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전에는 내내 비가 내렸다. 나와 하루는 숲 아래쪽으로 내려가 지표 나무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샤이엔이 지금 내려갔다간 비와 진흙 때문에 옷이 엉망이 되고 말 거라며 만류했다. - P193
랑카위 연구소에 있을 때 엿들은 말이 기억났다. 그때 연구원들은 국제 협의체가 더스트 농도를 줄이는 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으니 곧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P194
오후가 되어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을 보고 나와 하루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땅이 축축해서 발을 뗄 때마다 진흙이 신발에 달라붙었다. 오늘 확인해야 할 지표 나무에 가까워질 무렵, 갑자기 하루가 손으로 나를 막아섰다. "저길 봐, 발자국이야." - P194
하루가 쉿, 하고는 몸을 숙였다. 무언가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하루를 따라 몸을 낮추고 소리를 죽였다. 하루가 발자국이 이어지는 방향을 가리켰다. (중략). 그곳에 미어캣처럼 생긴 동물이 있었다. - P195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니야. 하루는 미어캣을 따라 뛰고 있었다. 나는 팔에서 피를 철철흘리면서 하루를 따라갔다. - P196
안개가 점점 짙어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무에 부딪혀 그대로 진흙 위를 굴렀다. 온몸에 낙엽과 진흙이 달라붙었고 얼굴에도 묻어 시야를 가렸다. 드르륵 구르는 소리와 격발음이 들렸다. 소음이 사방에서 귀를 때려서 방향조차 알 수 없었다. 뒤이어 정찰 드론들의 사격 소리가 들려왔다. - P19
어떤 장면들이 눈앞에 겹쳐졌다. 연구실 유리를 부수고 도망치던 날, 돔에 잠입해서 마구 총을 쏘아대던 사람들..………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이 안개 때문인지 아니면 정신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 P197
아마라는 소리지르며 양손으로 내 얼굴을 감쌌다. 나는 가짜 미어캣을 팔로 꽉 끌어안은 그대로 지수 씨를 불렀다. "지수 씨!" 놀란 표정을 한 지수 씨가 나에게 가까이 왔다. "이거, 그 사람들과 같이 왔어요." 내 팔은 미어캣의 칼날에 베여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 P198
미어캣은 예상대로 스파이 로봇이었다. 지수 씨는 로봇의 칩을 분리해낸 다음 전원을 완전히 제거했다. 마을 사람들은 내가그 미어캣의 정체를 간파해냈다는 사실에 놀랐는데, 지수 씨의로봇 강아지를 자주 보았기 때문에 진짜 동물이 아닐 거라고 짐작한 거였다. - P199
어른들은 침입자들에 대해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마을 회의에서 대니는 침입자들이 우연히 이 숲에 도착했을뿐이고, 처음부터 숲의 존재를 알고 찾아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게 거짓말이라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많았다. 아이들도 그 말을 다 믿지는 않았다. "대니는 거짓말은 안 해. 우리에게 왜 사실을 숨기겠어?" - P200
마을의 분위기는 더이상 예전 같지 않았다. 누군가가 폐허 탐사를 하러 간 사람들을 비난했다. 그들이 부주의하게 마을의 존재를 드러냈을 거라고, 그러지 않고서는 마을이 외부에 노출될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폐허 탐사조는 매번 인원 구성이 바뀌었는데, 회관에서 그중 누가 잘못했는지를 가려야 한다며 말다툼이 크게 벌어졌고 대니가 와서야 겨우 상황이 수습되었다. - P201
침입자들의 등장 이후로 나는 프림 빌리지가 안전한 장소가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를 더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작은 균열이 이 마을에 만들어낸 불안감의 안개였다. - P202
(전략). 하루는 방송에 잡음이너무 많이 끼어 있어 나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지수 씨는한참을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말했다. "나오미, 지금 마을로 내려가야겠다. 지금 당장." 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굳은 얼굴로 지수 씨의 설명을 들었다. - P203
폭풍은 여러 돔 시티를멸망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나는 한 번도 그 폭풍을 직접 겪은적은 없었지만,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통해 짐작했다. 그것은 막을 수 없는 죽음을 실어나르는 폭풍이었다. 마을에 공포와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마을은 더스트를 잘 버텨냈다. 마을에는 더스트 저항성 식물들과 분해제 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마을이 더 강력한 더스트에도 버틸 수 있는지, 이 마법 같은 식물들이 어떤 원리로 더스트를 견디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 P204
나는 지수 씨의 부탁으로 정찰 드론들을 회수해서 오두막으로 가다가 위쪽 언덕에서 들려오는 말다툼 소리를 들었다. 온실쪽이었다. 지수 씨가 온실의 유리문 앞에서 레이첼을 향해 화를 내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 상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해져서 오두막에 드론을 놓고 얼른 도망쳐 내려왔다. - P205
하루가 장갑 낀 손으로 덩굴식물을 들어올리며 미심쩍은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그 식물은 닿으면 위험해서 반드시 장갑을 끼고 만져야 한다고 지수 씨는 설명했다. 처음에는 마을 위주로, 나중에는 숲 전체에 이 덩굴식물을 심는 대규모 작업을 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동원되었다. 아이들도 작은 수레를 밀며 숲 곳곳을 따라다녀야 했다. - P206
지수 씨와 대니의 지휘에 따라 숲 곳곳에 덩굴식물을 심고 촉진제를 주입하는 데에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텃밭에 작물을 심는 일과는 달리, 이 작업은 마치 덩굴식물로 숲을 덮어버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덩굴은 무서운 속도로 자랐다. 첫날 심은 것들이며칠 지나지 않아 숲의 나무들을 타고 위로 기어올랐다. "이상한 기류가 느껴져요. 곧 폭풍이 올 거예요." 정상에서 숲 바깥을 내다보고 온 아마라가 말했다. - P207
폭풍의 접근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지자, 지수 씨가 아이들을 먼저 지하 창고로 대피시켰다. 어른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봉쇄한 집에 머무르거나 지하 창고로 이동했다. 그런데 온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누군가가 온실을 밀폐하는일을 도왔을까? 지하 창고로 내려가기 전 온실 쪽을 쳐다보는나에게 지수 씨가 말했다. "레이첼은 괜찮을 거야. 온실은 원래 바깥과 공기가 통하지 않게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그 안은 폭풍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 - P208
지상으로 향하는 철문 앞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던 밀리어가말했다. "이제 거의 근접했어요." 잠시 뒤 라디오도 완전히 끊겼다. 바람에 문이 덜컹이기 시작했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 P209
"나오미, 울지 마. 난 그냥 잠들어 있었던 거야. 괜찮으니까......" 훌쩍이는 나를 토닥이며 아마라는 지금 상황이 어떤지를 주위에 물었다. 대니와 샤이엔을 비롯해 몇 명의 어른들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보호복을 껴입고 더스트 농도를 확인하러 나갔다고 했다. 지하는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별일 없을 것이라고말을 하는 것도, 걱정된다고 입을 여는 것도, 모두 불안을 증폭하는 행위 같았다. - P210
살아남은 마을과, 살아남은 식물, 그것 사이의 연관성을. 밀리어가 덩굴 잎을 들어올렸다. 잎에서 푸른 먼지가 떨어져흩날렸다. "우럴 구했어요. 이 식물이......" - P211
사람들은 레이첼이 마을을 구했다고 말했다. 정확히는 레이첼이 만든 덩굴식물이 더스트 폭풍으로부터 마을을 지켰다고. 아무도 그것들이 어떻게 기능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복잡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 P211
더스트 폭풍 이후에, 덩굴들은 더욱 맹렬하게 성장했다. 고작 며칠 만에 마을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로 자란 것도 놀라웠는데, 그대로 내버려두자 마을의 건물과 장비는 물론이고 숲의 나무들마저 온통 덩굴이 뒤덮어버렸다. - P212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 공격적인 덩굴들조차도 숲의 경계를 절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작물만이 숲을 넘어 퍼져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덩굴들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숲을 점령했지만 이 숲 너머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맹렬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식물들. - P212
이 숲이 도무지 지구의 것 같지 않았다. 그보다는 외계의 풍경에,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모형 정원에 가까워 보였다. 마치 덩굴식물이 프림 빌리지를 완전히 잡아먹어서, 이곳을 저 기묘한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버린 것 같았다. - P213
"어차피 식물들은 이 숲에서만 자라고, 여길 떠나면 자라지 않잖아? 식물들을 보여줘봤자, 돔 시티 녀석들은 오히려 우리 숲을 뺏으려고 할걸." - P214
"돔이라고 해서 괴물들만 있는 건 아니지. 계속 여기 갇혀 살다 죽을 텐가?" "갇혀 산다니? 프림 빌리지는 감옥이 아니라 우리가 일궈낸 삶의 터전이라고." "이곳이 정말로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거라고 믿나?" 뭐가 옳은 건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세계를 말하는 것이 이상했다. - P215
지수 씨가 온실에서 새로운 씨앗과 모종을 가져왔고, 어른들이 그것들을 경계 너머의 죽은 숲으로 가져가서 심었다. - P215
하지만 열흘이 넘도록 죽은 숲에는 싹 하나 트지 않았고, 한달이 지났을 때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나는 대니 몰래 경계로 내려갔다가, 경계에만 무성히 덩굴들이 자라 있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지수 씨의 오두막으로 갔더니 아직 불이 환히 켜져있었다. 그런데 안에 지수 씨는 없고 로봇 강아지만이 바닥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 P216
마을을 지켰던 덩굴식물이 축복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곧 분명해졌다. 덩굴이 텃밭의 작물들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반년 넘게 키운 작물들이 전부 죽어버려서 재배를 맡은 사람들은 몹시 상심했다. 덩굴은 긴 실뿌리를 흙 아래로 뻗어서 텃밭의 작물들을 말려 죽였고, 원래 있던 뿌리에 자신의 뿌리를 칭칭감아 징그러운 덩어리를 만들었다. - P217
텃밭이 엉망이 되면서 영양 캡슐과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폐허 탐사를 나가는 횟수가 잦아졌다. 하지만 이조차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원래 자주 탐색하던 장소는 이미 떠돌이들과돔에서 보낸 사냥꾼들에게 모두 털려서 더이상 건질 물자가 없었다. - P218
"나오미, 지금부터 분해제 만드는 법을 알려줄 거야." 갑작스러운 말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지수 씨와테이블 위를 번갈아 보고는, 버벅거리며 대답했다. "아・・・・・・ 그 분해제요, 레이첼이 만드는. 그런데, 그걸 왜 저에게?" "아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야. 그리고 네가 이걸 가장 잘 배울 것 같으니까." - P219
지수 씨가 키득 웃었다. "설명하자면 좀 긴데, 들어봐, 분해제는 레이첼과 마을 사이에거래되는 거야.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마을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얻어가는 게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까 분해제 제조법은 사실상 레이첼의 독점 방책이야. 안 그래도 온실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쥐고 있는 걸 내줄 필요는 없잖아? 그런데 내 입장은 또 달라. 만약 레이첼이 분해제를 나눠줄 수 없게 된다면어떻게 될까? 혹은 분해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더 많아진다면? 나는 그런 문제에 대비해야 해." - P220
"레이첼이 더이상 분해제를 만들지 못하게 된 거예요? 어디가 아프다거나...... " "아니야, 나오미, 레이첼은 아주 멀쩡해." - P221
"제조에 필요한 재료와 무게, 과정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 과학의 원칙이지. 하지만 이건 달라. 감추는 것이 널 구할 테니까. 지금은 그런 시대야. 원칙이 네 약점이 되고, 편법이 네 무기가되지. 이 비참한 시대가 끝날 때까지는, 네 머릿속에 제조법이완벽하게 들어가 있어야 해. 남이 볼 수 있는 기록은 절대 남기지마. 아무리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숨기는 게 좋아." 이번에도 알 듯 말 듯 한 이야기였다. 그래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우는 것이라면 자신 있었다. - P221
하지만 막상 제조법을 배우기 시작하자, 자신감은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단지 사용량이나 제조 순서를 외우는 것만으로는 분해제를 완성할 수 없었다. - P222
일주일에 두 번, 폐쇄된 실험실에서 지수 씨와 나는 만났다. 프림 빌리지의 갈등은 점점 심각해졌고 어딜 가든 사람들은 날이 서 있었으므로, 실험실에 오는 이때가 유일하게 평화로운 시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분해제를 만드는 법은 점점 손에 익어서, 나중에는 지시 없이도 거의 정확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 P222
"그럼 레이첼이 원하는 건 뭔가요?" "그게 바로 내가 아직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야. 레이첼은 뭘 원하는 걸까? 대체 무엇을 줘야 우리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까?" - P224
내가 묻자 지수 씨는 대답하는 대신 무릎을 살짝 숙여 내 눈을마주보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 "덩굴식물이 증식한 이후부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많은 말들이 오가요. 생각이 다들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렇게까지 말다툼하는 걸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 어떤 이야기인지 나에게 말해줄래?" - P225
"돔 안의 사람들은 결코 인류를 위해 일하지 않을 거야. 타인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는 게 가능했던 사람들만이 돔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인류에게는 불행하게도, 오직 그런 이들이 최후의 인간으로 남았지. 우린 정해진 멸종의 길을 걷고 있어. 설령 돔 안의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더라도, 그런 인류가 만들 세계라곤 보지 않아도 뻔하지. 오래가진 못할 거야." - P226
나는 멍하니 지수 씨를 보았다. 그가 나를 마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돔을 없애는 거야. 그냥 모두가 밖에서 살아가게 하는 거지. 불완전한 채로. 그럼 그게 진짜 대안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거야.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해. 현상 유지란 없어. 예정된 종말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해서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거야." - P227
내 말에 지수 씨는 침묵했다. 나는 절박한 심정이 되어 말했다. "전 이 마을이 좋아요. 제가 있었던 곳 중에 이런 곳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그동안 머물렀던 모든 곳이 제게는 너무 끔찍했어요. 오직 여기만이 달랐어요." 나를 바라보는 지수 씨의 표정이 아주 복잡했다. - P228
덩굴식물이 제초제에도 말을 듣지 않고 숲 전체를 잠식해버리자, 마을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제는 텃밭뿐 아니라 실내 재배를 하던 작물들까지 모두 엉망이 되었다. 식량배급이 이틀에 한번으로 줄었고, 영양 캡슐로 버텨야 했다. - P229
더스트 폭풍이 잦아졌고, 그럴 때마다 마을을 봉쇄한채 지하 대피소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이틀에서사흘로, 그리고 또 닷새로 숲에서 내다보이는 외곽 지역은 언제나 붉은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고, 나중에는 마치 피바다를 이룬듯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더스트 폭풍에 살아남으려면 덩굴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덩굴은 사람들을 굶주리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아름다워 보였던푸른 먼지는 이제 고통의 근원처럼 느껴졌다. - P230
. 소문에 따르면 야닌이 종자와 거래한것은 돔 시티의 입주권이었다. 그 돔 시티에 야닌의 먼 친척들이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하루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부들부들떨었다. "자기들만 살아남으려고 우리를 배신한 거야." "하지만 그 식물들은 어차피 숲 바깥에서는 안자라잖아. 야닌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 P231
"언니, 죽더라도 여기서 죽자고 했잖아. 나, 그 말을 기억해." 아마라는 나를 슬픈 눈으로 보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지수 씨와의 대화를 거듭 생각했다. 지수 씨도 나에게 분해제 제조법을 알려주면서 식물들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대니가 말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 같았다. - P232
"네가 왜 그러는지 알아. 무슨 마음인지도 알아. 하지만 우린 이곳에 더 머물 수 없어. 맹세할게. 네가 원한다면, 나는 무엇이......" 유리 너머 레이첼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조금씩 이곳을,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 P233
푸르게 빛나는 먼지들이 공기중에 천천히 흩날렸다. 나는 숲을 푸른빛으로 물들이는 그 식물들을 보며 고통은 늘 아름다움과 같이 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면 아름다움이 고통과 늘 함께 오는 것이거나. 이 마을에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가져다준 이식물이 나에게 알려준 진실은 그랬다. 어느 쪽이든, 나는 더이상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에 마냥 감탄할 수는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 P234
"하루가 노래하는 거 들었어요? 잘하죠. 오디션까지 봤다는게 거짓말이 아니었네요." "그렇다니까. 난 극장에서 하루를 진작에 알아봤었지." 아마라와 대니가 호들갑을 떠는 동안, 나는 이상하게도 지수씨의 시선이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 P235
나는 지수 씨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꾸 이곳을 떠나는 상황을 가정했던 이유도, 나에게 분해제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이유도 이제 알 것 같았다. 지수 씨는 이 풍경을 보면서 동시에 이 풍경의 끝을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에겐 여기 하나면 충분한데요. 또다른 프림 빌리지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곳,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의미 없는걸요."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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