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실험자가 다른 이들이 전부 잘못된 답을 내놓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시각을 고수하여 옳은 답을 내놓았을 때조차 두뇌의 활성화 측면에 변화가 생겼다. 이렇게 동조하지 않는 경우에는 지각 영역에서가 아니라 편도체라 불리는 아몬드 크기의 두뇌 영역이 점점 더 크게 활성화되었다. - P158

위대한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민권운동에 있어가장 위대한 상식파괴자라 할 수 있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경험이 지각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체험을 통해 알았다. 애틀랜타에서 흑인의 권리를 옹호했을 때 그는 당장 주변 남부 백인들의 분노를 샀다.
킹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흑인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고안된 전략들, 즉 위협에 시달렸다. - P159

대규모 평화시위가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수단임을 보여줌으로써 백인들의 앙갚음에 대한 흑인들의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한 것이다. 비폭력 전략은 혼자섰을 때보다 여럿이 있을 때 안전함을 느끼는 인간의 감정에 의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비폭력이야말로 백인들의대중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마음 깊이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흑인 지도자들이 모두 이 접근법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는데, 특히 말콤 X는 보다 직접적인 대결 전략을 지지했다. - P160

킹은 자기 자신이 초래한 공포이든 백인들이 초래한 공포이든 공포가 흑인들의 지각에 어떤 해를 미치는지 잘 알았다.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폭력은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고통에 몸부림쳤던 나의 사람들이 타인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대신자기 스스로 고통을 떠안았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두려워하고 겁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속한 이 사회나 다른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¹¹ - P161

11 1964년 12월 11일 마틴 루터 킹의 노벨상 기념연설 중에서 - P353

대수의 법칙

인간의 두뇌가 타인의 의견에 아주 쉽게 영향을 받아 자신의 시각 정보를 쉽게 무시한다는 것은 언뜻 직관에 반하는 주장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통계적 관점에서 보면 이 생물학적 조건부 항복이 온전히 이해가 된다. - P162

우리가 대상을 범주화하는 방식은 분명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 과정을 경험의 산물로 생각했지만,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또다른 심지어 더욱 유력한 범주화의 근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타인들이다.
애쉬의 실험과 이후 우리가 기능성 MRI를 가지고 실시한 유사 실힘들은 모두 피실험자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개개인들이 집단의 의견에 휩쓸렸다면, 주관적인 판단을 할때는 집단의 의견에 더욱 영향을 받을 것이다. - P162

이 문제는 애쉬 효과* 와도 관련이 있고, 병 안에 젤리 과자가 몇 개나 들어 있을까를 추측하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젤리 숫자 맞추기 게임에서 우리는 1달러씩 걸고 저마다 하나의 추측을 내놓는다. 그리고 실제 수량에 가장 가까운 추측을 내놓은 사람에게 걸려 있는 돈과젤리 과자 단지를 모두 내준다. 만일 충분한 수의 사람을 모아 그들의 추측을 기록한다면, 그 추측들은 종 모양의 곡선으로 분포될 것이다.¹³

★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는 성향. - P163

13 실제로 종 모양의 곡선은 왼쪽의 0에서부터 상승하고 오른쪽에서 하강한다. - P353

 개인의 의견은 개개인으로 이루어진 집단의 독립적인 의견보다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군중을 따르는 것은 아주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다.¹⁵ 그러니 단지 안에 젤리 과자가 얼마나 있는지 알고 싶다면, 많은 이들에게 의견을 묻고 그들의 대답을 평균 내라.
대수의 법칙은 수학적으로 아주 믿을 만하다. 그 법칙이 발견되기까지 너무 오랜 기간이 걸렸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 P164

15 제임스 슈로위키는 이 통계 법칙을 크게 중요시했고, 심지어는 적어도 집단 구성원들이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한 개인의 의사결정은 항상 집단의 의사결정보다 좋지 않다는 주장까지 했다. 제임스 슈로위키의 《군중의 지혜 : 왜 다수가 소수보다 현명하며 어떻게 집단적 지혜는 사업, 경제, 사회, 국가를 형성하는가》(뉴욕, 더블데이. 2004년)를 참조하라. - P353

통계적으로 집단은 개인보다 우월하므로 다른 동물들의 행태를 발견한 동물은자기 자신에만 의지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동물보다 항상 더 많은 먹이를 얻을 것이다. 성공 확률이 크게 높아지며 위험은 훨씬 작아지기때문이다. 집단의 힘은 개인의 힘보다 훨씬 크며, 진화는 그 힘을 이용할 줄 아는 동물의 편이다. 그래서 ‘집단사고‘는 서로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모든 동물들에게 지배적인 전략이 된다.
비록 통계적으로는 집단의 사고가 개인의 사고보다 우월하다 해도 대수의 법칙은 상식파괴자에게는 맹독이 되기도 한다. - P165

차이를 인정하라

편도체와 관련해서 앞장에서 설명한 전략들은 모두 여기에서도 적용된다. 가령, 인지 재평가는 두려움을 유발하는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효과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이에 더하여,
고립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각이 바뀌는 상황에만 특정하게 적용되는전략들도 있다. 누구도 어리석어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 P166

상식파괴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한 명으로 이루어진 소수다. - P166

다행히 극단적인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군중에 휩쓸리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맞설 수 있는 차선책이 있다. 애쉬는 실험을 반복하면서, 집단이 만장일치로 뭉쳐야만 피실험자를 효과적으로 동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반대자가 한 명만 있어도 군중 효과는 충분히 깨질 수 있었다. - P167

제도 차원에서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즉 이런 사실에비추어 우리는 의사결정기구에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리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의견 차이는 반드시 고무되어야 한다. 이런 의사결정기구들은 대개 투표를 통해 결정을 내리지만, 개개인이 자신의 판단을얼마만큼 자신하는지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투표 활동은 애쉬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 P168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두려움을 완화시킬 만한 몇 가지 효과적인전략들이 있다. 인지 재평가도 그렇지만 소거도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은 장기간 지속될 수 없다. 반복적으로 노출이 되면 전두피질의 활동에 의해 두려움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소거는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가 명확히 정의되고 그 두려움을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때 아주 효과적이다. - P169

두려움은 술과 같다고 생각하라. 그것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 두려움에 취해 있을 때에는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말아야 한다. - P1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려움은 지각 시스템과 상호 작용하여 사람이 보고 있는, 혹은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지각이 바뀌면 그 사람은 잘못된 행동을 택할 수가 있는데, 그 결과는 때로 치명적이다. 이는 두려움에 의해 행동이 억제되는 것보다훨씬 더 위험하다. - P139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폭발했을 때전 세계 모든 사람들은 잘못된 결정과 행동에 따른 치명적인 결과를 목격했다. 사후 조사의 선두에 섰던 사고조사위원회는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하고 우주여행과 관련된 위험을 과소평가한 미항공우주국NASA의 문화가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 P139

티오콜사와 미항공우주국 내의 그렇게 많은 엔지니어들이 고무링에 대해 걱정했는데 왜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을까? 미항공우주국은 안전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었지만, 대통령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그것은 아주 비효율적인 것이었다. 빠듯한 비행 스케줄을 맞춰야 한다는 심한 압박감 때문에 안전 프로그램을 뒷전으로 미루기 일쑤였던 것이다. - P141

물리학계의 상식파괴자, 리처드 파인만

노벨상을 수상한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 출신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Richard Feynman은 챌린저호 참사가 미항공우주국 경영진의 잘못임을 분명하게 밝혀냈다. 그는 고무 링 조각이 얼어붙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의회 의원들 앞에서 시연했고, 지극히 솔직한 태도로 대중의 영웅이 되었다. 당시 파인만은 물리학계에서 상식파괴주의로 이미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 P142

 파인만의 정신적 지주였던 로버트윌슨 Robert Wilson 은 곧 시작될 맨해튼 프로젝트*에 파인만을 끼워주었다. 윌슨은 이렇게 회상한다. "파인만의 계속되는 회의론, 그 어떤 권위적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가 그 프로젝트에서는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⁵ 실제로 그랬다. 파인만은 수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긴 계산식을 척척 풀어내야 하는 연구팀을 책임지게 되었고, 정답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오류를 잡아내어 사물을다르게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 P143

5 제임스 글리크의 《천재 : 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 (뉴욕, 판테온북스, 1982년)을 140쪽을 참조하라. - P353

그는 무한대에서부터 무한소수로 접근하거나 색다른 방향에서 수학식에 접근하는 등 독특한 관점에서 계산식을 바라보았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마저도 "모든점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 물리학자라고 평하며 파인만을 주목했다.⁶ - P144

6 제임스 글리크의 《천재 : 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뉴욕, 판테온스, 1982년), 184쪽 - P353

다수에 굴복하는 한 사람

파인만은 평생을 상식파괴자로서 당당히 살다 갔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만의 의견을 홀로 밀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 앞장에서 본 대중 연설에 대한 두려움처럼 사회적 고립에 대한 두려움 역시 인간의 두뇌에 깊숙이 박혀 있다. - P145

물론 집단에 소속되면 좋은 점도 많다. 그중 하나가 다수에 속해있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이다. 왜 두뇌가 그처럼 자신의 의견을 선뜻포기해버리는지는 수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통계적인 측면에서보면, 집단의 행동은 개인의 행동보다 더 옳을 가능성이 높다. - P146

사회적 고립에 대한 두려움

애쉬는 사회심리학 영역을 홀로개척해나간 상식파괴자였다.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연구활동을 시작한 애쉬는 어떻게 그 많은 독일인들이 사람을몰살시키는 나치의 이데올로기를 흔쾌히 따를 수 있었는지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 실험으로 우뚝 선이후 수없이 비슷한 실험의 토대가 되었던 애쉬의 실험은 전혀 모호하지 않은 것을 본다 해도, 그리고 개인적인 이익이나 보복의 가능성이 없다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집단에 동조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 P152

지금은 누구든 ‘아무렴, 난 충분히 용감해서 내 관점을 고수할 수있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애쉬의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모두 집단에 동조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리 용감하지 않아도 동조 여부는 자신의 선택 여부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우리가 믿는 것과는 달리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어떨까? - P153

애쉬 이후의 사회심리학자들은 동조가 대개의 경우 일종의 조건부 항복이라는 의사결정 단계에서 발생한다고 가정했다. 하지만 사회적 동조에 관한 논문 곳곳에서 지각이 변화된 징후가 발견되고 있다. - P153

신경과학자들은 기억, 감정, 주의력, 지각과 같은 신경생물학적인 과정들을 살피기 위해 기능성 MRI를 곧잘 이용했지만, 타인에 의해 우리의 시각이 바뀔 수 있는가라는 심상치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능성 MRI를 이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2005년 내 연구팀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애쉬 실험을 현대적으로 변형해서 ‘어떻게두려움이 지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했다.¹⁰ - P154

10 <생물정신의학 58>(2005년)에 실린 그레고리 S. 번스와 동료들의 "머릿속으로 도형을 회전하는 동안 나타난 사회적 동조와 독립성의 신경생물학적 관련성" (245~253쪽)을 참조하라. - P353

권리장전*은개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모두가 사회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암묵적인 계약도 존재한다. 대표자 선출하기, 법 규범에 충실하기, 배심원을 통해 재판하기 등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의견의 차이는 허용하되 투표와 같은제도들을 통해 그 차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런 모든 제도에는 개개인이 "자신의 의지대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가정이 놓여 있다. - P155

배우들의 얼굴은 그들 각각이 기록한 답과 함께 화면 오른편에 나타났다. 이 사례에서 두 개의 모형은 똑같은 것이다. 머릿속으로 회전해보면 이 둘은 똑같은 모양이 된다. 하지만 남들이 다 그 모양이 다르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착시가 생겨 도형의 동일성 여부를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눈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애쉬의 실험보다 약간 더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이 시각 실험은 대개의 참여자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 P1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막 하루 2시간, 기적의 시작

역행자의 첫 번째 단서

이제 스물한 살, 다시 대학에 가고 싶다는 열망은 생겼지만 돈도없고 방법도 몰랐다. 나는 무식하게 독학을 선택했다. 이번엔 수능용 공략집을 발견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상위권 학생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를 찾고, 그곳에 올라온 수많은 성공 후기를 읽으면서 ‘이렇게 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구나‘ 생각했다. - P52

그러다가 재미난 사람 둘을 알게 됐다. A는 30대 중반쯤 되는,
정말 노숙자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자기계발서, 심리서를 읽는 동안 그는 맞은편에서 경제와 주식을 공부하곤했다. 장발의 그는 거의 씻지 않는 것 같은 행색에 다 해진 옷을 입고 도서관에 왔다.  - P52

이럴 수가! 당시 안산에서는 외제차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알고 보니 그는 자수성가한 부자였다. - P52

하반기에는 50대 아저씨 B를 만나게 됐다. 어느 날 도서관 옆자리에 뚱뚱한 아저씨가 앉았는데, 갑자기 나에게 시끄럽게 하지 말라며 핀잔을 줬다. 내가 정중하게 사과하자, 커피 한잔하자며 날데리고 나가 믹스커피를 뽑아주었다. 알고 보니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은행장까지 지내다가 은퇴한 분이었다. 부동산 중개사자격증을 따기 위해 도서관에 다닌다고 했다. - P53

왜 다시 실패했을까? 나는 끊임없이 책을 읽으면서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책을 읽고 지식이 쌓이면서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
‘나는 뭐든 해낼 수 있어‘ 하고 착각했을 뿐, 3개의 벽은 여전히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현실은 단단했다. 집에서는 "그럼 그렇지" 하며 조롱이 이어졌다. 친형은 "나이 먹고 흥부처럼 돈이나 빌려달라고 할까 진심으로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 P54

꿈은 컸다. 최상위 대학 사회과학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현실은시궁창보다 못했다. 이미 친구들보다 3년이나 늦어진 시점이었다.
동갑내기 친구들은 1학년 대학 생활을 마치고 군대 2년까지 다녀왔다. 고졸인 친구들은 곧바로 취업해서 사회 생활 4년 차에 들어섰다. - P55

현실에서 도만티고 싶었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고 싶었다. 논밭이있는 지방대에서 자전거를 타고 철학 책을 읽는 삶이 간절했다. 지방 국립대 철학과 세 곳에 원서를 냈다. 그중에 지리상 ‘대한민국한가운데에 있는 학교‘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전북대를 택했다. - P56

아무리 바빠도,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2시간 책 읽기와 글쓰기는 빠뜨리지 않으려 했다. 대신 나머지 시간은 맘대로 놀거나 빈둥거리면서 지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꾸준히 해두면 훗날 뭘 하더라도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거야.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이 증명하잖아.‘ 지금생각하면 참 단순한 믿음이었다. - P56

내 인생을 가로막던 3가지 벽 중 ‘공부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전북대는 지방 국립대이긴 하지만, 안산이나 전주에선 반에서 3~4등은 해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앞에서 말한 중학교 시절공부를 못한다며 나를 놀리던 친구도 재수를 하고서야 전북대 공대에 들어와 있었다. 평생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친구와의 간격이점차 좁혀지고 있었다. - P57

두 번째로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돈의 벽‘이었다. 대학 1학년 때교내 과외 게시판에 게시글을 올렸는데 대박이 났다. 당시 전북대과외 시장은 의대생과 영어과 혹은 수학과의 사범대 학생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 P57

그래서 나도 과외 구하는 글을 올리기로 했다. 특이하게 하위권전문과외‘라고 제목을 달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공부를 못했는지,
그러나 어떻게 영어와 수학 등급을 끌어올렸는지 구체적인 스토리와 방법을 적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전화가 빗발쳤다. - P58

예전에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5000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지 못했다. 2시간을 일해야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항상 삼각김밥으로 때우곤 했다. 이제 시급이 2만 원이 되고 나니 김치찌개를 매일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 P58

마지막 벽이었던 ‘외모‘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당시 나는 중학교 동창 지한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중학생 때는 별로 친하지 않았지만, 책을 잔뜩 읽던 스물한 살에 만난 지한이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제까지 몇백억 대 넘게 성공한 사람들을 수도 없이만나봤지만, 아직 지한이만 한 천재는 거의 보지 못했을 정도다. - P59

3막배수의 진

"1만 9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날 지한이는 쇼핑을 가기 전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철학과에서 가장 괜찮은 남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명진이 너라는 말이 나올수 있게 해줄게!" 물론 나는 믿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고등학교에다닐 때까지 ‘나는 반에서 가장 못생긴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앞의 사진을 보라). 이성에게도 늘 거절만 당했다. 스무 살 때 두번, 대학에 와서도 두 번 거절을 당한 시점이었다. - P60

지한이는 입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 거의 모두를 뜯어고쳤다.
거꾸로 말하면, 나는 정말 여자들이 싫어할 만한 짓은 다 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한이의 약속 이후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이게 나라고? 믿을 수 없어"를 연발하게 됐다. 그전까지 단 한 번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느낀 적이 없었지만, 이때부터는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이상형을만나는 데 무리가 없어졌고, 인기가 높아졌다. 지한이의 말이 현실로 실현되며 외모라는 마지막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 P61

애초 철학과에 지원할 때, 나는 철학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본 철학과 교수님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대학 내 정치적인 문제로 갈등을 빚거나 시간강사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 P62

철학에 실망을 느낀 나는 몇 년 전까지 열심히 공부하던 심리학을 다시 파고들었고 심리학과 전공 수업도 들었다. 그런데 최신이론들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고 옛 이론을 답습하는 것 같았다. 강의수준도 실망스러웠다. - P62

그때 지한이가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명진아, 네가 그동안 심리학을 많이 공부했으니까 이별 상담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사무실 빌리지 말고 온라인으로 말이야. 너는 상담 공부를 해봐. 나는 웹사이트 만드는 방법을 공부해볼게. 같이해보자." - P63

우리는 배수의 진을 쳤다. 나는 모든 과외를 그만두었다. 그리고지한이와 합숙을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동안 2년간 2시간씩 책 읽기와 글쓰기를 놓지 않았다. 새로운 걸 받아들이고 본질적인 것들을 찾아 연결하는 데 최적화된 상태였다.  - P64

ㅇ 나는 이별했거나 연애 고민이 있었을 때 어떻게 했지? 그래, ‘헤어진 여자 친구 잊는 법‘을 검색했었어. 그 검색어로네이버 지식인 작업을 하고 블로그를 써두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이 키워드로 검색할 거야.

ㅇ블로그나 지식인을 타고 온 사람들이 우리를 신뢰하게 하려면 전문성을 보여줘야 해. 특히 ‘칼럼‘이 중요해. 칼럼에서 완벽한 전문성을 보여주면 돼. 2년 넘게 단련해온 글 솜씨를 발휘하자. - P65

4막 행은 뒤에 숨은 것
이보다 최악의 상황이 있을까??

2011년 3월, 스물다섯 살이던 우리의 사업은 나날이 발전했다.
월세 22만 원짜리 방에 살다가 3000만 원을 벌어들이는 건 기적과도 같았다. 매일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싶은 나날을 보냈다. - P66

3학년이 되자 모든 게 시시하게 느껴졌다. 차츰 전주에서의 삶이 무료해져갔다. 내가 큰돈을 벌자 주위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멀리했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먼저 가진다는 걸 이때 깨달았다. - P67

사업이 커지면서 우리는 각자 역할을 나눴다. 자금 관리와 회계,
경영 등은 지한이가 맡기로 했다. 나는 주로 상담 글을 작성하거나 상담을 진행하고 연구하는 일을 맡았다. CFO(최고재무경영자)와CTO(최고기술경영자)로 갈라진 셈이다. - P68

이때 수많은 사례를 듣고 겪으면서, 나는 어느새 인간 심리 분석과 심리 시뮬레이션 전문가로 거듭났다. 5~10쪽에 이르는 상담사연을 매일 5~6건씩 읽어야 했다. 30분 정도 고민하여 창의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했다. 끝없이 통찰력을 요하는 작업이었기에,
자려고 누워서도 독창적인 해법을 연구했다.  - P69

겉으로는 사이가 좋아 보였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불만이 쌓여갔다. 나는 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치길 바랐지만, 지한이는 보수적으로 하길 원했다. 그리고 나는 창업 초기 외에는 경영에 참여하지않으면서 주도권을 잃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이때까지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 상태였다. 불안한 나와 지한이 사이에 제3자가 개입하면서 우리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 P70

•지한이와 나는 여러 오해가 쌓여 갈라섰다. 나에겐 다른동업자가 생긴다.
● 새롭게 사이트를 열어서 ‘마의 3000만원 매출을 바로 뚫어낸다.
● 2015년 2월 1일, 스물아홉에 사업 수익을 거의 챙기지않은 채로 군대를 간다.
첫 휴가를 나와 보니 회사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동업자와 직원들이 나를 배신한 정황을 포착, 두 번째 휴가를 나와 결국 모든 사업을 정리한다.
• 스트레스 때문에 강직성척추염이라는 난치병을 얻고, 군병원에 입원하여 6개월간 누워 지냈다. - P71

그렇게 괴로운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마음을 고쳐 감상다. ‘신이 나를 얼마나 위대하게 쓰리고 이런 고난을 주는 걸까, 종교를 받진 않았지만, 난 이 고난과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자고 마음먹었다. 늘 큰 고통 뒤에 큰 성장이 온다는 걸 겪어보지 않았던가. - P72

그동안 내가 끊임없이 화가 난 건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지한이와 일을 하면서 3000만 원의 순수익을 냈지만 650만 원밖에 못 가져간 것, 다른 동업자와 일하면서 모든 재산을 잃고 사업체를 빼앗긴 것은 불운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내 그릇이 작았기 때문에 물을 부어도 흘러 넘쳤던 것뿐이었다. - P73

당시 내겐 강직성척추염이 있긴 했으나 의가사 제대를 할 만큼 진행되진 않은 상황이었다. 6개월간 군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이상태로는 군대에도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빨리 제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특기를 살려 글을 썼다. 10여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군 간부들에게 전했다. 꾀병이 아니라 병세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된 몇몇 간부들의 도움으로 제대할수 있게 되었다. 2016년 1월, 내 나이 서른이었다. - P74

피날레  거슬러 오르기

돈, 시간, 정신으로부터 완벽한 자유를 얻다
누군가 이때까지의 내 인생을 지켜봤다면 뭐라고 평가했을까?
가난한 집에서 머리 나쁘고 못생기게 태어난 한 소년의 비극적인삶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그런 출발점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려 했고, 하나하나 장애물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스킬들을 획득했다. - P75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느냐고? 여기서부턴 많은 이들이 아는 대로다. 서른하나, 아무 일 하지 않아도 매월 5000만 원을 버는 구조를 만들었다. 몸은 완전히 회복되어 스포츠를 즐기기 시작했다. 서른둘, ‘이상한마케팅‘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른셋. 한 달 순수익이 8000만 원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자청‘이라는 닉네임으로 유튜브를 시작해 6개월 만에 16만 구독자를 만들고 은퇴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해외에 나가 있었고, 꿈에 그리던 스포츠들을 시작해 트로피를 쌓기 시작했다. - P76

내 인생을 바꿔준 지한이와 동업 분쟁 후 어떻게 됐냐고? 지한이는 내가 책을 집필한다는 소식을 블로그로 접하고, 8년 만에 연락을 했다. 나는 8년간 지한이를 그리워했고, 항상 인생 최고의 은인이라 여기며, 다시 만나길 기다려왔다. 통화 후 우리는 다시 최고의베스트프렌드가 되어 매일 연락하며 지낸다. 지한이는 프로그램 사업으로 대박을 쳤기에, 최근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클라이밍도 같이 즐기며 취미를 공유하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 P77

만약 나의 옛 이야기를 공개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과거의 나처럼 따른 세상의 이야기‘ 혹은 ‘어차피 금수저이거나 천재의 이야기‘라고 치부하며 책을 덮어버렸을지 모른다. 내 이야기가 당신의 모든것을 바꿀 순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무의식에 균열을 내는 데 성공하길 바란다. 또한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꼭 무의식의 균열이라는 개념만큼은 기억했으면 한다. - P78

역행자 1단계_자의식해체

자의식 해체는 역행자 7단계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기도하다. - P82

하지만 새로운 정보를 듣는 데는 10분만 투자하면 된다. 하지만 성공한 친구가 정보를 줘도 ‘잘난 척하지 마세요‘라고 생각하며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자의식은 본인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고 그의 정보를 밀어낸다. - P83

돈을 버는 실질적인 방법론을 눈앞에서 가르쳐줘도 "저는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안 알려주셔도 돼요"라고 우아를 띤다. 누구보다 돈을 원하고, 돈 때문에 인생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때로는 돈 앞에서 치사한 행동을 하는 사람조차도. 하지만 본인이 이런 모순된 사고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 P84

 유전자가 정해놓은 본성과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동시에 위계에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 보호하도록자의식도 탑재한다. 이러한 초기 조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 P85

자의식에 대한 실제 사례를 얘기해보겠다. 내가 진행하는 주요사업은 심리 상담, 전자책 발간, 마케팅 등이다. ‘재회 상담‘이라는아이템으로 처음 창업해 이 분야에서 10년째 국내 1위를 하고 있다. 주로 고객이 여성이었으므로 여성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겠다. - P86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자의식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정작 지나친 자의식 때문에 사랑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원했던 남자보다 훨썬 못난 남자를 만난다. 왜 그럴까? 너무 철벽을 쳐서 그렇다. - P86

이들은 왜 연애에 실패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많이 안 해봤기때문이다. 별로 경험도 없으면서 마음속에는 판타지와 자기만의룰이 가득 차 있다. 연애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관심과 자원을 주고받는 일인데, ‘나‘라는 존재가 너무 소중한 이들은 상대의마음을 헤아리거나 받아주는 데 서투르다. - P87

그들은 상담할 때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하나같이 쿨한 척,
상대에게 미련이 없는 척 행동한다. 이별을 통보한 상대와 다시 만나고 싶어 재회 상단까지 하은 상황이 이미 자의식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 P87

내가 상담한 실제 사례 중 하나인 이 여성은 자의식 때문에 서른살까지 모든 연애의 기회를 놓쳐왔다. 그나마 자신에게 모든 걸 갖다 바치는 남자와 연애를 시작하더라도 서툴기 때문에 관계를 망쳐버린다. ‘연애 잘하는 법‘이라는 글을 접할 때마다 ‘이런 건 한심한여자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식을 회피한다. 스스로 관계를 망쳤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남 탓‘만 시전한다. - P88

대다수의 사람들이 ‘돈‘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원하지만 "꼭 중요한 건 아니야"라고 말한다. 적은 봉급을 보면서 ‘사회가 잘못되었어‘라며 남 탓만 시전한다. - P89

자의식이 인간을 망치는 이유

애초 인간에게 자의식이란 게 왜 있을까? 자의식은 여러 감정과 지식을 엮어서 잘 반응하며 살아남도록 만들어진 진화의 산물이다. 단순한 생물들에겐 자의식이 없다. 에어컨이나 TV 속의 칩이단순한 동작만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 P89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할까? 수많은연구가 수많은 답을 내놓았다. 방향은 비슷하다. 우리의 뇌는 유리의 몸과 마찬가지로 가급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 P90

짝사랑하던 여자를 친구한테 빼앗겨도, 전 재산을 코인 투자로날려도 한 달 후에는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게 자아를 살뜰히 보살펴주는 게 바로 자의식이다. 상처를 봉합하고 적당한 스토리를 만들어서 스스로가 일관되며 가치 있는 존재처럼 느끼게 해준다. - P91

실제로 재회 상담은 지나친 자의식 아래 숨은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들여다보게 하는 과정을 거친다. 자기 객관화를 돕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감정이 많이 정리된다. 무엇보다 자의식 해체가 가져다주는 결과는 ‘자유‘다. - P93

(전략).

누가 쓴 글일까? 네이버 뉴스 기사에 올라온 댓글이다. 돈과 관한된 인터넷 기사에는 반드시 이런 댓글이 베스트에 올라와 있다.
이런 댓글을 타는 사람들은 ‘자의식 좀비‘에 속한다. ‘자외식 방어팬 하면서 아무런 시도와 도전을 하지 않는다. 침대에서 댓글을 달꼬 사냥에 성과를 낸 사람을 깎아내리며 자위한다.  - P97

자의식은 지독하다. 적어도 몇십만 년을 인류와 함께해온 끈질긴 본능이다. 우리 유전자가, 타고난 본성이 자의식을 키운다. 게다가 현대 사회는 더욱 자의식을 부풀린다. 자기 자식을 애지중지키우는 부모들, 남들의 관심을 받기 위한 온갖 SNS가 가뜩이나 비대한 자아에 펌프질을 가한다. - P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맥락의 힘

대영제국이 북미 대륙에 처음 자리를 잡는 과정은 험난했다. 캐나다 최동단에 있는 뉴펀들랜드섬의 세인트존스에는 1583년 8월5일에 "그의 군주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름으로 새로이 발견한 이땅을 점유하고 "그림으로써 이곳에 영국의 해외 제국을 세운 험프리 길버트 경의 상륙을 기념하는 현판이 있다. - P11

엘리자베스 여왕이 롤리에게 맡긴 임무는 식민지를 세우라는 것, 여왕의 표현으로는 "월터 롤리의 재량에 따라 그곳에 거주하거나 남아 있으면서 건설하고 요새를 만들라"라는 것이었다. 롤리가 직접 북미에 간 적은 없지만, 1587년에 그가 보낸 원정대가식민지를 건설했으니 그곳이 바로 현재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다. 그러나 원정대는 거기 ‘남아 있지‘ 않았다. - P12

1990년대 말에 로어노크 식민지의 실패 원인을 설명할 만한 흥미로운 증거가 등장했다. 어느 연구팀이 버지니아주 남동부에 있는 몇 백 년 된 사이프러스 나무들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다가,
로어노크식민지가 사라진 3년의 기간 동안 그 지역이 800년 만에찾아온 혹독한 가뭄에 시달렸음을 알게 된 것이다.² 그런 시기에는 극단적인 식수 부족 때문에 주민들이 살아남기가 몹시 어려웠을 것이다. - P13

1장 맥락의 힘

2 Stahle, D. W., Cleaveland, M, K., Blanton, D. B., Therrell, M. D., & Gay, D.
A. (1998), 잃어버린 식민지와 제임스타운 가뭄The Lost Colony and Jamestowndroughts. Science, 280, 564-567. - P426

1960~1970년대에 사회심리학자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외부에서 지켜보는 관찰자는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의힘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본 관찰자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거짓말을 했을 것이 분명할 때조차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은 성격 탓이라고 생각한다. - P13

 로어노크 식민지에서 일어난 일을 평가할 때도 이런 식의 귀인 오류*가 일어나, 식민지 주민들의 죽음은 가뭄이라는 상황 요인 때문으로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인데도 주민들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맥락 요인이 행위 당사자의 성격 못지않게 중요할 때조차도, 인류에게는 사람이 처한 맥락보다는 사람 혹은 행위 당사자의 영향력을 알아보기가 훨씬 더 쉬운 모양이다.

*어떤 결과의 원인을 엉뚱한 무언가로 돌리는 것. 특히 어쩔 수 없는상황 요인이 있음에도 사람의 행동 원인을 무조건 그의 기질이나 성격 탓으로돌리는 것을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한다. - P14

물론 로어노크식민지의 실패를 순전히 기후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잘못이다. 로어노크 식민지가 생기고 그리 오래되지 않아 건설된 제임스타운 식민지의 주민들 역시 그 지역에 750여 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을 겪었음에도,⁵ 그 식민지는 (비록 가까스로지만) 살아남아 80년 넘게 버지니아 식민지의 수도 역할을 이어갔으니 말이다. - P14

5 Stahle et al., 1998. - P426

본성 대 양육 대결의 종말

이 책은 인간이 어떻게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되었는지에 관한 책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이 말을, 사람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부모 밑에서 한 경험에 따라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가 결정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러다 20세기에 들어서 부모가 물려준DNA 분자들도 우리에게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생물학적사실이 발견되었다. - P15

나의 전작 《의존하는 유전자 The Dependent Gene》는 어째서 유전자가 우리의 특성을 결정하는 단독 요인일 수 없는지에 관한 책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지닌 특징적 본성은 유전자가 결정한다는주장인 유전자 결정론에 반대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 P15

 사실 얼굴 모양 같은 신체적 형질과 성격 같은 심리적특징 등 사람의 특징은 생물학적 분자들과 그 사람이 처한 맥락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결과다.⁷ 전에도 이 주제에 관한 글을 읽어본 사람에게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겠지만, 이 분야를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본성 대양육 논쟁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과학자들이 인간의 특징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항상 유전적 요인과 상황적요인이 모두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 P16

7Schneider, S. M. (2012). 《결과의 과학: 결과가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고, 뇌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세계에 효과를 남기는 방식 The science of consequences: Howthey affect genes, change the brain, and impact our world). Amherst, NY: Prometheus Books. - P426

 하지만 내가 ‘후성유전‘이라는 생물학적 과정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그 용어가 어쩐지 못마땅하다고 하셨다.
‘epi‘라는 접두사가 그리스어로 ‘위에‘, ‘겉에‘, ‘위쪽에‘라는 뜻임을 알고 있는데, 유전자 위에 뭔가가 있다는 개념을 납득할 수 없다는 얘기였드. - P16

 과학자들이 후성유전에 관해 이런식으로 말할 때는, 한 유기체의 발달에 영향을 주는 비유전적 요인들, 예컨대 호르몬이나 동물이 살아가는 사회적 맥락 등을 염두에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의사인 아버지는 이런 은유적 설명을 부적절하게 여겼고, ‘후성유전적epigenetic‘ 이라는 단어를 쓰려면 그건 물리적으로 유전자 위에 존재하는 것만을 지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P17

심리학과 생물학

발달심리학자인 나에게는 심리적 특성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발달하는지가 큰 관심사다. 그 발달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생물학 공부가 아주 유용했다. 심리학에 생물학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성격, 행동, 감정, 생각이 모두 생물학적 기관인 뇌의 구조와 기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기관들도 심리적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 - P18

 예컨대 보통의 건강 상태를 지닌 어떤 사람의 심박수 변화를 하루 동안 살펴볼 때, 갑작스레맥박이 치솟은 것은 요즘 반해 있는 사람의 모습을 우연히 보았기 때문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 이유를 몰라 혼란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경험이 정신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로 우울증이 체중 증가에 미치는 영향⁸이나 심리적 스트레스가 심장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⁹ 등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경험이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것이다. - P19

8 Needham, B. L., Epel, E. S., Adler, N. E., & Kiefe, C. (2010), gTrajectories of change in obesity and symptoms of depression: TheCARDIA study.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00, 1040-1046.

9 Dimsdale, J. E. (2008).
Psychological stress andcardiovascular disease. Journal of the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 51, 1237-1246. - P426

행동 후성유전학의 통찰에는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방식을 바꿀 만한 잠재력이 담겨 있다. 그러니 이 학문은 생물학자들만의 영역으로 남겨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이 지식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 P20

후성유전학의 혁명적 발견들

내가 주로 집중할 분야는 후성유전학 중에서도 후성유전의 효과가 감정적 반응성, 기억과 학습, 정신 건강, 행동 같은 심리적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연구하는 분야인 행동 후성유전학이다.¹² 나의 강조점이 이렇다 보니, 암이나 노화 같은 주제는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을 것이다. - P22

12Lester, B. M., Tronick, E., Nestler, E., Abel, T., Kosofsky, B., Kuzawa, C. W.,
Wood, M. A. (2011).
York Academy of Sciences, 1226, 14-33.
Behavioral epigenetics. Annals of the New - P427

여기서 주의 사항도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 행동 후성유전학을 둘러싼 흥분이 워낙 급속도로 커지다 보니 벌써 몇몇 저자들이 이 뜨거운 새 분야가 너무 성급하게 앞서 나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¹⁴ 최근 몇몇 논문은 행동 후성유전학을 둘러싼 "들뜸"에 우려를 표했고,¹⁵ 존경받는 과학자 8명은 2010년<사이언스>에 실린 "후성유전체 프로젝트의 과학적 근거에 진중한 유보의 뜻을 표명"하는 서한에 서명했다.¹⁶ - P23

14 141516Miller, G. (2010). The seductive allure of behavioralepigenetics, Science, 329, p. 24.

15 15a. Albert, P. R. (2010). 정신질환에서 후성유전, 희망인가 과대광고인가?
Epigenetics in mental illness: Hope or hype? Journal of Psychiatry and Neuroscience,
35,366-368.
15b. Buchen, L. (2010). 190 In their nurture, Nature, 467, 146-148.

16 Prashne, M. (2010). 후성유전체 프로젝트의 과학적 근거에 관한 질문들Questions over the scientific basis of epigenome project, Nature, 464, p. 487. - P427

2

DNA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양쪽 가슴을 수술로제거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그는 완전히 건강한 상태였다. 그가<뉴욕타임스>에 발표한 글에 따르면, 자신에게 "유방암과 난소암의 발병 위험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결함 있는‘ 유전자 BRCA1"¹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 P25

2장DNA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1 Jolie, A. (2013, May 14). 나의 의학적 선택 My medical choice. New York Times. - P427

졸리가 쓴 글을 보면 결정을 내리기 전 자신이 처한 상태를 꽤 상세히 이해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문제의 유전자는BRCA1 (브라카-원이라고 읽는다)이라는 두문자어로 지칭하지만,
이는 더 공식적인 ‘유방암 1(Breast cancer 1)‘이라는 단어를 줄여만든 별칭이다. 이런 이름을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이 유전자가 유방암을 유발하는 비정상적 유전자라고 속단할 것이다. 하지만 그생각은 두 가지 중요한 면에서 틀렸다. 첫째로 BRCA1은 비정상이아니다. 이 유전자는 모든 사람의 몸속에 존재할 뿐 아니라 손상된DNA를 수리하는 필수적인 기능이자 꽤 자주 필요한 임무를 수행하므로, 이것이 우리 몸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스러운일이다. 둘째, BRCA1의 다양한 변이형 중 암과 연관된 것들조차그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직접적인 방식으로 암을 유발하지는않는다. - P26

 어떤 사람의 눈에 졸리는 유방암에 걸리지 않을 실질적 가능성이 존재하는데도과도한 수술의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의 과학 및 건강 분야 필진 세 사람이 지적했듯이, 일부 의사들은 졸리가 수술 사실을 공개한 것이 일부 여성들에게 오해를 일으켜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유방 제거 수술의] 유행을 부추길수 있다고 우려했다.⁴ - P27

4 Grady, D., Parker-Pope, T., & Belluck, P. (2013, May 14).
술에 대한 졸리의 공개로 부각된 딜레마Jolie‘s disclosure of preventive mastectomy highlights dilemma, New York Times. - P4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러나 몇 년 전, 「니꼴라 유치원」이라는 소설을 쓸 때의 일이다. 그 소설은 안진이라는 도시의 어떤 소문난 유치원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그곳에 입학시키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때문에 나는 당연하게도 주인공을 꽤나 고생시켰다. - P9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 언젠가부터 나는 같은 질문을 받곤했다. "혹시 안진은 당신의 고향인 전주를 모델로 한 곳인가요?"
나의 대답도 늘 같은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건 사실이다.
나는 스물다섯 살에 전주를 떠났다. 하지만 그때까지 계속 그곳에서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전주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그 직후 삼 년은 익산, 정확히 말하면 개칭 이전의 지명인 이리에서 살았고, 이후 웅포에서 일 년을 지낸 뒤 다시 이리로 갔다가 순창에서 반년간 살았다. - P10

바로 안진.
안진은 실재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그 어느 곳보다 내가 잘알고 있는 장소이다. 내가 아는 모든 장소의 이런저런 면모를 합치고 가공하여 새롭게 만들어낸 곳. 그러니까 안진은 내가 살아온 모든 곳이자 완벽하게 상상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니꼴라 유치원은 달랐다.

그곳은 실재했다. - P11

전라북도 이리시 창현동 성당 옆에는 부설 유치원이 하나 있었다. 부모님은 나와 남동생을 모두 그 유치원에 보냈다. 천주교인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니꼴라 유치원에서 묘사했듯 그 유치원이 이리에서 꽤 유명한 교육기관이었기 때문이다. 다섯 살 아래의 남동생이 다닐 무렵에는 덜했던 모양이지만, 내가 입학할 때는정말로 경쟁이 치열했다. - P15

내게 창현동의 그 유치원이 정말로 좋았냐고 묻는다면, 어떻게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평범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는 빨리 집에 가서 혼자 만화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부류의 아이였기 때문에, 매일 모두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는 그 생활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 P16

내가 소설에서 써먹은 것, 그러니까 강렬한 영감을 받은 것은 그유치원의 교육적 목표나 성과가 아니었다.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입학 경쟁이 치열했고 내 부모님 역시 거기에 뛰어들었다는 일화였다. 뭔가 좀 웃기면서도 섬뜩한 느낌이 드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 P16

물론 이런 일은 흔하다. 사실, 소설을 시작할 때 나는 매우 감정적인 상태다. 엄청난 소재를 발견했다는 착각에 흥분해 있다. 하지만 감정과 소재가 뭉쳐진 덩어리를 자르고 다듬는 과정에서 내가 진짜 다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주하게 된다. 질문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쓰려 했던가. 무엇을 써야 하는가. 그에 답하며 더듬더듬 걸어나가다보면 어떤 실루엣이 조금씩 보인다. - P17

왜냐하면 나는 이 소설을 쓰지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뒤집힌 창작 의도, 스타일,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소설을써야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나는 그냥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그래. 단 한 줄도.
비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다. 나는 컴퓨터 앞에 정지된 상태로아주 오래도록 앉아 있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슬럼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첫 책도 출간하지않은 신인 작가였다! - P18

‘니꼴라유치원‘.
아, 음험하고 비밀스러운 곳. 사람들이 몰려들고, 욕심을 부리고! 경쟁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내 아이, 오직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
그 순간, 어떤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기억한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고통스러운 소음이 귓속에서 길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나는 상像에서 튕겨져 나왔다. 이제 내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둠과 적막만이 있었다. - P19

여섯 살 무렵, 아주 어렸던 그 시절, 나는 처음으로 그 소리를 들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은 나를 미워하고 증오했다. 나를 짓밟고 싶어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가. 얼마나 방심했던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멀어졌다고! 나는 감히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잊지 않았다.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 하자마자 틈을 놓치지 않고 내게 다시 달려든 것이다.

이제 나는 그 소리의 정체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악의 - P20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그 유치원 건물 지하에는 음악실이 있었다. 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질 만큼 온도가 낮은 곳이었다.
둥근 돔 형태의 천장 때문인지, 노래를 부르면 소리가 커다랗게둥둥 울렸다. 그럴 때면 건물이 꼭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거대한짐승의 뱃속에 들어온 듯했다. 꿈틀거리며 음산한 노래를 흥얼거리는 붉은 벽돌, 그 소름 끼치는 한기와 불안하고 은밀한 선율은 매력적이면서도 공포스러웠다. - P21

 그래서 기억이 구분되지 않는 것일까. 만일 그것도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이 나의 착각과 핑계란 말인가. 나는 오래 고민했으나 어떤 답도 얻지 못했다.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할 이야기도 내가 분명히 겪은 일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 P22

2

창현동 유치원 입학에 실패했던 바로 그해의 일이다. 1991년이었고, 나는 여섯 살이었다. 엄마는 나를 집에서 가까운 유치원에 보냈다. 미미유치원? 나나유치원? 뭐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그 유치원에 보내는 걸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창현동 유치원이 아니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유치원 옆의 허름한 적산가옥에 어떤 ‘사기꾼‘이 살고 있기때문이었다. - P23

이모는 이리 출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열세 살에 인천에서 이리로 이사왔다. 그러니까, 이모가 이리에 살았던 시간은 실제로는겨우 이 년 남짓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지만,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형제는 없었다. 오직 어머니와 새아버지, 그리고 이모뿐이었다. - P24

보애 이모는 박지훈 앞에서 늘 주눅이 들었다. 뭔가를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시달렸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싹싹하게 굴었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방식으로 남들을 대접했다. 덕분에 보애 이모는 어디서든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러니한일이었다. 보애 이모가 가장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정작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으니까. - P25

음. 아니다. 알았다 해도 아마 박지운은 감행했을 것이다. 서슴없이 이삿짐을 쌌을 것이다. 박지운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새 남편과 딸아이에게 이사를 통보했고, 그들 가족은 인천을 떠나 아주 멀리 떨어진 전라도의 소도시로 왔다.
박지운은 의기양양하게 하숙집을 차렸다. - P25

"여기 사람들은 입맛이 너무 까다로워. 안 되겠어. 다시 인천으로 가자."
당시 보애 이모의 새아버지는 속된 말로 막노동꾼이었고, 아주 건강하고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를 많이 이해했다. 그런 남자였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별말 없이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새아버지는 보애 이모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췌장암으로 세상을떠났다. 급성이었다. 암 진단을 받기 전날까지 그는 친구들과 씩씩하게 술을 마셨다. 너무 건강했기 때문일까.  - P27

그리고 나는 바로 그 때문에 엄마와 보애 이모가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박지운은 놀라울 정도로 나의 외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의 엄마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보애이모의 많은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 사람에게 서로가 있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 P27

이모가 인천으로 돌아간 뒤,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연락은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 고교 시절에는이 주에 한 번으로 줄었지만, 엄마가 취업을 하고 이모가 대학에 간 후에도 편지는 이어졌다. 종종 전화통화도 했다. - P28

엄마의 우정은 보애 이모가 다 가져갔다. 그러니 두 사람은 다시만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일하다는 건 계속 기억한다는 것이니까.
두 사람은 쉰두 살이 되던 해 다시 만났다. 엄마가 결혼하고 나서 연락이 끊겼으니 거의 이십오년 만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꽤나 드라마틱했다. - P29

소설가로 막 데뷔했던 그해 여름, 엄마와 보애 이모의 식사 자리에 따라간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봤다. 그리고 보애 이모도 처음 만났다. 우리는 람청루는 유명 중식당에서 코스 요리를 먹었다. 사실, 람청루에 간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와 옛 친구의 만남에 내가 뭐하러 낀단 말인가. - P31

아무튼 그날, 나는 이청화를 봤다. 아니, 본 정도가 아니었다.
그날 그 시간에 코스 요리를 먹은 사람이 우리밖에 없었던 건지,
아니면 손이 부족했던 건지, 또 그게 아니면 우리가 마음에 들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리가 나올 때마다 이청화가 우리 자리로 직접 서빙을 해줬다. 심지어 음식에 대해 일일이 설명까지 해줬다! 세상에, 나는 연예인을 보는 듯한 기분에 조금 넋이 나갔다.
반면 엄마와 이모는 이청화에게 관심이 없었다. - P32

그날 그녀는 자신의 아들, 그러니까 진을 데리고 나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그에게 급한 일, ‘상사의 부름‘이 떨어지는 바람에 우리 셋만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이 밥을 먹고우롱차를 마시며 옛이야기를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듣던 대로 보애 이모는 다정했고, 농담을 잘했다.  - P33

그날, 람청루 음식값은 엄마가 냈다. 보애 이모는 엄청나게 당황했다. 그곳은 인천이었고, 때문에 엄마가 밥을 산다는 건 이모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 람청루를 예약한 사람도 이모였고, 코스 요리를 먹자고 한 사람도 이모였다. 그러나 이모는 엄마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엄마가 이모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던것이다.
"한 번쯤은 네 고향에서 대접하고 싶었어."
그러자 이모의 표정이 변했다. 기쁨과 슬픔으로 복잡하게 일그러진, 말 그대로 어떻게 형용할 수 없는 그런 얼굴로. - P34

보애 이모의 친아버지는 청인이었기에 한국 국민으로 살지 못했다. 그래서 1958년, 보애 이모는 외국인으로 태어났다. 이모의 고향은 중국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인천 토박이였다.
엄마가 말한 ‘네 고향‘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 P35

(전략).

그즈음 이리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좌익 활동을 하던 시동생에게 생활비를 받았다는 이유로 전주교도소에 수감중이던 어느 할머니가 자신을 고종 황제의 숨겨진 딸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는 출소 후 이리에 살고 있었다. 이름은 이문용.
전주 이씨 문중은 그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일단 증거가없었다. 출생 기록도 없고, 고종 황제 역시 생전에 그러한 딸의 존재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다른 황실 사료들을 아무리 뒤져도 그녀와 어머니 엄상궁의 흔적을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 P36

학교가 끝나자마자 두 사람은 곧장 산둥성이 마을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이리 사람들은 외곽의 판자촌을 그렇게 불렀다. 산등성이 마을. 좌석에 앉아 가파른 고개를 오르며 엄마는 흥분했다.
옹주, 황녀, 황족. 그 단어들은 마법과도 같았다. 옹주를 만나러간다니! 인정받지 못한 황족을 만난다니! - P37

. 엄마는 아주 막연히 그녀가 아름다울 것이라 기대했다. 아, 잉그리드버그먼, 그녀는 엄마에게 너무 큰 환상을 심어주었다. 옹주는 평범한 할머니였다. 체구가 작고 등이 조금 굽었으며, 하얀 한복을입고 있었다. 머리는 쪽을 쪄서 비녀를 꽂았는데, 숱은 그리 많지않았다.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오고 얼굴이 조금 넙데데했다. 가냘프지도 어여쁘지도 않은 그 노인이 너무 낯설어, 엄마는 문 앞까지 나온 그녀에게 인사조차 제대로 못하고 쭈뺏거렸다. - P38

 혹시 선생님의 편지에 우리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가 적혀 있는 건 아닐까. 그래, 나와 보애만 콕 집어서 심부름을 시켰잖아.
어쩌면 오로지 우리만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을 하려는 것일지도 몰라. 그때 옹주가 무뚝뚝한 말투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뭐 좀 먹고 가거라."
이모가 반갑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와, 정말 그래도 돼요?"
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살짝 풀어져 있었다. - P39

옹주가 삯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당연히 처음이었다. 엄마는 무척 놀랐다.
옹주의 바느질 솜씨가 아주 훌륭했던 것이다. 엄마는 가느다란 바놀이 옷감에 촘촘하고 야무지게 박힐 때마다 조심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뭐랄까, 세상의 무언가가 조금씩 완성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그랬다. - P40

이모는 심부름을 시켰던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는기억했지만, 그날 두 사람이 산등성이 마을까지 심부름을 갔던 일은 거의 떠올리지 못했다. 아 맞아, 그랬지. 그날 눈이 많이 오지않았어? 그랬던 것 같다! 하면서 옛일을 아주 잠시 더듬어볼 뿐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이리에 한 명더 있었던 것이다. 바로

‘사기꾼-. - P42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그 ‘사기꾼‘을 미워했던 이유는, 아마 그녀가 엄마의 소중한 추억, 그 겨울날의 풍경을 파괴하는 사람이기때문이었던 것 같다. 만일 ‘사기꾼‘이 진짜 문용 옹주라면 그간 엄마가 믿어왔던 것이 무의미해질 테니까. 세 사람이 한방에 조용히앉아 있던 시간. 그 다정함. 믿음. 누군가가 잘되기를 바랐던 진심 어린 날의 추억. 그 모든 것이 말이다. - P43

3

다음해 나는 창현동 유치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 사고가 났다. 방학식 날이었다. 유치원 현관은 대부분의 관공서 건물처럼탁 트인 넓은 형태였는데, 그날 나는 현관 한쪽 벽에 기대서 있었다. 그 자리에서는 바깥 풍경이 훤히 보였다. - P50

다급히 웅크린 덕분인지 나는 다치지 않았다. 팔다리와 배, 가슴에 유조각들이 흩어져 있었으나 손등을 조금 긁힌 것 빼고는별일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정말로 마음을 졸인 순간은 그다음에 찾아왔다. 아빠가 바닥에 누워 있는 나를 조심스레 안아올리자, 내가 말했던 것이다.
"아빠, 소리가 안 들려 - P52

청력은 이틀 만에 돌아왔다. 부모님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귓속에 유릿조각이 들어가지도 않았고, 모든 검사 결과가 정상이었는데도 내가 계속 소리가 안 들린다고 했으니까. 엄마는 많이울었다. 그리고 내가 적막 속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지,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생각과 달리 이틀의 시간이 그저 조용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시끄러웠다. 세상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 - P53

나이를 먹으면서 이상한 소리를 듣는 일은 줄어들었다. 사고는 몇 번 더 있었다. (중략).
하지마누내 안에 뭔가 남아 있었다. - P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