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클스턴은 F1의 다른 팀 오너들과 가진 첫 모임에서부터 기회를 포착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에는 자동차 산업의 거물, 뛰어난 디자이너, 레이서도 많았다. (중략). 무엇보다도, 그들 중 누구도 진짜 돈을 쥐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뛰어난 기술적 식견에도 불구하고, 항상 파산 직전이라고 앓는 소리를 해대는 모습을 보며 에클스턴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이유는 곧 분명해졌다. 상업적 감각이 형편없던 컨스트럭터들은 어떤 사안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 P83
게다가 누가 이 대회를 운영하고 있는지조차 불분명했다. - P83
에클스턴은 영국 팀끼리 회사를 차려 포뮬러 1 대회의 물류를 최적화하고, 모든 팀이 공정한 출전료를 제때, 전액 받을 수 있게하자고 제안했다. - P84
나중에 그들은 포뮬러 1 컨스트럭터 협회Formula One Constructors‘ Association, FOCA라는 이름의 정식 모임을 결성했다. - P85
이 일에서 그의 든든한 동맹은 영국 상류층 변호사 맥스 모슬리 Max Mosley였다. - P86
모슬리는 에클스턴과 함께 모터스포츠와 관련된 모든 회의에서 FOCA의 이익을 대변하며, 그 재능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버니가 의도적으로 상대방의 화를 돋우는 협상 전술을 펴는 동안, 모슬리는 완벽한 콤비 플레이를 펼쳤다. - P87
1970년대에 그가 하는 일은 거의 협상뿐이었다. - P87
그러다가 1978년에는 국제자동차스포츠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u Sport Automobile, FISA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에클스턴이 극도로 싫어하던 허풍쟁이 프랑스인이 회장 자리에 앉았다. 그의 이름은 장 마리 발레스트레Jean-Marie Balestre였는데, (후략). 대회는 늘 불안정한 상태에서 치러졌다. - P88
여전히 자금난에 시달리던 FOCA 소속 팀들은 FISA와 완전히 결별하여 세계모터스포츠연맹 World Federation of Motosport, WFM이라는 기구를 따로 세울 계획이었다. 그들은 총 15개국에서 18개 대회를 치르는 일정을 구상했고, 여기에는 모나코, 몬차, 그리고 새로운 뉴욕 그랑프리가 포함되었다. 출범 예정 시점은 1981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서킷들 중에 FISA에 맞서 WFM 편에 설 준비가 된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었다. - P89
이탈리아와 파리를 거치며 회담을 이어간 그들은 1981년 초에 마침내 타협점을 찾았다. (중략). 그해 3월, 버니와 발레스트레는 평화조약에 서명했다. 이 합의는 발레스트레의 요청에 따라 파리의 FISA 본부가 있던 지명을따서 ‘콩코드 협정 Concorde Agreement‘이라고 불리게 된다. - P90
당시만 해도 경기를 생중계하는 방송사는 거의 없었다. (중략). 당시 방송 환경이 그토록 시대에 뒤처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BBC와 그 경쟁사인 ITV가 영국의 국민 스포츠인 축구 경기90분을 방송하는 것조차 합의하기 어려웠던 마당에, (후략). - P91
얼마 안 가 가장 중요한 계약이 성사되었다. 1982년 시즌을 앞두고 유럽방송연합 European Broadcasting Union, EBU이라는 거대한 관료 조직과 맺은 계약이었다. (중략). 정작 EBU에서 나오는 돈은 100만 달러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에클스턴의 진짜 목적은 그 돈 자체가 아니었다. F1 경기 장면이 유럽 전역의 TV를 통해 방송되면서 스폰서를 유치할 수백 시간의 노출 기회가 창출된다는 점이 중요했다. (후략). - P92
1990년이 되어 시즌당 전 세계 F1 시청자 수는 무려 12억 명을 넘어섰다. - P93
에클스턴이 레이싱 팀과 서킷, 방송권을 장악하는 동안(그러면서 파리의 말쑥한 양복쟁이들과도 싸웠다), 또 다른 세력이 자욱한 연기 속에서 등장하고 있었다. 바로 담배회사였다. - P94
.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우아한 여성들을 위한 세련된 담배로 홍보하던 말보로는, 1950년대 들어 진정한 남성만이 선택하는 담배로 탈바꿈했다. 그들은 순수 카우보이의 이미지를 내세웠다. - P95
문제는 유럽인들이 서부의 정서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중략). 그래서 선택된 것이 포뮬러 1의 드라이버였다. - P95
하지만 이런 접근법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 후, 뒤펠러는 상사들에게 돈을 좀 더 전략적으로 쓰자고 제안했다. "언론에 쓰는 돈은 잊어버립시다. 팀 자체에 투자해야 합니다." 과연 어느 팀이었을까? 말보로는 특정 팀을 고르는 대신, 마음에 드는 드라이버를 골라 그들이 타는 차의 스폰서가 되었다. - P96
담배회사의 돈을 덥석 물지 않은 유일한 팀은 페라리였다. 엔초는 뒤펠러에게 "내 차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시간문제였다. - P96
끔찍한 충돌 사고로 드라이버들이 타죽는 일이 빈번하던 시대에, 뒤펠러는 조금만 돈을 쓰면 서킷의 장벽과 런오프 run-off* 구역 같은 시설을 개선하는 데 큰 공을세울 수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트랙 밖 완충지대 - P97
1990년대에 접어들자 F1 무대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진지하게 제기되었다. - P98
F1 세계에 이방인으로 발을 들인지 20년 만에, 버니는 실질적인 권력자가 되었다. 포뮬러 1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확신하는 사람은 없었을지라도, 패에서 수프리모the Supremo‘라 불리는 사나이가 모든 실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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