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장 규범 밀어내기
비시장 규범이 밀려나는 현상은 정확히 어떻게 발생할까? 시장가치는 어떤 방식으로 비시장 규범을 부패시키고 훼손하거나 끌어내릴까? - P159
시장 교환은 재화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서 경제적 효율성을 증가시킨다. 경제학자가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재정적 인센티브에 일반적으로 호의적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 P160
핵 폐기장
1993년 핵폐기장 건립 장소를 놓고 국민투표가 실시되기 직전에 일부 경제학자들이 마을 주민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하여, 만약 스위스 의회가 자신들의 마을에 핵 폐기장을 건립하겠다고 결의하는 경우에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투표할지 물었다. 거주지 주변에 핵 폐기장이 들어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많았지만 근소한 차이로 거주민의 과반수인 51퍼센트가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 P161
의회가 당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핵 폐기장을 건립하겠다고 발의하고 각 주민에게 매년 보상금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 안건에 찬성하겠는가?²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재정적 유인책을 추가하자 핵 폐기장 건립에 찬성하는 비율은 51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절반가량 떨어진 것이다. - P161
24. Bruno S. Frey, Felix Oberholzer-Gee, Reiner Eichenberger, "The Old Lady VisitsYour Backyard: A Tale of Morals and Markets," Journal of Political Economy104, no. 6 (December 1996); 1297-1313; Bruno S. Frey and Felix Oberholzer-Gee, "The Cost of Price Incentives: An Empirical Analysis of Motivation Crowding-Out," American Economic Review 87, no. 4 (September 1997): 746-55. Seealso Bruno S. Frey, Not Just for the Money: An Economic Theory of PersonalMotivation (Cheltenham, UK: Edward Elgar Publishing, 1997), pp. 67-78. - P293
일반적인 경제 분석에 따르면, 보상금을 지급하면 부담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경향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연구를 수행했던 두 경제학자 브루노 프레이(Bruno S. Frey)와 펠릭스 오베르홀저기(Felix Oberholzer-Gee)는 공공선에 헌신하는 태도를 포함한 도덕적 사고 때문에 가격효과는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 P162
이렇듯 시민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분위기에서 마을 주민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제의는 찬성표를 얻기 위한 뇌물처럼느껴졌다. 실제로 금전적 제안을 거절했던 주민의 83퍼센트는 자신들은 뇌물에 매수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²⁶ 재정적 인센티브를 추가하면 이미 주민들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공공정신이 강화되어 핵 폐기장 유치 지지율이 늘어나리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재정적 · 시민적 인센티브 둘이 시민적 인센티브 하나보다 강력하지 않을까?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 P162
26. Frey, Oberholzer-Gee, and Eichenberger, "The Old Lady Visits Your Backyard," p. 1306. - P294
주민들이 일반적으로 금전적 보상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현물 보상은 종종 환영한다. (중략)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금보다 공공재(소방, 공원, 도로 등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옮긴이) 형식을 띤 보상을 더욱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공원, 도서관, 학교 시설 개선, 시민문화회관, 산책로나 자전거 도로 같은 형태의 보상을 금전적 지급보다 훨씬 기꺼이 수용한다.²⁹ - P164
29. Carol Mansfield, George L. Van Houtven, and Joel Huber, "Compensating forPublic Harms: Why Public Goods Are Preferred to Money," Land Economics78, no. 3 (August 2002): 368-89. - P294
공공재는 폐기물 처리장 유치 결정으로 시민이져야 하는 부담과 희생을 인정한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거주지에 활주로나 쓰레기 매립지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주민에게 지불하는 보상금은 자칫 지역사회의 훼손을 묵인하는 데 대한 뇌물로 비칠 수 있다. - P164
기부의 날, 그리고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
매년 ‘기부의 날‘에 이스라엘 고등학생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암 연구와 장애아동 돕기 등 그럴듯한 명분을 위해 기부할 것을 요청한다. 경제학자 두 사람은 재정적 인센티브가 학생들의 동기부여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실험을 실시했다. (중략) 세 그룹 중 어느 그룹의 학생들이 기부금을 가장 많이 모았을까? 이쯤이면 보상금을 받지 않은 그룹이라고 정확하게 추측했을지 모르겠다. 보상금을 받지 않은 학생들이 모은 기부금은 1퍼센트의 커미션을 받은 학생 그룹보다 55퍼센트 많았다. 10퍼센트의 보상을 받은 학생들의 실적은 1퍼센트를 받은 학생들보다 월등히 높았지만 보상금을 전혀받지 않은 학생들보다는 낮았다. 보상금을 받지 않은 학생들이 모은 기부금은 높은 보상금을 받은 학생보다 9퍼센트 많았다.³¹ - P165
30. Uri Gneezy and Aldo Rustichini, "Pay Enough or Don‘t Pay at All," QuarterlyJournal of Economics (August 2000): 798–99. 31. Ibid., pp. 799-803. - P165
하지만 이 실험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어째서 보상금을 받은 두 그룹이 보상금을 전혀 받지않고 봉사한 그룹보다 실적이 좋지 않는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좋은 행동을 한 대가로 보상금을 주는 것이 그 행동의 특징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 P166
같은 연구자들이 이스라엘의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수행한 유명한 실험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벌금을 도입한 것은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의 수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게 했다. 사실상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경우가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부모들은 벌금을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지불하는 비용으로 여겼다. - P166
그렇다면 시장이 비시장 규범을 밀어내는 경향을 우려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재정적 이유이고 둘째는 윤리적 이유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시민의 덕성과 공공정신 같은 사회규범은 파격적인 조건이다. 돈을 주고 사려면 비용이 많이 들었을사회에 유용한 행동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 P167
그렇다고 도덕적 · 시민적 규범을 단순히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비용 효율적인 방식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규범의 내재적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선물을 현금으로 주는 행위에 찍는 낙인을, 경제적 효율성을 방해하지만 도덕적으로 평가하기에도 무의미한 일종의사회적 현상으로 다루는 것과 같다. - P167
상품화 효과
허시는 자신이 명명한 ‘상품화 효과(commercialization effect)‘를 주류경제학이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상품화 효과‘는 비공식적 교환, 상호 의무, 이타주의나 사랑, 봉사정신이나 의무감 같은기준보다는 대부분 상업적 조건에만 의존해서 제품의 성질이나 제품의공급활동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리고 상품화 과정이 그 산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가정은 거의 항상 숨겨져 있었다. - P168
허시는 2년 후에 47세의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상세하게 펼칠 기회가 없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동안 허시의 책은 증가하는 사회적 삶의 상품화 현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적 논리를 거부하는 경제학자들 사이에 비주류 고전이 되었다. - P169
내재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에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하면 그들의 내재적 흥미나 헌신을 ‘밀어내거나‘ 그 가치를 떨어뜨려 동기유발을 약화시킬지 모른다.³⁶ 일반 경제학 이론은 성질이나 출처에 상관없이 모든 동기를 선호로 해석하고 그것이 모두 부가적이라 추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돈의 잠식 효과를 간과한 것이다. - P170
36. 외재적 보상이 내재적 동기 유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수행된 128가지 연구의 개관과 분석을 살펴보려면 다음 글 참조. Edward L. Deci, Richard Koestner, and Richard M. Ryan, "A Meta-Analytic Review of Experiments Examining the Effetsof Extrinsic Rewards on Intrinsic Motivation," Psychological Bulletin 125, no.6(1999): 627-68. - P295
혈액 판매
시장이 비시장 규범을 밀어내는 현상을 설명한 가장 유명한 예는 아마도 영국 사회학자 리처드 티트무스(Richard Titmuss)가 수행한 헌혈에 관한 고전적 연구일 것이다. - P170
영국은 보상을 받지 않는 자발적인 기증자에게서 수혈에 필요한 혈액 전량을 확보하는 반면, 미국은 일부 혈액은 기증받고 일부는돈을 마련하기 위해 혈액을 팔려는 사람들, 보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혈액을 구입하는 혈액은행을 통해 충당한다. (중략) 티트무스는 경제적·실용적 조건만을 따져서도 영국의 혈액모집 시스템이 미국보다 낫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풍부한 자료를 제시했다. 그는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가정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스템에는 고질적인 혈액 부족 현상, 혈액 낭비, 고비용. 오염된 혈액이 유통될 위험성 증가가 따른다고 주장했다.³⁸ - P171
38. Richard M. Titmuss, The Gift Relationship: From Human Blood to SocialPolicy (New York: Pantheon, 1971), pp. 231-32. - P295
그는 영리를 추구하는 미국의 혈액은행들이 급전이 절박하게 필요한 사회 밑바닥 계층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혈액의 상당 부분을 사들인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혈액이 상품화되면서 점점 더 많은 혈액이 가난한 사람, 기술이 없는 사람, 실업자, 흑인, 기타 저소득층으로부터 유입되고 있다. - P171
. 티트무스에 따르면 일단 사람들이 혈액을 일상적으로 사고파는 상품으로 보기시작하면 혈액을 기증하겠다는 도덕적 책임감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티트무스는 바로 시장이 비시장규범을 몰아내는 효과를 지적한다. 혈액의 거래가 확산하면 혈액을무료로 기증하는 관행이 감소된다.⁴⁰ - P172
40. Richard M. Titmuss, The Gift Relationship: From Human Blood to SocialPolicy (New York: Pantheon, 1971), pp. 223-24, 177. - P295
시장에 대한 신념을 둘러싼 두 가지 입장
첫 번째 입장은 어떤 활동을 상업화해도 활동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에 따르면 돈은 결코 재화를 부패시키지 않고 시장관계가 비시장 규범을 밀어내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 P173
애로의 비판에서 시장에 대한 중요한 신념의 두 번째 입장은 윤리적행동은 아껴야 하는 상품이라는 것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이타주의. 관용 · 결속 · 시민의 의무 같은 도덕적 정서는 사용하면 고갈되는 희소한 자원이므로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은 미덕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다 써버리지 않게 해준다. - P175
사랑의 경제화
‘사랑의 경제화(Economizing Love)‘라는 개념은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자이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제자인 데니스 로버트슨(Dennis H. Robertson)경이 1954년 콜롬비아대학교 개교200주년 기념행사 강연에서 언급했다. 로버트슨의 강연 제목은 ‘경제학자는 무엇을 경제화하는가?(What does the economist economize?)‘였다. 그는 경제학자들이 인간 존재의 "공격적이고 쟁취적인 본능"에 영합하면서도 일종의 도덕적 사명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했다.⁴⁷ - P176
47. Sir Dennis H. Robertson, "What Does the Economist Economize?" ColumbiaUniversity, May 1954, reprinted in Dennis H. Robertson, EconomicCommentaries (Westport, CT: Greenwood Press, 1978 [1956]), p. 148. - P295
로버트슨은 "우리 경제학자들이 제대로 일한다면 희귀하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자원인 사랑을 낭비하지 않는 데 상당히 기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⁴⁹라고 결론짓는다. - P177
49. Sir Dennis H. Robertson, "What Does the Economist Economize?" ColumbiaUniversity, May 1954, reprinted in Dennis H. Robertson, EconomicCommentaries (Westport, CT: Greenwood Press, 1978 [1956]), p. 154. - P295
로버트슨이 강연한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나서 당시에 하버드대학교총장이었던 경제학자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는 하버드 기념교회에서 조찬기도를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서머스는 ‘경제학이도덕적 문제에 대한 사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강연 주제로 선택했다. - P178
서머스는 노동력 착취로 생산된 제품의 불매운동을 주장했던 학생들에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러한 접근법을 설명했다. "우리 모두는 이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근로조건과 그들이 받는 하찮은 보상에가슴 아파한다. 그러나 자의로 고용이 되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최고의 대안을 선택한 결과 일하기로 결정했다는 견해에는 확실히 도덕적 설득력이 있다. 개인이 내린 선택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그들을 존중하고 관대하게 대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행동일까?" - P179
미덕에 대한 경제주의의 견해는 시장에 대한 신념을 불타게 하고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시장을 확대시킨다. 하지만 비유가 잘못되었다. 이타주의·관용 · 결속 · 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 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 것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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