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난롯가, 그리고 샐러맨더
불태우는 일은 즐겁다. 불꽃은 춤추면서 천천히, 그러나 결코 멈추는 일 없이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간다. - P15
그의 흐릿한 머리를 감싸고 있는 헬멧에는 ‘451‘이라는 숫자가 커다랗게 아로새겨져 있다. (중략). 그는 딱정벌레 등 껍데기 같은 헬멧을 벗어서 정성스럽게 문질렀다. 회색 먼지가 뽀얗던 헬멧은 곧 본래의 검은 광택을 드러내었다. 그는 자신의 방화복을 깔끔하게 펴서 헬멧과 함께 벽에 걸었다. - P16
그는 밖으로 나와서 밤이 깊어 가는 거리를 따라 걸으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땅 밑에는 프로펠러식 열차들이 소리 없이 미끄러지며도시의 이곳저곳을 연결하고 있다. 마찰이 없도록 잘 닦여진 열차 통로를 한동안 지난 뒤 몬태그는 뜨거운 김과 함께 열차에서 내려 우윳빛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겼다. - P17
그러나 오늘 밤 그는 발걸음을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이미 모퉁이 반대쪽을 떠올리고 있는 그의 마음은 희미한 속삭임 같은 소리를 듣고 있었다. 숨쉬는 소리? 아니면 그저 누군가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주위 공기가 부대껴서 가냘픈 비명을 지르는 걸까? - P18
소녀는 몬태그의 직업을 나타내는 옷의 장식들에서 눈을 들었다. "방화수(fireman)이지요?" 소녀의 목소리가 한동안 끌리다가 멈췄다. "흐흠, 어떻게 그걸?" "나는 음, 난 눈을 감고서도 알 수 있었어요." - P19
"집에 가는 길이시면 같이 가도 될까요? 저는 클라리세 매클런이에요." "클라리세. 나는 가이 몬태그요. 같이 갑시다. 이 늦은 시간에 여기서 뭘 하고 돌아다닌 거지요? 몇 살이나 되었어요?" - P20
그들은 계속 걸었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다가 소녀가 생각 끝에다시 말했다. "저는 아저씨가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아시죠?" 몬태그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사람들은 대개 무서워해요. 제 얘긴 방화수들을 무서워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아저씨도 결국은 사람들 중에 하나일 뿐이잖아요. 결국......." - P21
"그 동안 태웠던 책들 중에서 읽어보신 것은 없나요?" 몬태그는 웃었다. "그건 법을 어기는 거지!" - P22
"보람 있는 일이죠. 월요일에는 밀레이 (미국의 시인-옮긴이)를, 수요일에는 휘트먼, 금요일에는 포크너를 재가 될 때까지 불태우자. 그리고 그 재도 다시 태우자. 우리들의 공식적인 슬로건이죠." - P22
소녀는 열심히 얘기를 계속했다. "(전략). 삼촌이 한 번은고속도로에서 천천히 달려 봤대요. 시속 60킬로미터로. 근데 그랬다고 잡혀가서 이틀 동안 감옥에 있었어요. 재미있지 않아요? 또 어떻게 보면 서글프기도 하고요. 안 그래요?" - P24
. 그녀가 말했다. "아저씬 행복하세요?" - P25
물론 나는 행복하다. 도대체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한 걸까?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그는 텅 빈 방에다 대고 물었다. - P26
소녀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자기 자신의 인상을 이처럼 뚜렷하게 남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소녀는 꼭두각시 인형극의 무대 바로 앞에 앉아서 아주 열심히 인형극을 구경하는 사람 같다. - P27
계속 어둠에 싸인 채 몬태그는 이 방이 지금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봤다. 침대 위에는 아내가 잠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몸을 쭉 펴고 누운 채 잠들어 있을 것이다. 마치 무덤가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처럼. (중략). 아까 발로 찼던 물체가 몬태그의 침대 구석에서 반짝거리고 있다. 수면제가 담겨 있던 유리병이다. 낮에만 해도 수면제 알약 서른 개가 담겨 있던 그 병은 지금 텅 비고 뚜껑도 달아나버린 채 희미한 불빛속에 뒹굴고 있다. - P31
그들은 기계를 가져왔다. 그들은 사실 기계를 두 대나 가져왔다. (중략).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서 있다. 담배 연기가 그들의 코 근처를 맴돌아 눈에까지 뻗쳤지만 그들은 눈을 깜박이거나 얼굴을 돌리지도 않는다. (중략). "아, 물론 댁의 부인은 아무 문제없을 겁니다. 우리는 항상 알맞은 장비들을 가지고 다니니까. 지금 당장은 저렇지만 이제 안심해도 됩니다. 내가 말했다시피 묵은 것을 털어 내고 새 것을 채워 넣으면 아무 문제없다고요." - P33
우리는 너무나 많은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어. 우리는 수십 수백억의 가면들을 쓰고 있어. 너무 많아, 너무. - P34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겠어." 몬태그는 수면제 한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 P37
밀드레드는 몬태그의 입술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기억이 안 나?" - P38
그녀는 다시 대본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래, 오늘 오후엔 뭘 방송하지?"몬태그는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녀는 대본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 P40
"내 1년치 봉급의 3분의 1이군." "2000달런데 뭘. (중략). 네 벽을 전부 텔레비전으로 바꿔버리면 우린 집에 가만히 앉아서 매일매일 이국적인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잖아요. (후략)." "그래, 당신 말마따나 간단하게 세 번째 벽을 텔레비전으로 바꾼게 불과 두 달 전이잖아, 기억 안 나?" "그러면 충분하단 말인가요?" - P41
몬태그도 답례를 하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그 연극은 어떻게 끝나지? 행복하게 끝나나?" "아직 다 안 읽어봤어요."몬태그는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대본의 마지막 쪽을 들어 잠시 읽어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 P42
빗방울은 많이 가늘어졌다. 소녀는 고개를 하늘로 쳐든 채 보도 한복판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 위로 빗방울들이 떨어졌다. 소녀는 몬태그를 보고는 생긋 웃었다. (중략). 소녀는 몬태그의 턱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중략). "안타깝네요, 아저씨는 아무하고도 사랑을 하고 있지 않아요."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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