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학에서 문학교육으로

실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가 자명하지가 않다. 테리 이글턴(Eagleton, T.)의 명저 『문학이론입문』의 서론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라. 문학에 대한 기존의 정의들, 가령 상상적인 글, 허구적인 글, 일상 언어의 규범에서 일탈한 언어의 조직체, 비실용적인 자기 지시적 담론이라는 등의 정의들은 문학의 본질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 아니, 이글턴에 따르면, 문학의 본질이란 것은 결코 없다.  - P16

 그래서 이글턴은 엘리스(Ellis, J. M.)의 비유를 인용한다.
엘리스에 의하면, ‘문학‘이라는 용어는 ‘잡초‘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과유사하게 쓰인다. ‘잡초‘는 특정 종류의 식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정원사가 원하지 않는 식물이면 다 잡초에 해당하는 것처럼, 문학은 그와 반대로 이런저런 이유로 가치 있게 평가하는 글의 종류 전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 P16

(2) 문학교육에서 문학으로

문학이 존재하고 그 결과로서 문학교육이 존재하는 측면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문학교육의 결과로 ‘문학이 존재하는 측면에 주목해 보자.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사람들이 문학이라 배우고 그래서 문학이라 생각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P17

(전략). 이러한 비판의 근저에 혹시 문학교육이라고 하면 그저 문학이라는독립 변수의 종속 변수로만 이해하는 인식의 미망이 있지는 아니할까.
과연 문학에는 본질이 존재하고 문학교육은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교수 방법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문학교육은 학습자 독자로 하여금 문학이라는 본질을 주체적으로 구성하게 해 주는 적극적 활동이다. 그리하여 문학교육이 문학을 살리고 인류를 살린다.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위기가 인류 정신의 위기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위기에서 인류를 구원해 줄 존재는 문학 그 자체가 아니라 문학교육이기 때문이다. - P18

(1) 분석 위주의 문학교육

먼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⁴의 한 장면. 키팅(Keating:Robin Williams) 선생은 학생들에게 교과서 『시의 이해』 서문을 읽도록 한다.
(중략)
정말 쉬울까? 『시의 이해』는 이렇게 이어진다.
"시의 완성도를 나타내는 점을 그래프의 가로축에 놓고, 중요도를 세로축에 그린 다음, 그시의 면적을 계산하면 그 시가 지닌 위대성의 정도를 산출할 수가 있게 된다." - P19

"바이런(Byron, B.)의 소네트는 세로축에서는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만, 가로축에서는평균 점수에 불과하다. 반면에 셰익스피어(Shakespeare, W.)의 소네트라면 가로, 세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아 큰 면적을차지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이 시야말로 진정 위대한 작품임을 알 수 있게되는 것이다. (후략)" - P20

 사각형의면적을 구하는 공식처럼, 시 작품의 위대성(Greatness)은 완성도(Perfection)와 중요도(Importance)의 곱, 즉 {G = P×I}라는 도식으로 정리된다. 이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시(5)는 바이런 시(B)보다 면적이 더 넓으므로({S≥B}) 셰익스피어가 바이런보다 더 위대하다는 결론이 자명하게 내려진다! - P20

■ 신비평(New Criticism)

신비평은 60년대까지 비평계를 휩쓸었던 문학 사상이다. 기존의 비평 이론들이 작가 · 사회 · 독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반성하며, 텍스트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꼼꼼하고 분석적인 읽기를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작품 안에서 언어의 함축성을 찾고 비유적 의미를 밝히는 것을 중요한 독서 방법으로 삼았다. - P21

신비평가들은 산업사회에서의 과학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인상주의 비평을 배격하며 과학적인 비평의 수립을 추구하는 이중적이고 이질적인 것의결합을 추구했다. 요컨대 시는 과학적 진술과 다른 것이지만, 비평 방법은그 자체가 의사 과학적(科學的) 행위로 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신비평의 본질적 가정이었던 것이다. - P21

사실, 신비평의 분석주의적 독해 방법은 비판적이거나 창조적인 독자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관점에 일치하는 이상적인 독자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비평에 입각한 문학교육은 한편으로는 신비평적 관점에 유순한 텍스트와 다른 한편으로는텍스트를 정해진 방식에 따라 꼼꼼하게 읽는 유순한 독자들의 결합을 가져왔다. - P22

(전략) 그러기에 학생들에게 각자의 인생을 남다르게(extraordinary) 살 것을 주문한키팅의 입장에서 이처럼 보편적인(ordinary) 읽기를 강조하는 신비평적 문학교육은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술적 완성도와 역사적 중요도를 고루 갖춘 작품을 높이 평가하며, 그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작품을 평가하라는 서문의 요구를 따르게 되면 개인의 개성과 주관과 낭만은 설 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 P22

문학이 지닌 역사적, 인문적 가치도 소중하다. 하지만 고통스럽다. 특히 시대적 의의만 강조하고 도무지 향유하기 힘든 작품을 읽고 분석하고 감상하도록 하는 것은 고문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읽기로 일관하는 교육은 기존의 권위에 복속하라는 명령에 지나지 않는다. - P22

(전략) 문학교육을 문학적 주체의 형성으로 보는 관점에서 키팅의 이러한 지적은 옳다. 이런 점에서, 특히 객관식 선다형 시험이라는 체제에서 벌어지는 문학교육의 왜곡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신비평을 비판하기는 쉽고, 문학교육의 현실을 개탄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지만, 교사의 분석과 해설 없이 문학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주체로 학생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 P23

3. 문학교육의 개념과 의의
(1) 문학교육의 개념

(중략) 이 과정에서 문학교육은 문학의교육 그 이상이며, 문학교육에서 말하는 문학이라는 것이 좁은 의미의 문학의 실체나 속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도 짐작할 수 있었다. - P31

문학교육학의 기념비적인 저서인 『문학교육론』(구인환 외)에서 이미 문학교육을 "문학 현상이바람직하게 이루어지기 위한 일체의 의도적 과정 및 결과라 정의하였던것이다. 왜 굳이 ‘문학‘이 아니라 ‘문학 현상‘이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하기까지한 용어를 동원해야 했을까?  - P31

하지만 『문학교육론』의 공저자였던 우한용은 문학 현상이 작가 작품-독자 그리고 그러한 구조가 실제로 운영되는 실천이라는 측면이 동시에 문제되는 것이라면 문학교육현상은 그러한 구조를 역동화시키는 한 단계 상위적인 구조라고 하면서, 문제는 문학 현상이 아니라 문학교육현상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 P31

이와 상통하는 관점에서 문학교육은 "문학 능력의 향상을 통하여 인간다움을 성취하는 교육활동"⁹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문학교육이란 문학을 체질화하고 그에 기반하여 활동하는 능력의 교육이며, 문학 능력의 함양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인격의 성장에 이르고, 사회적으로는 문화 계승과 창달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9) 김대행 외, 「문학교육원론」,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5면, - P32

그렇다면 ‘문학 능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그러한 능력의 소유자로서의 학습자상은 어떤 주체로 설정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눈여겨볼 논의는 다음과 같다. "바람직한 문학 주체란 문학에 대해 긍정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풍부한 문학 지식과 경험을 지니고 있고,
문학의 발화 특성과 한국 문학의 관례에 정통한 주체이다. 그는 또 문학적상상력이 뛰어나고, 문학적 언어를 유창하게 사용한다. 이러한 특성들을 문학 능력이라 부른다. (…) 한편으로는 그것은 고정적이고 완성된, 이미 소여된 대상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앞으로 채워질 자질로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문학 능력은 문학을 배울 수 있는 능력과 문학 행위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의 두 범주를 포괄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학교육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문학 능력을 바탕으로 그것을 확충하는 동시에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¹⁰

10) 김창원, 『문학교육론 제도화와 탈제도화』, 한국문화사, 2011, 145면, - P33

 문학에서 문학 현상으로, 거기서 다시 문학교육현상으로 넘어오면서 이처럼 문학 그 자체보다는 인간다운 삶을 강조하게 되는 것은 문학교육을 문학이 아닌 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때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가르치다‘라는 뜻의 영어 ‘teach‘는 이른바 4형식 문장, 예컨대 "I teach mystudents literature."에서처럼 두 개의 목적어를 동시에 수반한다. - P33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교육의 개념에 관한 여러 진술을 듣다 보면 은근히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르곤 한다. 도대체 그런 능력이 왜 필요한가? 그런 능력이 인간다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문학이라는 언어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류의 일원으로서 굳이 지녀야 할 능력인가? 이에 대한 답은 아마도 문학교육의 의의에 대해 생각하면서 찾아야 할것이다. - P34

(2) 문학교육의 의의

그 동안 문학교육계는, 그것을 작품 중심이라 부르든, 정전 혹은 실체 중심이라 부르든, 문화적 유산으로서 문학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교사에 의해전수하는 전통적 교육 방식에 대해 비판과 회의를 거듭해 왔다. 그것은 곧교사가 주도하는 정전의 섭렵(coverage)과 주해(exegesis)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훌륭한 작품에 대한 훌륭한 교사의 훌륭한 해설에 바탕을 둔 훌륭한 수업이 없을 리 없다. - P34

입시교육 때문만은 아니다. 입시에서조차 그런 학습은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 가령,
교사와 학생 모두 열심히 『진달래꽃』을 가르치고 배웠건만, 정작 시험에 동일한 시인의 다른 작품 『산유화』만 나와도 학생의 편에선 배우지 않은 것을출제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 P35

문학이 재미없고, 문학 능력도 길러지지 않았으니, 학생들이 평생 문학을 동반자로 삼아 인간다운 삶, 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길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에 문학교육계는 작품 중심보다는 텍스트 중심, 교사 중심보다는 학습자 중심, 해설 중심보다는 활동 중심으로 문학교육의 방향을 취해 나가자는 데 대략 합의를 해 온 것으로 보인다. - P35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비판과 지적이 있었으므로¹² 여기서는 상론은 피하되, 다만 한 가지만 예로 들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문학의 특수한 언어 용법이라 불리는 비유나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물론 그것들은 시의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교따위가 아니며, 그저 모호하기만 한 말이 아니다. 우리가 감정과 사상의 섬세한 결에 주목하게 될 때, 가령 천차만별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배고픔‘,
우리 둘만의 특별한 ‘사랑‘, 그 느낌 하나하나에 주목해 볼 때, ‘배고프다‘,
‘사랑하다‘ 같은 일상 언어야말로 뭉툭하기 그지없는 모호한 말이기 때문이다. 막상 사랑에 빠지게 되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랑이란 말처럼 부정확하고 답답한 말도 없다.

12) 대표적으로 김대행, 『국어교과학의 지평』, 서울대학교출판부, 1995를 들 수 있다. - P36

언어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현실의 언어로 절망하기에 분투노력하여 새로운 언어를 찾고 또 창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비평가는 문학의 성격을 이렇게 묘파했다.
말은 미끄러지고 행동은 엇나간다. 말에 배반당하기 때문에 다른 말들을 찾아 헤매는 것이 시인이다. 시인들은 말들이 실패하는 지점에서 그 실패를 한없이 곱씹는다. 그 치열함이 시인의 시적 발화를 독려한다. 한편 행동이 통제 불능이라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려는 자들이 소설가다. 소설가들은 법과 금기의틀을 위협하는 선택과 결단의 순간들을 창조하고 그 순간이 요구하는 진실을 오래 되새긴다. 그것이 소설가의 서사 구성을 추동한다.¹⁴

14)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문학동네, 2008, 13면. - P37

다음으로 문학교육의 인문 교육적 의의에 대해 살펴보자. 문학은 예술적,
미학적 성격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교육은 "문학이 지니고 있는 인간 이해의 미학적 경험"만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생겨 나오는 인문 가치를 교육적 경험으로 제공해 주는 역할"¹⁵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문학교육에서 제공하는 교육적 경험은 매우 다양하다. 문학의 언어를 일상적 경험을 통해 제공하기도 하고, 구체적인 문학 작품을 읽는 경험을제공하기도 하며, 그와 관련한 맥락적 경험도 제공하고, 다른 문학 텍스트나문화·예술 텍스트에 확장하거나 적용하는 경험도 제공하며, 실제로 문학텍스트를 생산하는 경험도 제공한다.

15) 국어교육 미래 열기 편, 국어교육학개론」(제3판), 삼지원, 2009, 438면. - P38

부분성의 패러다임 속에서는 그 질문에 대답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각자 맡은 부분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이 부분성의 물신화는 심미적 감수성을 파괴하고 전체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킨다. 그리하여 인간은 파편화되고 왜소해지며, 이것은 다시 자기 증오를 촉발하고, 자기 증오는 타인에 대한 증오, 생명경시, 사회적 파괴 행위 등으로 그 표출 형식을 구한다. - P38

이는 궁극적으로 앞으로의 문학교육이 텍스트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학문탐구 방식의 문학교육을 넘어서서, 문학 텍스트가 사회적 문화적 예술적 공간에서 작용하고 변이하는 현상에 대해서 이해하고 참여하고 소통하는 능력과 안목을 길러 주는 데에로 나아가야 할 것을 암시한다.¹⁷ - P39

왜 문학을 통한 교육인가? 총체성 또는 전체성에 대한 정확한 인지를 위해서는 지적인 활동만큼이나 정서적 활동과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서는 윤리적 사회적 삶 속에서 인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정보 제공 기능을 수행하며, 상상력은 사회성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 P39

문학적 상상력
문학은 상상력 향상의 매개이자 결과물이기도 하다.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기존의 것들을 재해석하고 참신하게 바꾸어 새롭게 정의해낸다. 문학적 상상력은 사회뿐만 아니라 자아탐색에도 적용되는 바, ‘나‘를 보다 정확하게이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도록 돕는 자아성찰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P40

따라서 교육을 통해 인류가 공통적으로 기대하고 기획한 결실을 맺기 위해 문학은 기꺼이 활용되어야 한다.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문학은 이러한 사회적 기대와 오랜 연관을 맺어왔음을 알 수 있다. 문학의 태생이 그러하였고 본질이 그러한 한, 지금도 문학은 인류의 가치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학의 힘을 활성화한다는 것이 문학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은 아니며, 문학을 활용한다는 것이 문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것도 아니다. - P40

(전략) 이러한 목적에 맞추어 각 급 학교에서 환경 교육이 추진되고 있으나 그 효과는 별로 뚜렷하지못하다. 이에 필요한 것이 바로 생태학적 상상력이다. 생태학적 상상력이란자연과 인간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져 자연 속의 인간다운 문화적 삶의 결을누릴 수 있는 녹색 유토피아를 그리는 사고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같은사고 활동이 적극화될 수 있는 계기를 우리는 또한 문학적 상상력 활동에 찾을 수 있다. - P40

오늘날 문학교육이 죽은 교육 취급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문학이라는 교과의 테두리 내부에 갇힌 나머지 문학교육의 이러한 인문학적 의의를 몰각한 데 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문학을 전수하고, 아름다운 지구를 전해 주는 일은 별개의 일이 아니다. 문학과 문학교육의 참된 의의 가운데 하나는바로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지키는 것이다. - P41

제2장
문학교육의 목적과 목표


 문학교육 목적에 대한 이해는 문학교육의 가치와 철학, 이상적인 문학교육의 모습에 대한 성찰을 선제로지속적으로 새롭게 변모되어 나간다. 따라서 사실 차원에서 단순 암기하기보다는 목적 설정의 논리와 기본 개념을 익혀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을 획득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 P45

1. 문학교육 목적/ 목표 설정의 전제

문학교육의 목적과 목표에는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문학 현상과 경험,
지식에 대한 교육적 판단과 가치 발굴 과정이 전제된다. 곧, 현실의 여러 문학 현상 속에서 어떤 것이 가장 의미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이념적 가치 탐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³ 또한 여기에는 지식관, 인간관, 교육관, 문학관,
문학교육관 등의 특정 관점이 추구하는 가치 지향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3) 우한용, 『문학교육의 목표이자 내용으로서 문학 능력의 개념, 교육 방향』, 「문학능력』, 역락,
2010. 또한 구인환 외에서는 문학교육의 철학적 지향으로 현대 도구적 이성 사회과 과학 문화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서 대화 문화, 상상력, 삶의 총체성 이해 등을 제안한 바 있다. 구인환 - P46

이는 이른바 문학교육 생성의 발생적 구조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문학교육의 변화가 사회 문화적 환경과의생태적 연관 속에서 이루어짐을 시사하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정보화 사회,
지식 기반 사회에서의 문학 현상의 변화상을 들 수 있다. 다매체 시대 문학은 문학 그 자체로만 존재하기보다는 사회적 소통의 큰 틀 속에서 자리 잡고있으며, 문학 활동도 개인적 차원의 수용과 생산을 넘어서 사회 문화적 실천의 넓은 맥락으로 규정되고 있다. - P47

문학의 본질적 속성은 다면적이어서 다양한 영역과 연계된다. 곧, 문학은 언어 예술이자 문화이며, 사고이자 소통이다.⁶ 먼저 문학은 예술의 하위 양식이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은 형상적 언어로 구축된 미적 자율성의 세계로 미적 경험을 가능하도록 한다.


6) 우한용, 「문학교육과 문화론』,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제1장~2장, 김창원, 「문학교육과정 설계의 절차와 원리」, 「국어교육」 77, 한국어교육학회, 1992. - P47

 문학은 공동체가 구성하는 삶의 방식의 총체로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방식을 형상화하며 나아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문화적 실천을 수행한다. 문학은 폐쇄된 개인의 개별적 활동이 아니라 작가,
독자, 현실 속에서 소통하면서 역동적으로 실천, 변모되어 나가는 것이다. - P48

2. 문학교육의 목적

(1) 언어능력의 향상

문학 언어는 일상어와 존재론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일상어를 질료로 하여 일상어의 용법을밀도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학은 언어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고 창조적인언어문화를 생산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⁹
문학어와 일상어는 당연히 차이가 있다. 일상어는 현실 맥락에서 구체적 사물을 지시함에 반해 문학은 허구라는 자족적 맥락에서 상징적 의미를 함축한다. 일상어는 실질적인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반면, 문학어는 상대적으로 자기 완결적인 세계에서 존재하기에 표현 자체를 자기 목적성으로 중시한다.


9) 김대행,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사상사, 1992. - P49

그러나 두 언어가 서로 다른 용법을 가진 별개의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호 교섭 관계 속에 있다. 소설 속의 언어는작가의 머릿속 실험실에서 존재하는 개인의 언어가 아니다. 삶의 감각과 경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사회적 현실 속에서의 언어이다.¹¹

11) 박인기 외, 앞의 책, 2005 - P49

일상어와 문학어의 상호연관성을 고려할 때, 문학교육에서는 언어적 창의성, 민감성, 효율성, 그리고 언어문화에 대한 성찰 능력 등을 기를 수 있다.¹³
첫째, 문학어를 통해 언어적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 문학 언어는 일상 언어의 창의적 혁신을 보여줌으로써 언어가 지닌 또 다른 잠재적 가능성을 실현해 준다. 문학 언어는 일상 언어를 낯설게 한다고 한다. 낯설게 하기를 통해 문학의 세계는 일상의 실용적 세계에서 굳어진 언어에 생기와 새로움을 더하게 된다.


13) 김대행 외, 앞의 책, 2000 - P50

둘째, 문학어는 언어에 대한 민감성을 기를 수 있다. 문학어는 감각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형상이기에 소리, 색채, 맛, 냄새 등을 기술적으로 다루거나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 함축이 풍부한 말을 활용한다.  - P51

또 한 편의 소설에는 인물 군상의 직업, 계급, 문화적 정체성에 따라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더라고 그 함축적 의미는 무수히 달라지는 사회적 방언들이재현되어 있다. (중략). 그런 점에서 소설은 타자의 언어적 차이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고, 언어의 다성적 의미망을 경험하기에 매우 좋은자료이다. - P51

셋째, 문학어는 언어 사용의 효율적 양상을 통찰할 수 있도록 한다. 문학언어는 지극히 간결하고, 경제적이며, 군더더기가 없다. 또, 언어 능력의 기반을 이루는 방법적 원리를 정제해서 보여준다. 시의 운율, 수필의 기-승-전-결의 구조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만족시키며, 감정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말하기 방식의 원리를 담고 있다.  - P51

넷째, 문학어는 언어문화의 관습성을 통찰하고 비평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일상 언어가 실용적 상황 맥락 때문에 성찰적 거리를 확보할 수 없음에 반해 문학어는 그것이 작동되는 문화적 기반과 전제를 충분히 성찰할 수있다. 가령,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의 작품에서는 서로를 소외시키는이른바 ‘집단 독백‘이라는 도시 언어의 단상을 성찰할 수 있다. 일상 언어생활에서는 무심코 지나갈 수 있었던 장면이지만 소설에서는 의도적인 ‘낯설게하기‘를 통해 대도시의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언어문화 양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 P52

현대는 소통의 시대다. 소통이 단순히 표면적인 의사 전달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문학어는 일상어의 창의적, 심미적, 문화적 측면을 이끌어 냄으로써 심도 깊은 의미 공유를 이끌어 낼 수 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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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IT 팁!
메타버스(metaverse) 3차원의 가상세계를 뜻해, 무엇을 뛰어넘거나 초월한다는 뜻의 ‘메타(meta)‘와 우주,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단어야.

소피 상식 팁!
유토피아(utopia) 16세기 영국의 토마스 모어의 소설 이름을 딴 단어. 어디에도 없는 세상이란 뜻으로 천국같이 살기 좋은 최상의 사회를 가리켜,
반대말이 암울한 미래를 가리키는 ‘디스토피아(distopia)‘야. - P15

 이제 현실 세계는 물론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에서도 AI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어찌 보면 ‘AI가 없이 이 세계가 잘 작동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확신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은 AI에 크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 P15

준이 사는 이 도시는 20년 전만 하더라도 범죄 도시라 불리던 곳이었다. 60여 년 전에는 자동차 산업이 매우 발달하여 부유한 도시였지만, AI의 등장과 발달로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다. AI가 사람들을대체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도시로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 P15

소피 상식 팁!

기본소득 토마스 모어 소설 『유토피아」에 처음 나온 말이야, 재산, 일에상관없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무조건 균등하게 지급하는 소득을 가리켜. - P16

지니어스 IT 팁!

퍼셉트론(perceptron): 1957년 뇌의기능을 모델 삼아 만든 인류 최초의 인공 신경망으로 미국 코넬 항공 연구소의 프랑크 로젠블라트가 고안했어.

대화형 AI: 스마트폰의 시리, 빅스비처럼 음성을 인식해 인간과 같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 챗GPT도 대규모 언어모델에 기반한 대화형 인공지능 시스템이야

강한 인공지능: 영화 「아이언맨」 속자비스와 같이 인간의 지능 수준인 AI를 가리켜. 반대로 호텔 예약을 해주거나 영화를 추천해주는 등 어떤 특정한기능만 하는 AI를 약한 인공지능이라부르지. - P17

레논 박사가 만들고 싶은 어반시티는 자신의 최종 연구 성과가 될 강한인공지능이 있는 스마트 AI 도시였다. 하지만 투자자와 연구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AI가 너무 똑똑해도 문제라고. 그저 사람 대신 특정한 기능만 수행해줘도 충분한데 말이지..."
"강한 인공지능이 제어하는 도시라 말이야 좋긴 한데, 강한 인공지능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그 피해는 어쩌라는 거야? 젊은 풋내기 박사 녀석이 책임진다고 해결될 문제인 건가?" - P17

자이로와 레논,
둘의 어긋나버린 우정

많은 사람은 어반시티의 부활을 알린 사람으로 레논 박사를 꼽았다. 하지만 순전히 레논 박사의 역량만으로 지금의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말할 순 없다. 레논 박사의 연구에 자이로의 자본력이 모여 이루게 된 열매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 P19

사실 레논 박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존의 AI 로봇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AI 로봇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의 AI 로봇은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말하며 행동했다. 감정이 있었고, 질문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자기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레논 박사는 자이로의 탐욕이 어반시티에 미치게 되었을 때 이 AI 로봇들을 세상에 공개하기로 마음먹는다. 바로 AI 히어로들이었다. - P22

명탐정과 소녀

반대편 거리에서 걸어오고 있는 준을 발견한 루시는 손을 흔들었다. 준은 평소 루시를 자신의 동생 같다고 생각한다. 루시는 다른 AI 히어로들과는 달리 유독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리라.
"박사님, 루시는 왜 저런 모습인가요?"
(중략)
준은 고개를 내저으며 혼잣말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뇨, 박사님. 루시의 모습은 엄청 주의를 끈다고요? - P27

루시는 언어에 특화된 AI 로봇이다. 루시를 처음본 사람들은 루시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루시와 몇번 대화를 해보면 로봇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중략).
"준, 정말 약속을 잘 지키는구나. 단,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어!! 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탐정 활동 중에는 바깥에서 이목을 끌 필요 없잖아. 나이에 어울리는말을 쓰라고." - P28

 반짝이는 유리 상자 안에는 동물의 깃털이 들어있었다.
"루시, 제법인데? 이걸 어디서 찾았어?"
"희망로 주변에서 병에 걸린 사람들의 주소를 조회해 봤어. 특히 집 주변에서 이 깃털을 주로 발견할 수 있었어. 어때? 내 조사 실력이?"
"좋아, 이 깃털을 조사하면 좀 더 사건이 명확해질 거야." - P30

루시가 생각에 잠긴 준에게 말했다.
"일단 범인을 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것이 우선일 것 같아."
"동감이야. 일단 희망로 주변 까마귀들을 잡아서 바이러스를 옮기는 걸 막아야겠어." - P31

"박사님! 빠르고 날쌘 까마귀를 사람이 잡는 것은 어려워요! 사람이 일일이 까마귀를 잡는 것이 어렵다면 AI 로봇을 활용해야만 해요..."
준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AI 로봇의 카메라 센서에 비친 영상에서 ‘까마귀‘가 인식되면 로봇이까마귀를 잡게 하고, ‘까마귀가 아닌 새‘들은 잡지 않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 P31

"그러니 AI 로봇을 포획 작전에 쓰기 전에 학습을 시켜야만 한단다. AI히어로의 도움을 빌리도록 하려무나! 히어로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학습시키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거야. 이런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알고리즘에는 K-NN이 있지."
"k-NN 알고리즘이라고요?"
"그래. 특정 대상과 그 대상이 아닌 것을 간단하게 구별해야 할 때 가장 유용하게 쓸 수 있단다."
"그렇군요. 그러면 K-NN을 와이드에게 부탁하면 되겠어요!" - P32

멋진 광경의 까마귀 포획 작전

AI에 달린 카메라가 야생 동물의 눈동자마냥 회전하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떼의 새 무리와 AI 로봇 무리가 서로 마주쳤다. 날아가는새 무리는 V자를 그리며 이동하는 기러기 떼였다. ‘과연 AI 로봇은 어떻게 행동할까?‘ 준은 이 장면을 숨죽이며 쳐다보았다.
AI 로봇은 쏜살같이 기러기 떼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곧 멈추고 선회하여 다른 방향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P33

이윽고, 한 무리의 AI 로봇이 까마귀를 그물에 포획한 채 이동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준! 네가 재빠르게 만든 알고리즘 덕분에 주변의 모든 까마귀만을 포획할 수 있었어. 물론 와이드도 실력 발휘를 했지! 그나저나 불쌍한 까마귀들 본의 아니게 악당에게 이용당해 버렸네. 잘 치료해주고 다시 풀어주자." - P33

‘까마귀… 까마귀 왜 하필 까마귀일까? 다른 새들을 이용하면 더 많이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었을 텐데. 가만, 까마귀의 습성이 뭐였더라?‘ - P34

친구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

그러면 K-NN 알고리즘은 무엇일까요?
K-NN 알고리즘은 특정 사물을 분류해야 할 때, 그리고 그 대상이 맞는지 아닌지 구별해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합니다. 준의 문제처럼 까마귀인가 까마귀가 아닌가를 구별하는 단순한 문제에도 K-NN이 적합하지요.
필요한 준비물은 데이터인 새들의 사진입니다. 새로운 사진이 입력됐을 때, 학습한 까마귀와 비슷한 사진일수록 학습한 까마귀 사진과 가까운 위치에 놓이게 돼요.  - P36

분류하려는 데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K개의 데이터를 찾아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데이터를 판별해야 하므로, K(=이웃 개수)는 홀수로 정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만약 K(=이웃 개수)를 짝수로 설정한다면 동점이 나왔을 경우, 판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점일 경우, 임의의 값을 따르거나 추가로가장 가까운 값을 따르도록 설정해주어야 해요. 그래서 보통 K(=이웃 개수)는 홀수로 정합니다. - P36

K-NN은 우리말로 ‘최근접 이웃‘
이라고 해. ‘가장 가까운 이웃‘이란 뜻이지. 실제 알고리즘도 가장 가까운 이웃에 위치하는 대상을 같은 것으로 판단해주는 일을 해. - P36

아니,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지?

"준! 바토우 형사네!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잠깐 경찰국으로 와줄 수 있겠어?"
"네, 지금 바로 갈게요!"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준은 황급히 경찰국으로 향하기 위해 택시를 호출했다. 1분쯤 지나자 자율주행 택시가 준의 집 앞에 도착해있었다. - P45

 7구역은 준의 집 외에도 어반시티의 경찰국과 AI 로봇 회사인 자이로스콥이 있는 곳인데 그곳의 AI 로봇들이 길거리의 시민들과 대치 중이었다. 한편으로 몇몇 AI 로봇들은 경찰국의 정문 앞으로 서서히 모여들고 있었다. - P46

말도 안 돼!
AI 로봇들이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니

 반가움도 잠시, 바토우 형사는 사태의 시급함 때문인지 심각한 눈빛을 하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준, 지금 뭔가 문제가 생겼어. 7구역의 AI 로봇들이 사람들을 안전상의이유로 통제하기 시작했어. 오늘 20주년 축하 행사 때 풀어놓은 경찰국 AI로봇들도 마찬가지야. 경찰국의 명령을 듣지 않고, 계속 안전을 이유로 사람들을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있어. 통제에 따르지 않는▮시민들은 AI 로봇들과 대치 중인데... 뭔가 이상해."
준은 바토우 형사에게 다급히 물었다. - P46

"안 그래도 자이로스콥 측에 연락을 취해보고 있긴 한데 AI 로봇들은 기본적으로 로봇 3원칙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 - P47

소피 상식 팁!
로봇 3원칙: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가리켜. 1. 로봇은 인간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할수 없고, 2.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되 1원칙을 위배할 수 없으며, 3. 로봇은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되, 1, 2 원칙을 위배할 수 없어.

엄마와 해본 스무고개로도 세상을 구할 수 있어

아까 호출해 놓아 곁에서 서성이는 소피에게 물어보았다.
"소피, 스무고개를 할 수 있는 웹사이트 알아?"
"아키네이터가 있지. https://kr.akinator.com/ 주소로 들어가 봐."
소피가 알려준 대로 접속하니 다음과 같은 화면이 나왔다. - P48

AI 히어로들 중 박사로 불리는 지니어스가 대답했다. "내 추론에 따르면 스무고개와 비슷한 원리로 범인의 존재를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은 92%야."
대답을 들은 준의 눈망울이 더 또렷해지고 밝게 빛나기 시작한다. 이에지니어스는 준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을 하였다.
"그럼 스무고개와 관련한 공부를 더 해볼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 P50

"맞아, 이렇게 데이터의 상태나 흐름을 눈에 보이게 그래프나 그림으로나타내면 데이터에 숨겨져 있던 의미나 보이지 않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어! AI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가지고 학습하는 과정을 거쳐, 이때, 사용하는 데이터를 학습 데이터 또는 훈련 데이터라고 하지. 학습이 끝나면 학습이 잘 죄었는지를 평가하게 되는데 이때 사용하는 데이터를 시험 데이터라고 해!" - P52

"학습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은 시험 데이터로 평가해야 진짜 AI 성능을잘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지! AI는 사람이 알려준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해. 가르쳐 주지 않은 데이터를 보고 이것이 무엇인지 분류하거나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하거든. 여기 학습 데이터가 있어! 이번에는 보기 좋게 표의 형태로 보여줄게!" - P52

준은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답했다.
"학습시킨 AI가 무엇을 예측할지 잘 알 수있을 뿐 아니라, 왜 그렇게 예측했는지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 P53

범인을 찾으려면
용의자 후보부터 추려봐야 해

준은 범인을 찾기 위해 범인 후보군 목록을 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범인 후보군 목록을 작성하고 단계마다 특성이나 질문을 ‘기준‘으로 삼아 통과해 나간다면 최종적으로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감이 붙은 준이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절감했다. 평소 같으면 레논 박사에게 물어보면 되지만 레논 박사님도행방불명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 P54

"나도 AI 로봇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어. 하지만 준! 내 생각엔 누군가 AI 로봇들에게 잘못된 명령을 의도적으로 내린것 같아! 로봇 3원칙을 일부러 깨서 행동하도록 말이야...."
"제가 루카스 박사님을 이곳에 모셔온 이유는 저 AI 로봇들에게 잘못된 명령을 의도적으로 내린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예요. 박사님! 범인 후보군의 목록을 만드는 일을 도와주세요. 그중에서 단계별로 기준을 잘 설정해서 분류해나간다면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 P55

루카스 박사의 질문에 준은 턱을 괴며 생각했다.
‘에드몬드 경찰국장... 어반시티의 치안을 담당하는 총 책임자. 과거에는도시와 시민들을 위하는 인물이었으나 경찰국장이 된 후로, 자이로스콥과비리 사건에 연루되었었지. 자이로스콥의 회장인 자이로는 자신의 탐욕을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벌일 수 있는 인물이지.....‘
"음, 에드몬드 경찰국장과 자이로 회장이요" - P56

제대로 된 질문이 우리에기 범인을 알려줄 거야

지니어스가 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준, 지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지금쯤이면 어떤 질문을할지 고민할 차례인데 혹시 그 생각이 맞니?"
"맞아, 지니어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범인을 쉽게 찾을 수도 있고, 영영 못 찾거나 엉뚱한 누군가를 지목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 - P57

"여기 각각의 후보들이 AI 로봇을 제어할 권한이 있는지 없는지를 한 번따져볼까요? 먼저 일곱의 AI 히어로들은 AI 로봇을 제어하고 조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레논 박사님께서는 제게 AI 히어로들을 작동시키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죠. 저는 AI 히어로들에게 자이로스콥의 AI로봇들을 제어하라고 명령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AI 히어로들은 AI 로봇을 제어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P60

게슴츠레한 눈빛을 한 에드몬드 국장이 준을 쳐다보며 말했지만, 준은 별 개의치 않은 눈치였다.
"저 또한 자이로스콥의 AI 로봇을 제어할 권한이나 힘을 가지고 있지않습니다. 있었다면 진작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죠. 바토우 형사님과 에드몬드 경찰 국장님 또한 저와 마찬가지이실 거고요. 안 그러신가요, 국장님?" - P61

"두 번째 질문은 AI 로봇들이 로봇 3원칙을 지키는 것을 원하는지 여부입니다. 범인은 분명 AI 로봇들에게 로봇 3원칙을 깨는 행동을 하게 했어요. 평소 공공연하게 또는 드러나지 않게 AI 로봇들이 로봇 3원칙을 깨는것에 찬성하는 용의자가 있다면 그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차례차례 살펴볼까요? 음.. 누굴 먼저 할까요?" - P62

"자이로 회장은 더 많은 AI 로봇들을 판매하길 원하는 기업가입니다. AI로봇들이 로봇 3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즉시 폐기되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을 감내하고 원칙을 어기도록 한다는 건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남는 것은 마지막으로 어반스인데… 어반스가 AI 로봇들이 로봇 3원칙을 지키는 것을 원하지 않을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나?"
에드몬드 경찰국장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해서 질문을던졌다. - P63

"아시다시피 어반스는 스마트 AI 시티의 모든 시스템을 통제하여 관할하고 있습니다. AI 로봇들이 각자 판단하여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어반스는 각기 AI 로봇들의 판단을 뒤집을 수가 있죠. (후략)." - P64

"국장님. 여기에 어반스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어반스는 다른 AI 로봇들에게 자신의 판단을 전달하고 내릴 수 있어요. 스마트 시티 곳곳의 고장이나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어반스에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반스가 로봇 3원칙을 어길 수는 없을까요? 루카스 박사님! (후략)" - P64

어반시티의 지혜로운 시민들, 도와주세요

"현재 어반시티의 길거리와 도로에는 어떤 시민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밤 AI 로봇들과 대치하였던 대다수 시민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상황까지 발생했는데요, 방금 들어온 속보에 의하면 AI 로봇들이 현재 어반시티 내의 AI 통제센터로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시민 여러분은외출을 자제해주시고, 방송을 시청하시면서 만일에 발생할지 모를 사태에대비하시기 바랍니다."
‘AI 통제센터라니.. 앗, 그곳은?!‘
"AI 통제센터는 어반스가 있는 곳입니다!" 준의 외침에 루카스 박사가고개를 끄덕였다. - P66

스스로 스무고개를 하는 인공지능

준과 여러분이 최종 범인을 어반스로 지목할 수 있도록 도운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그것은바로 AI 속 숨어있는 스무고개의 원리였습니다. 이 Al 속 스무고개의 원리를 의사결정트리(Decision Tree)라 합니다. 왜 의사결정트리라고 부를까요? - P70

AI를 만드는 방법인 머신러닝에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의사결정트리입니다. 의사결정트리는 데이터의 분류와 예측 모두에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죠. - P70

사실 답을 맞히는 처지에서는 적은 개수의 질문으로 정답을 맞히는 것이 좋습니다. 답을 맞히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의미 있는 질문은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정답에 관해 많은 정보를 가진 질문을 먼저 하게 되면 정답이 아닌 특성을 가진 데이터를 단번에 많이 제외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정답에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 P71

의사결정트리는 컴퓨터가 스무고개를 스스로 하게끔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스무고개는 판단의과정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으므로 분류 및 예측 결과에 대한 이유나 설명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어떤 병에 걸렸을 때 이러이러한 조건에 부합하기 때문에 어떠한 질병이 의심된다고 설명을 해줄 수 있죠. 또 이 이야기에서와 같이 어반스를 범인이라고 판단한 과정과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 줄 수 있답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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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흉악범의 사형은
당연한 수순?

법원 판결로 본 사형제도 논란

2004년 20여 명의 노인 여성이 희생된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2009년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 2012년 무고한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오원춘 살인사건, 2014년 총기 난사로 군인 5명이 피살된 임병장 살인사건, 2016년 여성 혐오 범죄 논란을 불러온 서울 강남역 인근 살해사건, 2017년 ‘어금니 아빠‘ 이영학살인사건. - P332

 그뿐 아니다. 1997년 이후사형이 한차례도 집행되지 않은 현실을 지적하면서 "이번 기회에 사형을집행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등장한다.
그렇다면 법원에서 흉악범에 대한 판결은 어떻게 날까? - P332

보성 어부 살인사건. 임병장 사건 등 사형선고

사례 1 저녁 8시 강원도의 전방 부대 안에서 적막을 깨고 난데없는 수류탄 폭발음과 총성이 들렸다. 전역 3개월을 앞둔 병장A씨가 초소에 수류탄을 던지고 부대원들을향해 소총으로 무차별 난사한 것이었다. 평소 인격장애가 있던 A씨는 부대원들이자신을 무시하고 따돌림한다고 생각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사망자 5명, 부상자 7명, 희생자 중에는 A씨를 평소 ‘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후임병들도 있었다. - P333

사례 4 동네 선후배 사이인 D씨 등 4명은 돈이 필요해 범죄를 모의했다. 먼저 그들은 한동네에 사는 여인이 남편의 교통사고 사망보험금을 받은 사실을 알아내고 납치를감행했다. D씨 등은 다시 피해자의 딸을 인질로 잡아놓고 돈 1억 원을 찾아오게했다. 돈을 손에 쥔 그들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모녀를 차례로 살해했다. 범행은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D씨 등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이복동생이 말을 잘 듣지않는다는 이유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살해 후에는 가족에게 협박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하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 P334

모두 법원이 사형을 선고한 사건들이다. 위의 사례 중 A씨· B씨· C씨는 사형이 확정됐고, D씨는 상급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받았다. 법원은
"사형이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죄형의 균형, 사회방위 및 범죄의 일반 예방적 견지에서 피고인을 이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취지로 사형을 선고했다. - P334

이른바 ‘임병장 살인사건‘
으로 알려진 A씨 재판에서 사형을 확정한 201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보자.

"사형선고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범인의 연령,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정도 성장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사전계획의 유무, 준비의 정도, 수단과 방법, 잔인하고 포악한 정도, 결과의 중대성, 피해자의 수와 피해감정, 범행 후의 심정과 태도, 반성과 가책의 유무, 피해회복의 정도, 재범의 우려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철저히 심리하여야 하고, 그런 심리를 거쳐 사형의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사정이 밝혀진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대법원 2016. 2. 19. 선고 2015도12980 전원합의체판결)

다소 장황하고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한마디로 사형은 한번 선고하면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이니 심사숙고하란뜻이다. 이 판결에서 13명의 대법관중 4명은 소수의견을 통해 A씨의 사형선고에 의문을 제기했다.  - P335

"악을 악으로 갚을 수 없는 일"... 고심 끝 무기징역 선고

흉악살인범에 대해 법원이 고심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한 경우도 있다. (중략)
법원은 판결문에서 "함부로 남의 생을 접어버린 피고인들의 행위는 인간이 행사할 수 없는 신의 권력을 탐한 것으로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법률이 인간의 생명을 영구히 박탈하는 사형을과할수 있는 권한을 판사에게 허여했다 하여 함부로 피고인들을 재단할수는 없고, 피해자 유족들이 악을 악으로 갚을 수 없는 일이라며 종신형에 처하여줄것을 원하고 있다"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 P336

법원 ‘사형판결‘ 선고도 감소 추세

판결을 통해 볼 때 법원은 대체로 사형제가 극히 예외적이나마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생명을 박탈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1997년을 끝으로 사형 집행이 중단되면서, 사형선고가 상당히 감소했고 무기징역 선고 비율이 높아진 것도 최근의 판결 경향이다.  - P337

2014년 이후 사라졌던 사형판결이 다시 등장한건 2018년이다. 이른바
‘어금니 아빠‘로 불리던 이영학이 중학생 딸의 친구를 유괴한 후 엽기적으로 살해한 사건에서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볼 때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사형이라는 극형의 선택은 불가피하다"고 판결했다(이영학은 2심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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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리 레이코의 과거를 알아볼 필요가 있었어요. 그 여자의 과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으니까요. 문신은 그걸 알려주는 단서가 될 거로 생각했죠." - P226

그런 이유뿐이었나, 하고 내심 낙담하면서도 오카베는 혹시나 해서 신주쿠 역 뒤편의 맨션 이름을 메모했다. 그렇게 두 톱모델에게 두 가지 색깔의 나비 문신을 해준 사람을 찾아갔다.
미국인이지만 일본어를 잘하니까 괜찮다, 라고 미리 들었던 대로 벨을 누르자 얼굴을 내민 금발의 남자는 훌륭한 일본어를 구사하며 질문에 답해주었다. - P227

"거짓말로 휴가까지 냈는데 별다른 수확은 없었어요. 다만한 가지 재미있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지난 9월 말에 어떤 젊은 여자가 미오리 레이코의 가슴 사진을 들고 와서 똑같은 문신을똑같은 자리에 해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모델 레이코를 정말 좋아하는 팬이라면서."
"젊은 여자가?" - P228

"그 과도에 찔린 여자가 문신사를 찾아온 여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건가?"
"네,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오리 레이코와는 다르게 그 여자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다음 달 초에 볼일이 있어 미국에 갈 거라면서 현지 얘기를 꼬치꼬치 물었다고 한다.  - P228

"이를테면 레이코가 어릴 때 가난하게 자라서 지금도 빵에아무것도 안 바르고 먹는다, 라고 웬만해서는 알지 못할 얘기들을 했다는 게 이상해요. 미오리 레이코와 뭔가 특별한 관계였던게 아닌가 싶은데…."
전화 협박자와 밀고자 외에 또 한 명, 사건의 이면에서 수수께끼의 베일에 감싸인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 P229

"자살로 볼 수는 없을까요?" - P230

12장 누군가 誰か

"자네를 이런 번잡스러운 일에 끌어들여서 미안하네.."
점원이 가기를 기다려 눈앞의 사사하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설마 내가 자네에게 부탁한 전화를 받고 사와모리가 자살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 P232

사와모리가 유서에 고백한 사건 날 밤의 행동은 하나하나그날 밤 그 자신이 한 행동이었다. 사사하라에게 죄를 덮어 씌우기로 결심한 것도, 레이코가 담요를 찾으러 잠깐 침실에 갔을 때 지문이 남지 않도록 손수건을 꺼내 독이 든 술잔과 레이코가 마시던 술잔을 바꿔치기한 것도 똑같았다. - P232

그날 밤 사와모리가 그 맨션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레이코와 그의 대화와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고, 알지도 못하는 그를 감싸주려고 자신이 한 짓이라는 거짓 유서를 남긴 채 죽어갔다. 라는 게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 P233

어제 아침에 마가키 기미코가 그의 전화에 이상한 반응을보였던 게 떠올랐다.
"모레 밤 11시에 다시 이 번호로 전화하세요. 어떤 얘기든받아줄 테니까."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가키 기미코도 범인인것이다. 똑같은 큰 착각 아래 그도 사와모리도 마가키 기미코도 살인범이 되었던 것이다. - P234

성형수술이 알려질 우려 때문에 숨긴 것도 있었겠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뭔가 더 중요한 비밀이 있었던게 아닐까. - P234

이름 옆에 숫자와 알파벳이 있었다. 이시가미 요시코의 이름에는 ‘4-B‘라고 적혀 있었다. 무슨 표시냐고 물어보니 기숙사방 번호이고, 2인 1실이니까 또 한 명 같은 번호를 가진 아이가있을 거라는 대답이었다.
같은 페이지의 조금 아래쪽에 또 하나의 ‘4-B‘가 눈에 띄었다. ‘가와다 기요코‘라는 이름으로, 기숙사에 들어온 건 이시가미 요시코와 같은 시기였지만, 이쪽도 기숙사를 나간 날짜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 P236

"이름까지는 몰라도 얼굴이야 대부분 기억하죠. 같이 찍은사진을 짚어주면 누군지 알 거예요."
사감의 말에 그는 앨범을 들춰보았다. 젊은 여자들이 사감을 둘러싸고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중략)
역시 앨범의 중간쯤에서 문제의 얼굴을 찾아냈다. 오년전뉴욕의 병원에서 그 여자가 의사에게 내민 초상화와 똑같은 얼굴이다.  - P237

"이 아이라면 기억이 나요. 옆에 조금 더 예쁘장한 아이가있죠? 약간 시건방진 데가 있는 이 여자애와 같은 방을 썼어요.
아마 한 삼 년쯤 있었을 텐데 좀 음울한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남자 친구가 생긴 모양이에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휴일이면 예쁘게 차려입고 신이 나서 뛰어나가곤 했거든." - P237

남자 친구가 생겨 신이 나서 뛰어나가곤 했다는 말을 듣고는 레이코가 어느 날 밤, 모래시계의 모래를 그의 등에 쏟았을 때가 생각났다. 흠칫해서 등 뒤를 돌아보자 레이코는 조금 쓸쓸한듯 중얼거렸었다.
"똑같은 얼굴을 하네?"
그와 똑같이 흠칫 놀란 표정으로 돌아본 그 남자 친구와 레이코는 어쩌면 평범한 가운데 나름대로 행복한 일생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 P238

도쿄로 돌아와 항상 가던 카페의 텔레비전으로 사사하라의 석방 뉴스를 보았다. 석방되자마자 가장 먼저 자신에게 연락할 터였지만 그와 마주하는 것을 한 시간이라도 뒤로 미루려고 오랜 시간 카페에서 뭉그적거리다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겨우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집에 돌아와 우선 이케지마 리사에게 전화했지만 부재중이었다. - P239

기타가와 준은 결국 조용히 침묵해버렸고, 이나키 요헤이는 헉하고 경악하는 목소리를 냈다. 다카기 후미코는 파르르 떨며 "나는 그런 거 몰라!"라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다가 큰 착각을 깨닫고 사와모리 에이지로도, 나도, 그리고 어쩌면 마가키 기미코도 범인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착각이었다면 더 많은 레이코 살해범이 있는지도 모른다.  - P240

사사하라가 음식 접시에서 얼굴을 들고 테이블 너머로 그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며 말했다.
"어제 누군가 경찰에 밀고 편지를 보낸 모양이야. 범인은내가 아니라 여섯 명 중 한 사람이라는 내용이야. 거기 적힌 여섯명의 이름이 내가 자네에게 알려준 것과 완전히 똑같았어. 설마자네가 그 밀고 편지를 보낸 건 아니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경찰에 보낸 적은 없다. - P241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오늘 아침 그가 깨달은 ‘큰 착각‘은 아무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미오리 레이코의 얼굴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 외에도 미오리 레이코를 살해한 범인이 있다. - P240

어젯밤에는 범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진범은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한여자를 여러 사람이 완전히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는 것은진짜 구역질이 날 만큼 오싹하고 끔찍한 일이었다... - P241


그렇게 직원이 내준 잔돈을 상의 호주머니에 넣었을 때 였다.
"이봐, 이게 떨어졌어."
사사하라가 작은 쪽지를 내밀었다.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낼 때, 바닥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 쪽지는 오늘 아침에 집을나오는 길에 적어온 메모였다. ‘가와구치 시, 세이에이 기숙사,
이시가미 요시코‘라는 세 가지를 급히 갈겨썼다. - P243

어젯밤에 이케지마 리사에게 전화한 것은 경찰에게 자신이 사사하라를 구하기 위해 범인을 찾고 있다는 게 알려져 용의선상에서 제외되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전화하는 목적은 다르다. 조간신문으로 사와모리의 유서를 확인하기전까지는 어차피 망상에 빠진 얘기라서 경찰이 깨끗이 무시할거라고 생각했다. - P244

우선 이케지마 리사와 접촉해 그녀도 미오리 레이코를 죽인한 명이 아닌지,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상대는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그는 포기하고 다음으로 다카기 후미코의 자택 전화번호를 눌렀다. 어젯밤 그의 전화에 다카기 후미코도 특이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 P244

하마노가 수화기를 향해 뭔가 얘기하는 것을 그는 전화박스에서 3미터쯤 떨어진 길모퉁이 뒤쪽에 몸을 숨기고 오로지 시선만 날카롭게 벼린 채 지켜보았다. 하마노는 아주 중요한 것을 그에게 감추고 있다. 그런 눈치를 챈 것은 조금 전 레스토랑 계산대 앞에서 하마노의 호주머니에서 떨어진 한 장의 쪽지를 봤을때부터였다. - P245

누구와 전화 통화를 하는 건가. 어쩌면 그 용의자 목록 중의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대체 왜?
하마노는 유리 전화박스 안에서도 얼굴을 코트 깃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를 응시하는 눈빛이 점점 더 초점이 좁혀지고 어둡게 벼려져 가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 P246

"나, 사실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사 개월 전의 그 차가운 목소리가 되살아나 얼어붙은 밤바람과 함께 그의 귀를 때렸을 때, 드디어 하마노가 수화기를 내려놓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수화기를 다시 들고 하마노는 또 번호판을 꾹꾹 눌렀지만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는지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박스에서 나왔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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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의 연구 중 하나는 외부에서 적용된 잡음이 확률공명을 통해 작동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입증하기도 했다. 그는 주걱철갑상어(paddlefish)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이 어류는 코에 있는 전기감각기 (electrosensor)로 먹잇감인 플랑크톤이 내는 희미한 전기적 신호를 감지해서 먹이를 찾는다.  - P238

잡음 수준이 중간대일 때 최적의 수행성과가 나오는 것은 확률 공명의 특징 중 하나다. 잡음이 너무 작으면 신호가 역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잡음이 너무 심하면 신호가 잡음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잡음-이득 관계 그래프를 그려보면 U를 거꾸로 뒤집은모양이 나온다. - P238

하지만 생물 시스템이 내부적으로 발생시킨 잡음을 이용한다는 개념에는 아직 의문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초파리의 국소신경세포에서 발생하는 잡음이 진정한 잡음인가 하는 점이다.  - P239

잡음은 엄격한 수학적 정의를 가지고 있는데, 복잡한 생물학적 시스템에서 잡음처럼 보이는 것들은 보통 다른 어디선가 새어나오는 신호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다. "그 ‘잡음‘의 원천을 가져다가그것이 잡음의 통계학적 발자국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코스코의 말이다. - P240

부자키는 포유류에서 뇌의 활성을 조절하는 잡음 비슷한 신호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에센뷔크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거기에 특화된 잡음 발생 회로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뇌 전체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신경 활동을 지목한다. - P240

자발적 활성이 신경세포 네트워크로 퍼져나가 초당 약 40회 정도의 속도로 신경 흥분이 동기화되는 과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일례로 소위 감마파(gamma wave)라 불리는 뇌파는 서로 다른 인지 과정을 한데 묶어 지각(perception)을 만들어내는방법이라 제안되고 있다.
부자키는 유입되는 희미한 신호가 이런 자발적 활성파의 등에 올라타 역치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한다. - P241

과연 자연선택이 무작위 잡음 발생기를 장착한 뇌를 만들어 낸것인지, 아니면 그저 다른 신경 신호를 빌려다가 잡음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갖춘 뇌를 만들어낸 것인지 밝히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느 쪽이 맞든 초파리의 뇌는 약간의 디더 없이는 기능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마 우리의 뇌도 디더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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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수학
기이하기 짝이 없는 우연의 수학

우연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그것을 정량화하거나, 생물학 표본의 집합처럼 취급해서 분류할 수 있을까? 우연은 서로 다른 강도로 찾아오나? 이 장은 행운과 우연의 과학과 수학을 다루지만 그렇다고 마냥 숫자만 언급하지는 않는다. - P129

내가 아는 우연, 내가 모르는 우연

지금쯤은 당신도 눈치 챘겠지만 인간의 뇌는 패턴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낸다. 이것은 과학의 주춧돌이 되어준 능력 중 하나다.
우리는 어떤 패턴을 알아차리고 나면 그것을 수학적으로 정확하게밝히려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수학을 이용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 P130

약 한 세기 전만 해도 모든 것이 간단해 보였고, 세상은 행성의 궤도, 밀물과 썰물 같은 자연현상처럼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과 오솔길에 떨어진 우박의 패턴같이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으로 나뉘었다. - P130

하지만 1870년 아돌프 케틀레(Adolphe Quetelet)의 발견으로 질서(order)와 혼돈(chaos)을 나누고 있던 벽에최초의 균열이 생긴다. 무작위인 사건에도 통계적인 패턴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31

날씨는 진정 무작위적인 현상일까? 아니면 어떤 패턴이 있을까? 주사위는 정말 무작위로 수를만들어내는 것일까, 아니면 사실은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것일까? 물리학자들은 아주 작은 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인 양자역학에서 무작위성을 그 절대적인 기반으로 삼았다. - P131

 만약 내가 ‘공정한 동전던지기를 해서 6번 연속 앞면이 나왔다고 해도 7번째 던지기에서앞면이나 뒷면이 나올 확률은 여전히 똑같다. 반대로 한 계의 과거가 미래에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경우 그 계는 질서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다음 날 해가 뜨는 시간을 몇 분의 1초 단위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매일 아침마다 그 예측은 맞아떨어진다. 따라서 동전 던지기는 무작위적이지만 일출은 그렇지 않다. - P132

일출의 패턴은 지구 궤도의 규칙적인 기하학에서 기원한다. 무작위 동전 던지기에서 나타나는 통계적 패턴은 훨씬 당혹스럽다.
공정한 동전으로 던지기를 오랫동안 하면 앞면과 뒷면이 비슷한 빈도로 나온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할 수 있다.  - P132

동전을 얇은 원형의 원잔으로 모형화할 수 있다. 만약 원잔을 수직으로 던져 올릴 때 그 속도와 회전속도를 알 수 있다면, 동전이바닥에 떨어져 멈출 때까지 몇 바퀴나 돌지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 원반이 바닥에 닿았다가 튀어 오르면 계산이 더 어려워지기는하겠지만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 던져 올린 동전은 고전역학계(classical mechanical system)인 것이다. - P133

당신이 동전을 던져 올린순간 그 동전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바람이나 지나가는 고양이, 기타외부 요인은 무시하자). 하지만 당신은 동전의 속도나 회전속도를 모르기 때문에 그 필연적인 운명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다. - P133

주사위도 마찬가지다. 주사위 역시 역학적인 행동을 나타내고 결정론적인 운동방정식의 지배를 받는 튀어 오르는 정육면체로 모형화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초기 운동을 충분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충분히 빠른 속도로 계산을 할 수 있다면 정확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 P133

카오스는 무작위성과는 다르다. 하지만 모든 측정에 따라오는 정확성의 한계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무작위 계에서는 과거가 미래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반면 카오스계에서는 과거가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 P134

진정한 카오스계에서는 이런 오류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주사위의 모서리가 바로 이런 기하급수적인 발산(divergence)을 야기한다. 수학적으로 완벽한 정육면체가 편평한 탁자에 부딪혀 튀어 오를 때는 이런 모서리 때문에 카오스적인 행동이 나타난다. - P135

여기에 답하기 위해 물리학에서 무작위 모형이 처음 큰 성공을거둔 예를 살펴보자. 바로 통계역학이다. 이 이론은 기체의 물리학인 열역학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 P135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은 분자를 작고 단단한 구체로 모형화해서 서로 튕겨 나가는 분자들이 기체 법칙이나 다른 것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최초로 탐구한 사람이다. 그의 이론에서는 압력, 부피, 온도 같은 고전적 변수들이 내재적인 무작위성을 가정하는 통계적 평균으로서 나타났다. 이런 가정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 P136

하지만 볼츠만은 모든 구체의 정확한 경로를 일일이 추적하는 대신 구체들의 위치와 속도가 어느 특정 방향으로 왜곡되지 않는 통계적 패턴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했다. - P136

통계역학은 엄청나게 많은 구체의 결정론적인 운동을 평균 같은 통계적 측정치로 표현한다. 바꿔 말하면 거시 수준에서 결정론적 모형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시 수준에서의 무작위 모형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 P136

그렇다. 당시에 볼츠만 자신은 몰랐지만 이것은 정당한 방법이다. 그는 사실상 2가지 주장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는 구체들의 운동이 카오스적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카오스가 잘 정의된 평균 상태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종류라는 것이다. 이런 개념으로부터 에르고드 이론(ergodic theory)이라는 수학의 한 분야가 통째로 생겨났고, 수학자들이 이룬 발전 덕분에 볼츠만의 ‘가설‘은 이제 ‘정리‘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 P137

그럼 기체는 실제로 무작위적인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일까? 이것은 모두 당신의 관점에 달려 있다. 어떤 측면은 통계적으로 모형화하는 것이 가장 좋고, 또 어떤 측면은 결정론적으로 모형화하는것이 가장 좋다. 하나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맥락에 따라 다르다. 이것은 전혀 특이한 상황이 아니다. - P137

그렇다면 진정으로 무작위적인 것은 없다는 말인가? 양자세계의 뿌리를 이해하기 전에는 확실하게 얘기할 수 없다. 양자역학의 일반적인 해석에서는 아원자 수준까지 파고들어가 보면 우주는 진정으로, 그리고 환원불가능한 방식으로 무작위적이라고 주장한다.  - P138

이런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수학적 논증은 분명히 존재한다.
1964년에 존 벨(John Bell)은 양자역학이 무작위적인지, 숨은 변수에 지배되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숨은 변수란 사실상 우리가 아직 어떻게 관찰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양자적 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 P138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벨의 연구에 기초한 실험을 통해 양자계는 무작위성이, 그리고 ‘원격작용(action at a distance)‘이라는 이상한현상이 지배한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들은 양자론에서 무작위성이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고 인정하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 강한 나머지 더 이상의 문제제기를 무시해버리는 경향이있다. 이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 P139

(전략), 핵심은 수학적 정리 (mathematicaltheorem)에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벨은 자신의 주된가정은 명확하게 밝혔지만 그의 정리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일부암묵적인 가정도 끼어들었다. 이 점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벨연구의 실험 버전에는 허점도 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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