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금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가야 해요. 사람들 때문이야. 뭐라고 할 말을 생각해 내야 하는데, 의사가 나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참. 날보고는 그냥 평범한 아이랬어요, 알아요? 내비밀의 껍데기를 하나씩 벗기느라 정신없도록 만들어야 할 텐데." - P44
"정신과 의사는 내가 왜 수풀 속을 돌아다니면서 새들을 보고 나비를 채집하는지 알고 싶어해요. 언제 기회가 있으면 제가 수집한 것 보여 드릴게요." - P45
"(전략). 아저씨는 다른 방화수들과는 달라요. 저는 다른 방화수도 몇 명 알고 있지만 아저씨 같은 사람은 없어요. (중략). 하여튼 아저씨는 방화수라는 직업하고는 좀 맞지가 않아요." - P46
"신경 쓰지 말고 이리 와. 그놈이 자넬 싫어하든 말든, 그거야 그놈의 ‘기능‘일 뿐이잖나. (중략). 전선 몇 가닥에 축전지, 그리고 기계나 전기 장치 덩어리라고." - P50
"내일 기술자를 불러다가 사냥개를 점검해 보라고 하지." "그놈이 날 위협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달에도 두 번이나 그랬어요." "점검한다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 P51
"웃기는군! 기술자들의 솜씨일 뿐이잖나.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춰떨어뜨릴 수 있는 사냥이나 마찬가지야. 언제나 명중하는 게 보장되어 있지." - P52
지하철 입구에 들어서면서 몬태그가 말했다. "클라리세를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은 된 것 같아. 이상하지?" "제가 아저씨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나는 아저씨한테서 뭘 바라는 게 아니거든요. 우린 그래서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거지요." - P53
"(전략). 어느 시대든지항상 그랬다고들 말하죠? 삼촌이 그러시는데 그건 틀린 말이래요. 지난 1년 동안 제가 아는 아이 여섯 명이 총에 맞았어요. 자동차 사고로 죽은 아이가 열 명이고. (후략)." - P56
"(전략). 누구든 하는 얘기들은 다 똑같아요. 남들과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요. 카페에서도 모여 앉았다 하면 그저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깔깔거리기 일쑤죠. 똑같은 우스갯소리들만 하고하고 또 해요. (중략). 거기도 전부 다 추상적인 물건들뿐이에요. 지금 있는 것들은 다 그래요. (후략)." - P57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방화서. "몬태그, 기둥 잡고 오르내리는 게 마치 새가 나무에 오르듯 하는"구먼." 사흘째. (중략). 닷새 엿새 이레. 그러고 나서 클라리세가 없어졌다. 그날 오후에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언제나 마을 풍경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그녀가 없어졌다. - P58
어디선가 라디오 소리가 들려 온다. "·전쟁은 언제 어느 때라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시커먼 새벽 하늘에 제트기가 요란한 굉음을 끌며 지나갔다. - P59
몬태그는 자기 손에 든 카드들을 쳐다보았다. "아아....... 저, 생각을 좀 하고 있었죠. 지난 주에 나갔던 작업 말이에요. 우리가 정리했던 그 사나이의 서재를. 그런데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죠?" - P60
갑자기 더 젊은 목소리가 또렷하게 몬태그에게 얘기하는 듯이 느껴졌다. 그가 입을 열자 클라리세가 말했다. "방화수나 방화서가 아니라 소방수, 즉 불을 끄러 다니는 것이 일이었다면서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스톤맨과 블랙이 업무 지침서를 뽑아 들고 왔다. (중략).
모두들 몬태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굳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경보가 울렸다. 천장에 매달린 종이 요란하게 자기 몸뚱이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P63
도시 외곽의 낡은 3층집 한 채를 샅샅이 훑어 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중략). 현관문을 부수고 안으로 뛰어든 그들은 한 늙은 여자를 붙잡았다. 그 여자는 도망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비틀비틀거리고 있었다. - P64
스톤맨은 투덜거리면서 긴급 경보 전화 카드를 꺼내어 뒷면에 갈겨쓴 글을 보았다.
다락방이 수상합니다. 엘름 구역 11번지, E.B.
"이웃에 사는 블레이크 부인이겠구먼." - P65
몬태그가 위태위태하게 낡은 사다리를 타고 다락방을 오르는데 위에서 책들이 분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제기랄! 어째 이 모양이람. - P65
오직 물건만, 즉 책들만 처리할 뿐이다. (중략). 저 늙은 여자처럼 비명을 지르거나 반항을 하거나 해서 나중에 양심을 괴롭히는 일도 없다. - P65
그러나 오늘 밤에는 뭔가 어긋났다. 저 늙은 여자가 신성한 의식을 망치고 있다. - P66
"자, 이리 오시지 늙은이!" 여자는 책들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 등유에 흠뻑 젖은 가죽 껍데기며 책날개 따위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 P68
비티가 손을 들었다. 손아귀에는 점화기가 쥐어져 있었다. "이런 집은 법적으로 태워 버리도록 되어 있네. 게다가 이런 경우에 저 미치광이들은 대개 자살하려고 하지. 흔히 있는 일이야." - P68
여자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난 여기 그냥 있고 싶어요." (중략). 그녀는 한 손의 손가락을 천천히 폈다. 손바닥에 뭔가 가느다란 물체가 있었다. 부엌에서 주로 쓰는 성냥 한 개비였다. 사나이들은 그걸 보자마자 허겁지겁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 P69
불꽃은 밤에 봐야만 더 아름답기 때문일까? 더 멋지고 더 장관이기 때문일까? (중략). 몬태그는 겨드랑이에 숨겨 가지고 나온책이 심장처럼 그의 가슴을 쾅쾅 치는 것만 같았다. "나가요." 여자의 말이 떨어지자 몬태그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 문 쪽으로 갔다. - P70
방화서로 돌아가는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 P70
(전략). 1분 가량 지난 뒤 밀드레드가 다시 말했다. "그렇게 가만히 서 있지 마세요." 몬태그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예?" 그가 다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엉거주춤 침대로 다가가서는 재빨리 책을 차가운 베개 밑으로 쑤셔 넣었다. 몬태그는 침대 위로 쓰러졌고 밀드레드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 P73
갑자기 밀드레드가 낯선 여자같이 여겨졌다. 저 여자와 결혼해서 같이 살고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 P74
몬태그는 다시 말했다. "우리가 제일 처음 만나서 서로 알게 된 곳이 어디였지? 그리고 그게 언제였더라?" (중략). "기억할 수 없어?" "너무 오래되었어요." "10년밖에 안 됐어, 겨우 10년밖에!" - P75
"안타깝네요, 아저씨는 아무하고도 사랑을 하고 있지 않아요." 그래, 틀린 말이 아니었어. <나와 밀드레드 사이엔 커다란 벽이 가로놓여 있었던 거야 아니, 진짜벽이 가로막고 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셋씩이나!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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