴들은 더욱 맹렬하게 성장했다. 고작 며칠 만에 마을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로 자란 것도 놀라웠는데, 그대로 내버려두자 마을의 건물과 장비는 물론이고 숲의 나무들마저 온통 덩굴이 뒤덮어버렸다. - P212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 공격적인 덩굴들조차도 숲의 경계를 절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작물만이 숲을 넘어 퍼져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덩굴들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숲을 점령했지만 이 숲 너머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맹렬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식물들. - P212

이 숲이 도무지 지구의 것 같지 않았다. 그보다는 외계의 풍경에,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모형 정원에 가까워 보였다. 마치 덩굴식물이 프림 빌리지를 완전히 잡아먹어서, 이곳을 저 기묘한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버린 것 같았다. - P213

"어차피 식물들은 이 숲에서만 자라고, 여길 떠나면 자라지 않잖아? 식물들을 보여줘봤자, 돔 시티 녀석들은 오히려 우리 숲을 뺏으려고 할걸." - P214

"돔이라고 해서 괴물들만 있는 건 아니지. 계속 여기 갇혀 살다 죽을 텐가?"
"갇혀 산다니? 프림 빌리지는 감옥이 아니라 우리가 일궈낸 삶의 터전이라고."
"이곳이 정말로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거라고 믿나?"
뭐가 옳은 건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세계를 말하는 것이 이상했다. - P215

지수 씨가 온실에서 새로운 씨앗과 모종을 가져왔고, 어른들이 그것들을 경계 너머의 죽은 숲으로 가져가서 심었다. - P215

하지만 열흘이 넘도록 죽은 숲에는 싹 하나 트지 않았고, 한달이 지났을 때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나는 대니 몰래 경계로 내려갔다가, 경계에만 무성히 덩굴들이 자라 있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지수 씨의 오두막으로 갔더니 아직 불이 환히 켜져있었다. 그런데 안에 지수 씨는 없고 로봇 강아지만이 바닥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 P216

마을을 지켰던 덩굴식물이 축복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곧 분명해졌다. 덩굴이 텃밭의 작물들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반년 넘게 키운 작물들이 전부 죽어버려서 재배를 맡은 사람들은 몹시 상심했다. 덩굴은 긴 실뿌리를 흙 아래로 뻗어서 텃밭의 작물들을 말려 죽였고, 원래 있던 뿌리에 자신의 뿌리를 칭칭감아 징그러운 덩어리를 만들었다. - P217

텃밭이 엉망이 되면서 영양 캡슐과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폐허 탐사를 나가는 횟수가 잦아졌다. 하지만 이조차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원래 자주 탐색하던 장소는 이미 떠돌이들과돔에서 보낸 사냥꾼들에게 모두 털려서 더이상 건질 물자가 없었다. - P218

"나오미, 지금부터 분해제 만드는 법을 알려줄 거야."
갑작스러운 말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지수 씨와테이블 위를 번갈아 보고는, 버벅거리며 대답했다.
"아・・・・・・ 그 분해제요, 레이첼이 만드는. 그런데, 그걸 왜 저에게?"
"아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야. 그리고 네가 이걸 가장 잘 배울 것 같으니까." - P219

 지수 씨가 키득 웃었다.
"설명하자면 좀 긴데, 들어봐, 분해제는 레이첼과 마을 사이에거래되는 거야.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을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얻어가는 게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까 분해제 제조법은 사실상 레이첼의 독점 방책이야. 안 그래도 온실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쥐고 있는 걸 내줄 필요는 없잖아? 그런데 내 입장은 또 달라. 만약 레이첼이 분해제를 나눠줄 수 없게 된다면어떻게 될까? 혹은 분해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더 많아진다면? 나는 그런 문제에 대비해야 해." - P220

"레이첼이 더이상 분해제를 만들지 못하게 된 거예요? 어디가 아프다거나......
"
"아니야, 나오미, 레이첼은 아주 멀쩡해." - P221

"제조에 필요한 재료와 무게, 과정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 과학의 원칙이지. 하지만 이건 달라. 감추는 것이 널 구할 테니까.
지금은 그런 시대야. 원칙이 네 약점이 되고, 편법이 네 무기가되지. 이 비참한 시대가 끝날 때까지는, 네 머릿속에 제조법이완벽하게 들어가 있어야 해. 남이 볼 수 있는 기록은 절대 남기지마. 아무리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숨기는 게 좋아."
이번에도 알 듯 말 듯 한 이야기였다. 그래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우는 것이라면 자신 있었다. - P221

하지만 막상 제조법을 배우기 시작하자, 자신감은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단지 사용량이나 제조 순서를 외우는 것만으로는 분해제를 완성할 수 없었다. - P222

일주일에 두 번, 폐쇄된 실험실에서 지수 씨와 나는 만났다.
프림 빌리지의 갈등은 점점 심각해졌고 어딜 가든 사람들은 날이 서 있었으므로, 실험실에 오는 이때가 유일하게 평화로운 시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분해제를 만드는 법은 점점 손에 익어서,
나중에는 지시 없이도 거의 정확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 P222

"그럼 레이첼이 원하는 건 뭔가요?"
"그게 바로 내가 아직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야. 레이첼은 뭘 원하는 걸까? 대체 무엇을 줘야 우리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까?" - P224

내가 묻자 지수 씨는 대답하는 대신 무릎을 살짝 숙여 내 눈을마주보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
"덩굴식물이 증식한 이후부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많은 말들이 오가요. 생각이 다들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렇게까지 말다툼하는 걸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 어떤 이야기인지 나에게 말해줄래?" - P225

"돔 안의 사람들은 결코 인류를 위해 일하지 않을 거야. 타인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는 게 가능했던 사람들만이 돔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인류에게는 불행하게도, 오직 그런 이들이 최후의 인간으로 남았지. 우린 정해진 멸종의 길을 걷고 있어. 설령 돔 안의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더라도, 그런 인류가 만들 세계라곤 보지 않아도 뻔하지. 오래가진 못할 거야." - P226

나는 멍하니 지수 씨를 보았다. 그가 나를 마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돔을 없애는 거야. 그냥 모두가 밖에서 살아가게 하는 거지.
불완전한 채로. 그럼 그게 진짜 대안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거야.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해. 현상 유지란 없어. 예정된 종말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해서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거야." - P227

내 말에 지수 씨는 침묵했다. 나는 절박한 심정이 되어 말했다.
"전 이 마을이 좋아요. 제가 있었던 곳 중에 이런 곳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그동안 머물렀던 모든 곳이 제게는 너무 끔찍했어요. 오직 여기만이 달랐어요."
나를 바라보는 지수 씨의 표정이 아주 복잡했다. - P228

덩굴식물이 제초제에도 말을 듣지 않고 숲 전체를 잠식해버리자, 마을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제는 텃밭뿐 아니라 실내 재배를 하던 작물들까지 모두 엉망이 되었다. 식량배급이 이틀에 한번으로 줄었고, 영양 캡슐로 버텨야 했다. - P229

더스트 폭풍이 잦아졌고, 그럴 때마다 마을을 봉쇄한채 지하 대피소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이틀에서사흘로, 그리고 또 닷새로 숲에서 내다보이는 외곽 지역은 언제나 붉은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고, 나중에는 마치 피바다를 이룬듯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더스트 폭풍에 살아남으려면 덩굴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덩굴은 사람들을 굶주리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아름다워 보였던푸른 먼지는 이제 고통의 근원처럼 느껴졌다. - P230

. 소문에 따르면 야닌이 종자와 거래한것은 돔 시티의 입주권이었다. 그 돔 시티에 야닌의 먼 친척들이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하루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부들부들떨었다.
"자기들만 살아남으려고 우리를 배신한 거야."
"하지만 그 식물들은 어차피 숲 바깥에서는 안자라잖아. 야닌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 P231

"언니, 죽더라도 여기서 죽자고 했잖아. 나, 그 말을 기억해."
아마라는 나를 슬픈 눈으로 보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지수 씨와의 대화를 거듭 생각했다. 지수 씨도 나에게 분해제 제조법을 알려주면서 식물들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대니가 말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 같았다. - P232

"네가 왜 그러는지 알아. 무슨 마음인지도 알아. 하지만 우린 이곳에 더 머물 수 없어. 맹세할게. 네가 원한다면, 나는 무엇이......"
유리 너머 레이첼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조금씩 이곳을,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 P233

푸르게 빛나는 먼지들이 공기중에 천천히 흩날렸다. 나는 숲을 푸른빛으로 물들이는 그 식물들을 보며 고통은 늘 아름다움과 같이 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면 아름다움이 고통과 늘 함께 오는 것이거나. 이 마을에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가져다준 이식물이 나에게 알려준 진실은 그랬다. 어느 쪽이든, 나는 더이상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에 마냥 감탄할 수는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 P234

"하루가 노래하는 거 들었어요? 잘하죠. 오디션까지 봤다는게 거짓말이 아니었네요."
"그렇다니까. 난 극장에서 하루를 진작에 알아봤었지."
아마라와 대니가 호들갑을 떠는 동안, 나는 이상하게도 지수씨의 시선이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 P235

나는 지수 씨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꾸 이곳을 떠나는 상황을 가정했던 이유도, 나에게 분해제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이유도 이제 알 것 같았다. 지수 씨는 이 풍경을 보면서 동시에 이 풍경의 끝을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에겐 여기 하나면 충분한데요. 또다른 프림 빌리지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곳,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의미 없는걸요."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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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어린 새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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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환과 기탁(위탁)

교환은 자체 보관중인 문화재를 소장기관에서 필요한 목적에 따라 다른 유물로 교체하는 방법으로서, 다양한 유물을 비교적 손쉽게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이다. - P162

5) 대여

대여는 유물의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은 채 대여해 주는 박물관에서 대여를 받는 기관으로 일시적으로 소장품이 옮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 P163

원칙적으로 대여는 기관에만 적용된다.¹²⁶

126) 연구 조사나 교육적 활동을 목적으로 학예연구원이 요청한 경우와 관장에 의해 승인된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개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행해지지 않는다. - P164

학예연구원은 등록 담당원에게 대여물의 반환과 대여 완료를 통보하여야 하며 등록 담당원은 대여품의 포장과 운송 절차에 관여한다.
단기 대여 기간은 통상적으로 6개월이며, 장기 대여의 경우는 2년까지 가능하다. - P164

6) 반환

국가간의 문화재 반환 요구는 1960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피식민지 국가와 제3세계 국가들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으레 제기되는 문화민족주의에 근거를 둔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¹²⁷으로서, 협상 국가간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127) 문화재 반환을 둘러싼 국가간의 갈등을 ‘제3차세계대전‘ 혹은 ‘문화전쟁‘ 이라 일컫는다. 인류학자인 키스 니클린(Keith Nicklin) (1979)은 이러한 문화재 약탈 행위를 영어의rape (약탈 혹은 강탈)‘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설명하였고, 키플 조트(Kifle Jote)(1994)는 ‘한 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일련의 약탈 행위가 한 민족의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문화유산에 대해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손실을 입혔으며, 문화재의 반환에 대해 적극적이며진솔한 태도가 결여된 것은 아직도 이러한 문화제국주의가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역설하였다. - P166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통한 문화재의 불법 유출과 이에 대한 반환은 문화유산이 풍부한 나라와 문화유산이 빈곤한 나라의 양분법¹²⁸에 의해 이론이 제기된다. 

128) 이는 정치적으로 유사한 상황을 경험한 나라들을 두 범주로 나누어 묶어 이론을 정리한것이다. 예를 들면, 이집트, 그리이스, 한국, 멕시코 등은 사실상 문화유산이 풍부했었고 식민지 정책이나 이와 유사한 정치구조하의 경험이 있었다. 반면에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등은 정복국으로서 문화가 빈곤한 나라는 아니지만, 상대적인 빈곤감이나 정복욕으로 인해 끊임없이 그들의 ‘문화창고‘를 채우려는 욕망이 있는 나라들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경우는 문화유산이 풍부한 나라에도 속하지만, 일반적으로 문화재 반환을 해주는나라이지요청하는 국가는 아니므로 문화 빈곤 국가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 P166

4. 소장품의 취득

유물은 일정한 등록 절차를 거쳐 박물관으로 소유권을 이전하게 되는데, 이를 소장품 취득이라고 한다. 박물관으로 소유권이 공식적으로 이전되면서 소장품 취득이 완료되며, 동시에 박물관은 유물을 적절하게 보존하고 유지하는 책임을 부여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소장품 취득은 등록 담당원이 담당한다. - P167

(전략).
이러한 소장품의 취득과 관련된 문서화작업에는 다음의 문서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1) 박물관의 합법적인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기증계약서
2) 박물관이 구입한 자료의 합법적인 소유권에 대한 매입증명서
3) 구입 기관이나 교환 기관이 발행한 소유권 양도증명서
4) 박물관에 의해 위탁 보관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취득계약서가 요구된다.
5) 작품 구입과 관련된 서신과 거래에 관련된 모든 기록이 있어야한다.
① 기증자, 매매자, 매매 · 교환, 기관 혹은 물품을 위탁한 정부기관의 이름과 주소
② 유물의 위탁인가서 사본
③ 유물이 합법적으로 수입·수출되었다고 증명할 수 있는 제반서류
④ 매매영수증과 선적영수증
⑤ 증여 제약 조건
⑥ 판권 약인
⑦ 작가 권리 약인
⑧ 출처에 관한 정보
⑨ 유물의 역사
⑩ 제작 날짜 혹은 연령 - P170

우리 나라의 국·공립 박물관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발한 박물관 전산화를 위한 유물분류 표준화 방안‘을 공용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미 1986년부터 유물 관리 전산화 시스템을 구축하여전시실 유물 6천여 점을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에 필요한 분류 체계를 만들어 유물 분류 표준화를 완성하였다. - P170

국립중앙박물관의 표준분류체계는 정보 검색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고려하여 기초 데이터의 항목을 적절하게 세분하였다.¹³⁵ 따라서 표준 분류체계는 유물에 대한 내용을 유물 관리와 학술 자료로 활용할수 있는 항목을 분류하여 체계화한 것으로, 모든 유물에 일반적으로 적용 가능한 일반 항목과 특정 유물에만 적용되는 장르별 세부사항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135)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 작품의 분류를 7개 부문 즉 회화(한국화)·회화1(양화)·조각·공예·사진·서예· 건축으로 분류하고, 다시 재료 및 기법에 의해 동일한 항목으로2차 분류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양화의 경우 WE-0001이라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넘버링 시스템은 반입된 순서에 의해 기록되며, 부문별 작품 분류 항목의 영문 이니셜을 써서 부문을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어 1999년에 다섯 번째로 수집된 작품이라면 넘버링은 1999. 5가 되며, 그중 작품이 여러 점으로 분산된 경우에는 점을 찍고 다시 번호를 매기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 P171

•일반 항목

일반 항목은 유물 관리나 학술정보 활용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항목으로서, 어떠한 장르의 유물에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 P171

•장르별 세부 항목

장르별 세부항목은 일반 항목에는 속하지 않으나 특정 유물에서만 분류되는 보다 세부적인 항목으로서, 전문 학술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분류 체계이다. - P172

5. 소장품 폐기처분

폐기처분은 기증 · 교환 · 구매 · 반환 · 유실 혹은 복원이 불가능한 훼손 등으로 인해 소장품에서 그 자료를 영구히 폐기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처분 자료를 받아들이는 수령 기관에 제한 조건이 없는 소유권을 양도하게 된다. - P177

폐기처분 추천서는 소장품과 관련된 학예연구원에 의해 발의될 수있으며 학예연구원은 폐기처분될 유물에 대한 감정평가와 폐기처분제기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함께 제시하여야 한다. 소장품 수집 정책과 국제박물관협회의 윤리요강을 근거로 하여, 박물관은 법률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는 소장품을 폐기처분할 수 있지만, 반드시 설립 주체,
운영 주체, 위원회나 이사회 등의 정책결정기구와 학예연구원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유물의 폐기처분에 대한 평가가 선행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P177

폐기처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소장품의 범주는 아래와 같다.
① 연구·조사, 전시, 교육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거나 출처에 대한 정보가 없는 소장품
② 진위 평가에서 위작으로 판단된 소장품
③ 유사한 소장품이 있어서 소장품의 가치가 절하된 경우
④ 원산국이나 외국 정부에 의해 반환 요구의 대상이 된 유물¹³⁷
⑤ 박물관의 설립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유물
⑥ 보존 상태가 매우 미흡하고 복원도 불가능하여 다른 소장품의 보존에 악영향을 미치는 유물
⑦ 3년 동안 유실 상태에 있는 소장품
⑧ 7년 동안 기증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유물에 대한 합법적이며 무제한적인 소유권이 박물관에게 인정되며 비로소 폐기처분의 대상으로 고려된다.

원칙적으로 위에 제시된 폐기처분 대상 이외의 다른 유물은 처분할 수 없다.

137) 반환 요청국은 그들의 주장에 대한 정당성과 반환 후 유물의 적절한 보존관리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여야 한다. - P178

박물관의 정책결정 기구를 통해 폐기처분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면 폐기처분에 대한 공고를 정기간행물이나 언론 매체에 게재하여 대외적으로 홍보한다. (중략). 수취 기관은 박물관이 유물을 폐기처분함과 동시에소유권을 공식적으로 양도 받게 되며, 폐기처분하는 박물관은 이에 대한 문서와 기록을 빠짐 없이 구비하여 등록 담당원의 책임하에 보관하여야 한다.

① 폐기처분의 비준 과정에 관련된 직원의 성명과 직함
② 학예연구원의 추천
③ 폐기처분의 이유
④ 폐기처분되는 유물에 대한 서술
⑤ 목록 번호와 취득 번호
⑥ 법적 소유권에 대한 증거
⑦ 폐기처분되는 유물의 사진 자료
⑧ 외국 정부가 원산국 반환을 요구하는 공식적인 의뢰서
⑨ 수취 기관이나 매입자, 외국 국가의 이름과 위치
⑩ 유물을 적절히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수취 기관이나 외국 정부의 수용 능력에 관한 증거 서류
① 수취 기관에 무제한의 소유권을 양도한다고 서명한 양도
증명서유물의 폐기처분으로 인해 발생한 수익금은 반드시 신수품을 구입하는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결코 운영 자금이나 기본 경영 자금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 P179

6. 소장품 관리의 기본 수칙

소장품의 관리는 유물의 생명을 연장시켜 가장 안정되고 물리적인상태로 후세에 전승한다는 관점에서 박물관의 업무 중 가장 본질적인기능이라 할 수 있다. - P180

박물관학적인 견지에서 보존¹³⁸은 유물을 손상시키는 환경적인 요인을 분석하고 통제하며 손상의 진행 속도를 지연시키거나 사전에 예방 조치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복원과 보수는 손상된 유물을 가능한한 본래의 상태 · 디자인 · 색채로 복귀시키기 위해 이루어지며, 유물의 미학적 역사적인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취해지는 조처이다.¹³⁹

138) 일반적으로 보존에는 세 가지 용어가 사용되는데, 각각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보전(preservation): 유지 활동 즉, 훼손·손상. 파손으로부터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보존(conservation) : 유지·감시·관리; 유실·부패 · 상해로부터의 보호・복원(restoration) : 원상태, 정상적인 상태.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복구하는 것
139) Edson, G & Dean, D. (1994). The Handbook for Museums. London: Routledge.
P.101. - P180

(전략). 예방 차원에서의 보호는 소장품의 복원과 보수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정확한 원인이규명된 후 적절한 처방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에 대한 정보는 반드시문서로 기록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소장품의 관리는 보존 시설을 기반으로 적절한 관리와 복원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181

원칙적으로 소장품은 전시 진열장이나 수장고에 적절하게 보관되어야 한다.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혹은 쇼케이스는 진열장 내부의 전시물을 도난과 상해(공해 · 먼지·해충)로부터 보호하고, 일정 수준의 대습도¹⁴², 온도¹⁴³, 조도⁴⁴가 유지될 수 있는 미시환경을 조성하며, 전시물을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는 장(場)의 역할을 한다. - P182

예방 차원에서 유물이 손상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박물관 전문 인력은 다음과 같은 유물관리 기본수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¹⁴⁶

<유물관리 기본수칙>
・불필요하게 유물을 만지거나 필요 이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유물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서두르지 않는다.
유물의 가치나 비중과 관계없이 모든 유물을 동일하게 중요한 것처럼생각해서 다룬다.
•유물을 만질 때는 정신을 집중한다.
유물을 이동하기 전에 유물에 약한 부분이 어느 곳인가를 파악하다.
• 유물을 다룰 때에 목걸이 · 넥타이 팔찌 · 시계 · 반지 등이 유물에 닿지 않도록 풀어 놓는다. 그리고 허리를 구부릴 때 상의의 호주머니에든 물건들이 쏟아져 유물을 파손시킬 수 있으므로 소지품은 사전에 끼내 놓는다.
유물을 움직이는 작업은 오직 한 사람만이 지시한다. 유물을 움직일때는 지휘자가 아니면 어떠한 결정이나 지시를 하지 않도록 한다.
•유물을 다루고 움직이는 책임자는 동료들에게 작업 과정을 명확하게이해시켜 혼선이 없게 한다.
•유물을 다루거나 움직이기 전에 미리 위험 요소를 살펴서 책임자에게알린다. 이는 유물을 안전하게 다루는 선결 요소이며, 자신을 보호하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유물을 이동하는 데 인원이 너무 적다고 생각되거나 위험성이 있다고판단될 경우에는 유물의 안전을 위해 작업을 거부할 수 있다.
•특수한 재질이나 손상되기 쉬운 유물은 보존 처리자와 상의한 후에 만지거나 이동한다.
(후략).


146) 이내옥. (1996) <문화재 다루기 : 유물 및 미술품 다루는 실무 지침서> 서울: 열화당. PP.16~19. - P183

•유물을 실측할 때는 금속 재질의 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천이나 플라스틱 테이프의 자를 사용한다.
•아무리 작은 유물일지라도 한 번에 한 점씩 운반한다.
.
유물에 기대거나 그것을 넘어가지 않는다.
•유물을 움직일 때 부적절한 지적이나 대화를 삼간다.
• 섬세한 유물을 운반할 때에 너무 과도한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다. - P185

두 번째 단계도 첫번째 단계처럼 예방 차원에서 이루어지는데, 화학적 처방이 아닌 물리적인 이동이나 재배치, 물리적인 보호막을 형성하는 것이다. (중략).
세 번째 단계는 손상된 유물을 원형이나 원상태로 복구하기 위한 화학적인 조처가 가해진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교육을 이수한 복원처리사에 의해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 P186

5장

교육프로그램


박물관은 비공식적인 학습 환경 혹은 교육기관으로서 교육적인 기능과 역할을 제공한다. 박물관 교육의 특성은 평생교육의 일환으로서,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는 측면과 간접적인 경험의 축적으로 인한 자아발견과 자아실현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 P216

박물관의 사회교육 기능의 강화는 박물관의 정의를 통해서도 잘 나타나 있다. (중략). 1974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회의의 국제박물관협회 헌장에서는 박물관을 종래의 수집·보존의 차원에서 벗어나 학술적인 차원의 연구와 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입장과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강조하여 보다능동적인 박물관의 개념을 제시하였다.¹⁸⁹

189) 이종철. (1999). 박물관의 사회교육, 박물관 전문인력 양성교육.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pp.218~219. - P217

 즉 현대의 박물관은 전시 기능과 연결하여 교육 기능의 중요성을인식함으로써 기존의 전시 방식인 프레젠테이션에서 탈피하여 해석매체를 통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 P217

 대부분의 공식적인 교육기관에서는 문자나 말이 정보의 매체이지만, 박물관 교육 환경에서는 시각적인 매체를 사용한다. 이러한 매체는 관람객들에게 그들이 하나의 요소로서 내재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청사진을 재현해 주며, 세계와 타인에 대한 인간의 반작용과 상호작용을 제시하여 관람객들을 탐험의 세계로 초청함으로써 인간 경험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된다.  - P218

1. 박물관 교육프로그램의 유형

일반적으로 박물관의 교육프로그램은 장소에 따라 분류하면 관내교육과 관외 교육으로 나누어진다. - P218

관람객 계층별로 분류하면 일반 대중을 위한 공공프로그램¹⁹⁰ (청소년 강좌, 어린이 교육프로그램, 주부 강좌, 노인대학, 관광안내원 강좌), 가족 단위 프로그램, 학교 연계 프로그램¹⁹¹, 국내 거주 외국인 대상 프로그램, 장애인 프로그램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안내원 양성교육과 자원봉사자 양성, 박물관 전문 인력 재교육프로그램이 포함된다.

190) 연령별, 관심별, 여가 시간의 활용도 등에 따라 주부, 직장인, 노인, 연구활동을 원하는 전문인 등을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기획한다. - P219

관외 프로그램으로서 전시회나 교육프로그램에 특정 지역의 관람객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주민의 공통적인 관심사와 관련된 주제를 설정함으로써 교육적 • 계몽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관외 프로그램은 순회 전시, 학교 대여 서비스, 행사 및 활동 프로그램 등이 있다. - P219

2) 전시 설명회 (gallery talk)

대부분의 박물관은 이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30분 내지 한 시간 가량 학예연구원, 관련 학자, 또는 도슨트들이 관람객을 대상으로 상설전시나 기획전시의 전시물을 설명한다. - P220

3) 강좌 (lecture)

강좌는 정기강좌와 특별강좌로 대별된다. 정기강좌는 박물관 소장품이나 전시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진행하며, 특별강좌는 이와 관련된 저명한 강사를 외부에서 초빙하여 실시하는 것으로 이를 강연이라고한다. 강좌는 집단적인 학습 형태를 띠기 때문에 청중의 지적 수준을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해진다. - P220

5) 오디오 가이드 (audio guide)

오디오 가이드는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교사와 함께 전시 작품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며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중략).
녹음 내용은 학예연구원이 대본을 쓰고, 교육 담당자는 관람객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과 용어를 사용하였는지를 감수하여 수정 보완한 뒤 내레이터가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편집한다.¹⁹²


192)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99). <99 박물관·미술관 학예직 연수> 서울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pp.140~141. - P221

6) 비디오 프로그램 (video program)

비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제작 인력과 장비, 공간이 구비되어야 한다. 공간의 경우에는 전시장과 분리된 시청각교육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소음이나 관람객의 병목 현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 P222

7) 학교 연계 프로그램 (school program)

학교 교육과의 연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박물관의 소장품이나 전시와 관련하여 학교 연계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박물관과 학교와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 교육 담당자는 학교 교사들과의 접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박물관을 활용하여 미술 교육이나 역사 교육 내용과 접목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 P222

9) 움직이는 박물관 (mobile museum)

움직이는 박물관은 대형 버스에 박물관의 유물을 싣고 다니면서 박물관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지역에서 전시회를 진행하는 박물관 관외활동의 하나이다. 영국에서는 리버풀과 같은 큰 도시나 기타 소도시에서 모두 성공적으로 이러한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와 스웨덴에서는 대형 버스가 아닌 기차로 유물을 이동하여 전시하고 있다.¹⁹³
우리 나라의 경우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문화 접촉 빈도의 증진을통해 건전한 시민정신 함양과 대중적 문화 향수 기회의 확대를 취지로 ‘찾아가는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193) Ambrose. T & Paine, C., (1995). Museum Basics. London: Routlcaige. p.42. - P223

10) 가족 프로그램 (family program)

온 가족이 휴일이나 주말에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벤트 형식의 프로그램으로서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들이 함께 가족 단위별로 참여할 수 있다. - P224

미국의 현대미술관(MOMA)의 ‘아트 사파리(Art Safari)‘프로그램은매우 성공적인 가족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박물관에서 직접 진행되며,집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아트 사파리 온라인(Art SafariOnline)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¹⁹⁴


194) http://www.moma.org/programs/index.html - P225

2. 교육프로그램의 개발

(전략).
첫번째 단계에서는 박물관의 설립 취지와 관련하여 박물관에서 교육기능의 본질과 개념을 명확히 파악하여, 교육프로그램의 목표와 박물관의 설립 취지가 동일선상에 있도록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는 박물관 교육의 철학과 이념을 정립하는 과정이며, 이를 근거로 차후에교육프로그램을 실행하고 평가할 수 있다. - P227

프랭크 오픈하이머(Frank Oppenheimer)는 ‘교육의 기본 목표는 문화를 전달하는 것이며, 박물관은 이를 위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문화를 보존하는 것은 교육을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박물관 교육의 철학과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¹⁹⁶


196) Bloom, & Powell. (ed.) (1984). Museums for a new century. Washington, DC. :American Association of Museums, p.57.
197) Berry, N. & Mayer, S. (ed.) (1989). Museum education: history, theory andpractice. Virginia: The National Art Education Association. p.95. - P227

 박물관에는 적어도 교육을 담당할 한 명 이상의 교육 담당자를 확보하여야 한다. 물론 대규모 박물관에서는 더 많은 수의 교육 담당자를 필요로 할 것이다. 교육 담당자는 소장품 혹은 전시물과 관람객과의 의사소통자인 동시에 해석자이다. - P228

네 번째 단계는 목표 관람객을 선정하고 대상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목표 관람객의 대상은 용어 사용, 교육 수준, 사회적 관습에 따라 교육프로그램 정보의 수준이 조정되어 개개인의 학습 능력에 맞는 매체 · 내용 • 방법 · 목적이 주의 깊게 기획되어야 한다. - P229

6장

박물관 마케팅

1. 박물관과 관람객

이 책 2부 4장 박물관의 형성과 발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적인 박물관의 관람객은 학자 · 예술가 · 귀족 등의 특정 계층으로 관람계층이 제한되어 있었으나, 근대 박물관의 형성과 더불어 박물관은 영역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관람객=일반 대중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게되었다. - P231

일반적으로 설립 취지에 명시되어 있는 것과 같이, 비영리기관인 박물관은 대중에게 봉사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관람객이 없는 박물관은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과 같다. 현대 박물관의 ‘상호교류‘ 는 박물관의 문화 촉매 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 P232

201) Hooper-Greenhill. E. (1996). Museums and their visitors, London: Routledge. p.51. - P233

오늘날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관람객 개발‘이라 할 수 있다. 후퍼 그린힐(Hooper Greenhill, E.)의 말을 빌리자면, 박물관과 박물관이 봉사하는 다양한 관람객의 관계는 점차 중요성이 더해가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는 박물관과 소장품을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증진될 수 있다.‘²⁰²


202) McLean, F. (1997). Marketing the Museum, London: Routledge. p.89. - P233

일반 대중의 박물관에 대한 관람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평생 동안 박물관을 한 번도 관람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박물관이 특정 엘리트 계층을 위한 것이라는 편협된 생각을 갖고 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가족과 친구와 함께 일 년에 수차례 방문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시간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람을 즐기기도 한다.²⁰³

203) Kotler, N. & Kotler, P. (1998). Museum strategy and marketing designing missions.
building audiences, generating revenue and resources, San Francisco: Jossey-BassPublishers. p. 100. - P234

박물관의 관람층은 단일화된 총체적인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아니라 작은 계층의 단위가 모아져서 하나의 시장을 이룬다. 따라서 수요층의 윤곽을 파악하여 시장을 분할한 다음 관람객의 동향을 파악하고, 시장 분리가 이루어지면 목표 관람객과 잠재 관람객으로 크게 나눈다. 잠재 관람객은 박물관을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관람객 계층을포함한다. - P234

그중 열성 집단은 기존의 박물관 문화 체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갖고 있는 수요자 계층을 말한다. (중략). 관심 집단 역시 예술 소비자의 범주에속한다. 이들은 특정 분야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동기부여가 되면 상황에 따라 관심이 유발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 P235

사람들이 여가활동을 즐기는 이유와 방법은 다양하며,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선택 기준이 다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여가 활동을 선택할 때는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하게 되며,²⁰⁶ 궁극적으로는 여가 활동을 통해 일상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기를 원한다.


206) 마릴린 후드(Marilyn Hood)는 성인들의 여가시간 활용에 대한 6가지 선택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①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상호교류하기를 원한다.
②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추구하고자 한다.
③ 주어진 환경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고자 한다.
④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고자 한다.
⑤ 학습의 기회를 갖고자 한다.
⑥ 능동적인 자세로 어떤 일에 참여하고자 한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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